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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게 살고싶다'는 대단한 목표도 아니다. 그저 남들과 비슷하게라도 살아가기 위해 청년들은 연애와 결혼·출산을 포기하는 3포세대가 되었다. 여기에 내집마련과 인간관계가 더해져 5포, 거듭되는 실패 끝에 꿈과 희망을 포기하는 7포, 외모와 건강까지 포기하는 9포세대까지. 이러한 포기는 앞으로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무엇이 청년들을 포기하는 청춘으로 만들었을까?

포기가 살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 된 세상이다. '행복한 나라의 포기한 청춘'은 이러한 현실을 맞아 전문가와 청년 당사자들을 심층 인터뷰해 청춘포기세대의 자화상을 연재할 예정이다. - 기자 말

뉴 논스톱4 고시생 앤디
▲ 뉴 논스톱4 고시생 앤디 뉴 논스톱4 고시생 앤디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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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다시피 장기화된 경기침체로 인해 청년실업이 40만 명이 육박하는 이때에 공부는 안하고 미래에 대한 철저한 준비없이 어떻게 살아나갈수 있겠습니까? 조용히 좀 해주십시오!"

2003년 인기리에 방영됐던 '논스톱4'에서 고시생 앤디의 유행어가 12년이나 지난 지금도 전혀 위화감이 없는 것은 왜일까. 장기화된 경기침체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으며 40만의 청년실업자는 100만 명을 돌파했다. 미래에 대한 철저한 준비로는 부족하다. 토익, 자격증은 물론이거니와 남들과는 차별화된 경험과 능력도 갖춰야 한다.

오늘이 없는 삶에서 내일을 꿈꾸는 청춘. 오늘의 공부가 내일의 빛으로 다가올 것이란 희망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청춘들. 단군 이래 가장 우수한 스펙을 지니고 있다는 이들을 우리는 N포세대라 부른다.

자발적으로 인간관계를 포기하는 취준생들

도서관에 가기 전, 커피를 마시는 나홀로.
▲ 커피를 마시는 '나홀로'. 도서관에 가기 전, 커피를 마시는 나홀로.
ⓒ 윤수현 김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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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준생이 갖춰야 할 필수 덕목은 '당당한 혼밥(혼자 먹는 밥)'이 아닐까. 이미 보편화된 혼밥이고 바쁘다 보면 혼자 먹을 수도 있지 왜 시비냐고? 문제는 장기화된 취업 준비로 인해 자발적으로 인간관계를 포기하면서 생긴 '취준 혼밥족'이 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취재를 위해 찾아간 대학가의 취준혼밥족의 인터뷰를 토대로 하여 가상의 인물 나홀로(가명, 28)씨의 하루를 들여다봤다.

9월, 서울 서대문구 한적한 동네에 위치한 대학교. 나홀로는 늘 그렇듯 같은 옷을 입고 오전 9시 즈음 학교로 도착한다. 그는 올해 학교를 졸업했지만 일정 금액을 내고 도서관 시설을 이용하고 있다.

도서관에 들어가기 전 습관처럼 건물 밖 자판기에서 300원짜리 믹스커피를 서서 마신다. 자판기 바로 옆에 카페가 있긴 하지만 2000원짜리 커피를 매일 아침마다 마실 수는 없기 때문이다. 졸업하고도 용돈을 받는 처지이기 때문에 생활비를 최소한으로 제한하는 것이 습관으로 굳어졌다.

나홀로는 도서관에 입장하면 곧장 깊숙이 그리고 구석에 위치한 테이블에 자리를 잡는다. 이곳은 나홀로의 지정석이나 다름없다. 누구나 앉을 수 있는 곳이지만 언제나 같은 자리에 앉아있는 덕분인지 도서관에 자주 오는 학생들 사이에 일종의 암묵적 규칙이 생긴 듯하다. 그 외에도 구석에 자리 잡은 비슷한 처지의 또 다른 나홀로들은 어느새 도서관의 한 배경 이 되어버렸다.

