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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에서 이어집니다.)

자신을 치장하는 늙은이의 추하고 거침없는 어조에 거들 말이 없다. 미야자와는 듣기만 한다.

"연구단은 첨병이야. 연구단 뒤에는 정치계는 물론 재계, 학계, 우익, 하다못해 나라를 걱정하는 야쿠자까지 망라해서 대일본의 영광 재현을 돕고 있다네. 믿기 어렵겠지만 이런 준비는 1945년 패전 이후 끈질긴 노력 아래 지금 현실로 이뤄지고 있고.

어차피 인간들 사이도, 사회도, 국가도 약육강식의 원칙에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어. 내가 상대를 제압하지 않으면 내가 상대에게 굴종해야 돼. 우리 대일본은 더 이상 '굴종의 시대'가 아닌 '지배의 시대'로 되돌아가야 하는 거야. 이것이 시대적인 소명이자 우리에게 맡겨진 의무야. 자네도 이 역사적인 도약에 기꺼이 동참하리라 믿네. 추후에 도쿄에서 다시 만나 얘기하세. 자네가 할 일을 알려 줌세."

우디 앨런은 영화 '미드나이트 인 파리'를 통해 1920년대 예술이 만나는 파리를 음미하고는, 1890년대로 더 거슬러 올라가 '벨 에포크(La belle époque)'라고 칭하며 예술이 진정으로 꽃피웠던 시기를 몽환적으로 기념한다. 하지만 지금 미우라는 군국주의 시대의 헛된 영광을, 수천만의 사람들 죽음으로 혹은 죽음에 가깝게 몰아넣었던 시대를 현실에서 서늘하게 재현하려 하고 있다. 다시 광기의 먹구름과 집단 논리의 폭풍이 몰려오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미야자와는 도쿄로 돌아오는 길에 깊은 생각에 빠진다. 미우라와 적지 않은 수의 그릇된 신념이 조직화 돼 가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착잡하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왕을 내세워 군국주의로 이끈 과거 육군대학 출신 '대본영 참모'들이 다시 나타난 것이다. 그들은 일본과 아시아, 일본 국민과 아시아인들을 한 판의 내기 장기처럼 장기판과 장기판의 장기알로 봤고, 그래서 아시아는 물론 일본을 쑥대밭으로 만든 장본인이었다. 그런데 역사의 지혜를 배우기는커녕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물론 자기들만의 해석에 따라 비극을 되풀이 하려 들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생명이나 공동체의 존중은 없고, 정당한 과정은 생략한다. 오로지 집단 이기주의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승리라는 결과만에 집착한다. 그들의 바닥에서는 현재를 단순한 '토너먼트의 시대'라고 여긴다. 개인이나 사회나 국가나 계량화된 돈, 여러 가지 면면을 평가하는 지수와 기록, 진리에 가깝다고 맹신하는 통계만이 토너먼트 시대의 잣대다. 토너먼트는 결국 승자독식의 원리에 따라 '우승'이라는 가치를 최고의 것으로 삼는다.

그 과정에서 인권이나 진정한 가치나 도덕, 윤리는 무참히도 깨지고, 부서지고, 뒤틀린다. 그래서 인간과 사회, 국가는 무한경쟁에 자신과 상대방을 내몰고 혹은 내몰린다. 결국 '언더도그'에 대한 한 푼도 안 되는 동정만이 존재하는 무시무시한 괴물이 된다. 어떤 수단과 방법이든 승리를 위해 필요하다면 정당화한다. 거기에 따른 약자의 희생 또한 당연시 된다. 강자는 그 피로 이뤄진 승리만 즐기면 될 뿐이다. 그러나 아무리 일리가 있다고 해도 그것은 일리일 뿐이지, 그것이 보편적인 진리는 될 수 없다.

미야자와 회장은 생각한다.

'약육강식, 약한 자는 강한 자에게 먹힌다? 인간을 동물의 특성으로만 규정짓는, 그래서 인간의 선의라는 미덕을 아예 없다고 상정한 그릇된 생각일 뿐이야. 인간을 동물화하려는 시도나 다름없다. 하지만 동물에게도 본능적인 미덕은 살아있다. 

