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광 감독이 이끄는 농구대표팀이 아시아선수권을 마치고 귀국했다. 대표팀은 중국 창사에서 열린 2015 FIBA 아시아 남자농구선수권에서 최종성적 6위로 대회를 마감했다.

실망스러운 성적을 거둔 대표 팀이지만 고군분투한 국가대표 선수들에 대해서는 동정론이 우세하다. 대표 팀의 저조한 성적은 선수들의 문제가 아니었다. 지난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 이후 한국농구의 미래에 대한 방향성이나 비전이 전혀 없었던 농구계 지도부의 안일함과 무능함이 빚어낸 비극이었다.

세간의 무관심과 농구협회의 열악한 지원, 해외 경기의 홈 텃세라는 삼중고 속에 농구대표팀 선수들은 그 어느 때보다 힘겨운 싸움을 치렀다. 비행기 일반석 사건-손빨래 사건-도시락 촌극 등은 농구대표팀의 열악한 현실을 보여주며 팬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더 이상 얻을 영광 없는 정점의 노장, 살림꾼 헌신 나섰다 

농구 국가대표팀 주장 양동근 제28회 국제농구연맹(FIBA) 아시아선수권대회에 출전하는 남자농구 국가대표팀 주장 양동근(모비스)이 이란과의 8강전을 하루 앞둔 지난 9월 30일 대표팀 숙소에서 기자들과 만나 각오를 밝히고 있다.

▲ 농구 국가대표팀 주장 양동근 제28회 국제농구연맹(FIBA) 아시아선수권대회에 출전하는 남자농구 국가대표팀 주장 양동근(모비스)이 이란과의 8강전을 하루 앞둔 지난 9월 30일 대표팀 숙소에서 기자들과 만나 각오를 밝히고 있다. ⓒ 연합뉴스


특히 이번 대회에서 농구팬들로부터 새삼 재조명받은 선수는 바로 양동근이다. 대표팀의 주장이자 주전 포인트가드로서 분전했던 양동근의 활약상은 이번 아시아선수권에서 경쟁국들로부터도 뜨거운 조명을 받았다. 나이로는 귀화 혼혈선수인 문태영에 이어 두 번째 선임이지만 주력 선수들이 대거 빠진 대표팀에서 홀로 '리더'이자 '에이스'혹은 '살림꾼'의 역할까지 도맡으며 고군분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양동근은 이번 대회에서 인도전을 제외하고 7경기에 출장하며 27.6분을 소화하며 12.7점, 4.7어시스트를 기록했다. 경기 활약상과 팀 공헌도를 종합적으로 가늠하는 효율성 지수에 17.4점으로 전체 7위이자 한국 선수 중 1위를 기록했다. 가드 포지션만 놓고 봤을 때는 1위이며 대회 중반 예선 리그까지는 전 포지션을 아울러 1위를 달리기도 했다. 양동근이 명실상부한 아시아 최고 가드로 인정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양동근의 놀라운 활약은 한편으로 한국농구의 다사다난한 현주소와 맞물려, 한 가지로 정의하기 힘든 복잡한 감정을 자아내게 한다. 한국농구의 암흑기에 과소 평가받던 동네북 가드에서 어느덧 대표 팀의 구세주로까지 올라선 양동근의 성장기이자, 한편으로 올해 34세의 노장 가드에게 너무 많은 부담을 짊어지게 한 한국농구의 현실에 대한 개탄이다.

양동근이 대표 팀과 인연을 맺기 시작한 지 올해로 정확히 10년째다. 양동근은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대표 팀에 이름을 올리며 명실상부한 농구대표팀의 붙박이 멤버로 자리 잡았다. 이후 양동근은 5번의 아시아선수권과 3번의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며 농구대표팀이 출전할 수 있는 주요 국제대회마다 거의 빠짐없이 개근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양동근이 대표 팀에서 활약하던 시기는 바로 한국농구의 암흑기와 정확하게 겹친다. 양동근은 대표 팀 2년 선배인 김주성과 함께 한국농구가 최근 10년간 국제대회에서 각종 참사를 겪을 때마다 함께 이름이 올라가는 불명예를 겪어야 했다.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노메달(5위), 2009년 톈진 아시아선수권 7위, 그리고 이번 창사 대회까지 모두 양동근이 활약했던 대회들이다.

