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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자들은 우주 삼라만상은 결국 '무질서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설명한다. 가장 가까운 곳인 우리의 몸만 생각해봐도, 살아 있을 때는 작은 세포들이 질서있게 '하나'를 이루지만 죽으면 자연의 '수많은' 구성 요소로 분해된다. 무질서해지는 거다. 인간 뿐 아니라, 모든 생명이 다 그렇다. 시선을 주위로 돌려볼까?

컵이 있다. 바닥에 떨어뜨리면 깨지기 십상이다. 무질서해지는 거다. 플라스틱 컵이라고? 그것도 땅에 묻어두면 한 수백년 뒤에는 썩는다. 요즘엔 좀 더 빨리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벌레도 발견 됐다고 한다. 결국 자연물이든 인공물이든 우주는 장기적으로, 무질서가 질서에 승리할 확률이 높다. 이걸 좀 있어보이게 말하면, '열역학 제2법칙'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사회에도 꼭 딴지를 거는 진보좌파들이 있듯, 우주 한 구석에도 이 거대한 흐름을 거슬러 늘 새로운 질서를 만들고 싶어 안달난 존재들이 있다. 그렇다. 인간이다. 인간은 자연에 노동력을 투입하고, 연료를 태워 열 에너지를 운동 에너지로 변환시키는 등. 별짓을 다해 물건도 만들고 건물도 세운다. 물론 열정적으로 교육과 정치 제도 등도 만든다.

위키커먼스 제공.
 위키커먼스 제공.
ⓒ Dmytro Ivashchen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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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열이든 열정이든 언젠가는 식게 마련이다. 문명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열을 내려면, 계속 뭔가를 태우든 밥을 먹어 소화를 시키든 대가를 치뤄야 한다. '인간의 질서'에는 '자연의 무질서'가 상응한다. 지구가 외부와 단절됐다면, 인간이 자꾸 뭘 한답시고 나설 수록 열을 만들기 위한 밑천이 죄다 분해되고 금방 거덜나 망해버릴 것이다.

그래도 인간은 아직 비빌 언덕이 남아있다. '태양'이다. 물론 태양도 자기 나름대로 이것저것 태워 무질서해지는 과정 중에 있는 건데, 그때 내리쬐는 열 덕분에 지구가 얍실하게(?) 간접적 혜택을 좀 보고 있다. 하지만 천문학적 시간이 걸릴망정, 태양도 언젠가 밑천은 떨어진다. 결국 장기적으로 보면 인간은 우주에 게임이 안 된다.

'뜨거움'이 사라질 우주를 상상하는 건 좀 슬픈 일이다. 그때는 문명은 커녕, 우주의 구성요소가 죄다 고르게 '분해'된 상태일 테니까. 미디어이론가 플루서와 볼츠도 이게 좀 허무했나보다. 이들은 차라리 '정신승리' 할 수 있는 방법이라도 찾아나섰다. 물질은 분해될 망정, 인간의 정신은 좀 다르다는 거다.

인간은 허무와 고독을 극복하고자 서로 대화하고 정보를 생산하면서도, 정보가 흩어지지 않게끔 체계적으로 '저장'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 또 정보를 눈으로 볼 수 있게끔 컴퓨터라는 도구도 만들었다. 그렇다면 인터넷은 무질서한 흐름을 가둬 질서를 유지하는 인간 정신의 '불사(不死)의 댐'일지도 모른다.

