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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6일 오후 경기도 의왕 서울구치소에서 수감된지 240일 만에 보석으로 풀려나 구치소를 나오고 있다. 원 전 원장은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2심에서 법정 구속 되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6일 오후 경기도 의왕 서울구치소에서 수감된지 240일 만에 보석으로 풀려나 구치소를 나오고 있다. 원 전 원장은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2심에서 법정 구속 되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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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 나는 격인가,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지는 일인가. 아직 본 게임도 돌입 못 한 국가정보원 대선개입사건 파기환송심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이번에는 법원의 원세훈 전 국정원장 보석 허가가 불을 지폈다.

6일 서울고등법원 형사7부(부장판사 김시철)는 "앞으로 피고인과 검찰 모두 주장을 정리하고 입증해야 할 사항이 많다"며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을 이유로 원 전 원장을 240일 만에 풀어줬다. 원 전 원장 변호인 이동명 변호사는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당연히 보석이 될 줄 알았다"며 "불구속 상태에서 2심을 받다 법정 구속됐는데, 대법원이 이 판결을 무효라고 했으니 다시 본전(불구속 상태)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말했다.

원 전 원장의 석방이 형사소송의 원칙에 비춰 볼 때 이상한 일은 아니다. 법원은 불구속 재판을 원칙으로 한다. '확정판결 전까지 형사 피고인은 무죄로 봐야 한다'는 헌법 정신 때문이다. 또 피고인이 보석으로 풀려난다고 해서 그가 무죄 판결을 받으리라 단정하기는 어렵다.

초반부터 '의심' 쌓여가는 원세훈 재판 4라운드

그런데도 파기환송심 재판부의 보석 허가는 의심받고 있다. '면죄부'를 예고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현재 진행 중인 재판 분위기조차 심상치 않다.

지난 2일 열린 2차 공판준비기일에서 김시철 부장판사는 "1·2심 판결이 잘못됐을 수도 있다"고 했다. '원세훈 전 원장을 정점으로 하는 지휘체계에 따라 국정원 직원들이 불법 사이버 활동을 벌였다'며 1·2심 재판부 모두 유죄로 판단한 국정원법 위반 혐의를 가리키는 지적이었다. 그는 곧바로 "확정적이진 않다"는 말을 덧붙였지만, 거기에 다시 "(이전 판결이) 맞는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표현을 보탰다.

자칫하면 이미 결론이 정해져 있는 듯한 인상을 줄 수 있는 말이다. 보통 재판부는 '불필요한 오해'를 사는 일을 가장 꺼리기 때문에 공판을 진행하는 동안 최대한 자신들의 생각을 감추려고 한다. 김 부장판사처럼 "기존 판결이 잘못됐을 수 있다"고 말하는 일은 매우 드물다. 게다가 이 발언은 '피고인들이 불법 사이버 활동을 직접 지시했는지가 드러나야 유죄'라는 변호인 쪽 논리와 닿아있었다. 검찰은 이러한 재판부의 진행방식을 두고 "부적절한 오해를 일으킬 수 있다"고 항의했다(관련 기사 : 원세훈 재판 4라운드, 뿌리부터 흔들리나?).

이 연장 선상에서 볼 때 6일 보석 허가는 썩 반갑지 않은 신호다. 사건 초기 원세훈 전 원장 등을 고발했던 박주민 변호사는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재판부가 오해하게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사법부는 정치적 독립성을 의심받을 행동을 극히 조심해야 하는데 연이어 재판장의 입과 행동으로 편향성을 우려할 것들이 나오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재판부가 원 전 원장이 최근 불법 해킹 의혹으로 고소·고발당한 점까지 신중하게 들여다볼 것으로 생각했는데 보석 허가는 이 의혹들에 신경을 안 쓴다는 의미"라며 "'국정원의 정치개입'이라는 사건의 의미를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고 기계적이고 형식적으로 접근하는 듯하다"고 했다.

파기환송심 재판부의 이번 결정이 '눈치작전'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한 법조인은 "보석 허가가 고법 국감 다음날 나왔다, 상고법원 때문 아니겠냐"고 말했다.

대법원은 상고심 제도 개선을 위해 3심만 전담하는 상고법원을 설치하는 데에 온 힘을 쏟고 있다. 그런데 국회는 조만간 국감을 마치면 내년 총선 준비에 들어간다. 상고법원 설치법안이 국회를 통과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원세훈 전 원장 사건마저 상고법원과 얽혀있다는 이야기가 불거진 까닭은 대법원 선고 때문이다. 7월 16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공직선거법·국정원법 위반 모두 유죄'라는 항소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만장일치였다. 대법원은 다만 '사실관계가 확정 지어지지 않았다'며 유무죄 판단은 남겨뒀다. 법조계에서는 '대법원이 상고법원 문제를 고려, 여야 누구도 적으로 만들지 않으려는 선택이다'는 뒷말이 무성했다.

'오이밭에선 신발 끈 고쳐 매지 말라'

서울중앙지법과 서울고등법원 청사 내부 모습.
 서울중앙지법과 서울고등법원 청사 내부 모습.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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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맥락과 원 전 원장의 석방을 연결지어본다면 어떨까. 원 전 원장이 풀려나지 않았다면 재판부는 원 전 원장의 보석 기간 만료 등을 고려해 올 연말이나 내년 1월까지는 결론을 내놔야 했다. 이 기간은 상고법원의 운명이 걸린 시기와 겹친다. 법원이 국회를 자극하지 말아야 할 때이기도 하다.

그런데 6일 재판부는 보석을 허가하며 앞으로 재판이 길어질 수 있음을 암시했다. 민감한 시기에 예민한 반응을 불러일으킬 일은 피해 가는 '묘수'로 읽힐 수 있다. 이 법조인은 "단정할 수야 없다"면서도 "원 전 원장 판결이 빨리 나오는 일이 재판부나 법원에 좋을 게 없다"고 말했다.

물론 원 전 원장의 파기환송심은 아직 공판 '준비' 단계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재판이 열릴지조차 모르는 상황에서 재판부가 어떤 결론을 내놓을지는 누구도 예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어딘가 '이상한' 상황들은 오해와 의심을 낳고 있다. '오이밭에서 신발 끈 고쳐 매지 말고,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 고쳐 쓰지 말라'는 말은 그냥 나오지 않았다.

○ 편집ㅣ곽우신 기자



태그:#원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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