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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기사] 서울 '전세 1억' 아파트, 거기 제가 살았습니다

고덕주공 입주자, 특히 3단지보다 2단지 주민에게 재건축에 따른 이주는 변수가 아니라 상수였다. 우리 가족도 언제 이사 가야 하나 늘 조마조마하며 살았다. 날로 치솟는 서울 전셋값이 너무 야속했다. 고덕주공 보증금으로 갈 수 있는 곳이 마땅치 않았다. 내심 재건축이 천천히 진행되길 바랐다. 이곳에서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 수 있도록.

2014년 하반기 들어서는 그다음 해 봄쯤 재건축 이주 명령이 떨어진다는 말이 공공연히 들렸다. 우리 가족도 마음의 준비를 했다. 나는 이따금 네이버 부동산 화면을 띄워 근처 다른 지역 매물을 알아보았다. 경기도 하남, 송파구 석촌동을 살폈다. 아파트는 어림없었고 빌라(다세대주택)나 단독 다가구 주택 위주로 찾았다.

전세 물건이 많지 않았고 고덕주공보다 비쌌다. 석촌동 전세 빌라를 직접 보고 온 적도 있다. 고덕주공보다 덜 낡았고 직장이 있던 강남역과 가깝다는 건 나은 점이었다. 하지만 더 좁았고 햇볕도 잘 들지 않았으며 주택가라 주차가 곤란한 점이 마음에 걸렸다. 고덕주공 전세 보증금은 비교적 싼 편이지만 그래도 적지 않은 돈이었다. '그 돈으로 왜 저런 집밖에 구할 수 없는 걸까'하는 무력한 의문만 들었다.

지난 1월, 추위를 뚫고 퇴근한 어느 날이었다. 몸에 두른 모직 코트와 목도리가 무거웠다. 한 달 전부터 판교로 출근했다. 회사가 강남역에서 사옥을 옮겼다. 새벽 5시 20분에 일어나 6시 10분쯤 지하철을 타고 천호에서 내려서 6시 35분에 출근버스를 타는 나날이었다.

저녁이 되면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퇴근길에 올랐다. 몸도 피곤했고 마음도 지쳐갔다. 삐걱거리는 현관문을 힘없이 열고 들어갔다. 1층 각 세대 우편함마다 꽂힌 종이봉투가 눈에 띄었다.

재건축 정비사업 조합이 보낸 이주 안내문이었다. 빠르면 3월부터, 늦어도 9월 말까지는 다른 곳으로 떠나야 했다. 올 것이 왔구나. 어차피 회사 사옥도 옮겼기에 출퇴근을 편하게 할 수 있도록 이사 가고 싶은 참이었다. 맞벌이가 아니어서 배우자의 직장 위치를 고려할 필요도 없었다. 아기가 어린이집을 다니지 않았고 어렸기 때문에 전학 문제도 걸리지 않았다. 아내와 의논하여 최대한 빨리, 3월이 오면 이사 가기로 결정했다.

이사 올 사람 없는 아파트, 하루에만 화물차 10대가 떠났다

재건축 이주안내 현수막
▲ 경축 재건축 이주안내 현수막
ⓒ 이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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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네이버 부동산 화면을 띄웠다. 회사가 있는 판교 테크노밸리를 출발지로 두고 지도를 살폈다. 성남 구도심, 분당, 용인 쪽을 검색했다. 우연히 분당 동쪽 수내동이라는 곳을 발견했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동네였지만 주택가가 있어서 분당 다른 지역보다는 보증금이 낮을 것 같았다.

수내동에 있는 한 공인중개사 사무소를 방문했다. 중개인이 권하는 매물을 보았는데 역시 그곳에서도 '그 돈으로 왜 저런 집 밖에?'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개인은 수내동이 분당에서도 학군이 좋고 학원이 몰려서 전셋값이 비싼 곳이라고 했다. 우리 가족은 그것도 모르고 주택가랍시고 무작정 찾아간 것이었다.