헬조선에도 인터넷이 생긴 것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하이텔 말고도 천리안, 나우누리, 유니텔 등이 있었다. PC통신은 요즘처럼 고용량 이미지와 동영상을 제공하는 아기자기한 인터넷 브라우저를 쓰지 않고, 새까만(시퍼런) 화면에 저용량 글자들만 뜨는 프로그램을 썼다. 게시판, 전자우편, 채팅, 동호회(현재 카페의 초기형태) 등 기본적 구색은 갖췄었다. 브라우저가 보급되기도 했지만 당시 인터넷 속도가 '심각하게' 느리고 전화비도(당시에는 전화선으로 접속했다) 부담도 상당해 당장 쓸 수는 없었다.
 하이텔 말고도 천리안, 나우누리, 유니텔 등이 있었다. PC통신은 요즘처럼 고용량 이미지와 동영상을 제공하는 아기자기한 인터넷 브라우저를 쓰지 않고, 새까만(시퍼런) 화면에 저용량 글자들만 뜨는 프로그램을 썼다. 게시판, 전자우편, 채팅, 동호회(현재 카페의 초기형태) 등 기본적 구색은 갖췄었다. 브라우저가 보급되기도 했지만 당시 인터넷 속도가 '심각하게' 느리고 전화비도(당시에는 전화선으로 접속했다) 부담도 상당해 당장 쓸 수는 없었다.
ⓒ 하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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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 인터넷은 있다. 그냥 있는 것도 아니고, 한때 'IT강국' 별명도 얻었다. 그럼 한국인이 세계에서 가장 '불사신'에 근접한 건가? 그건 아니다. 플루서와 볼츠는 한국에서 벌어질 '이상한 일들'까지 차마 예측할 수는 없었다. 우선 역사를 좀 알아야 한다.

1989년 PC통신 서비스 '케텔'(1992년 유료화 되면서 이름을 바꾼 '하이텔'이 더 익숙할지도 모르겠다)이 처음 시작되고, 1996년 초고속 인터넷이 처음 시범서비스되기 전까지를 'PC통신시대'라고도 한다. 이 때 인터넷이 심각하게 느렸는데, 1998년 집권한 김대중 정부가 IT산업을 본격적으로 밀어주면서 상황이 급격히 바뀌었다.

이제 한국은 초고속 인터넷망 시대가 된지, 벌써 20년 가까이고 스마트폰 보급률도 세계 4위(83%)에 달한다(지난 3월 기준, KT경제경영연구소). 두말 할 것 없이 사이버 생활은 이제 우리의 '제2의 천성'이다. 그 사이에 많은 일들이 있었고, 90년대 후반 '포털'이 등장한 걸 빼놓을 수가 없다. 다음, 네이버, 네이트, 야후, 파란, 라이코스, 엠파스 등등.

2000년대 초중반에는 경쟁이 너무 치열해 마치 삼국지의 군웅할거 시대가 연상될 정도였다. 지금은 상황이 대략 정리돼, 거의 '네이버-다음-네이트'의 삼자구도로 자리잡았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이 군웅할거가 인터넷 분열의 전조였다는 거다.

포털 말고도, 요즘 '인터넷 소우주'에는 수많은 독립 커뮤니티, SNS, 인터넷 백과사전들이 난립해 있다. 플루서와 볼츠는 인간이 정보를 사이버 공간에 '저장'함으로써 정신적 영역에서라도 질서가 유지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공간 자체'가 분열될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헬조선은 여러모로 연구대상이다.

분열의 조건은 '경계'다. 이제까지 인터넷은 이동이 자유로운 '탈경계적' 공간으로 여겨졌지만, 지금 누리꾼들은 크고 작은 커뮤니티들에서 서로 다른 관습과 콘텐츠들을 다양하게 생산하고 있다. 문제는 이게 너무 심해져 '경계'를 만들고 서로 의사소통 불능 상태에 빠지는 역설적인 상황이 자주 연출된다는 거다. 즉 무질서해진 것이다.

