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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후 10일 가량 된 병아리.
 생후 10일 가량 된 병아리.
ⓒ 김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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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7일 오후 2시 57분]

"상식적으로 큰 회사들이 육계시장을 완전히 독점했다고 생각해봐. 그럼 당연히 닭값을 마음대로 올리지 않겠어? 그러니까 국민들이 지금부터 이 문제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 뭘 알아야 얘기도 할 수 있는 거잖아."

지난 2일 경기도 파주의 한 농가. 양계인 김명기씨는 양계장 쪽으로 나 있는 투명한 플라스틱 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200평 크기의 양계장에는 키운 지 9일 정도 된 병아리 2만 2000수가 사육되고 있었다.

1995년에 지은 김씨의 양계장에서는 닭 냄새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김씨는 "요즘 어느 양계장에서 닭 냄새가 나느냐"며 웃었다. "사료와 물, 온도, 의약품 및 조명 조절까지 스마트폰 한 대면 해결되는 게 요즘 양계장"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최신 양계기술과 이십여 년 넘게 닭을 키워 온 경험을 모두 갖추고 있는 김씨도 올해 닭농사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대형 육계회사들의 공급과잉으로 닭값이 한때 마리당 800원선까지 폭락했기 때문이다. 그는 "9월까지 4000만 원 정도 적자를 봤다"면서 "나는 그나마 잘한 편이고 주변에는 아예 양계업을 접은 사람들도 꽤 된다"고 했다.

김씨 등 일반 양계인들은 최근 닭값이 폭락하자 언론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시장의 문제점에 대해 호소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언론들은 보도의 초점을 '닭값'과 '치킨값'의 대비에만 맞췄다. 산지 닭값은 1kg에 900원 하는데 치킨값은 2만 원이라는 식이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여론의 질타가 치킨 프랜차이즈에 쏟아지자 닭 소비가 줄었다. 양계인들의 호소가 자기 발을 찍은 격이 됐다.

업계 전문가들은 이 문제의 원인을 육계 업체의 수직계열화로 지목했다. 계란부터 병아리 판매, 사료판매, 항생제 판매 등 닭 사육과 관계된 모든 과정을 소화할 수 있는 대형 계열업체들이 시장에 등장하면서 나타난 부작용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육계 시장이 정리되고 나면 돼지, 소도 비슷한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대형 업체 '힘겨루기'에 등 터지는 닭 사육 농민들

김명기씨가 사무실에 달린 창으로 양계장 내부를 들여다보고 있다
 김명기씨가 사무실에 달린 창으로 양계장 내부를 들여다보고 있다
ⓒ 김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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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닭을 키우는 농가는 크게 두 부류다. 업계에서는 자신이 병아리와 사료, 의약품 등 닭 사육에 필요한 물품들을 사서 닭을 키운 후 시장에 자유롭게 출하하는 농가를 '일반농가'라고 부른다. 반면 하림, 체리부로 등 대형 기업에서 수수료를 받고 병아리를 닭으로 키워주는 농가는 '위탁계약 농가'라고 한다. 현재 일반농가는 전체의 5% 남짓. 나머지는 모두 위탁농가다.

위탁계약의 이론적인 장점은 시장 시세에 관계없이 수입이 안정적인 형태로 보장된다는 것이다. 대형 기업이 지불하는 사육비대로 닭을 키워서 제 날짜에 납품만 하면 수수료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농가는 별다른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한국 농가에 적용되는 현실은 그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상태다. 최근 몇십 년 사이 닭 생산성이 높아지면서 업계의 권력이 위탁계약을 주는 대형 기업으로 완전히 넘어갔기 때문.

김씨는 "시설만 되어 있으면 10만 수 정도는 혼자서도 키울 수 있다"면서 "기업에서 몇 마리 계약을 해주느냐에 따라서 농가의 수입이 결정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점 때문에 위탁농가에서는 대형 업체 쪽에 불만이 있어도 찍소리 못하고 시키는 대로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전체 농가의 95%가 위탁농가잖아요. 그러면 기업은 아쉬울 게 없으니까 농가에게 지급되는 사육비를 깎는 식으로 횡포를 부립니다. 그래도 농가에서는 반항을 잘 못 해요. 전라도 같은 경우는 한 업체가 거의 50% 이상을 장악하고 있거든요. 그 지역 위탁농가는 그 업체에 찍히면 병아리를 아예 못 받아요. 병아리를 못 받으면 농민이 여기(양계장)에 돼지를 기를 거야 소를 기를 거야. 하는 수 없이 눈치를 보게 되는 거죠."