예컨대 대부분 유인원의 새끼들은 엄마를 잃으면 어린 나이에 죽는 게 생태다. 하지만 엄마를 잃은 보노보 새끼 원숭이는 다른 엄마들에 의해 길러진다. 세렝게티 초원의 누 떼들도 비슷하다. 자기의 새끼는 물론 남의 새끼를 위해 성체들은 뭉쳐서 하이에나를 물리친다. 하물며 동물들에게도 서로 돕고, 함께 살아가는 유전자가 있는데 인간에게 약육강식만 강조하는 것은 오류라고 밖에 할 수 없다.'

미우라와 그와 같은 생각을 가진 일단의 맹신자들의 잘못된 인식, 즉 자신이 남을 밟고 올라서야 살 수 있다는 것은 현실적으로는 사람들의 귀를 솔깃하게 만드는 악마적 궤변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남을 해치거나  죽이지 않고도 행복하고 즐겁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애써 찾으려 하지 않는다. 혹은 찾았다 할지라도 자신이 남보다 우월하다는 지위를 지키려 그 방법을 폄하한다. 또한 약자와 패자들의 전유물이거나 그들을 위로하는 하나의 잘못된 의식이라고 몰아세워 일찌감치 싹을 잘라야 직성이 풀린다.

이렇게 옳지 않은 길로 가려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을 불행에 빠뜨릴 미우라 패거리들을 누군가는 멈추게 해야 한다는 게 미야자와 회장의 결론이다. 그러나 자신에게 그런 소명이 떨어진다면, 그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일 준비라 돼 있는지, 그것을 가능하게 할 능력이 있는지는 아직 의문이다.

미야자와 회장도 한때 지하경제였던 돈놀이와 대부업의 승자가 되기 위해 사람으로서 하지 말아야 될 행동을 서슴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이른바 야쿠자 똘마니를 동원해 갖은 위협으로 돈을 받아내기도 했다. 납치와 폭행도 일삼았다. 담보로 잡은 집은 물론 손때 묻은 가재도구에 딱지를 붙이는 건 일상이었다. 경쟁 대부업체를 꺾기 위해 바지사장을 내세워 유령회사를 차리고는 큰돈을 끌어다 쓰고 부도내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몇몇은 자살했고, 몇몇은 장기(臟器)까지 떼어 내는 지옥도를 그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남는 것은 죄책감과 후회가 전부였다. 그렇게 괴로워하고 있을 때 문화인 후원회에서 만난 한 방송국의 오케스트라 상임 지휘자 모리 유키오로부터 책을 선물 받았다. '어울림의 미학'이라는 동년배 모리 자신의 수필집이었다.

모리가 지휘자로서 성공만을 향해 달렸던 시절, 인생의 마디마디마다 부딪혔던 고민과 갈등을 섬세하고 편안히 녹여낸 수필들로 꾸며진 내용에 미야자와는 안식을 얻었다. 목소리를 높여가며 사람들과 다투지 않고, 뜨겁지는 않더라도 따스한 온기로 모든 마음의 얼음벽을 무너뜨리는 삶을 얻은 것이다. 돈이 최고라던 자신의 인생 목표도 다시 세웠다. 사람들에게 감동과 위안을 주는, 가난한 예술가들을 후원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으로 태어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미우라에게 스텔라가 만나는 다케우치 료타 얘기를 들은 것은 그나마 소득이었다. 미우라의 다케우치에 대한 평가다.

"차세대 젊은 주자로 다케우치는 발군이야. 그의 정치적 분석력과 전략적 기획능력은 탁월하지. 더욱이 미국에서 변호사를 했던 덕에 미국 정치권과도 선이 닿아 미래의 총리감으로 손색이 없는 친구라는 것이 더욱 마음에 들고.

