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김성근 감독. 사진은 지난 15일 오후 광주-KIA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와 한화 이글스의 경기 당시 모습.

한화 김성근 감독. 사진은 지난 9월 15일 오후 광주-KIA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와 한화 이글스의 경기 당시 모습. ⓒ 연합뉴스


한화 이글스가 2009년부터 2014년까지 6년 동안 기록한 순위는 8위-8위-7위-8위-9위-9위였다. 9구단 체제가 시행된 뒤 최초의 9위를 기록한 팀도 한화였다. 해태 타이거즈와 삼성 라이온즈 감독 및 라이온즈 구단 사장까지 거친 김응용 전 감독이 2013년과 2014년 팀을 맡았지만 KBO리그 역대 최다승 감독도 한화를 끌어 올리지는 못했다.

그랬던 한화에 김성근이 부임했다.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가 해체 수순을 밟으며 김성근 감독과의 계약도 종료됐다. 이에 한화는 김응용 전 감독과의 계약이 끝나자마자 계약 만료로 인한 자연스런 감독 교체 방식으로 김성근을 영입했다(김응용 전 감독의 은퇴식은 2015년 올스타 게임에서 진행).

김성근 감독은 부임하자마자 시즌 마무리 훈련부터 이전 시즌과 크게 다른 지옥 훈련을 진행했고, 2015년 정규 시즌 미디어 데이 행사에서는 "다음 해에는 두번째로 입장하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드러내며 포스트 시즌 도전에 대한 의지를 표현했다.

그렇게 한화는 예년과 확 달라진 야구를 보여줬다. 승패에 대한 희비를 의식하는 단계를 뛰어 넘어 부처라는 별명까지 생겼던 한화 팬들은, 달라진 한화 선수들의 플레이 한 순간 한 순간에 열광했다. 이글스는 더 많은 관중들을 한화생명 이글스 파크로 불러들였다.

한화는 5월 초 리그 3위까지 오르며 KBO리그에서 가장 화제를 많이 몰고 다니는 팀으로 떠올랐다. 전반기까지만 해도 44승 40패 승률 0.524로 5위를 유지하며 가을 야구에 대한 희망을 이어가고 있었다. 선발진이 안정되지는 못했지만 권혁, 박정진, 윤규진 등이 불펜에서 맹활약하며 승리를 지켰고, 타선도 예년과 다른 집중력을 보이며 끈질긴 승부 근성을 보여줬다.

특정 선수의 무리한 중용, 끝내 지친 선수들

역투하는 권혁 지난 3월 29일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2015 프로야구 한화 대 넥센의 경기에서 6회말 한화 투수 권혁이 역투하고 있다.

▲ 역투하는 권혁 지난 3월 29일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2015 프로야구 한화 대 넥센의 경기에서 6회말 한화 투수 권혁이 역투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러나 한화는 결국 선수층의 두께가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했다. 지나치게 많이 등판하며 혹사 논란을 일으켰던 권혁은 결국 후반기에 난조를 보이며 위력적인 마무리의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윤규진은 8월 중순을 끝으로 시즌을 접었으며, 박정진도 9월 중순을 끝으로 시즌을 접었다.

후반기에 영입된 에스밀 로저스가 호투했지만 이미 지친 기존 선수들이 이를 뒷받침하지 못했다. 결국 한화는 후반기 성적만 따지면 24승 36패로 10개 구단 중 가장 나쁜 성적을 내고 말았다. 역전패만 해도 21회로 가장 많았다.

그래도 한화는 실낱같은 희망을 이어갔다. 와일드 카드 시리즈에 출전할 수 있는 5위 경쟁 팀이었던 SK 와이번스, KIA 타이거즈, 롯데 자이언츠 등이 동반 부진하며 그 어떠한 팀도 크게 앞서가지 못했다. 결국 서로 발목을 붙잡는 현상이 벌어지며, 시즌 마지막 경기까지 5위 SK와의 승차를 1경기 차로 유지하며 가능성을 열었다.

5위 경쟁을 하면서 가장 먼저 롯데가 탈락했다. 그리고 SK가 여전히 치고 나가지 못하는 사이 KIA와 한화가 승차를 좁히며 맹렬히 추격했다. 하지만 한화는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결국 신생 구단 kt 위즈에게 패하며 마지막 남은 가능성이 소멸되었다. KIA가 10월 6일까지 정규 시즌 경기가 남아 있기 때문에 최종 순위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한화의 선발투수 평균 자책점은 5.27로 9위에 그쳤다. 게다가 이닝 부분에서도 664이닝(9위)밖에 책임지지 못하는 등 조기 강판 사례가 많았고, 이러한 문제가 결국 불펜에 과부하를 불러오게 했다. 권혁이 무려 112이닝을 던졌고, 송창식도 109.1이닝이나 던졌다. 박정진도 96이닝을 던지는 등 필승조들의 혹사가 컸다.

