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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쏟아지는 판결 기사, 법조계 소식. 하지만 흥미 위주의 기사로는 내막을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도무지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난감할 때도 많습니다. 그래서 최신 법조계 소식을 쉽게 정리해서 소개합니다. 우리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판결, 법률, 법원·검찰 관련 소식 등 누구나 알아야 할 법률 정보를 알려드립니다. <간추려서 단번에 한 주간 법조계 소식>, 줄여서 <간단한 법>이 법을 보는 올바른 눈을 갖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 - 기자 말

<간단한 법> 여덟 번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① 도둑질에 폭행까지, 그래도 벌금형 선처한 사연
② 아직도 9명 못 돌아왔는데... 정부 세월호 배상 시한 마감
③ 교통 사범 전락한 대선후보 2명... '살아있는 권력'이었다면?
④ '특수폭행' 적용법은 검사 맘대로? 헌재 "평등의 원칙 침해"
⑤ 역시나 법은 재벌에 관대했다

① 도둑질에 폭행까지, 그래도 벌금형 선처한 사연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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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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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에 들어가 물건을 훔치고, 도둑질이 발각되자 사람까지 폭행했다면 중범죄임이 틀림없다. 그런데도 법원이 벌금형으로 선처해 준 사건이 있다. 어찌 된 영문일까.

인적이 드문 이른 새벽, 어느 대학교 단과대 건물에 낯선 남성이 들어섰다. 주변을 살피던 그는 어느 방으로 들어갔고 한참 후 건물 밖으로 나왔다. 손에 들려진 것은 다름 아닌 '책'이었다.

며칠 뒤 남성은 또다시 같은 건물로 들어섰다. 책을 찾으러 방문을 열다가 이번엔 청소부와 맞닥뜨렸다. 청소부가 "여기서 뭐 하느냐"고 하자 남성은 청소부를 폭행하고, 계단 아래로 넘어뜨렸다.

하지만 곧 경비원들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확인 결과 남성은 이 학교 대학원생 A씨(34)였다. 그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책을 훔쳤고, 발각될까 두려워 폭력을 썼다고 털어놨다. A씨는 절도, 상해, 건조물침입 협의로 구속돼 재판에 넘겨졌다.

법정에 선 A씨는 범행을 인정하면서 "생활이 어려운 나머지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게 됐다"고 고개를 떨구었다. 판사(서울중앙지법 형사19단독 하태환 판사)는 지난달 24일 고심 끝에 징역형 대신 벌금형을 택했다. A씨에게 사회적으로 재기할 기회를 주는 것이 타당하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법원은 "절도의 목적으로 2회에 걸쳐 대학교에 침입했고, 체포를 면탈하기 위해 상해까지 입힌 범행은 사실상 강도에 준하는 것으로 피고인의 책임이 무겁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 A씨가 수년간 학업에만 몰두, 사회복지학 석사 과정 중이고 ▲ 홀로 생계와 공부를 병행하던 중 극심한 경제적 궁핍 때문에 우발적으로 범행에 이르게 된 점 ▲ 범행을 시인하고 뉘우치는 점 ▲ 피해자와 합의하였고 피해자들 모두 관대한 처벌을 탄원하는 점 등을 참작, 벌금 7백만 원을 선고했다.

검사도 항소하지 않아서 벌금형은 확정됐다. A씨가 개과천선하여 사회복지 전문가로 거듭나길 기대한다.

② 아직도 9명 못 돌아왔는데... 정부, 세월호 배상 신청 마감

정부의 세월호 참사 배상·보상 신청이 종료됐다. 하지만 1/3에 가까운 희생자 유족들은 배상신청을 거부하고 있다. 참사의 원인과 책임소재 등 진상을 밝히는 것이 우선이라는 이유에서다.

해양수산부는 '4·16 세월호 참사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에 따라 배상·보상 신청접수를 9월 30일 종료했다고 밝혔다. 이때까지 신청된 건수는 총 1297건이었다.

