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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일 동국대 행정대학원 최고위 과정 수업. '국회의원 겸직과 영리행위를 허용하는 현행법의 문제를 지적하는 국회 입법 보고서' 일부를 세 문장으로 요약하는 수업을 했습니다.

□ 현황
◦현행 「국회법」은 국회의원의 겸직을 포괄적으로 허용하면서(「국회법」 제29조), 의원의 영리업무 종사에 대하여는 의원 전체에 적용되는 일반적 규정이 없음.
 - 참고로, 국가공무원의 경우 직업공무원이라는 특수성이 있기는 하나, 공무 외에 영리업무, 특히 직무수행에 지장을 야기하거나 부당한 영향을 미치는 영리업무에 종사할 수 없도록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음(「국가공무원법」제64조 및 「국가공무원 복무규정」제25조).
◦다만, 상임위원의 직무 관련 영리행위에 대하여, "상임위원이 그 직무와 관련하여 영리행위를 하지 못한다."고 규정함(「국회법」 제40조의2).
 -이 규정에 근거하여 「공직자윤리법」상의 주식백지신탁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의원이 보유한 주식과 소속상임위 업무와의 관련성 여부에 따라 주식백지신탁 여부가 결정되고 있음.

□ 문제점
◦국회의원에게는 사실상 급여의 형태로 수당·입법활동비·특별활동비가 지급되고 있고, 보좌진 급여와 국회청사내 사무실 운영경비 등 활동비가 국회소관 예산으로 지원되고 있으며, 후원회를 통하여 모금된 정치자금을 지역구 사무실 운영 등 정치활동을 위하여 지출할 수 있음.
◦이와 같이 국회의원의 생계 및 정치활동에 필요한 비용지원이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원 겸직이 포괄적으로 허용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소속 상임위 업무와 관련이 없으면 영리업무도 사실상 허용된 상황은 일종의 특혜로서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제기됨.
◦특히, 변호사나 의사 등 전문직종 출신 의원의 경우 임기개시 후에도 해당 전문직 활동을 휴직(휴업)하지 않고, 관련 사건의 수임이나 고문 등을 통하여 영리행위를 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는데, 이는 국회의원의 청렴의무에도 반할 뿐만 아니라 국회의원 지위를 이용한 부적절한 영리적 이득이라는 지적이 계속 제기됨.

수강자들은 다양한 요약문을 과제로 제출했습니다. 그것을 통해 메시지와 문장구성 간에 흥미로운 관계를 발견하게 됐습니다. 구체적 예문을 놓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자명하게 여겼던 사실이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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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메시지의 방향은 서술부가 결정한다는 사실입니다. 현황 부분의 요약은 대략 두 갈래로 나타났는데, 같은 내용을 갖고도 서술부를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전혀 딴판의 내용이 만들어졌습니다.

1. 현행 국회법은 상임위원의 직무관련 영업행위를 금하고 있을 뿐 겸직과 영리행위에 대한 일반적 규정이 없음
2. 현행 국회법은 국회의원의 겸직과 영리행위에 대한 일반적 규정이 없고 다만 상임위원의 직무관련 영업행위를 금하고 있음

2번이 원문에 더 충실한 것처럼 보입니다. 원문의 순서가 그렇게 돼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2번은 적절한 요약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 입법보고서의 목적은 국회의원 겸직과 영리행위에 대해 더 강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2번처럼 문장을 구성하면 의도한 것과 반대의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국회의원에 대한 규제가 미흡하긴 하지만 일정 수준 이뤄지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만듭니다.

두 번째, 사실과 의견을 한 문장 속에 어떻게 배분하느냐에 따라 메시지의 강도 차이가 생긴다는 점입니다. 문제점 부분의 요약은 대략 세 갈래로 나타났는데, 그것을 비교해보면 참 흥미롭습니다.

1. 국회의원이 수당·입법활동비·특별활동비 등을 지원받으며 후원회를 통해 정치자금을 모금할 수 있는데도 영리업무가 허용된 상황은 특혜로서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제기
2. (앞부분 똑같음) 영리업무가 허용된 상황은 특혜
3. (앞부분 똑같음) 영리업무가 허용됨

1~3번 가운데 어떤 것이 가장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까요? 1번은 특혜, 부적절, 지적, 제기 등 하나의 상황에 대해 다각도의 의견과 사실을 동원해 전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메시지의 강도는 제일 낮습니다.

보고자가 판단의 주체로서 책임을 지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 판단과 의견이 아니라 주변에서 그런 여론이 있다는 식입니다. 논란과 문제가 될 때 빠져나갈 구멍을 미리 준비해놓은 '영악한' 문장입니다.

우리나라 기업과 공공기관의 보고서를 보면 이런 식의 표현이 아주 많습니다. 이런 식의 표현이 만연한 것은 우리나라 조직 문화가 민주적으로 운영되고 있지 않다는 방증입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처럼 소신 있게 자신의 판단을 전달하면 오히려 불이익을 받는다는 사실을 모든 직장인들은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1번에 비해 2번은 보고자의 의견과 판단을 분명하게 내세우고 있습니다. 당연히 1번에 비해 메시지의 강도가 높습니다. 보고자의 소신이 돋보입니다. 그러나 주장을 강하게 제기한 만큼 반론과 반격에 부닥칠 가능성도 높습니다. 그것을 감내할 가치가 있다면 2번처럼 표현하는 것이 좋습니다.

3번은 어떤가요? 3번은 사실만 언급하고 의견과 판단은 생략하고 있습니다. 3번이 과감하게 의견과 판단을 생략할 수 있었던 것은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 상황이 특혜라고 당연히 판단할 것으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3번은 사실만 간명하게 말함으로써 1번과 2번의 프레임, 혹은 딜레마로부터 비껴서 있습니다. 보고서를 읽는 사람에게 '판단'이라는 공을 넘깁니다. 읽는 사람의 상식과 자주성을 믿기 때문입니다.

1번보다는 2번, 2번보다는 3번이 더 성숙한 커뮤니케이션 방식입니다. 우리는 조직 내에서 어떻게 소통하고 있을까요? 우리 조직이 어떻게 소통하느냐가 우리나라 전체의 사회적 자본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가 될 것입니다.

다만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조직, 상관, 의사결정권자의 수준과 문화가 몇 번에 더 어울리는가를 잘 판단해야 하는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 편집ㅣ박정훈 기자



태그:#백승권, #생존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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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을 위한 보고서 보도자료 작성 교육, 일반인을 위한 자기소개서와 자전에세이 쓰기 워크숍을 진행하는 실용글쓰기 전문강사입니다. 동양미래대 겸임교수, 청와대 홍보수석실 행정관 등을 역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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