다만 아집이 좀 강하고 표현도 직선적이야. 그에 따라 협상 능력이 부족하다는 점, 그래서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수련과 정치적인 경험을 반드시 쌓아야 하는 점이 옥의 티라고나 할까."

미야자와가 예상한 부분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케우치의 얼굴에서 그런 것들을 읽어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야자와는 무언가 결단해야 할 시기가 새벽의 도둑처럼 몰래몰래 하지만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는 것을 깊은 마음의 심연으로부터 느낄 수 있었다.

K의 사진과 기사가 나온 주간지를 보고 다케우치의 얼굴이 굳어진다. TV 교양프로그램에다 잡지까지, 환하게 웃는 얼굴이 거꾸로 다케우치의 분노를 일으킨다. 일면식 없는 K를 죽이고 싶을 정도로 적의와 질투를 느낀다. 그렇게 살의를 느낀 것은 다케우치의 평생 세 번째다.

첫 번째는 중학교 때  아버지가 어머니를 허리띠로 때리는 것을 처음 봤을 때다. 어릴 적에는 교토 할아버지 집에 머물렀던 다케우치는 아버지의 폭력성을 몰랐다. 중학교 때 집에서 학교를 다니면서야 아버지가 술에 만취하면 엄마에게 폭행을 상습적으로 일삼아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때 엄마는 눈물을 흘리면서 다케우치에게 일렀다.

"료타, 아버지 잘못이 아니야. 엄마가 모자라서 그런 거니까. 아버지를 이해해야 한다. 절대 아버지를 미워하면 안 돼."

어머니가 불쌍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에게 죄가 있다면 아버지와 이른 나이에 결혼해서 다케우치를 나은 것뿐이다. 평소에 어머니는 다케우치에게 아버지와 연애하고 결혼했던 얘기를 자주 들려줬다. 변변한 집안도 못 되는 외가에다 고졸의 학력, 거의 사환이나 다름없었던 회사원 시절, 그녀를 사랑한다고 쫓아다녔던 아버지가 조르고 졸라 하게 된 결혼이었다.

아버지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이, 어머니에 대한 아버지의 남아 있지도 않은 사랑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컸다는 것을 다케우치는 느꼈다. 그러나 아무리 중학교 1년, 어린 나이에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헌신적인 어머니에게 아버지의 폭력은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

결국 엄마는 우울증에 시달리다 다케우치가 대학에 들어간 해에 자살했다. 행복했던 신혼 두세 달을 빼놓고는, 평생 정치인의 아내로서 웃는 얼굴의 가면을 쓰고 살았던 어머니다 하지만 어머니 마음 속 깊은 상처는 누구도 어루만져주지 못 했다.

아버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어머니가 죽은 다음 해에 다케우치보다 7살 많은 여자와 결혼했다. 이후 가끔 아버지와 그 여자가 동행한 모습을 언론에서 보게 되면 죽은 어머니를 생각하며 분노를 삭인다. 그게 지금도 아버지를 찾지 않는 이유다.

두 번째는 과거 유학시절이었다. 현실에서 살인 교사라는 범죄로 이어진 살의였다. 물론 그 범죄는 철저하게 감춰졌지만. 다케우치는 로스쿨 동기였던 워싱턴 DC 출신 전형적 백인, 앵글로 색슨계, 개신교(WASP)인 케이트에 빠졌다. 다케우치는 철저한 계획과 집착으로 사랑 아닌 사랑과 비슷한 감정을 만들어 냈다.

계약법 첫 수업 시간, 케이트를 처음 봤을 때 그녀는 그에게 젊은 니콜 키드먼이었다. 금발에 가까운 밝은 갈색 머리, 뽀글거리지만 긴 퍼머 머리결, 자신에 찬 인상의 블루 진 차림이 니콜이 한참 젊었을 때 출연했던 범죄 스릴러 영화 '맬리스(Malice)'에 악녀 '트레이시'로 출연했을 때 모습, 그 자체였다.

