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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생활의 거처를 떠나 낯선 도시를 경험한다는 건 인간에게 비교대상이 흔치 않은 설렘을 준다. 많은 이들이 '돌아올 기약 없는 긴 여행'을 꿈꾸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정주가 아닌 유랑의 삶이 주는 두근거림. 절제의 언어인 '시'와 백 마디 말보다 명징한 '사진'으로 세계의 도시를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는 설렘을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 기자 말

라오스. 가난하지만 선량하게 웃을 줄 아는 사람들이 사는 나라. 우기엔 강의 색채가 황톳빛을 띈다.
 라오스. 가난하지만 선량하게 웃을 줄 아는 사람들이 사는 나라. 우기엔 강의 색채가 황톳빛을 띈다.
ⓒ 류태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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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의 소녀.
 라오스의 소녀.
ⓒ 류태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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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 석양이 핏빛으로 붉다.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 석양이 핏빛으로 붉다.
ⓒ 홍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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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사람들의 매력은 웃음에 있다. 거리 좌판에서 생선을 구워 파는 힘겨운 삶을 살면서도 세상 누구보다 환하게 웃는다. 저토록 도저한 낙관은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
 라오스 사람들의 매력은 웃음에 있다. 거리 좌판에서 생선을 구워 파는 힘겨운 삶을 살면서도 세상 누구보다 환하게 웃는다. 저토록 도저한 낙관은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
ⓒ 홍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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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비엔, 여름

가난과 웃음, 그 불협화음을 철지난 훈장으로 주렁주렁 달고 사는 나라 라오스. 메콩강 지류가 잠시잠깐 머무는 작은 마을 방비엔엔 스물두 살 키 작은 청년이 산다. 한 달을 일하면 월급으로 25달러를 받는다. 오후 5시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취객의 오만가지 주정을 받아내면서도 뭐가 좋은지 키들키들. 녀석, 누가 라오스 사람 아니랄까봐.

열아홉, 아직 소녀인 그의 아내는 같은 술집에서 월 20달러를 받고 일한다. 한 달 내내 자기 키보다 높은 테이블에 붙어 서서 스웨덴과 네덜란드, 미국과 캐나다에서 온 또래 애들의 술병과 술잔을 나른다. 인근 시장 좌판에 내걸린 중국산 청바지를 생일선물로 받은 날, 울었단다. 그 얘기를 전하면서도 어린 남편은 시종 깔깔거렸다.  

그들과 양귀비꽃 흐드러진 골짜기로 소풍을 다녀온 날 밤. 잠복했던 연민의 도화선이 뜨거워졌고, 새파란 불꽃이 넘실대는 보드카 여덟 잔을 호기롭게 들이켰다. 술이 아닌 불을 마셨다. 자정이 되기 전 정신을 놓아버린 날 부축해 호텔방에 눕힌 건 그 부부였다고 한다.
멈췄던 기억의 회로가 겨우겨우 작동의 스위치를 켠 아침. 450달러가 든 지갑만이 아니었다. 여권과 비행기 티켓, 주머니 속 동전 하나 없어지지 않았다는 걸 확인한 후 놀라움보다 먼저 찾아온 슬픔에 목구멍에서 휘발유 냄새가 났다.

방비엔을 떠나던 날. 얼기설기 나무로 지붕을 덧댄 터미널에선 싫다는 그들의 손에 억지로 45달러를 쥐어주기 위한 승강이가 벌어졌다. 그 돈은 부부의 한 달 수입이었고, 옆 나라 태국의 하루치 호텔비였으며, 내가 사는 서울과 엄마가 사는 도시를 오가는 기차의 편도요금이기도 했다.



태그:#라오스, #방비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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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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