그중 인적배상은 약 75%(총 461명 중 348건 접수)가 접수됐다. 희생자 304명 중 208명(약 68%), 생존자 157명 중 140명(89%)이 배상을 신청했다. 반면 희생자 96명의 유족과 생존자 17명은 배상 대신 정부 등을 상대로 한 소송으로 맞섰다.

특별법에 따라 배상을 받게 되면 재판상 화해의 효력이 발생해 별도로 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 소송을 택한 유족들은 진상규명과 책임소재가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배상절차가 마무리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4·16 세월호 가족협의회 유경근 집행위원장은 지난달 언론 인터뷰에서 "몇 푼의 돈을 받고 참사의 진실을 땅에 묻어버릴 수 없다"며 "진상규명을 위해 소송까지 선택한 피해자 가족들에게 많은 관심을 가져 달라"고 호소한 바 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1년 반이 지났다. 하지만 진실은 밝혀진 게 없고, 더구나 아직도 돌아오지 않은 '미수습자'는 9명이나 된다. 유족들이 금전배상보다 더욱 간절히 바라는 것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진상규명과 재발방지에 나서는 일이 아닐까 싶다.

한편, 아직 마음을 추스르지 못한 유족들을 상대로 한 소송도 제기됐다. 세월호 희생자 정부 합동분향소가 있는 안산 화랑유원지 내 매점과 식당 상인 3명은 분향소 때문에 영업에 손실을 보았다며 1일 서울중앙지법에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이들은 소장에서 '분향소 때문에 1년 반 동안 5천만 원씩의 손해를 보았다'고 주장하며 경기도, 경기도교육청, 안산시, 4·16 세월호 가족협의회를 피고로 삼았다. 소송대리인은 강용석 변호사가 소속된 법무법인 넥스트로가 맡았다.

③ 교통 사범 전락한 대선후보 2명... '살아있는 권력'이었다면?

정동영 전 의원(왼쪽)과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오른쪽).
 정동영 전 의원(왼쪽)과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오른쪽).
ⓒ 권우성/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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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2명이 교통 사범으로 벌금형 판결을 받았다. 알고 보니 두 사람은 2011년 같은 날 같은 시각 서울 광화문에 있었다. 그들은 무슨 '연유'로 전과자가 되었을까. 무단 횡단이라도 함께 한 걸까.

두 사람은 정동영 전 의원과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다. 이들은 2011년 11월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한미FTA 저지를 위한 범국민운동본부 주최 집회에 참가했다. 참가자들은 세종로 사거리로 진출해 '한미 FTA 폐기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검찰은 두 사람이 시위대와 공모하여 교통을 방해했다는 혐의(육로교통방해)로 기소했다.

먼저, 정 전 의원은 지난 2월 유죄가 인정돼 벌금 50만 원을 선고받았다. 곧바로 항소했으나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이 전 대표도 지난달 25일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이 전 대표는 당시 국회의원이자 민주노동당 대표였다. 그는 "야당들이 공동 개최한 정당연설회였고 공모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통상적인 정당 활동이라고 보기 어렵다면서 유죄를 인정했다. 사건이 일어난 지 4년이 다 된 시점에서 한때 야당 국회의원이자 대통령 후보였던 정치인들을 집시법도 아닌 교통방해로 처벌하는 건 어딘가 궁색해 보인다.

공교롭게도 두 명 다 '현역'이 아니다. 법은 누구에게나 공평해야겠지만 두 사람이 현직 의원이었더라도 같은 결과가 나왔을지는 의문이다. 시민들은 '살아있는 권력'에 엄격한 검찰과 사법부를 원한다. 영화 <베테랑>에서 무모하리만치 재벌에 맞서는 서도철 형사처럼, 현역 정치인이나 재벌들의 거악에 맞서 단죄를 내리는 당당한 검찰과 법원 말이다.

④ '특수폭행' 적용법은 검사 맘대로? 헌재 "평등의 원칙 침해"

술을 마시다가 시비가 붙었다. 한 사람이 상대에게 흉기를 휘둘러 폭행했다면 어떤 법의 적용을 받고 어떤 처벌을 받을까. 정답은 '검사 마음'이다.

