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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진 합참의장 후보자가 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 인사청문회에서 거수경례하고 있다.
 이순진 합참의장 후보자가 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 인사청문회에서 거수경례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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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군 이래 최초의 3사관학교 출신의 합참의장이라는 이순진 대장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지난 5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열렸습니다. 대통령과 장관의 바로 아랫자리에서 국군의 작전을 총 지휘하는 군령권자인 합동참모의장의 인사 검증이라는 특성상, 보통의 청문회는 최전방 접적지역에서의 작전지휘 능력,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에 관한 의견, 작전상의 합동성 강화 방안 등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이날 이 후보자 청문회는 다소 색다른 논점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바로 5·16 군사정변에 관한 후보자의 생각에 관해서였습니다.

지난 2일, 김광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이 후보자가 과거 "5·16은 군사혁명이고 군의 권위주의가 산업화의 기반이 되었다"는 내용이 들어간 석사논문을 저술한 바 있다고 밝혔습니다.

논문 내용을 더 살펴보면, 이 후보자는 5·16에 대해 "군부의 이익 추구와 개인적 야심"을 인정하지만 "당시 정치·사회적인 무능과 부패, 혼란으로 인한 국가위기, 근대화 필요성 증대, 기회주의적 처신에 익숙한 민간 정치인들의 능력 제한" 등 수많은 불가피성 때문에 군부가 자연스레 "군사혁명"을 일으키게 되었다고 기술했습니다.

이에 대해 이 후보자는 해명 자료를 내지 않은 채 청문회에서 직접 설명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청문회 당일인 5일 국회에 출석, 야당 의원들의 질의 공세에 "개인의 의견을 밝히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역사적 판단에 맡겨야 한다", "좀 더 깊이 연구해 보겠다" 등의 매우 '소신있는' 답변으로 오전 내내 일관했습니다.

오후에 청문회가 속개됐을 때 비로소 "대법원의 판결을 존중한다"는 약간 진전된 답변으로 상황을 비껴가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5·16에 대한 이 후보자의 인식 태도는 여전히 오전 청문회 답변과 같을 것으로 보입니다.

물러서지 않는 이 후보자의 강경한 태도에 야당 의원들은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면 인준에 동의할 수 없다"라며 황당함과 분노를 감추지 못했습니다. 청문회 내용을 보도로 접한 많은 국민들의 생각도 이와 같을 것입니다. '아니, 아직도 저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이 있어?'

5·16이 '군사혁명'이라는 이순진

이순진 합참의장 후보자가 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 인사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이순진 합참의장 후보자가 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 인사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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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다소 직설적으로 드러났을 뿐 군의 전반적인 역사 인식은 대체로 이러합니다. 육사를 졸업한 군 장성 출신으로 쿠데타로 집권해 대통령이 된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군은 영예롭게 여깁니다.

저는 노태우 전 대통령이 지휘관을 지낸 부대에서 근무했습니다. 그 부대에서도 다른 것은 다 사라졌지만 '대령 노태우'라고 새겨진 기념식수만큼은 고이 보존해 귀중하게 관리되고 있었습니다. 옛날 얘기 아니냐고요? 불과 3년 전 일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사단장을 지낸 7사단은 박 전 대통령이 사용한 책상과 의자를 '대통령께서 재직시 사용하시던 기념물'이라는 안내판과 함께 역사관에 전시하고 있습니다. 다른 지휘관들과 달리 박 대통령 지휘관실은 따로 꾸려졌고, 한 벽면을 모두 차지하는 큰 초상화와 휘호까지 걸어놓았습니다.

반대되는 사례를 살펴보겠습니다. 10·26의 주범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은 박 전 대통령의 육사 동기로 6사단장과 3군단장을 역임하고 중장으로 전역했습니다. 그런데, 3군단의 역대 지휘관 명단에는 '김재규'라는 이름이 없습니다. 6사단은 아예 제명하지는 않지만 김재규만 홀로 사진이 없습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상관살해나 부대의 명예 실추 등의 책임을 물은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2004년 현역 대장으로는 최초로 구속 수감돼 화제가 된 신일순 당시 연합사 부사령관. 당시 수사를 지휘한 최강욱 국방부 수석검찰관의 계급은 '소령'이었습니다. 현역과 예비역 장성들을 중심으로 한 장교단은 이 사건에 대해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고 합니다. 신 부사령관의 횡령 혐의는 매우 명징했고 장교단도 이를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어찌 감히 소령이 대장을 구속 수사할 수 있느냐'라며 분을 참지 못했습니다.

해군에는 '김영수'라는 예비역 소령이 있었습니다. 그는 2009년 군의 납품 비리를 목도하고 이를 군 내에서 해결하려 했지만 실패했고 <PD수첩>에 출연하여 폭로합니다. 그러나 정옥근 당시 참모총장은 "군인의 신분을 망각하고 일신을 위해 책임없는 발언을 하는 사람의 말로 해군이 매도된다"라고 일축했습니다. 3년 연속 선후배 근무평가에서 1위를 한 김 소령은 근무평정 최하점을 기록하고 책상도 없는 자리를 전전하다가 2년 만에 전역합니다.