다케우치는 케이트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동선을 확인하는 치밀성을 보였다. 우연을 가장해 자주 만나면서 서로 얼굴을 트는 조심성도 드러냈다. 생전 한 번도 가지 않았던 학교 채플도 케이트가 나타난다는 이유로 일요일이면 찾았다. 그리고 계약법 시험을 계기로 스터디와 예상문제를 뽑느라 밤샘을 하면서 급속히 가까워졌다. 젊은 남자와 여자는 사랑에 가까운 감정에 빠졌다. 하지만 그 감정에서 깨어난 시간은 금세였고, 한줌의 감정은 모래알처럼 흩어졌다.

"우리가 섹스한 것은 그저 한 여름 밤의 즐거운 꿈이었다고 생각해."

참으로 편한 말이다. 시험이 끝난 다음 술김에 함께 잔 이후 케이트는 자신의 뜻이 아니었다며, 이따위 말을 던지고는 다케우치를 떠났다.

혼란스러웠다. '원 나이트 스탠드'로 하룻밤을 보낸 것도 아니고 서로에 대한 호감에서였다고 믿었다. 다케우치는 자존심 때문에 케이트에게 매달릴 수도 없었다. 그러나 케이트에 대한 집착은 곧 악감정으로 변했다. 케이트의 스토커가 돼버렸다. 케이트의 모든 것을 감시했다.

리키가 그때 나타났다. 히스패닉인 리키가 케이트의 마음을 빼앗았다는 사실에 다케우치는 참담했다. 일본인으로서 자신들에게 개항을 강요했던 미국인, 오리지널 백인도 아닌 멕시코 출신 혼혈 남성에게 자신의 연인이 될  뻔한 여자를 빼앗겼다는 자격지심에서다. 그렇게 많은 시간과 노력을 케이트에게 쏟아 부은 데 대한 두 사람의 배신으로 간주했다.

사랑에 눈멀었을 때, 그 사랑이 미움으로 변해 분노가 쓰나미처럼 밀려올 때, 여성의 질투는 남성의 그것보다 매우 하찮은 것으로 변한다. 다케우치는 리키를 따로 만나 자신의 연인이라며 헤어질 것을 치사하게 강요도 해봤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리키의 주먹이었다. 드잡이 이후 다케우치의 앙심은 돌이킬 수 없게 커져만 갔고, 양심과 의식은 점점 사라지게 된다. 리키는 지워버릴 대상일 뿐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곰곰이 따져본다. 리키를 없앨 수 있는 편리한 방법은 금세 떠오른다. 모자를 눌러 쓰고 짙은 선글라스로 음흉한 낯빛을 가린다. 거리로 나간다. 약과 술에 쩔어 구걸하는 노숙자가 눈에 띈다.

"20달러면 빨아 줄게."

구역질나는 것을 참는다.

"이름이 뭐야?"
"왜 이름을 물어?"
"그냥 알고 싶어서."
"나는 밥이야. 20달러가 비싸면 10달러도 돼."
"더 큰 돈을 줄 수도 있어."

초점을 잃은 밥의 눈이 갑자기 빛난다. 다케우치는 밥을 허름한 모텔로 데려간다.

"샤워하고, 면도해. 그래야 돈을 벌 수 있으니까."

밥이 샤워를 하는 사이 다케우치는 마트로 향한다. 밥의 치수에 맞춰 점퍼, 셔츠, 면바지, 속옷, 양말, 운동화  그리고 피자, 콜라를 사온다.

밥이 옷을 차려입으면서 좋아한다. 피자를 보고는 허겁지겁 먹는다. 15인치 짜리 피자 한 판을 다 먹고 콜라도 들이킬 대로 들이킨 다음 트림을 한다.

"피자가 너무 맛있어. 고마워. 오랜만에 깨끗이 씻고, 새 옷을 입으니 나도 말쑥한 신사가 됐네. 그런데 어떤 일을 시키려고 그래?"

"오늘은 그냥 편히 쉬어."