서로 너무나도 다른 커뮤니티 '부족사회'

커뮤니티는 크게 네 종류로 나눌 수 있다. 6시 방향의 회색 점들은 수많은 독립 커뮤니티들을 의미한다. 3시 방향의 남색 점들은 위키계열 인터넷 백과사전들이다.
 커뮤니티는 크게 네 종류로 나눌 수 있다. 6시 방향의 회색 점들은 수많은 독립 커뮤니티들을 의미한다. 3시 방향의 남색 점들은 위키계열 인터넷 백과사전들이다.
ⓒ 하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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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들리(Mindly)'라는 유용한 어플이 있다. 원래는 마인드맵을 그려 생각을 정리하라고 만들어진 건데, 필자는 요즘 이걸 인터넷 소우주의 지도를 그리는데 활용한다. 수많은 커뮤니티들을 마치 밤하늘의 별들처럼, 누리꾼들을 그 별들에 살며 관습과 콘텐츠를 익히고 주고받는 독특한 부족들처럼 보면서 특이점들을 관찰하고 기록 중이다.

문화인류학자 이길호도 <우리는 디씨>에서, 국내 최대 커뮤니티 디씨인사이드(아래 디씨)를 크고 작은 하위 씨족사회들(게시판들)로 이뤄진 거대 씨족사회로 분석했다. 그래서 "디씨는 디氏다"라고도 한다.(<오마이뉴스> 2015.8.30)

디씨는 흥미롭다. 1999년 김유식이 만든 이 커뮤니티 하나가, 인터넷 역사에 끼친 영향이 엄청나다. 오늘날 대부분의 커뮤니티들은 관습과 콘텐츠 모두에서 디씨의 직·간접적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게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말이다. 오늘날 '성담론'에서 가장 대척점에 서있다는 '일베'와 '메갈리아'도 마찬가지다.

'일베나 메갈이나 그게 그거지 뭐'하는 식의 생각도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그건 좀 단순하다. 일베는 "사랑받지 못했다는 모멸감"에서 먼저 여성혐오 정서가 발생한 뒤, 이중잣대론(상대방이 이중잣대를 범한다며 비난하는 논리)을 정당화시키기 위한 소재를 수집하는 관습적 행동들이 뒤따른다(<오마이뉴스> 2015.10.1).

반면 메갈리아는 일베의 '김치녀' 발언에 대응하는 '씹치남' 용어를 만드는 등 '미러링'(상대방의 행동을 따라하며 거울처럼 비추는 행위) 관습으로 움직이지만, 일베로 대표되는 여혐의 "원본이 존재하고, 그 원본의 맥락을 이해하며, 그에 맞춰 의도적으로 패러디"하기 때문에 "자연발생적 혐오의 분출이라고 보기 힘들다"(<시사인> 2015.9.17)

왼쪽부터 네이버 주요 카페들, 인터넷 백과사전, 독립 커뮤니티 및 SNS 일부다.
 왼쪽부터 네이버 주요 카페들, 인터넷 백과사전, 독립 커뮤니티 및 SNS 일부다.
ⓒ 하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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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생겨난 '오늘의 유머'나 '웃긴대학'도 상당히 오래됐다. 비록 상업주의와 상습적인 콘텐츠 '주작'(조작)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지만, 네이트의 싸이월드와 네이트판도 사람들의 추억과 감성 공간이었기 때문에 무시할 수 없다.
 1998년 생겨난 '오늘의 유머'나 '웃긴대학'도 상당히 오래됐다. 비록 상업주의와 상습적인 콘텐츠 '주작'(조작)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지만, 네이트의 싸이월드와 네이트판도 사람들의 추억과 감성 공간이었기 때문에 무시할 수 없다.
ⓒ 하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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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분석들은 데이터 과학·사회학·경제학·인류학·철학 등이 총동원됐고 상당히 높은 '개연성'을 지니고 있다. 반면 겉만 보고 '둘 다 그게 그거지 뭐'하는 식으로 때려맞추면, 혼란스러움을 쉽게 해소하는 심리적 임시방편은 될 망정 근본적 해결책은 못된다.