시즌 162경기를 치르는 메이저리그에서도 구원투수가 100이닝을 넘기는 경우는 거의 없다. 메이저리그에서 구원투수로 100이닝을 넘겼던 마지막 사례는 2006년 뉴욕 양키스에서 뛰었고, 두산 베어스의 마무리로도 뛰었던 스캇 프록터(은퇴, 당시 102.1이닝)이다. 프록터 이후 메이저리그에서 구원투수로 가장 많은 이닝을 던졌던 투수는 현재 두산에서 뛰고 있는 앤서니 스와잭(2013 미네소타 트윈스, 96이닝)이다.

그런데 시즌 144경기를 치르는 KBO리그에서 한화의 구원투수들은 메이저리그보다도 더 많은 이닝을 던졌다. 권혁은 6월까지 43경기에서 64.2이닝 4승 6패 4홀드 10세이브 평균 자책점 3.62로 비교적 잘 던졌지만, 7월부터 마지막 3개월을 45이닝 평균 자책점 7.20으로 처참하게 무너졌다. FA로 영입된 송은범은 70.1이닝 2승 9패 7.24에 그쳤고, 역시 FA로 영입된 배영수도 98.1이닝 4승 10패 1홀드 7.05로 부진하며 둘 다 선발에서도 불펜에서도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

결국 한화는 외국인 투수들을 제외하고는 포지션이 일관되지 못했다. 특히 송창식은 올 시즌 64경기 중 선발로 무려 10번이나 등판했다. 송은범(33경기 14선발)과 배영수(33경기 21선발)는 고정 선발로 등판하다가 불펜으로 밀려났다고 쳐도, 김민우(36경기 8선발), 안영명(35경기 27선발) 등은 작전상 선발과 불펜을 오갔다.

김성근, 처음으로 부임 첫 해 소속 팀 PS 탈락

김성근 감독은 KBO리그 단일리그 체제에서 부임하는 새로운 팀마다 부임 첫 해에 소속 팀을 포스트 시즌에 올려놓는 기록을 갖고 있었다. 1989년 태평양 돌핀스에 부임하여 전년도 최하위(7위)에서 3위로 올려 놓으며 포스트 시즌에 진출시켰고, 삼성 라이온즈 시절이었던 1991년에도 승률 3위로 포스트 시즌에 진출했다.

1995년 최하위(8위)였던 쌍방울 레이더스 역시 1996년 김성근 감독이 부임하자 정규 시즌 3위로 포스트 시즌에 진출, 플레이 오프에서 현대 유니콘스(당시 감독 김재박)와 5차전 접전을 벌인 끝에 아쉽게 한국 시리즈 진출에 실패했다.

LG 트윈스 정식 감독 첫 해였던 2002년에도 김성근 감독은 LG를 정규 시즌 3위로 이끌었다. 그리고 한국 시리즈에서 당시 김응용 감독이 지휘하던 삼성을 맞이하여 6차전까지 가는 피말리는 명승부를 연출했다. 비록 6차전 9회말 이승엽의 극적인 동점 스리런 홈런과 마해영의 백투백 워크오프 홈런으로 인하여 챔피언에는 실패했지만 많은 박수를 받았다.

그리고 2007년 SK에 부임한 김성근 감독은 그야말로 전성기를 맞이했다. 전년도 6위에 그쳤던 SK는 당시 신인이었던 김광현을 에이스로 발굴하면서 한국 시리즈 챔피언에 올랐고, 이후 2009년 한국 시리즈 준우승을 제외하고 무려 3번이나 통합 챔피언에 올랐다.

하지만 그러한 김성근 감독도 한화에서는 첫 시즌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전년도 최하위(9위) 팀의 성적을 크게 끌어올린 것은 분명하지만, 마지막 날 결국 5위 SK와 2경기 차로 벌어지면서 아쉽게 탈락하게 되었다.

약팀을 부임 첫 해에 포스트 시즌 진출 경쟁을 펼칠 수 있도록 이끌어 낸 그의 지도력. 한화 팬들은 물론이고 다른 팀의 팬들까지 한화의 행보를 1년 내내 지켜봤다. 비록 아쉽게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했지만, 시즌 마지막 경기까지 끈질긴 경쟁을 펼쳤던 한화 선수단과 코칭 스태프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 편집ㅣ곽우신 기자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KBO KBO리그 한화이글스 한화PS진출실패 김성근부임첫해성적
댓글8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퍼스널 브랜더/서양사학자/기자/작가/강사/1987.07.24, O/DKU/가톨릭 청년성서모임/지리/교통/야구분석(MLB,KBO)/산업 여러분야/각종 토론회, 전시회/글쓰기/당류/블로거/커피 1잔의 여유를 아는 품격있는 남자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