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오마이뉴스> 꿈틀버스 3호'가 지난달 11~12일(1박 2일) '행복도시' 순천을 찾았습니다. ▲ 기적의 도서관 ▲ 인안초등학교 ▲ 중앙동 천태만상센터 ▲ 순천만 국가정원 ▲ 사회적기업 해피락 ▲ 9988 쉼터 ▲ 철도문화마을 등 순천 곳곳에서 마주한 '행복을 위한 꿈틀거림'을 <오마이뉴스> 지면을 통해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행복한 인생과 사회를 만들기 위해 '꿈틀'거리는 현장을 찾아가는 '<오마이뉴스> 꿈틀버스 3호'가 지난달 11~12일 전남 순천을 찾았다. 12일 꿈틀버스 3호가 찾은 철도관사 마을의 '기적소리' 카페.
 행복한 인생과 사회를 만들기 위해 '꿈틀'거리는 현장을 찾아가는 '<오마이뉴스> 꿈틀버스 3호'가 지난달 11~12일 전남 순천을 찾았다. 12일 꿈틀버스 3호가 찾은 철도관사 마을의 '기적소리' 카페.
ⓒ 소중한

관련사진보기


전남 순천 조곡동엔 특별한 마을이 있다. 모눈종이에 찍힌 점들처럼 규칙적으로 자리잡은 집들, 까치발을 들면 안이 보일 듯 말 듯한 낮은 사철나무 담, 익숙하면서도 익숙지 않은 독특한 양식의 가옥…. 마을 뒷산(죽도봉)에 오르니 마을 앞을 휘익 지나는 철길과 순천역도 눈에 띄었다. 마치 잘 만들어 놓은 레고 장난감 마을 같았다.

"내가 스물넷에 이 마을에 들어왔으니, 가만 있자…. 얼마나 됐을까?"

철도 직원에게 시집온 송순방 할머니(85)가 61년째 살고 있는 이 마을은 순천 '철도관사 마을'이다. 1930년대 전라선 개통과 함께 '철도국 순천사무소' 직원들을 위해 생긴 이 마을은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철도관사 마을 다섯 곳(서울, 대전, 영주, 부산, 순천) 중 유일하게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세월이 흘러 지금은 '관사' 기능을 잃었지만, 이곳엔 여전히 송 할머니와 같은 '철도 가족'들이 살고 있다.

순천시와 마을 주민들, 그리고 이 지역 철도노동조합은 철도 관사마을이 '순천의 미래'가 되길 기대하고 있다. 이들은 철도 관사마을이 '철도 문화마을'로 진화하도록 머리를 맞댄 채 고민하는 중이다. <오마이뉴스> 꿈틀버스 3호가 지난 9월 12일 철도 관사마을을 찾았다.

 행복한 인생과 사회를 만들기 위해 '꿈틀'거리는 현장을 찾아가는 '<오마이뉴스> 꿈틀버스 3호'가 지난달 11~12일 전남 순천을 찾았다. 12일 꿈틀버스 3호가 찾은 철도관사 마을 전경.
 12일 꿈틀버스 3호가 찾은 철도관사 마을 전경.
ⓒ 호남철도협동조합

관련사진보기


80년 된 '근대유산', 순천 철도관사 마을

순천 철도관사 마을은 여러 기억과 의미를 품고 있다. 서울과 연결되는 '전라선', 영호남을 연결하는 '경전선'이 만나는 순천은 그 자체로 대한민국 철도 역사의 한 획이다. 또 앞서 설명했듯, 전국에서 유일하게 남은 철도 관사마을이기 때문에 순천과 우리나라 철도 역사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의 아픈 역사도 기억하고 있다.

"열다섯 때(1944년) 시험 보고 (순철철도에) 들어갔지. 그때는 철도를 움직인 사람들이 다 일본 사람들이잖아. 아, 그 애로사항은 다 말할 수 없어. 참 사람다운 대접을 못 받았지. 그저 한 마디 해갖고 안 들으면 (주먹을 쥐며) 이거여, 이거. 두 번째는 (주먹과 발로 때리는 시늉을 하며) 요거여. 같은 민족끼리 꾸지람 듣고, 뺨 한 대씩 맞고 한 건 괜찮은데, 그 놈들(일본)은 민족적으로다가 멸시하고, 차고 때리고…." - 성락희 할아버지(84), <구술생애사-조곡동 관사마을이 진짜배기여!> 중

순천 철도관사 마을의 정확한 착공 시점은 알 수 없다. 다만 1936년 5월 5일 "철도관사 100여 채를 신건축 중"이란 내용의 <동아일보> 기사를 통해, 1930년대 초중반 마을 조성이 시작됐음을 짐작할 수 있다. 순천 최초의 근대 계획도시답게, 당시 관사는 전기, 수도 등 신식 건축설비를 갖추고 있었다. 때문에 마을은 기존 한옥과는 다른 주거 양식을 띠고 있어, 일제강점기 '주거 건축의 도시화'를 상징하는 곳이기도 하다.