형법(261조)을 적용할 경우 특수폭행이 된다. 이때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 선고가 가능하다.

하지만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아래 폭처법)을 적용하면 달라진다. 폭처법 3조 1항에 따르면 1년 이상 유기징역에 처하게 되어 있다. 따라서 같은 죄를 저질러도 어떤 이는 벌금 몇백만 원으로 그칠 수도 있고, 다른 이는 징역살이 10년을 선고받을 수도 있다.

벌금을 제외하고 징역의 법정형만 놓고 봐도 형법은 징역 1개월~5년, 폭처법은 징역 1년~30년이라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나타난다.

단체나 다중의 힘을 과시하거나, 흉기를 사용할 경우 법에서는 '특수'를 붙여 가중처벌한다. 그런데 특별법인 폭처법은 또다시 형을 높여 놓았다. 헌법재판소는 "형법 체계상의 균형을 상실하고 법의 적용을 오로지 검사의 기소 재량에만 맡기고 있다"며 폭처법 3조 1항에 대해 지난 9월 24일 위헌결정을 내렸다.

위헌이 결정된 조항은 특수폭행, 특수협박, 특수손괴를 가중처벌한 부분이다. 헌재는 "해당 조항이 평등의 원칙을 위반하고 피고인의 자백을 유도하는 수단으로 악용할 소지도 있다"고 지적했다. 폭력은 단죄해야겠지만 잣대는 누구에게나 공정해야 한다.

⑤ 역시나 법은 재벌에 관대했다

영화 <베테랑> 스틸컷.
 영화 <베테랑> 스틸컷.
ⓒ 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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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재벌에 관대할까. 누구는 오해라고 주장하고 누구는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 법원이 재벌 범죄에 관대하다는 통념을 실증적으로 밝히는 연구자료가 나와 시선을 끈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지난 1일 발표한 보고서 <왜 법원은 재벌(범죄)에 관대한가>에 따르면, 재벌 피고인은 일반 피고인보다 선처를 받을 가능성이 크고 이러한 경향은 재벌의 규모가 클수록 강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2000~2007년 유죄판결을 받은 기업인 252명의 경제범죄 중 횡령, 배임, 사기사건을 분석대상으로 삼았다. 보고서는 "형사사법시스템 전체에서 강한 재벌 편향성이 확인된다"고 평가했다. 다시 말해 구속 결정 여부에서 양형 전반에 재벌 피고인이 일반 피고인보다 관대한 처우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실례로 재벌 피고인의 경우 일반 피고인보다 실형선고 가능성은 약 10%포인트, 구속 기소 될 가능성은 약 27%포인트 낮았다. 실형을 선고받더라도 재벌 피고인의 교도소 복역 기간은 19개월 정도 더 짧았다. 이같이 재벌에 '관대한' 결과는 총수 일가나 전문 경영인을 가리지 않았다.

보고서는 사법부의 '재벌 편향성'을 대마불사(大馬不死)의 사법부적 변용, 즉 대마불옥(大馬不獄)이라고 분석했다. 재벌이 구속되지 않는 효과는 재벌 규모가 클수록 더 도드라지는데 피고인이 10대 재벌에 속해 있을 경우 집행유예 확률은 더 올라간다는 것이다.

보고서를 작성한 최한수 부연구위원은 "(범죄가 대기업 계열사 간의 내부거래 형태로 발생하는 경우) 한국의 법원은 소수 주주와 외부 투자자의 입장에 서기보다는 그룹 전체의 이익을 고려하여 위법성의 정도를 판단하는 관행을 쉽게 버리지 못하고 있다"며 "한국 법원의 대마불옥의 문제는 기본적으로 법원의 문제이고 더 나아가 법원의 재벌 내부 거래에 대한 소극적 태도에 기인한다"고 지적했다.

역대 대법원장들과 대법관들이 취임사에서 "소수자를 보호하겠다"고 한 다짐이 소수 재벌만을 보호하겠다는 뜻은 아니었을 텐데….

○ 편집ㅣ김준수 기자



태그:#간단한법, #재벌, #법원, #이정희, #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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