'이중잣대론'이든 '미러링'이든 얼추 비슷해 보인다면, 그건 아마도 디씨의 2000년대 초반 유행했던 '패러디'와 기원을 같이하기 때문일 거다. 원래 패러디는 베이비붐 세대 자녀들이 '꼰대스러운' 기성권력을 우습게 묘사해 자신들과 '구별짓기'하는 전략이었다. 그 패러디의 힘은 각각 사회비판과 소재 자체에서 절반씩 나왔다.(<오마이뉴스> 2015.8.2)

그러나 시간이 흘러, 사회비판이라는 커뮤니티의 초기 정신은 잊혀지고(새 이용자가 유입하며 가속화됐다) 소재 자체가 보장하는 카타르시스에만 열광하게 됐다. 그 통제 상실의 사례를 우리는 이미 안다. 일베다. 일베가 2000년대 후반 통제력을 상실한 디씨의 저열한 문화들을 흡수하며 독립했다. 그들은 '구조' 맹인이 됐고 사회는 그들을 지탄만 할 뿐, 포용할 수 있는 새 관습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결국 콘텐츠도 콘텐츠지만, 누리꾼들이 목소리를 내는 방식 즉 관습의 영향력도 가벼이 여길 수가 없다. 그래서 '메갈리아는 여혐혐인가 남혐인가'라는 논쟁에서, 콘텐츠적 측면에 서서 "이제야 혐오를 걱정하는" 사람들을 오히려 비판하는 쪽과(<일다> 2015.9.1), 관습적 측면에 서서 앞으로도 "지금 궤도를 유지할 수 있을까" 걱정스러워 하는 쪽(<시사IN> 2015.9.17) 모두 일리가 있다. 쉬운 문제가 아니다.

필자는 요즘 다음과 네이버 카페를 주목한다. 다음의 여초카페를 좀 살펴보면, 남녀의 갈등을 풀 단서들을 조금이라도 더 추적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다. 또한 사회문제와의 관련성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네이버 카페에서 1030이 몰려있는 취업·수험 카페도 살펴본다. 흥미로운 건, 이런 류의 카페들이 이명박 정권이 들어설 무렵부터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는 거다. 정치와의 긴장관계도 주의가 필요하다.

'설명충'문화의 한 단면.
 '설명충'문화의 한 단면.
ⓒ 페이스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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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우스개지만, 소위 '설명충'(타인에게 뭐든 설명하길 좋아하는 사람들을 낮잡는 말)이라 불리는 문화도 재밌게 보고 있다. 누리꾼들이 이들을 패러디하는 <죠죠의 기묘한 모험>의 등장 인물이 있다. 이 만화의 결정적 순간에, 뜬금없이 등장해 "누구냐 묻고 싶은 표정이로군. 소개를 하지! 나는 참견하기 좋아하는 스피드왜건!"을 외치는 감초 캐릭터다.

스피드왜건으로 대표되는 참을 수 없는 '오지랖·설명 욕구'가 뭔지, 그게 인간의 본성과 가깝다면 참 재밌는 부분이다. 대학생 홍혜은씨는 설명의 성패는 '재미'(꿀잼↔노잼)에 달렸다고 말한다. 또한 "내가 아는 최고의 설명꾼은 단연 신학계의 위키트리 여정훈이다. 그는 적재적소에 적절한 만큼만 설명하며, 듣는 쪽의 처지를 잘 고려한다. 아는 만큼 아무 데서나 떠드는 건 매력이 없다. 만국의 설명충들은 이 사람을 본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설명꾼이 꼰대처럼 훈계해서는 안 되며, 동갑내기일 경우는 더더욱 금물이라는 누리꾼 의견도 있었다. 결국 '설명' 관습은 사회 발전에 기여할 수도, 갈등의 또 다른 변수가 될 수 있어서 주목할 만하다. 인터넷의 설명 전용 공간은, 누리꾼들이 직접 편집에 참여하는 위키계열 백과사전들이 있다. 수많은 커뮤니티들을 여기서 모두 열거할 수는 없겠다.