중개인은 우리 가족 상황을 듣고 경기 광주시 오포읍 신현리 일대를 추천했다. 광주라는 말을 듣고 처음에는 귀를 의심했다. 광주? 그게 어디지? 게다가 읍, 리라니. 물론 호남의 광주(광역시) 말고 경기도에도 광주가 있다는 건 알았다. 나나 아내나 지방 출신이고 경기도 권역에는 연고가 없었다. 수도권 지도를 볼 때면 동유럽 지도를 보는 기분이 드는 사람들이었다.

수도권 위성도시들 이름은 알았지만, 정확히 어디 있는지 식별할 수 없었다. 중개인이 사무소 벽에 걸린 지도를 짚으며 설명했다. 광주 신현리는 분당 바로 동쪽에 붙은 곳이라고. 서울이나 분당보다 싸고 새로 지은 빌라가 많이 들어섰다고.

광주에서 둘러 본 집들은 서울이나 분당과 비교하면 조건이 확실히 좋았다. 우리 가족은 고덕주공 보증금과 똑같은 값의 빌라(단독 다가구주택)를 전세로 구했다. 새로 지은 건물이었다. 우리가 그 세대의 첫 입주자가 될 터였다.

30년 넘은 집에서 새집으로 이사를 한다고 생각하자 적잖이 설레기도 했다. 임대차계약을 마친 날, 아내와 나는 광주라는 곳에서 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삶의 방향이 무작위로 흘러가는 것 같다고 중얼거렸다.

지난 3월 첫 번째 금요일에 우리 가족은 고덕주공을 떠났다. 그 날 우리 집 말고도 열 곳 넘는 집으로 화물차량이 들어섰다. 가까이서 내가 본 것이 그만큼이었다. 같은 날 이사 간 집이 더 많았을지도 모른다. 우리 가족이 살던 집으로 이사 들어올 사람이 없었다.

서로 맞추어야 할 게 없어서 편했다. 재건축조합에서 알려준 대로 미리 한전, 도시가스 회사, 수도사업소에 연락했다. 전기·가스·수도를 차단하는 절차를 밟았다. 계약할 때 본 집주인을 오랜만에 다시 만났다. 50대 초중반 남자인데 점잖고 친절했다. 함께 재건축조합 사무실이 있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가서 퇴거절차를 마쳤다. 헤어지기 직전, 그냥 떠나기도 어색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물었다.

"이곳에 아파트 새로 지으면 이사 와서 사시는 건가요?"

집주인 또한 가볍고 짧게 대답했다. 조금 쑥스럽다는 듯 미소도 지었던 것 같다.

"예, 그래야지요."

맨 앞 차가 우리 집 이사 트럭. 그 뒤로 보이는 트럭들은 각각 다른 세대의 이삿짐 차량이다.
▲ 이삿짐 트럭 맨 앞 차가 우리 집 이사 트럭. 그 뒤로 보이는 트럭들은 각각 다른 세대의 이삿짐 차량이다.
ⓒ 이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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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든 가게 다시 찾았는데... 이미 떠나고 아무도 없었다

떠난 지 여섯 달 만에 다시 찾은 고덕주공 2단지 아파트. 입주자는 드문드문 남았지만 상가는 모두 다 빠졌다. 이곳으로 오면서 혹시 아직 남은 가게가 있다면 몇 가지 물어보려 했다. 입주민은 얼마나 남아있는지, 장사는 되는지, 이제 어디로 떠날 건지.

하지만 모두 가까이 또는 멀리 가게를 옮긴다는 말을 남기고 이미 가버렸다. 물건 오천 원어치 사면 쿠폰 스티커를 한 장씩 주던 슈퍼 아주머니도, 텔레비전 채널을 KBS1에 고정해두던 약사 할아버지도, 떠나면서 화분 가져가도 된다고 써붙인 꽃집 아주머니도 지금은 여기에 없다.