졸업을 했지만 여전히 학교를 떠나지 못한 취업준비생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졸업을 유예하기 위해 학교에 돈을 지불하고 아무 과목이나 등록해놓거나, 이미 졸업할 수 있는 조건을 충족하고도 수료 상태로 남겨두는 학생들도 이미 넘쳐난다. 이들의 처지는 서류상의 신분만 다를 뿐 처지는 모두 동일하다. 대학생도 사회인도 아닌 바로 취업준비생. '취업준비생'은 사실상 대한민국 청춘의 다수가 새롭게 갖게 된 신분이다.

그 주위로 또다른 '나홀로'들이 있다
▲ 혼자 밥을 법는 나홀로씨. 그 주위로 또다른 '나홀로'들이 있다
ⓒ 윤수현 김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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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이 되면 나홀로는 학생 식당에 간다. 메뉴에 대한 고민은 없다. '식사'를 하러가는 것이 아니라 한 끼를 빠르게 때우고 다시 공부를 하러 가야 하기 때문이다. 식당에 들어서면 구석에 그처럼 홀로 밥을 먹는 혼밥족들이 꽤 된다. 이제는 서로 얼굴도 다 익혔다.

이들은 15분 이내로 빠르게 식사를 마치고 다시 도서관으로 향한다. 가끔 마주치는 후배가 반갑게 말을 걸기도 하지만 사실 이야기가 길어지는 것도 시간 낭비처럼 느껴져 혼자 먹는 편이 편하다.

'만년' 취준생들에게 인간관계는 사치다. 취업준비생 황아무개(27)씨는 "취준생 주제에 약속은 사치다. 밥도 싸고 조용한 곳에서 혼자 한 끼 때우는 것이지 식사하는 게 아니다"라고 토로했다. 연애를 하고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밥도 혼자 먹는 처지에 연애는 무슨..."이라며 말을 흐렸다.

나홀로는 일주일에 한 번씩 취업스터디 모임을 갖는다. 이 시간이 그가 가장 '말'을 많이 하는 때이다.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말'이지 '대화'는 아니다. 모임을 위해 준비한 수업 자료를 발표하고 설명하는 자리이지 사적인 대화는 거의 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생활동선이 집과 도서관밖에 없다. 각자의 '삶'에 대한 이야깃거리가 없는 것이다.

스터디를 한 지 6개월 째 아직까지 취업에 성공한 조원들은 없다. 나홀로는 문득 자신보다 학벌과 스펙이 좋은 조원을 보면서 자괴감이 든다. 자신보다 잘난 이도 취업에 성공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보면 더욱 불안해진다.

"지금 젊어서 고생을 하는 것도 앞으로 사회생활을 하는 데 도움이 될 거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말이다. 인생선배로서의 '경험이 담긴 진심어린 충고'겠지만 이를 진정으로 받아들일 만큼 여유로운 청춘은 없다. 2012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대 5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전체의 59.9%가 '삶이 불안하다'고 응답했다.

불안을 느끼는 이유 중 취업 및 고용과 같은 일자리 관련 불안은 67.6%에 달했다. 20대들의 불안은 청춘이기에 겪어야 하는 성장통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것이다.

여전히 그는 혼자다
▲ 하교길의 나홀로. 여전히 그는 혼자다
ⓒ 윤수현 김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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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이 문을 닫을 때 그 곳의 '배경'이 되어버린 나홀로도 비로소 밖으로 나선다. 그의 하루의 시작과 끝을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유일하게 그를 지켜봐주는 것은 자취방으로 올라가는 언덕길의 가로등이다. 그는 미루고 미루다 올해 졸업을 했는데, 대학생 신분이어야만 LH 대학생전세임대주택사업의 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에게 전세 계약이 끝나는 시점은 취업을 준비하는 기간의 마지노선이기도 하다. 그 이후는 아직 생각해보지 않았다. 사실 생각하기 두렵다. 그저 '내일'을 위해 오늘을 묵묵히 견딜 뿐이다. 나홀로의 내일은 밝게 빛날 것인가?

○ 편집ㅣ홍현진 기자



태그:#N포세대, #인간관계 포기, #포기세대, #취준생, #혼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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