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생활의 거처를 떠나 낯선 도시를 경험한다는 건 인간에게 비교대상이 흔치 않은 설렘을 준다. 많은 이들이 '돌아올 기약 없는 긴 여행'을 꿈꾸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정주가 아닌 유랑의 삶이 주는 두근거림. 절제의 언어인 '시'와 백 마디 말보다 명징한 '사진'으로 세계의 도시를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는 설렘을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 기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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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오스. 가난하지만 선량하게 웃을 줄 아는 사람들이 사는 나라. 우기엔 강의 색채가 황톳빛을 띈다. |
ⓒ 류태규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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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오스 사람들의 매력은 웃음에 있다. 거리 좌판에서 생선을 구워 파는 힘겨운 삶을 살면서도 세상 누구보다 환하게 웃는다. 저토록 도저한 낙관은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 |
ⓒ 홍성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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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비엔, 여름
가난과 웃음, 그 불협화음을 철지난 훈장으로 주렁주렁 달고 사는 나라 라오스. 메콩강 지류가 잠시잠깐 머무는 작은 마을 방비엔엔 스물두 살 키 작은 청년이 산다. 한 달을 일하면 월급으로 25달러를 받는다. 오후 5시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취객의 오만가지 주정을 받아내면서도 뭐가 좋은지 키들키들. 녀석, 누가 라오스 사람 아니랄까봐.
열아홉, 아직 소녀인 그의 아내는 같은 술집에서 월 20달러를 받고 일한다. 한 달 내내 자기 키보다 높은 테이블에 붙어 서서 스웨덴과 네덜란드, 미국과 캐나다에서 온 또래 애들의 술병과 술잔을 나른다. 인근 시장 좌판에 내걸린 중국산 청바지를 생일선물로 받은 날, 울었단다. 그 얘기를 전하면서도 어린 남편은 시종 깔깔거렸다.
그들과 양귀비꽃 흐드러진 골짜기로 소풍을 다녀온 날 밤. 잠복했던 연민의 도화선이 뜨거워졌고, 새파란 불꽃이 넘실대는 보드카 여덟 잔을 호기롭게 들이켰다. 술이 아닌 불을 마셨다. 자정이 되기 전 정신을 놓아버린 날 부축해 호텔방에 눕힌 건 그 부부였다고 한다.
멈췄던 기억의 회로가 겨우겨우 작동의 스위치를 켠 아침. 450달러가 든 지갑만이 아니었다. 여권과 비행기 티켓, 주머니 속 동전 하나 없어지지 않았다는 걸 확인한 후 놀라움보다 먼저 찾아온 슬픔에 목구멍에서 휘발유 냄새가 났다.
방비엔을 떠나던 날. 얼기설기 나무로 지붕을 덧댄 터미널에선 싫다는 그들의 손에 억지로 45달러를 쥐어주기 위한 승강이가 벌어졌다. 그 돈은 부부의 한 달 수입이었고, 옆 나라 태국의 하루치 호텔비였으며, 내가 사는 서울과 엄마가 사는 도시를 오가는 기차의 편도요금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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