"진입 도로 부분을 보면 우리나라는 자연 지형을 그대로 이용하는데 이곳은 질서정연하다. 남북으로 넓은 도로를 내고, 이 도로 좌우로 규격화된 샛길을 만들었다. 주택의 방향은 남향이지만 출입방식은 우리와 다르다. (철도관사의) 대문은 모두 북쪽에 위치해 있다. 또 우리는 주인(남자 기준)의 거처가 대체로 독립(사랑채)돼 있는데, 철도관사는 별동으로 건축된 작은 창고를 제외하면 모든 공간이 건물 하나에 집중돼 있다. 화장실도 내부에 있다." - 우승완 순천대 건축학부 겸임교수, <순천시 조곡동 철도문화마을 길라잡이> 중

 행복한 인생과 사회를 만들기 위해 '꿈틀'거리는 현장을 찾아가는 '<오마이뉴스> 꿈틀버스 3호'가 지난달 11~12일 전남 순천을 찾았다. 12일 꿈틀버스 3호가 찾은 철도관사 마을의 송순방(85) 할머니의 자택.
 12일 꿈틀버스 3호가 찾은 철도관사 마을의 송순방(85) 할머니의 자택.
ⓒ 소중한

관련사진보기


 행복한 인생과 사회를 만들기 위해 '꿈틀'거리는 현장을 찾아가는 '<오마이뉴스> 꿈틀버스 3호'가 지난달 11~12일 전남 순천을 찾았다. 12일 꿈틀버스 3호가 찾은 철도관사 마을의 한 주택.
 12일 꿈틀버스 3호가 찾은 철도관사 마을의 한 주택.
ⓒ 소중한

관련사진보기


'과거·현재·미래' 공존하는 공간

마을은 진입로부터 뒷산까지의 얕은 오르막길을 따라, 낮은 지역의 8등 관사부터 높은 지역의 4등 관사까지 총 77동으로 촘촘히 채워져 있다. 마을 조성 당시엔 사철나무로 된 생울타리가 각 동 주변을 두르고 있었다. 독특하게 한 개 동에 두 개 관사가 붙어 있어(2세대 연립 형태) 당시 마을에는 총 152세대(이 중 독립관사 2세대, 75동×2세대+2동=152세대)가 살 수 있었다.

관사 별 필지는 7~8등 관사 100~120평, 5~6등 관사 150~170평, 4등 관사 600평으로 계획됐다. 철도국순천사무소장의 관사였던 4등 관사 자리는 현재 아파트 한 개 동이 들어서 있을 정도로 큰 규모다. 당시 조선의 경우 2등 관사는 없었고, 3등 관사가 서울과 평양에만 있었다. 마을에는 관사 이외에도 운동장, 병원, 구락부(클럽의 일본어 발음), 목욕탕, 수영장 등 시설이 자리잡고 있었다.

현재 마을은 당시 계획한 격자 형태를 유지한 채, 일제강점기 혹은 광복 후 철도 관련 직업에 종사한 이들 상당수가 그대로 살고 있다. 물론 변한 점도 많다. 철도관사가 개인에게 매각되면서 2세대 연립 형식 주택에 변화가 생겼고, 이른바 철도 가족이 아닌 주민도 많이 유입됐다. 생울타리 역시 대부분 사라져 시멘트 담이 주를 이루고 있다. 4등 관사는 철거돼 아파트로, 철도병원은 어린이집으로, 구락부는 철도아파트로 바뀌었다.

순천 철도관사 마을은 현재 '철도 문화마을'로의 변신을 준비하고 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이 변신이 아래로부터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2011년 조곡동 주민자치위원회는 그때까지만 해도 잘 알려지지 않은 철도관사 마을에 주목해 직접 사료를 뒤지고, 주민들을 만나며 마을의 역사를 공부했다.

