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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진실이다>를 펴낸 이태룡 박사.
 <이것이 진실이다>를 펴낸 이태룡 박사.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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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단군(檀君)께서 홍익인간의 이념으로 나라를 연 지 4347주년이 되는 해이자 광복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지난해 고조선부터 경술국치까지 의병의 역사를 한 줄에 꿰어 정리한 <한국의병사>(상·하)를 펴냈던 이태룡(60) 박사가 단군과 관련한 내용을 정리해 이번에 <이것이 진실이다>(광문각)라는 제목으로 책을 출간했다.

개천절(10월 3일)을 앞두고 나온 이 책에서 이 박사는 "'기자조선'은 조선 유학자들이 조작한 것이고, '단군신화'는 일제 식민사학자와 그들 앞잡이들이 만든 이름"이라고 밝혀 놓았다.

저자는 "단군신화라는 해괴한 용어는 <고려사>, <조선왕조실록>은 물론, <삼국사절요> <동국통감> 등 관찬사서, 그리고 수많은 유학자들의 문집에 단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는 지금까지 알고 있던 <삼국유사> 중간본(1512)의 내용은 매우 왜곡·축소된 것이라 했다. 저자는 <세종실록 지리지>(1454)에 나오는 단군의 건국사화(建國史話) 내용을 소개해 놓았다.

"단군고기(檀君古記)에 이르기를, 상제(上帝) 환인(桓因)이 서자(庶子)가 있으니, 이름이 웅(雄)인데, 세상에 내려가서 사람이 되고자 하여 천부인(天符印) 3개를 받아 가지고 태백산(太白山) 신단수(神檀樹) 아래에 강림하였으니, 이가 곧 단웅천왕(檀雄天王)이 되었다. (환인의) 손녀(孫女)로 하여금 약(藥)을 마시고 인신(人身)이 되게 하여, 단수(檀樹)의 신(神)과 더불어 혼인해서 아들을 낳으니, 이름이 단군(檀君)이다. 나라를 세우고 이름을 조선(朝鮮)이라 하니, 조선, 시라(尸羅), 고례(高禮), 남·북 옥저(南北沃沮), 동·북 부여(東北扶餘), 예(濊)와 맥(貊)이 모두 단군의 다스린 (지역이) 되었다.(후략)

(檀君古記云, 上帝桓因有庶子, 名雄, 意欲下化人間, 受天三印, 降太白山神檀樹下, 是爲檀雄天王. 令孫女飮藥成人身, 與檀樹神婚而生男, 名檀君. 立國號曰朝鮮. 朝鮮, 尸羅, 高禮, 南北沃沮, 東北扶餘, 濊與貊, 皆檀君之理.)."

저자는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단군의 건국사화가 <단군고기>라고 기록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것을 일제강점기인 1920년에 '단군신화'라는 해괴한 이름으로 둔갑시켰고, 그 이름으로 300여 논저가 나왔다"고 했다.

저자는 <단군고기>가 '단군신화'로 둔갑하는 과정을 다음과 같이 책에 설명해 놓았다.

"1894년 도쿄 제국대학의 시라토리 구라키치(白鳥庫吉) 교수가 <단군고(檀君考)>에서, '<삼국유사>에 나온 단군사적(檀君史籍)은 한국 불교의 설화(說話)에 근거하여 가공(架空)의 선담(仙譚)'이라 하였고, 단군과 단군이 세운 조선의 건국사화(建國史話)를 '설화에 바탕을 둔 불교 이야기'로 조작하였으니, 단군사적을 첫 단계에서 '단군설화(檀君說話)'로 만들었으며, 이어 케이오 의숙(慶應義塾) 출신 나카 미치요(那珂通世)는 <삼국유사>에 나온 내용을 두고, '승도(僧徒)의 망설(妄說)을 역사상의 사실로 삼은 것'이라고 하여 사화를 허구(虛構)로 만들었고, 이어 1897년 <조선고사고(朝鮮古史考)>라는 논문에서 '단군왕검은 불교 승도의 망설이요, 날조된 신화(神話)'라고 하였으니, 단군사적을 이른바 '단군신화(檀君神話)'로 만들었다."

이태룡 박사는 최근 책 <이것이 진실이다>를 펴냈다.
 이태룡 박사는 최근 책 <이것이 진실이다>를 펴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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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룡 박사는 "일제 식민사학자들의 한국사 왜곡에 이어 1916년 1월에는 조선총독부 산하 중추원에 '조선반도사편찬위원회'가 발족되었다"며 "이는 일제 식민사학자 개인 차원이 아닌, 일제가 정부 차원에서 일본 민족의 우위성을 고취하고 역사교육을 통해 한국민으로 하여금 민족의식을 배제하고, 열등의식을 심기 위하여 설립하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제는 미우라 히로유키(三浦周行), 이마니시 류(今西龍) 등 일본인 식민사학자들과 어윤적·유맹·이능화·정만조 등 부왜인(附倭人)들을 참여시켜 우리 역사를 왜곡·말살시키는 기초작업에 들어갔다. 1922년에는 이를 '조선사편찬위원회'로 확대 개편하였고, 1925년에는 '조선사편수회'를 조직하여 권중현·박영효·이완용·이진호 등 매국노들을 참여시켰다. 2년 뒤에는 일제 식민사학자들과 신석호·이병도·최남선 등 많은 부왜인들을 동원하여 식민사관에 입각한 본격적인 조선사 편찬 작업을 하였다"고 했다.

이태룡 박사는 "이 같은 과정에서 이마니시 류는 1921년 <단군고(檀君考)>라는 논문에서 단군의 건국사화를 신화로 다시 조작하였는데, 이는 20여 년 전에 나카 미치요가 만든 '단군신화'를 논리적으로 체계화한 것으로 우리나라 역사를 왜곡하는 밑바탕이 되었고, 1937년에는 35권 2만 4000쪽에 이르는 방대한 <조선사>를 편찬하기에 이르렀다"고 주장하였다.

저자는 "<세종실록 지리지>에 실린 <단군고기>에는 천제 환인(桓因)의 아들 환웅(桓雄)이 태백산 신단수(神檀樹) 아래에 강림하여 홍익인간의 이념으로 개국의 터전을 닦고, 그 후손 단군이 나라를 세웠다고 하였다"며 "배달겨레는 <단군고기>의 내용을 국조신앙(國祖信仰)처럼 여겨 천손국가의 구성원이라는 자긍심으로 수천 년 동안 살아왔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단군고기>를 <세종실록 지리지>에 실었다는 것은 당시 실록 편찬자들로부터 역사서로 인정받았음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태룡 박사는 이 책을 저술하면서, 우리나라 역사서를 바탕으로 중국과 일본의 사서 수십 권을 참고했고, 원문을 포함해 600여 개의 주석을 달아 놓았다. 역사에 관심이 많은 역사학도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흥밋거리가 될만한 책으로 보인다.


태그:#이태룡 박사, #건국사화, #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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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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