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렇게 죽는 건가?'

스산했다. 한기가 느껴졌다. 차가운 새벽공기. 낯선 산속 공사장. 그곳은 어둡고 으스스했다. 마치 영화에서 납치된 주인공들이 묶여 있는 폐가 공사장처럼 보이는 산속 건물이었다. 공포가 밀려왔다.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설마, 납치당했나?'라고 생각한 순간,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대체 날, 왜?' 짧은 순간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이 지나갔다. '돈 없는 대학생을 누가 납치하나? 새우잡이 배에 태우려고 하나? 수많은 잡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호랑이 굴에 잡혀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고 하지 않던가? 어서 정신을 차려야 한다'라는 생각뿐이었다. 탈출해야 한다. 그 어둡고 으스스한 곳을 어서 탈출해야 한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했다. 그렇게 초긴장 상태가 되니 저절로 정신이 돌아왔다. 정신을 차리고 몰래 살살 몸을 다시 움직여봤다. 이상하게도 팔다리가 쉽게 움직였다.

'이건 뭐지?'

자세히 보니 팔다리가 묶여있지 않았다.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자 안도의 한숨이 뿜어져 나왔다. 쥐죽은 듯 몰래 주변을 살펴보니 그 공사장엔 다른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나밖에 없는 듯했다. 그곳은 무슨 집을 짓다가 말았는지 마당에는 모래가 쌓여 있고 건물은 위태 위태했다. 그 공사장 모래 위에 내가 누워 있었던 것이다.

나는 주변에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한 후, 허겁지겁 내 호주머니를 뒤져봤다. 역시나 내 지갑은 없었다. 일당 5만 원을 꼬깃꼬깃 접어 넣었던 소중한 지갑. 눈을 떠보니 지갑은 사라지고 기괴한 풍광이 보이는 상황. 그래도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꿈이 아닌 현실. 내가 여기 왜 와 있는지 모르지만 빨리 친구네 집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한 순간, 긴장이 풀려서인지 두통과 목덜미 뒤로 흐르는 약한 통증이 느껴졌다.

만취해서 택시에 오른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알바비를 받은 날, 후배들과 술 한 잔 했다. 다리가 풀리기 직전 자리에서 일어나 택시를 탔는데, 내가 눈을 뜬 곳은 산 속 폐가였다. 지갑은 사라졌다.
 알바비를 받은 날, 후배들과 술 한 잔 했다. 다리가 풀리기 직전 자리에서 일어나 택시를 탔는데, 내가 눈을 뜬 곳은 산 속 폐가였다. 지갑은 사라졌다.
ⓒ pixabay

관련사진보기


그날 내가 그곳에 가게 된 상황은 이랬다. 나는 술을 마시고 주사를 부리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그날따라 후배들과의 술자리가 유쾌했다. 게다가 학교 앞 번화가가 유독 저렴하고 화려한 곳이라, 가벼운 주머니로도 후배들에게 큰소리칠 수 있었다. 그날은 삼박자가 맞았다. 알바비를 받았고, 좋아하는 후배들도 있고, 시간도 여유로웠다.

초반 러쉬(Rush, 서두른다는 뜻-편집자 말) 탓일까? 난 취기가 오르는 걸 느꼈다. 급하게 오른 취기는 번화가에서의 즐거움까지도 망각하게 만들었다. 여자 후배 여러 명도 함께 한 술자리여서 더 취한 모습을 보이기 싫었던 것 같다. '나의 취한 모습을 보이지 말라'며 나는 스스로 최면을 걸었다. 머리 속은 다리가 풀리기 전에 자리를 떠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원래 그날의 계획은 후배들과 늦게까지 술자리를 가진 후, 학교 근처에 사는 친구 집에 가서 잠을 청하기로 돼 있었다. 그날 나는 다급한 초반 러쉬로 초저녁에 친구네로 가야하는 상황이 됐다. 초반에 달린 탓에 나의 유쾌하고 즐거운 술자리는 너무도 짧게 끝나버렸다. 성급히 나가면서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했다. 단, 선배의 필수 덕목인 계산은 잊지 않았다. 서서히 다리가 풀리는 것은 직감한 나는 감히 학생 신분에 택시를 잡았다. 그리곤 인상 좋은 기사 아저씨와 잠시 이야기를 나눈 후 정신을 잃었다. 그후 잠이 들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 이후 나는 산속 공사장에 누워있었다.

공사장에서 빠져나온 나는 '빨리 친구들한테 가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그 친구들이 좀 특이했기 때문이다. 한 명은 '삼장법사'라는 별명을 가진 친구, 또 한 명은 '쩌우찌엔(저팔계)'이란 친구.

