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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도에게 과학은 저 먼 달나라 이야기보다 더 멀게 느껴진다. 그건 과학도가 느끼는 인문학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중학교 때까지 과학을 참 좋아했다. 그중에서도 <실험과 관찰>, <과학의 역사>가 재미있었다. 반면 이해와 함께 수많은 암기가 따라와야 하는 분야들은 점점 멀리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 나에게 과학은 거의 없는 존재였다.

대신 그 자리를 역사를 비롯한 인문학이 채웠다. 거기에도 수많은 암기가 필요했지만, 이야기가 있었다. 수많은 이야기가 나를 매료시켰다. 그 이야기들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존재할 것이었다. 나에게도 해당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세상 누구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과학과는 완연히 다른 맛이 있었다.

일반인이 알고 있는 과학의 대표는 물리와 화학이다. 물리는 물질의 이치를 탐구하는 게 목적일 테고, 화학은 물질의 조성과 성질을 연구하는 게 목적일 테다. 일반인과는 동떨어진, 다른 차원의 것이다. 특히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인 인문학과는 연구 대상부터 다른바, 상종하는 건 생각하기 힘들다. 인문에는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나의 이야기가 있지만, 과학에는 그런 게 없지 않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세상 물정의 사회학>을 닮은 <세상 물정의 물리학>

<세상 물정의 물리학> (김범준 지음 / 동아시아 펴냄 / 2015.09 / 1만4000원)
▲ <세상 물정의 물리학> (김범준 지음 / 동아시아 펴냄 / 2015.09 / 1만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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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초, 사회학자인 노명우 교수가 쓴 <세상 물정의 사회학>을 굉장히 인상 깊게 본 기억이 있다. 세상 물정, 즉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와 사회학은 참 좋은 시너지를 일으켰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인문·사회 도서였다.

누가 봐도 이 책의 제목을 빌린 '물리학자' 김범준 교수가 쓴 <세상 물정의 물리학>이라는 책은 나의 오랜 고정관념을 상당 부분 타파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앞의 책보다 더 좋은 제목이었다. 시너지도 좋았지만, 깊이는 상당히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그것이 더 좋은 결과를 낳았지만.

학문 간의 통섭이니, 융합이니 하는 게 2000년대 들어 대유행이다. 가장 대표적인 게 인문과 과학의 통섭과 융합인데, 인문 쪽보다는 과학 쪽에서 주도하고 있다. 과학 하면 골방에 틀어박혀서 실험하고 관찰하고 연구하는 이미지가 퍼져 있기도 하다. 일부 과학자들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모르니, 사람을 위하고 세상을 위한 활동을 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세상 물정의 물리학>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미 수많은 통섭 활동에서 다 말했던 것들일 수도 있다.

그런데도 이 책이 괜찮았던 이유는 통섭을 방법론으로만 택했다는 점이다. 통섭을 위한 통섭이 아니었고, 통섭 그 자체에 목적이 있지 않았다는 뜻이다. 저자는 물리학자, 그중에서도 통계물리학자이지만 세상을 보는 눈은 사회학도, 인문학도의 그것이다. 세상을 보는 프레임이 통계물리학일 뿐이다. 이 점이, 이 책이 이미 나와 있는 수많은 통섭 활동의 연장선에 있음에도 싫증이 나지 않고 새로운 이유다.

예를 하나만 들어도 저자가 세상을 보는 눈을 가늠해볼 수 있다. 경남 진주의료원 폐업과 시골 초등학교 통폐합 문제에 대해 저자가 접근했다. 먼저 물리학적으로 접근한다. 이윤 추구의 커피전문점과 공익 성격에 맞게 이동 거리를 생각해야 하는 학교의 분포도를 작성했다. 커피전문점은 인구밀도에 정비례하게, 학교는 인구밀도의 3분의 2승에 비례하게 놓아야 한다고 한다. 이 둘이 다른 이유는 이윤 추구와 공익 성격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의료원 폐업과 시골 초등학교 통폐합은 지극히 이윤 추구적인 행동이다. 이들은 공익 성격의 시설들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저자는 통폐합으로 인해 학생들이 증가한 통학 거리를 이동하느라 소모할 시간의 총합은 결국 엄청난 경제적 손실로 이어질 거라고 말한다.

즉, 이윤 추구적으로 생각해도 시골 초등학교 통폐합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인문학적인 생각을 뒷받침하는 정확한 계산 혹은 통계가 가지는 힘은 인문학도의 상상을 초월한다. 정확하고 객관적인 지표에 어느 누가 쉽게 반론을 제시할 수 있겠는가.

물리학도의 눈으로 보는 새로운 세상

저자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또 다른 의미에서 인문학도의 생각을 완전히 벗어난다. 인문학도는 생각할 수 없는 그런 것들을 물리학도는 생각하는가 보다. 그가 보는 또 다른 세상을 엿보자. 그런 생각해본 적 있는가? 프로야구 구단들이 경기를 위해 이동하는 거리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저자는 '몬테카를로 방법'(주어진 온도에서 물리계의 평형상태가 어떤 것인지를 체계적으로 알아보는 계산법)이라는 통계물리학의 가장 중요한 컴퓨터 계산법으로 공평한 경기일정표를 만들었다. 물론 실제로는 다양한 제약 조건이 있어서 적용하지는 못했다. 그가 생각하는 것들이 부럽다.

또 하나의 흥미로운 연구는 보행자 문제에 관한 것이었다. 먼저 누구나 직관적으로 예상할 수 있는 것과 같은 결과, 60% 정도의 사람들만이라도 우측 보행 규칙을 잘 따른다면 길이 거의 안 막힌다는 결과를 얻었다.

하지만 보행자 밀도가 상대적으로 클 때는 전혀 이해되지 않는 결과를 얻었다. 무법 보행자가 어느 정도 있는 상황이 더 길이 잘 통하게 된다는 결과였다. 그건 서로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는 우측통행자들의 집단이 길의 가운데에서 만나게 되기 때문이었다. 우측통행이 해답이 아니고, 밀도가 해답이었다. 그가 하는 방법들이 부럽다.

인문학도가 과학적 지식을 얻는 건 정말 어렵다.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면 과학도가 인문학적 지식을 갖는 건 가능하다. 상대적으로 쉽다. 못하는 게 아니고 잘하지 못할 뿐이다. 그러면 이 세상은 과학도들의 것이 될 테다. 적어도 현재 세상을 움직이는 건 과학이니 말이다. 정확히 말하면 과학 기술이라고 해야 하나? 순수 과학과 순수 인문이 함께 매도당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는 그게 맞을 것이다.

사실 통섭, 융합은 순수 과학이 과학 기술한테 밀리지 않기 위한 수단일지 모른다. 과학 기술도 어찌 보면 통섭, 융합의 일환이니만큼 같은 거로 맞대응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통섭, 융합은 여러 방면에서 더욱 활발히 일어나야 할 필요가 있다. 목적은 같을 테니까, 더 다양한 시선과 방법으로 더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진행하게끔 하면 될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세상 물정의 물리학>(김범준 지음 / 동아시아 펴냄 / 2015.09 / 1만4000원)

이 기사는 김형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singenv.tistory.com)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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