다케우치는 밥이 안달이 나게 하는 방법은 잘 알고 있다. 일단 경계를 풀게 만든 다음 노숙자들이 일상에서 벌지 못하는 상당한 돈을 제시하면 된다. 하루하루를 무료 급식과 시에서 제공하는 잠자리로 버티는 그들에게, 특히 술과 약에 중독돼 있는 자들에게 단돈 10달러면 하루가 행복하기 때문이다.

다음 날 역시 모자와 선글라스로 나쁜 마음을 먹은 얼굴과 눈빛을 가린 채 모텔로 찾아온 다케우치는 뜸을 들인다. 그러자 밥이 채근댄다.

"무슨 일인데?"
"간단한 일이야."
"도대체 뭔데 그래?"
"사람 하나 처리하면 돼."
"내가 바보인 줄 알아? 좀도둑질은 했어도 사람을 어떻게 죽여?"
"큰돈을 벌 수 있는 기회야! 네가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도 많아. 나는 네게 부탁하는 게 아니야. 거래를 하자는 얘기지."

3000달러를 부르는 다케우치의 말에 밥은 잠시 망설인다. 하지만 술과 약, 여자의 몸이 떠오른다. 어차피 막장인데 거절할 이유가 없다. 금방 다케우치의 제의를 받아들인다. 리키를 죽이는 살인 청부계약은 이렇게 터무니없이 간단하게 성립된다. 술과 약, 여자를 살 수 있는 돈이 사람을 죽이는 값이다.

다케우치가 선불로 100달러 짜리 15장을 하나씩 세어 쥐어준다. 밥의 눈은 다케우치의 돈 세는 모습을 뚫어져라 욕심을 드러내며 쳐다본다. 선금을 받은 밥은 버릇대로 양말에 구겨 넣고는 씩하고 비굴하게 웃는다.

다케우치는 리키가 파티를 벌이고 있는 곳에 밥을 데려가 즐거움에 큰소리로 웃고 있는 그를 턱으로 가리킨다. 일을 끝낸 후에 하버드 스퀘어 근처에 있는 '배너티(Vanity)'라는 술집 뒷골목에서 만나 잔금을 주기로 약속하고. 미리 준비해 둔 38구경 리벌버 권총을 건넨다. 등록번호는 지워진 '안전한' 권총이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그러면서 확실하게 경고한다.

"딴 생각 하지마. 뉴욕 브롱크스에 있는 네 딸 모니카를 생각해. 일을 그르치게 되면 알지?"

밥은 갑자기 섬뜩해진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들뜰 대로 들떠 가족 사항은 물론 주소와 전화번호도 떠들었던 밥에게 족쇄를 채우는 말이다. 다케우치의 꼭두각시가 될 수밖에 없다.

"알았어. 하면 될 거 아니야! 제발 모니카는 건드리지 마."

그날 저녁 총성 두 발이 울렸다. 그리고 리키는 죽었다. 그러나 밥은 잔금을 받지 못했다. 경찰에 연행돼 끌려갔기 때문이다. 지역사회의 큰 뉴스가 됐다. 하지만 가해자와 피해자 둘 다 술에 취해 있는 상태였고, 리키가 밥을 때리는 모습을 본 목격자의 증언 때문에 살인죄는 적용되지 않았다. 딸에게 다케우치에게 받은 돈 절반을 부친 밥은 입을 다무는 수밖에 없었다.

그날 저녁 리키의 시신 앞에서 케이트의 슬피 우는 얼굴을 향해 침을 뱉듯 다케우치는 잔인하게 혼잣말한다.

"네가 꾸는 한 여름 밤의 꿈은 즐거우면 안 돼. 끔찍해야 돼."


태그:#영화 미드나이트 인 파리, #벨 에포크, #대본영 참모, #영화 맬리스, #보노보 원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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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Bella Vita! 인생은 아름답다며, 글쓰기로 먹고 살기 위해 애쓰는 여러분의 이웃입니다. 세계일보, 머니투데이, 한경비즈니스, 이코노미조선 등에서 기자로 일했습니다. 2019년 '아산문학' 공모전에서 '그는 제바닷타였을까'라는 단편소설로 대상을 받고, 전업작가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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