저는 박정희는 나쁘고 김재규는 훌륭한 사람인데 대접이 바뀌었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김재규를 제명한 군의 처사도 저는 충분히 이해합니다. 다만 이순진 합참의장 후보자의 군사 "혁명" 두둔 발언을 통해 드러난 군의 나태한 자아 성찰을 짚고 싶습니다.

'우직한 군인' 이 후보자가 진짜 배워야 할 것

이순진 합참의장 후보자가 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 인사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이순진 합참의장 후보자가 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 인사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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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은 상관을 살해한 김재규를 기록에서 지워 버렸고 대장을 구속한 소령을 공격했으며, 비리를 폭로한 소령을 사실상 내쫓았습니다. 군은 그런 조직입니다. 좋게 말하면 조직의 안정성을 중시하는 집단이고, 나쁘게 말하면 계급이 그저 모든 것인 맹목의 군상입니다. 그러나 이 강한 본능이 적용되지 않는 딱 하나의 예외가 있습니다. 바로 군사정권기의 전 대통령들에 대한 평가입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1년 소장 계급으로 2군 부사령관에 불과했으나 친분 있는 지휘관들의 병력을 동원하여 서울을 접수, 참모총장과 총리, 대통령을 사실상 무력으로 제압하고 집권했습니다. 전두환과 노태우 전 대통령 또한 1979년 겨울 소장 계급에 지나지 않았지만 혼란기를 틈타 후배 장교들의 병력을 동원하여 서울을 접수합니다.

당시 전방의 9사단장을 맡고 있던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의 병력 중 1개 연대를 후방으로 빼서 경복궁 앞에 집결 시켰는데, 이는 본대 복귀를 명한 3군사령관의 명령을 정면으로 어긴 것이었습니다. 결국 쿠데타에 성공한 이들은 대통령을 구금하고 직속상관이었던 계엄사령관을 체포해 불명예 전역 시켰습니다.

이들의 행동이야말로 군이 진정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계급 역전 시도이자 조직의 안정성 파괴 행위입니다. 그런데도 이들에 대한 군의 태도에는 침묵을 넘어서서 일말의 충심까지 엿보입니다. 이 후보자는 청문회에서 굳은 표정으로 "개인적 견해 표명은 부적절"이라는 입장을 되풀이했습니다. 이는 상관의 단점에 관해서는 입을 다물겠다는, 충성스럽고 우직한 군인의 표정이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곧 군 전체의 태도로 비쳐졌고 그것이 진심으로 안타까웠습니다. 이 후보자는 오후에 속개된 청문회에서 약간 후퇴해 오전 발언 태도를 사과하고 대법원 판단을 존중한다고 입장을 바꿨습니다. 하지만 "5·16은 공과가 있으며 결과적으로 우리 사회에 많은 발전을 가져왔다고 생각한다"라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동의하는 바입니다.

5·16은 분명 공과가 있으며 사회 발전을 가져온 부분 또한 분명 큽니다. 그러나, 얼마만큼의 경제 성장이 있었고 얼마만큼의 사회 발전이 있었는지의 따위를 따지는 것은 민간에서 논할 문제입니다. 군인으로서, 더군다나 군령계선의 최고 지휘관으로서 장차 쿠데타가 일어나지 않도록 부대를 잘 통제해야 할 합참의장 후보자가 들여다봐야 할 측면은 아닙니다.

군이 국토 방위를 위한 집단이지 경제 발전을 위한 집단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상급 부대의 작전명령을 거부하고 총구를 돌려 정권을 잡았다는 점, 이것이 이 후보자와 군 수뇌부가 세 명의 전직 대통령에게서 배워야 할 유일한 역사입니다.

이 후보자를 포함한 이번 차수 대장 인사가 있었던 9월 14일에, 저는 휴대폰으로 '3사 출신'이라는 속보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2년 전 최윤희 당시 해군참모총장이 합참의장에 보임되면서 2년 동안이나 최선임 장교의 자리를 놓아두고 지냈던 군 수뇌부의 기득권 세력이 이번에는 반드시 육사 출신을 의장에 앉힐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 후보자의 능력이 육사 출신의 경쟁자들을 압도할 만큼 출중하거나, 통수권자의 의지가 강하게 작용하였거나 둘 중의 한 경우일 것입니다. 저는 전자일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후보자가 5·16은 혁명이라는 식의 태도를 계속 유지한다면 이번 인사 혁신의 배경이 후자가 아니었겠느냐는 논란을 스스로 만들어내게 될 것입니다.

"합참의장으로서 군의 정치적 중립에 대해서 명확한 소신을 가지고 있다"는 후보자의 말이 참으로 무색할 따름입니다.

○ 편집ㅣ홍현진 기자



태그:#이순진, #청문회, #5.16 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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