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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오후 어린이집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카톡 문자가 왔다.

"어머님들 보내드린 안내장과 메모는 다 읽어보셨나요? 원장님이 바뀌신 중대한 시기에 저까지 교육을 가게 되었습니다. 대체교사가 오실 예정이며 4일간 교육 잘 다녀오겠습니다."

맨 처음 받은 문자 내용을 선뜻 이해하지 못했다. 원장님이 바뀐다고? 알고 보니 원장님이 월요일부터 바뀌시는데, 그 통보를 금요일 오후 4시가 넘어서야 해준 것이다. 4세 반에서 유일하게 워킹맘인 나는 당연히 안내장과 메모를 아직 보지 못한 채 선생님의 문자를 받고 당황했다.

소문에 의하면 아이 한 명당 권리금 220만 원을 받고 매매를 한다던데, 그 일이 나에게도 일어난 것인가?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는 느낌이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단체카톡방으로 보낸 메시지였는데, 다른 엄마들도 모두 당황하면서도 순순히 원장님께 대신 인사해달라는 안부의 메시지를 남겼다.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잘 가라는 인사는 상호 예의를 갖추면서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일방적인 통보에 잘 가시라는 인사를 할 수 없었다.

쉿! 아무도 알면 안 돼? 은밀하게 거래되는 어린이집 매매

"다음 주 월요일부터 원장님이 바뀌는데 오늘(금요일) 오후에 통보해주는 건 좀 너무하신 것 같아요. 일하느라 제일 늦게까지 맡기는 엄마로서 좀 속상합니다. 물론 담임선생님이 중요한 거지만 원장님 보고 두 아이나 보낸 저로서는 좀 황당하네요. 회사 일도 미리 통보하고 인수인계 기간을 주는데 엄마들에게도 며칠 전에 미리 말씀해주셨으면 하는 생각도 듭니다. 새 원장님이 어떤 스타일인지도 잘 모르겠고, 지금 회사 일도 손에 안 잡히고 불안하네요."

"교사인 저희들도 그저께 통보받았습니다. 윗분들 정책이라 제가 뭐라 말씀드리기 어렵네요."

공허한 메아리겠지만 담임선생님께 불만을 토로했다. 교사들조차 이틀 전 통보를 받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럼 어린이집을 인수하는 원장님은 교사들도 안 보고, 아이들도 보지 않고, 무엇을 보고 어린이집을 인수한 것일까? 정말 원아 수 만큼 권리금 계산해서 어린이집을 인수한 것일까?

구글에서 '어린이집 매매'라는 검색어를 넣었더니 매매컨설팅 업체가 주르륵 떴다. 그리고 몇 군데 사이트에 들어가니 정원 몇 명에 권리금까지 상세하게 명시된 정보가 떴다. 혹시나 '내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이 매물로 나오지는 않았을까?'하는 불안감에 여기저기 뒤져봤지만, 쉽사리 찾을 수가 없었다. 내가 사는 지역에 매물이 너무 많았고, 권리금은 천차만별이었다. 게다가 어떤 컨설팅 업체는 중개 시 '철저한 비밀보장'이라는 문구를 써서 안내하고 있었다. 어린이집이 무슨 마약도 아닌데, 은밀하게 뒷거래해야 하는 이유는 뭘까?

내 아이 보면서 본전 생각 나지 않을까?

마약거래도 아닌데, 왜 철저한 비밀보장으로 은밀한 뒷거래를 해야하는걸까?
▲ 어린이집 매매 비밀보장 마약거래도 아닌데, 왜 철저한 비밀보장으로 은밀한 뒷거래를 해야하는걸까?
ⓒ 이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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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도 사업장이라 운영유지를 위해 정신적, 물질적 에너지가 든다고 말한다. 게다가 기 센 엄마들의 등쌀에 피로감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그것이 권리금을 받아야 하는 논리가 되기는 힘들다. 권리금이란 '기존 점포가 보유하고 있는 고객과 영업방식을 이어받는 대가로 지급하는 돈' 이라는 사전적 의미로 즉, 고객을 돈으로 환산해서 영업매출이 보장될 때 그 의미가 성립된다고 할 수 있다.