핵심은 이렇게 정리라도 안 하면, 도무지 이 분열된 곳에서 누리꾼들이 하는 말과 행동 그리고 배후 사상을 이해하기 힘들 정도가 됐다는 거다. 단적인 예로 현재(2015.10.8) 디씨는 1788개의 갤러리, 네이버는 약 995만 개의 카페가 있으니 한 인간이 분석할 수 있는 범위는 이미 넘어섰다. 우주 삼라만상은 결국 분열한다는 물리 법칙이 인터넷에서도 비스무리하게 적용되는 걸까.

분열의 시대에, 진보좌파에게 비빌 언덕은 남아있는가

그러고보니 박 대통령의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도와준다"는 과거 발언의 재평가가 시급하다. 물론 이게 민초들에게는 뜬금없는 사주팔자식 기복신앙문처럼 여겨지기도 했지만…. 우주가 돕긴 돕는데 박 대통령만 도와준다고 한정하면, 그리 틀린 말도 아니다.

한 줌도 안 남은 진보좌파를 돌아보면, '우주 분열의 법칙'이 어쩜 이리도 일관성 있는지 자존심 싸움들이 참 대단하다(그러면서도 서로 생각은 거의 98% 동일하다. 항상 그놈의 2%가 문제다). 심각한 건 자기들만 분열하는 게 아니라, 싸우는데 열중하다 민생과도 분열된다는 거다. 결국 진보좌파는 매력적인 비전 내지 비빌 언덕을 제공 못한다.

그러니 인터넷에서 온갖 극단적 상대주의와 '충(蟲)'시리즈들이 창궐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헬조선의 민초들은 미래에 대한 확신을 얻지 못하며, 자긍심도 떨어졌다. 아 물론 당장 들어오는 변명이 있다. 진보좌파가 반성할 게 있더라도, 반성하려면 우선 자기들 나와바리에 사람들이 모여야 하고 우리는 아직 '마르크스'라는 비빌 언덕도 있다는 식이다.

이것도 좀 미흡한 사태파악인데, '설명충'처럼 신선하지 않은 콘텐츠를 훈계하듯 반복하기 때문이다. 미운 사람과 무작정 한 공간에 있기가 쉬운 일인가? 이럴 때는 마음을 누그러뜨리는 사과가 먼저고, 진중한 대화는 차차해도 늦지 않는다. 여기서 고개부터 빳빳이 세우고 민초들에게 훈계를 하려고 들면 관계는 끝난다. 이성도 중요하지만, 감정문제가 중요하다. 너무 이성만 내세우면 밥맛 떨어지게 마련이다.

또한 헬조선은 경제 불평등만 문제가 아니고, '학벌' '수도권 대 지방' '기성정치 대 청년정치' '기성세대 대 2030' 등. 문화와 정치 영역에도 불평등이 상존하며, 진보좌파도 예외가 아니다. 다양한 게 서로 그물망을 이루는 건데, 마르크스 한 가닥만 붙잡고 역량을 몰빵하는 전략을 세우니 경제 의제가 막히면 확률적으로 패배할 가능성이 높다.

사회연결망.
 사회연결망.
ⓒ Damon Cento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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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라고 분열(친박 대 비박) 요소가 아예 없지는 않지만, 우주의 법칙을 거슬러 새 질서를 세우려는 게 진보좌파라면 좀 더 절박한 입장이 아닐까. 진보좌파는 현재 권력이 없으니, 인물과 의제의 총량을 늘리는 전략을 세울 수밖에 없다. 보수처럼 정당 내 인물 몇몇에게 맹목적 충성 경쟁하는 걸 따라하기보다, 민초들의 맥락으로 직접 빠져들어 의제를 선점하고 때로는 인재들을 발굴하는 삼고초려도 불사해야 한다.