주민자치위원회의 노력은 많은 이들의 공감을 이끌었다. 2013년 순천시는 철도 관사마을을 특화하기 위한 '철도 문화마을 만들기' 사업을 본격적으로 계획해, 주민자치위원회와 워크숍, 철도벽화·골목공원 조성을 위한 마을디자인 학교, 철도 우체통 만들기 등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행복한 인생과 사회를 만들기 위해 '꿈틀'거리는 현장을 찾아가는 '<오마이뉴스> 꿈틀버스 3호'가 지난달 11~12일 전남 순천을 찾았다. 12일 꿈틀버스 3호가 찾은 철도관사 마을. 1930년대 마을이 조성될 당시 이곳 주택은 모두 사철나무 생울타리로 둘러 쌓여 있었다. 지금은 시멘트 담으로 바뀐 곳이 많지만, 여전히 예전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곳도 있다.
 12일 꿈틀버스 3호가 찾은 철도관사 마을. 1930년대 마을이 조성될 당시 이곳 주택은 모두 사철나무 생울타리로 둘러 쌓여 있었다. 지금은 시멘트 담으로 바뀐 곳이 많지만, 여전히 예전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곳도 있다.
ⓒ 소중한

관련사진보기


전국철도노동조합 호남본부가 만든 '호남철도협동조합'도 주민자치위원회가 벌린 판에 합류했다. 특히 마을 조성 당시 철도배급소였던 노조 건물 일부를 떼어 마을카페 '기적소리'를 열었다. 기적소리는 호남철도협동조합원들의 출자금과 순천시 지원금으로 노조 건물 일부를 리모델링해 2013년 12월 철도관사 마을의 공동체공간으로 탄생했다. 이곳은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기 때문에 마을의 얼굴 역할도 하고 있다. 카페 벽면의 기차 벽화와 예전 철길 건널목에서나 볼 수 있는 조형물들이 눈길을 끈다.

지난달 12일 기적소리에서 만난 조종철 호남철도협동조합 사무국장은 "노조가 국민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협동조합을 만들었고, 자연스레 마을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주민자치위원회에 공감하게 됐다"며 "무엇보다 노조 건물 밖에 있는 동네 어르신들에게 많은 도움을 얻었고, 그들과 많이 가까워졌는데 그게 가장 큰 성과다"라고 강조했다.

 행복한 인생과 사회를 만들기 위해 '꿈틀'거리는 현장을 찾아가는 '<오마이뉴스> 꿈틀버스 3호'가 지난달 11~12일 전남 순천을 찾았다. 지난달 12일 기적소리에서 만난 조종철 호남철도협동조합 사무국장은 "노조가 국민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협동조합을 만들었고, 자연스레 마을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주민자치위원회에 공감하게 됐다"며 "무엇보다 노조 건물 밖에 있는 동네 어르신들에게 많은 도움을 얻었고, 그들과 많이 가까워졌는데 그게 가장 큰 성과다"라고 강조했다.
 12일 기적소리에서 만난 조종철 호남철도협동조합 사무국장은 "노조가 국민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협동조합을 만들었고, 자연스레 마을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주민자치위원회에 공감하게 됐다"며 "무엇보다 노조 건물 밖에 있는 동네 어르신들에게 많은 도움을 얻었고, 그들과 많이 가까워졌는데 그게 가장 큰 성과다"라고 강조했다.
ⓒ 소중한

관련사진보기


95세 주민의 한 마디, 그 자체로 '역사'

조 국장이 말했듯, 호남철도협동조합은 물론, 주민자치위원회, 순천시 등이 마음을 모아 사업을 추진할 수 있었던 건 적게는 40년, 많게는 70년 가까이 마을을 지켜온 주민들 덕분이다. 꿈틀버스단을 위해 대문을 활짝 연 7등 관사 주인 송순방 할머니는 "우리 집에 뭐 볼 것이 있다고…"라며 손사래를 치면서도 "저기는 창고, 여기는 (돌아가신) 영감(송 할머니의 남편 고 최영식 할아버지)이 가꾸던 정원인데 내가 지금까지 가꾸고 있어"라고 설명을 이어갔다. 85세의 나이가 무색하게 송 할머니의 목소리는 쩌렁쩌렁했다.

특히 철도퇴직자 모임인 '철우회'는 "노조와는 말도 안 할 정도로" 닫힌 조직이었는데 마을 만들기 사업을 통해 마음을 열고 이젠 누구보다 중요한 사업 주체가 됐다. 임동락 할아버지(82)는 주민자치위원회 고문은 물론 바둑교실 선생님 역할까지 도맡았다. 호남철도협동조합이 2013년 펴낸 <구술생애사-조곡동 관사마을이 진짜배기여!>를 보면 철우회 어르신들의 한 마디, 한 마디는 그야말로 한국 철도의 역사이자, 순천과 대한민국의 역사임을 알 수 있다.

