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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물 쓰레기를 청소하는 청소부
 음식물 쓰레기를 청소하는 청소부
ⓒ 이수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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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재를 가지고 글을 쓰기까지 고민이 많았다. 남의 것을 훔치는 도둑이라는 공모주제인 만큼, 내가 쓴 글로 인해 누군가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사는 세상을 소개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렇게 용기를 내어 글을 써보려고 한다.

처음 그들을 본 건 대학교 1학년 때였다. 고약한 음식물 냄새가 거리를 가득 메울 정도였다. 거대한 낯선 차량이 로데오 거리 한복판에 서있었다. 사람들이 무분별하게 버린 음식물 쓰레기들을 낯선 그들은 과묵하게 차에 옮겨 실었다. 그리고 그 낯선 존재들은 쾌쾌한 매연을 한 움큼 내뿜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시골에 살았던 나는 TV로나 보던 이 모습을 신기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 날이 가고 다음날이 오고 또 그 다음날이 와도 그들은 항상 정해진 시간인 밤 10시에 거리를 청소하고 사라졌다. 그들은 똑같은 일을 반복했고 늘 과묵했다. 하지만 나는 처음 그들을 봤을 때와 많이 달라져 있었다. 낯설고 신기하게 쳐다보던 나의 눈빛은 어느 사이 신기함은 오간데 없고 낯섦만이 남아 있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도 그랬다. 우리는 그들이 하는 일에 대하여 그들이 당연히 해야 할 일로만 생각하면서 그들에게 고마워하기보다 냄새를 퍼뜨리고 다니는 더럽고 낯선 존재로만 여겼다. 하지만 그들 또한 우리는 낯선 존재였다. 그들이 낯선 길거리로부터 음식물 쓰레기를 훔칠 때마다 그들의 냄새와 매연은 더욱 더 강력해져 타인들로 하여금 자신들을 더욱 낯선 존재로 만들어 내는 듯했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의 낯선 시선에 아랑곳 하지 않고 청소라는 미명하에 음식물 쓰레기를 훔쳐갔다.

시간이 흐르고 얼마 전 다시 만난 그들은 역시 같은 공간과 시간에 나타났다. 그들의 부지런함에 정말 대단하면서 고맙다고 느끼던 중 청소원 한 명이 실수로 음식물 쓰레기를 길거리에 엎어버리고 말았다. 뒤죽박죽 섞인 음식물 사이로 지나가던 주민들이 하나둘 욕을 섞기 시작했다. 그 실수 하나로 그들은 낯선 존재에서 비난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3년이 지난 지금까지 변함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더 악화된 것 같다. 시간의 흐름도 사람들의 의식은 바꿀 수 없었던 것일까. 거리의 착한 도둑들은 그렇게 고개 숙일 수밖에 없었다. 이들의 희생에 대한 존경과 신뢰는 오고 간데 없고 우리는 그들의 겉모습과 실수만 바라본 채 오로지 낯선 존재 또는 비난의 대상으로만 인식하고 있었다. 그들의 고생에 대한 금전적인 보수가 아무리 높다 하더라도 정신적인 보수는 그렇지 못했다.

페이스북에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내 청소원과 하이파이브 하는 사진을 보았다. 이런 일이 한국에서도 가능한 일일까? 상생과 공존이라는 가치가 중요시되는 지금 시점에서 존경과 신뢰가 없어진 사회는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는 사회라고 생각한다. 현재 한국 사회 내에 뿌리 깊게 내린 3D 업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바꾸기 힘들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 둘씩 낯선 그들의 착한 도둑질에 감사하며 그들의 행동을 알리다 보면 우리 또한 그들의 도둑질에 대한 가치를 높게 사는 날이 올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실천들은 우리 사회를 한 걸음 더 발전시키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오늘도 밤 10시, 로데오거리에는 착한 도둑들이 나타난다. 그 순간 기분 나쁜 음식물 냄새와 쾌쾌한 매연을 퍼뜨리지만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그들의 과묵함과 남기고 간 깨끗함만이 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다. 이제 우리도 그 거리에 무언가를 채워줘야 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사공모 '도둑들' 응모글입니다.



태그:#착한 도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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