이런 구조 때문에 사실상 국내 육계 생산 물량은 몇 개의 대형 계열업체들이 결정하게 된다. <한국농어민신문>은 지난 8월 21일자 사설에서 최근 산지 닭값이 폭락한 이유를 '시장 점유율을 높이려는 대형 계열업체간 힘겨루기 탓'으로 지목했다. 국내 시장이 소화할 수 있는 적정량을 무시하고 계열사들이 물량 밀어내기를 한 탓에 닭값이 폭락했다는 것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올해 9월과 10월에도 공급량 과잉이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닭값 떨어져도 대형 육계업체들은 손해 안 봐"

닭값이 폭락하면 대형 계열업체들은 손해를 보지 않을까. 질문을 던지자 김씨는 웃었다. 그는 "계열사들은 병아리 부화시키는 시설, 사료공장, 제약회사, 도계장까지 다 갖고 있다"면서 "다 키운 닭을 팔기 전에 이미 돈을 버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생닭을 도계를 하면 포장을 해서 백화점이나 마트에 갖다 팔잖아요. 일반 소비자에게 가는 닭은 kg당 5000~6000원 사이에요. 산지 닭값 폭락한다고 소비자 가격도 폭락하는 거 봤어요? 1.5kg짜리 닭 한 마리 키우는 데 드는 원가가 1300~1400원 정도 듭니다. 계열업체랑 중간 유통상이 마리당 3000~4000원 정도는 가져가는 셈이죠."

상황이 이러니 계열업체나 위탁농가들은 닭값 폭락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 반면 일반 농가들은 무방비 상태에 가깝다. 그는 원가 비용을 상세히 설명했다. 우선 병아리 가격이 마리당 320원. 양계장에 까는 '깔짚' 비용이 마리당 100원. 각종 질병을 막기 위한 약값이 150원 정도다.

35일을 키운다고 가정하면 전기요금과 난방비가 합쳐서 170원가량 들어간다. 여기에 마리당 투입하는 사료 3kg 가격을 더하면 육계 1kg당 평균 원가가 1300~1400원에 형성된다. 지난해 평균 육계생산비는 1kg당 1339원이다.

이날 육계 산지시세는 kg당 1600원. 평년대로라면 원래 추석 직후는 닭값이 제일 약할 때인데 이례적인 가격이다. 김씨는 "지금 시세대로 2만2000수를 내다 팔면 600만 원 정도 남는다"고 설명했다.

기자가 "혼자 닭 키우는데 그럼 할 만한 것 아니냐"고 묻자 그는 "닭값 800원일 때는 팔면서 2000만 원씩 손해봤다"고 짧게 답했다. 그는 "올해 들어 닭값이 계속 1000원 선을 넘나들었다"면서 "지금 일반농가 사람들은 모이면 '10마리를 길러도 위탁을 해야한다'는 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닭은 돼지, 소와 달리 시세가 안 좋다고 해서 출하시점을 미룰 수도 없다. 시장에서 선호하는 중량(1.4~1.5kg 정도)이 있는데 닭은 하루 이틀만 더 키워도 그 무게를 쉽게 넘어가버리기 때문. 김씨는 "내일 닭값이 오른다는 걸 알아도 오늘 빼서 팔아야 한다"고 말했다.

"특정업체 독과점 심해져... 힘없는 농민들만 당하는 구조"

김명기씨가 오늘의 양계시세를 살펴보고 있다.
 김명기씨가 오늘의 양계시세를 살펴보고 있다.
ⓒ 김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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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치킨展(전)>의 저자인 농업사회학자 정은정씨는 이런 현상에 대해 "상위 10%의 육계 회사들이 전체 닭 물량을 주무르고 있다"면서 "특정업체들의 독과점 현상이 심해지면서 힘없는 농민들만 계속 당하는 구조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기업이 이윤을 추구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먼저 독점을 한 후 물량공세를 펴는 것입니다. 육계를 예로 들면 종계 도입부터 부화, 사료, 약품, 사육, 도계, 냉동창고, 가공, 유통, 외식업 등 모든 생산 단계마다 물량이 많이 돌면 거기에서 이윤이 창출되거든요."

실제로 국내 최대의 '닭고기 재벌'인 하림은 지난해 말 해상운송업체 팬오션을 인수해 화제가 됐다. 직접 닭 사료의 원료인 곡물 수입을 취급하겠다는 것이다. 이 업체는 현재 국내 닭고기 시장의 31.6%를 점유하고 있으며 1200여 곳의 위탁농가를 통해 한해 3억1300만 여 마리의 닭을 생산한다. 2013년 닭고기 부문 매출은 약 1조1000억 원에 달한다.

몇 개의 육계 회사들이 한국의 닭 생산과 유통을 좌지우지하게 된 데는 정부의 책임도 적지 않다. 취재 중 만난 복수의 양계업자들은 "정부 정책이 모두 계열사 위주"라면서 "어떤 공무원은 '일반 농가를 왜 키우느냐'는 소리나 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닭 시장을 바라보는 정부의 시선 자체가 생산성, 효율성 위주로 지나치게 기울어져 있다는 것이다.

정씨는 "한국이 1970, 1980년대에 기업농육성 정책을 펴면서 닭을 잘 육성할 기업들을 지정해서 키웠고 그게 지금의 육계업체들"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최근 육계업체들과 농가의 분쟁이 많아지니 정부에서 '사육농가협의회' 등 위탁농가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기구를 만드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했지만 별 실효성이 없다"고 꼬집었다.

정씨는 "소비자들이 주로 '치킨'으로 닭을 소비하다보니 닭 가격이 많이 떨어졌다는 것도, 생산자들의 문제에도 관심이 거의 없다"며 "그러나 육계 시장이 이렇게 정리되면 결국 돼지, 소 키우는 농가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 편집ㅣ홍현진 기자



태그:#닭으로 말하다, #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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