민초들의 목소리가 '날 것 그대로'들려오는 공간이 인터넷 아닌가. 이미 인터넷이 우리에게 '제2의 천성'이 됐다면, 이곳을 업신 여기고 '나와바리 정치'만 외칠 게 아니라 이곳 자체에 대한 독해력을 기를 필요가 있다. 현재 주요 커뮤니티만 간추려도 60개가 넘게 분열돼 있어서, 진보좌파가 민의(民意)를 규합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게 '객관적 조건'이다.

'그래도 SNS에서는 집권여당'이라는 식의 정신승리도 너무 낡은 사고방식이다. 이왕 정신승리를 하려거든 제대로 하자. 민초들을 상대로 억지 계몽하듯 '꼰대'처럼 굴라는 게 아니다. 그런다고 규합될 민의도 이미 아니거니와, 과학적으로도 비효율적이다.

지난 6월 발표된 펜실베이니아대 데이먼 켄톨라 교수(커뮤니케이션학)의 컴퓨터 모형실험을 통한 사회연결망 분석결과에 의하면, ⓑ처럼 한 사회집단의 소그룹들 간의 경계가 너무 없거나 ⓓ처럼 너무 경계가 심한 경우보다 ⓒ처럼 적당한 경계가 있을 때 오히려 최선의 실천과 복합적 사유가 발생하고 사회통합도 높아진다는 결과가 나왔다.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의 "인생은 탄생(Birth)과 죽음(Death)사이의 선택(Choice)이다"라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지구의 비빌 언덕이 태양이라면, 진보좌파는 비빌 언덕으로 오직 '민(民)'을 선택해야 한다. 진보좌파가 민초들의 맥락을 존중하며 따뜻하게 잘 대변할 때, 비로소 누리꾼들도 진보좌파들을 따뜻하게 대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영화 <인터스텔라> 중.

참고한 글
<The Social Origins Of Networks and Diffusion>(Damon Centola / American Journal Of Sociology Vol.120, No.5 / 2015)
<In Social Networks, Group Boundaries Promote the Spread of Ideas, Penn Study Finds>(Katherine Unger Baille / Penn News / 2015.6.22)
<컴퓨터 모형실험으로 사회학이론 반박 '눈길'>(오철우 / 한겨레 / 2015.6.24)
<우주의 무질서도는 증가한다: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이종필 / 네이버캐스트 / 2010.3.5)
<변화의 방향: 엔트로피는 증가한다>(곽영직 / 네이버캐스트 / 2009.1.30)
<우리는 디씨>(이길호 / 이매진 / 2012 / 1만7000원)
<20세기의 매체철학>(심혜련 / 그린비 / 2012 / 2만3000원)
<플루서, 미디어 현상학>(김성재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13 / 9800원)
<청년이여, 정당으로 쳐들어가라!>(강준만 / 인물과 사상사 / 2015 / 1만2000원)
<한국 PC통신 문화에 관한 연구: Pierre Bourdieu의 장, 아비투스, 문화실천 개념을 중심으로>(이만제 / 경희대학교 학위논문(박사) / 1997)
<2015년 상반기 모바일 트렌드 보고서>(KT경제경영연구소 / 2015.7.7)
<이제야 혐오를 걱정하는 당신에게>(김홍미리 / 일다 / 2015.9.1)
<'메갈리안'…여성혐오에 단련된 '무서운 언니들'>(천관율 / 시사IN / 2015.9.17)
<여자를 혐오한 남자들의 '탄생'>(천관율 / 시사IN / 2015.9.17)
<여자를 혐오한 남자들의 '습관'>(하지율 / 오마이뉴스 / 2015.10.1)
<공무원 문턱에서 탈락, '일게이' 청년은 왜 그랬을까>(하지율 / 오마이뉴스 / 2015.8.2)
<2010년 이미 예견된 '일베'의 탄생>(하지율 / 오마이뉴스 / 2015.8.30)



태그:#진보좌파, #보수에게, #자원봉사, #그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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