삼장법사라고 불리는 친구는 말이 많았다. 주성치가 출연한 영화 <서유기 선리기연>에서 삼장법사는 쉴 새 없이 떠드는 캐릭터다. 영화에서 그 삼장법사를 지키는 요괴들이 삼장법사가 떠드는 소리에 자살할 정도다. 영화를 본 친구들은 자연스럽게 그 친구를 삼장법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삼장법사라는 별명의 친구도 현실에서는 두려울 정도로 시끄러웠다. 친구들은 항상 그 녀석에게 이렇게 부탁했다. "제발, 입 좀 다물어줘"라고. 또 다른 친구 저팔계는 굳이 말을 안 해도 짐작하시리라.

삼장법사 친구의 집은 그 산 중턱 유원지에 있었다. 그 친구의 집을 찾아 가면서도 '내일 그 잔소리 어떻게 다 듣나' '저팔계는 엄청 짜증 낼 텐데'라는 생각밖에 없었다. 난 내가 그 산속 공사장에 누워 있던 이유는 아마도 택시에서 내린 뒤 잘못 걸어 갔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공포스러운 공사장을 잽싸게 빠져나와 친구네 집을 찾아갔다. 쿨쿨 자고 있겠지란 생각을 하며 친구 집에 도착했다.

지갑은 사라졌지만, 두 친구의 마음을 확인했다

'이게 웬일인가?'

친구 집은 불이 훤하게 켜져 있었다. 시간은 오전 4시쯤이었다. '불을 켜고 자나 보다'라는 생각을 하는 찰나, 뒤에서 누군가 사납게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당연히 자고 있을 거로 생각했던 친구들이 안 자고 나를 기다렸던 것이다. 그것도 아주 팔팔하게. 친구들은 나를 보자마자 역정을 냈다.

"야! 어떻게 된 거야?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여기 퍽치기가 많은 동네란 말이야! 지금까지 너 찾으러 다녔어. 대체 어디 있다가 온 거야?"

친구들은 역정을 내면서도 한편으론, 그나마(?) 멀쩡해 보이는 나를 보고 안도하는 듯했다. 나중에 친구들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보니, 그 동네는 유원지와 가까워서 밤에는 술 취한 사람들을 상대로 종종 퍽치기가 일어난다고 했다. 그래서 친구들은 잠도 못 자고 산 중턱 유원지 일대를 새벽까지 헤매고 다녔다고 했다.

산속 공사장에서 정신을 차리고 나왔다는 내 말을 듣고는 녀석들은 역정을 이내 접었다. 바로 내 몸 이곳저곳 상태를 살폈다. 어디 아픈 곳은 없느냐며 여기저기를 훑어보고,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그리고 녀석들의 눈은 초승달처럼 편안하게 변했다. 그러면서 삼장법사의 자그마한 방 온도를 높였다.

그날 나는 힘든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꼬깃꼬깃 넣었던 지갑을 잃어버려다. 누가 도둑인지는 얼굴도 보지 못했다. 퍽치기를 당했는지 아닌지는 나도 잘 모른다. 너무 놀라서 아픈 줄도 몰랐다.

잠도 못 자고 나를 찾아다닌 친구들과 함께 있는 자그마한 방에 온도가 올라가자, 얼어있던 내 마음도 조금씩 녹았다. 그날은 왠지 삼장법사의 수다도 귀찮지 않았다. 저팔계의 비곗살도 든든해 보이기만 했다. 그렇게 나의 산속 공사장 느와르는 종료됐다. 소중한 알바비가 들었던 내 지갑은 사라졌지만, 대신 친구들의 마음이 나에게 따뜻하게 전해지는 걸 느꼈다. 난 다시 곤한 잠이 들었다.

내 지갑을 누가 훔쳐갔는지는 모른다. 내가 퍽치기를 당했는지도 모른다. 확실한 것은 나의 지갑을 누군가가 가져갔다는 것이고, 다행히 신체적 위해는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가 몸이 건장해서 일 수도 있지만, 운이 좋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그 이후로는 무리하게 술을 마시지 않는다. 다시 한 번 산속 공사장에서 눈을 뜨고 싶지 않기에.

그날 내 지갑 훔쳐 가신 분! 어떻게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사공모 '도둑들' 응모글입니다.



태그:#도둑들, #주사, #지갑, #퍽치기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삶은 기록이다" ... 이 세상에 사연없는 삶은 없습니다. 누구나의 삶은 기록이고 그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사람사는 세상 이야기를 사랑합니다. p.s 오마이뉴스로 오세요~ 당신의 삶에서 승리하세요~!!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