어린이집 매매 시 권리금이 오간다는 이야기는 원아를 돈으로 환산해서 그만큼 이익을 보장한다는 이야기나 마찬가지다. 당연히 새로 인수한 원장은 원아를 돈으로 볼 수밖에 없다. 아이를 보면서 본전 생각이 나지 않을 수 있을까?

원아를 왜 돈으로 보면 안 되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어린이집은 단순한 사업장이 아니다. 이 나라를 이끌어갈 제2의 인재를 키우는 보조교육기관이자 일하는 여성들을 돕는 사회적 의미를 가지는 곳이다. 국가가 이러한 의미로 보조금을 지급하는 곳이다. 은밀하게 아이 한 명당 권리금을 매겨서 매매를 한다는 것은 사회적 의미를 저버리겠다는 뜻이다. 돈을 바란다면 어린이집 운영보다 다른 사업장을 운영하는 것이 낫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 당하고 있어야 하는 엄마들

"저 OO엄마예요. 아까 카톡 보고 연락드려요. 저도 너무 속상하고 황당한데, 지금은 할 수 있는 게 없네요. 그나마 선생님 바뀌지 않는 게 어디에요. 그냥 좀 지켜보는 수밖에요. "

잠시 뒤에 같은 어린이집을 보내는 엄마로부터 연락이 왔다. 어린이집 원장이 바뀌어도, 선생님이 바뀌어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특히 나처럼 일을 해야 하는 엄마들은 앉아서 일방적으로 통보받고, 불만이 있어도 어쩔 수 없다.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상황이 서글프다.

어린이집의 경우는 원장의 방침과 교육스타일에 따라서 어린이집의 분위기가 많이 좌우된다. 그러나 새로운 원장이 어떤 스타일과 어떤 인성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성함 석 자 빼고는 들은 바가 없다. 그래서 부모들의 불안감은 더욱 커지는 것이다. 가만히 앉아서 지켜봐야 하는 현실이 불안하다. 그나마 선생님이 바뀌지 않으니 다행이라 여기며, '선생님은 그대로 계시는거죠?'라고 묻고 확답을 받는 것이 전부다.

어린이집 매매, 정책마련이 시급하다

사정상 어린이집을 넘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건강상의 이유로, 혹은 다른 개인적인 일로 더 이상 운영이 어렵다면 매매를 할 수도 있다. 단, 그 과정이 투명하고 공정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린이집은 민간이면서 공공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절대 비밀보장'을 운운하면서 거래되어야 할 곳이 아니다.

어린이집 평가는 시설과 선생님들의 인성, 그동안 운영했던 교육의 질로 평가를 받아야지 원아들의 숫자로 매겨져서는 안 된다. 시설, 선생님인성, 교육의 질 등이 떨어진다면 원아들의 숫자는 당연히 줄어든다. 유지하고 싶어도 유지할 수 없는 숫자라는 이야기다.

어린이집은 레스토랑처럼 입맛에 맞게 바로 바꿀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마음에 맞지 않는다고 쉽게 바꿀 수 있는 곳도 아니다. 어린이집 원장이 바뀐다면 적어도 며칠 전에 이야기를 해줘서 아이도 엄마도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익숙한 분과 이별할 준비, 새로운 분을 맞이할 준비가 필요하다.

새로운 원장이 온다면 어린이집을 어떻게 운영하겠다는 계획을 들었으면 좋겠다. 기존 교육 프로그램은 그대로 고수할 것인지, 선생님들은 그대로 유지할 것인지, 식단과 먹거리는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 정보를 주었으면 한다.

이러한 정보들을 당분간은 '지켜보는 방법'으로밖에 얻을 수 없다는 것이 답답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혜선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 <이틀, 두가지 삶을 담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어린이집매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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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하면서 프리랜서로 글쓰는 작가. 하루를 이틀처럼 살아가는 이야기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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