 행복한 인생과 사회를 만들기 위해 '꿈틀'거리는 현장을 찾아가는 '<오마이뉴스> 꿈틀버스 3호'가 지난달 11~12일 전남 순천을 찾았다. 12일 꿈틀버스단을 위해 대문을 활짝 연 7등 관사 주인 송순방 할머니는 "저기는 창고, 여기는 (돌아가신) 영감(송 할머니의 남편 고 최영식 할아버지)이 가꾸던 정원인데 내가 지금까지 가꾸고 있어"라고 말했다.
 12일 꿈틀버스단을 위해 대문을 활짝 연 7등 관사 주인 송순방 할머니는 "저기는 창고, 여기는 (돌아가신) 영감(송 할머니의 남편 고 최영식 할아버지)이 가꾸던 정원인데 내가 지금까지 가꾸고 있어"라고 말했다.
ⓒ 소중한

관련사진보기


1948년 여순사건과 1950년 6·25전쟁 한복판을 지났던 그(강수련 할아버지, 95)는 이렇게 회상한다. "5000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 배달민족이 좌우로 나뉘어 피비린내 나는 살육을 감행하는 무자비한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비참했다. …… (여순사건 당시) 철도관사 입구에 있는 철도경찰대 본부가 빨치산의 습격을 받을 때도 있었고, 반란군 치하에 있을 때 본의 아니게 감투를 써서 소위 사상자로 몰려 20년형을 받고 형무소 신세가 된 동료들도 많았다."

6·25전쟁 당시 (강 할아버지는) 인민군 치하 철도공무원 생활과 국군 치하 철도공무원 생활을 겪게 된다. 인민군 치하 시절 운전 최고책임자인 운전부장직을 맡으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여순사건 당시 반란군 치하에서 자의 건, 타의 건 요직을 맡은 사람은 수복 후 가차없이 처벌당하는 것을 보았던지라 당황하기 그지 없었다. 사양하면 반동으로 주목받을 것이고 명령에 따르면 후환이 두렵고, 고민 끝에 그의 본심을 적는 비밀일기장을 쓰기 시작했다.

 1930년대 철도국 순천사무소.
 1930년대 철도국 순천사무소.
ⓒ 순천시

관련사진보기


주민자치위원회, 전국철도노동조합, 철우회, 순천시의 조화로 진화를 꿈꾸고 있는 철도관사 마을은 이제 국가가 지원하는 공간이 됐다. 지난해 대통령 직속 지역발전위원회가 주관하는 '창조지역사업'에 사업돼 국비 3억 4000만원을 지원받은 데 이어 '2015년도 문화체육관광부 관광자원개발사업'에 선정돼 2018년까지 국비 40억원(총 사업비 90억 원, 국비 40억 원+시비 50억 원)을 받게됐다. 주민자치위원회는 물론, 순천시 담당자까지 "이렇게 큰 규모의 사업을 해 본 적이 없어" 어리둥절 하지만 철도관사 마을의 재탄생을 위해 현재 아이디어를 모으는 중이다.

지난달 12일 마을에서 만난 정진철 순천시 시민소통과 주무관은 "순천이 내일러(한국철도공사의 자유여행 상품인 내일로 티켓을 이용해 여행하는 사람)들의 필수코스라 많은 사람들이 철도관사 마을을 찾는데 아직 큰 볼거리나 숙박 업소가 없어 이를 중심으로 사업을 진행하려고 한다"며 "우리의 아픈 역사가 담겨 있기도 한 근대문화유산인 만큼 이를 잘 활용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설명했다.

철도 관사마을은 순천의 미래가 될 수 있을까.

 행복한 인생과 사회를 만들기 위해 '꿈틀'거리는 현장을 찾아가는 '<오마이뉴스> 꿈틀버스 3호'가 지난달 11~12일 전남 순천을 찾았다. 12일 꿈틀버스 3호가 찾은 철도관사 마을의 철우회(철도퇴직자 모임) 사무실.
 12일 꿈틀버스 3호가 찾은 철도관사 마을의 철우회(철도퇴직자 모임) 사무실.
ⓒ 소중한

관련사진보기


 행복한 인생과 사회를 만들기 위해 '꿈틀'거리는 현장을 찾아가는 '<오마이뉴스> 꿈틀버스 3호'가 지난달 11~12일 전남 순천을 찾았다. 사진은 12일 꿈틀버스 3호가 찾은 철도관사 마을 입구의 기차모양 벽화.
 12일 꿈틀버스 3호가 찾은 철도관사 마을 입구의 기차모양 벽화.
ⓒ 소중한

관련사진보기


[꿈틀버스 3호 순천편 관련기사]

"투자 유치=시민 행복? 재벌회장도 불가능"
"공부하지 말라"는 특이한 도서관
운동장에 국기 3개, 이 초등학교 궁금하다
"끝장 보는 동네" 순천, 왜 살기 좋냐고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오마이뉴스 법조팀. 선악의 저편을 바라봅니다. extremes88@ohmy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