문 닫고 떠났습니다.
▲ 텅 빈 상가 문 닫고 떠났습니다.
ⓒ 이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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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고마웠습니다.', '그동안 한결같이 사랑해 주시고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전, 폐점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그동안 한결같이 사랑해 주시고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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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포를 급히 이전하게 되어 정말 죄송합니다.'
▲ 이전안내 '점포를 급히 이전하게 되어 정말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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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에도 수명이 있다. 오래된 건물은 위험하거나 미관을 해칠 수 있으며 살기 불편할 수 있다. 부분 개보수가 어려워 전체를 무너뜨려야 하는 일도 있을 것이다. 당장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집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면, 철거가 더욱 나은 주택공급을 위한 후생의 시발점일 수 있다.

하지만 얼마 전에 있었고, 지금 진행 중이며, 가까운 미래에 있을 한국 사회의 재건축·재개발은 안타깝고 지나친 면이 많다. 자기가 나고 자란 집을 때려 부수는데도 얼싸안고 기뻐하는 모습, 부동산 차익과 개발이익을 두고 벌이는 아귀다툼, 해임 재선임 고소 고발 손해배상 운운 현수막이 걸리는 풍경은 이제 낯설지 않고 오히려 낯익다.

<안녕, 둔촌주공아파트>와 같은 독립잡지 발간 소식은 반갑고도 소중하다. 나보다 한 살 많은 편집장 이인규씨는 고덕주공보다 세 살 위인 둔촌주공에서 나고 자랐다. 그는 둔촌주공 재건축이 묻어 버릴 풍경을 아쉬워했다. 그래서 사진을 싣고 글을 엮어 독립잡지를 만들었다.

그 뒤 추억을 지키고 싶다는 사람들의 반응이 이어져 잡지 2, 3호를 냈다. 이씨는 새로 들어설 아파트에 반영할 가치를 재건축참여 건축교수와 함께 고민하거나 아파트 주민들과 소통하는 공동체 자리를 마련하는 등 의미 있는 활동을 하고 있다(관련기사 : 재건축아파트 속 사람이야기 기록하는 아파트키드).

광주 신현리로 돌아가는 승용차 안에서 문득 노래 하나가 떠올랐다. 여행스케치 1집에 실린 <별이 진다네>였다.

어제는 별이 졌다네 나의 가슴이 무너졌네
별은 그저 별일 뿐이야 모두들 내게 말하지만
(중략)
나의 꿈은 사라져가고 슬픔 만이 깊어가는데
나의 별은 사라지고 어둠 만이 짙어가는데

곧 아파트가 헐린다. 내 삶의 흔적과 추억 한 부분도 함께 무너질 것이다. '평생 보던 나무를 베어 없앤다는 것은 자기 마음의 일부를 잘라버리는 것과 같아.' 아메리칸 인디언이 한 말이라고 한다(김영하 작가의 소설 <너의 목소리가 들려> 중 138쪽 참조).

고덕주공은 그저 오래된 부동산일 뿐일까. 같은 자리에 아파트가 새로 들어서더라도 우리 가족은 그곳에서 살았다는 사실을 증명하지 못할 것이다. 부끄럽지만 고덕주공에 살면서 사귄 이웃이 없다. 증인 삼을 사람도 없다. 나와 아내의 주민등록초본, 아들의 출생등록지가 이곳에서 보낸 우리 가족의 역사를 입증할 수 있는 자료다.

직장, 학교, 부담스런 보증금 등 여러 사정 때문에 고덕주공 2단지를 멀리 떠나기 어려운 전·월세살이 입주민이 많았을 것이다. 3단지 2580세대도 머지않아 이주를 시작한다고 한다. 그 많던 입주민들은 다들 어디로 갔을까?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내 고향은 어느 쪽인가.
▲ 고덕주공 3단지 표지판 내 고향은 어느 쪽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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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터와 벚나무, 다시 볼 수 없을 풍경. 2014년 4월 어느 봄날에.
▲ 안녕, 고덕주공아파트 놀이터와 벚나무, 다시 볼 수 없을 풍경. 2014년 4월 어느 봄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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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김준수 기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두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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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헐려짓는아파트, #재건축, #고덕주공, #고덕주공아파트, #전세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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