물론 영광의 순간도 있었다. 2013년 필리핀 마닐라 선수권 대회(3위)에서는 중국과 대만을 꺾고 한국농구에 16년 만의 농구월드컵 출전티켓을 안겼고,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는 마침내 금메달을 목에 걸며 태극마크를 달고 첫 우승의 감격도 누렸다. 그야말로 영광과 수난의 역사를 모두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양동근은 김동광-신동찬-이상민-강동희-김승현 등 역대 대표 팀을 이끌었던 스타 가드 계보에서 가장 과소평가 받았던 선수 중 한 명이다. 정통 포인트가드 출신이 아니다 보니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리딩과 패스 능력 때문에 비판받기 일쑤였다. 하지만 양동근은 역대 어떤 대표팀 선배 가드들보다도 뛰어난 수비력과 허슬 플레이로 팀에 공헌하는 선수였고 나이를 먹고 경험이 쌓여가며 점점 발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무엇보다 대단한 것은 양동근의 지치지 않는 체력과 대표 팀에 대한 헌신이다. 양동근의 나이 때까지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하며 그것도 에이스 역할까지 맡았던 경우는 보기 힘들다. 허재-이상민 등도 30대 중반을 전후하여 대표 팀에서 자연스럽게 하차하거나 아니면 한발 물러서서 식스맨 혹은 정신적 지주 역할을 맡는 데 익숙했다.

더구나 프로가 출범한 이후 매 시즌 리그에서 50~60경기 이상을 출장하여 전 시간을 소화하고 다시 비시즌마다 빠짐없이 대표 팀에 참여하는 강행군을 이어가면서 10년 넘게 최정상의 자리를 유지한 것도 양동근이 사실상 유일하다.

사실 양동근은 지난 2014 아시안게임 우승 이후 김주성-문태종과 함께 대표 팀에서 명예롭게 은퇴할 수도 있었다. 이미 프로와 대표팀에 모든 영예를 누릴 대로 누린 양동근으로서도 대표 팀 재승선은 개인적으로 득이 될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한국농구의 열악한 상황은 양동근을 내버려두지 않았다.

'대체 불가능'한 양동근 선수, 박수받아 마땅

김동광 감독 기자회견 김동광 감독과 주장 양동근이 중국 후난성 창사에서 열린 제28회 국제농구연맹(FIBA) 아시아선수권대회 이란과의 8강전에서 패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김동광 감독 기자회견 김동광 감독과 주장 양동근이 중국 후난성 창사에서 열린 제28회 국제농구연맹(FIBA) 아시아선수권대회 이란과의 8강전에서 패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어느 정도 불가피하게 '강제 세대교체'가 이루어진 이번 대표 팀에서도 양동근의 자리는 대체불가였다. 단지 포인트가드 포지션에서의 기여도에 국한하지 않더라도, 베테랑으로서의 리더십과 해결사 역할까지 감당해야 하는 막중한 책무가 국가대표 말년의 양동근에 주어져야 했을 만큼 대표 팀이 처한 상황은 열악했다.

돌이켜보면 이번 대표 팀만큼 시작 단계에서 구설수가 많았던 경우도 드물다. 감독 선임에서 선수구성, 대표 팀을 둘러싼 지원에 이르기까지, 대한농구협회의 무능함과 농구계의 무한이기주의는 끊임없이 도마 위에 올랐다. 국가대표팀이라고 믿기 어려운 열악한 지원 속에 강력한 경쟁국들과 싸워야 하는 이중고까지, 의욕을 찾기가 어려운 환경에서 대표 팀이 그나마 내부적인 문제 없이 이만큼 선전할 수 있었던 것도 양동근을 중심으로 한 선수단의 투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양동근은 늘 그러했듯이 크고 작은 잔 부상을 달고 체력적인 부담에 시달리면서도 대표 팀이 필요로 할 때면 어김없이 코트를 지켰다. 양동근이 있고 없고에 따라 대표 팀의 경기력이 큰 차이를 드러냈을 정도다.

대표 팀은 선수들의 노력과 분전에도 불구하고 6위라는 아쉬운 성적으로 대회를 마쳤다. 양동근은 국가대표 커리어를 명예롭게 마감해야 할 시점에 자신의 경력에서 안타까운 흑역사를 하나 추가했다. 그러나 그것은 양동근의 책임도, 다른 국가대표 선수들의 책임도 아니었다. 그들의 잘못은 오로지 잘못된 시대를 만나, 무능한 농구 선배들 밑에서 그저 최선을 다해 농구를 했다는 죄뿐이었다.

양동근의 농구인생도 어느덧 후반기를 향해 가고 있다. 천하의 양동근도 세월은 속일 수 없기에 언제까지 태극마크를 달고 뛸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이번 대회를 끝으로 농구대표팀도 세대교체의 필요성이 높아진 만큼 양동근도 천천히 대표 팀 은퇴를 준비해야 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10여 년간 비가 오든 눈이 오듯 묵묵히 한국농구를 위해 궂은일을 마다치 않았던 양동근 같은 선수가 있었기에 그나마 대표 팀과 한국농구가 희망을 이어올 수 있었다는 사실은, 당장 국제대회 성적보다 역사에서 두고두고 오랫동안 재평가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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