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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이 흔해졌습니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닭의 시선으로 한국사회 곳곳의 풍경과 사회 문제, 부조리를 조명해봅니다. [편집자말]
"아빠! 양념 반 후라이드 반!"

지난해 종합상사 샐러리맨의 애환을 생동감있게 그려내 이례적인 시청률을 기록하며 호평을 받았던 드라마 <미생>. 직장인들의 회식 장면이 자주 등장하던 이 드라마에서 가장 많이 불리워진 음식은 의외로 가정용으로 포장된 '치킨(닭튀김)'이었다.

이 드라마에서 치킨은 야근으로 매번 늦게 집으로 향하는 '샐러리맨 아빠' 오 과장의 유용한 속죄 도구로 그려진다. '아빠 언제 와?'로 시작해서 '양념 반, 후라이드 반'으로 마무리되는 아버지와 아들의 통화 장면에는 연 2100시간이 넘는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한국 노동자와 그들의 가정 풍경이 잘 스며들어 있다.

드라마를 보다가 문득 닭과 닭고기가 우리 삶 여러 곳에 소품처럼 놓여있다는 생각을 했다. 도축된 닭고기는 입이 없지만 쌓인 자리에서 말없이 많은 것들을 말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의 1인당 닭고기 소비량은 12.45kg.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소·돼지에 비해 높은 단백질 함량... 매년 소비량 늘어나

매년 닭고기 소비량이 늘고 있다.
 매년 닭고기 소비량이 늘고 있다.
ⓒ s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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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농촌진흥청이 공개한 소비자 의식조사를 보면 국내 가구 52.6% 정도가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닭고기를 먹는다. 주 3회 이상 닭고기를 먹는 소비자도 전체의 15.5%에 달한다. 이렇게 소비하는 닭이 1인당 1년에 15마리 정도다.

이는 밀레니엄 이전에 비해 상당히 늘어난 것이다. 전통적으로 한국 소비자들은 돼지고기와 쇠고기 소비량이 많았다. 그러나 지난 2005년부터는 닭고기가 쇠고기 소비를 앞질렀다. 국립축산과학원의 이근호 농업연구사는 상승 추세로 볼 때 머지않아 닭고기 소비량이 돼지고기보다 많아질 수도 있다고 전망한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닭고기 강세가 2000년대 이후 불어온 '웰빙' 흐름과 관계가 깊다고 설명한다. 단백질 함량은 높으면서도 칼로리는 낮은 닭고기 특성이 소비자들에게 먹혔다는 것이다. 정혜경 호서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닭고기가 쇠고기나 돼지고기에 비해 지방 함량이 적고 단백질 비중이 커서 전 세계적으로 주요한 단백질 공급원으로 각광받고 있다"고 말했다.

보통의 생 닭고기는 단백질 20.7%, 지방 4.8%, 무기질 1.43% 정도로 구성되며 닭가슴살은 단백질 함량이 22.9%로 동물성 식품 중에서도 매우 높은 편이다. 칼로리는 100g당 173kcal 가량이다. 닭 중에서도 날개 부위는 100g당 204Kcal 정도로 삼겹살(210kcal), 쇠고기 등심(224kcal)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가슴살(101Kcal), 다리살(104Kcal) 등은 압도적으로 칼로리가 낮다.

반면 육계 가격은 1Kg당 2683원(10월 1일 기준)으로 쇠고기(1만 8900원)의 1/7, 돼지고기 (4196원)의 2/3 정도다. 같은 비용으로 더 많이 먹을 수 있고, 같은 양의 고기를 먹으면 훨씬 살이 덜 찐다는 얘기다.

한국인 먹는 닭 1/3이 '치킨'... 연간 1인당 5마리꼴

서울 신월동 신영시장 내의 한 치킨 판매점.
 서울 신월동 신영시장 내의 한 치킨 판매점.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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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닭튀김)은 한국의 닭소비를 설명할 때 빠트릴 수 없는 소재다. 지난해 전체 닭 소비량의 32.7%가 치킨으로 사라졌다. 여론조사기관 '갤럽'에 따르면 만 10세~54세의 한국인 중 72.4%가 패스트푸드점의 치킨을 간식으로 이용하며 53.4%는 치킨을 가장 즐기는 메뉴로 꼽는다. '패스트푸드' 하면 '치킨'을 연상하는 사람도 15% 정도나 된다.

이렇다보니 치킨을 파는 집도 많아졌다. 동네에 자리잡은 치킨전문점은 이미 포화 상태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2013년 기준 영업중인 치킨집은 약 3만 6000개. 지난 2002년 주거지 및 근무지 1km²당 평균 6.5개 정도였던 것이 지난 2011년에는 12.9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급증한 치킨집 숫자는 요즘의 먹거리 유행을 보여주는 척도이면서 경기침체를 맞은 한국 경제의 어두운 단면이기도 하다. 통계적으로 볼 때, 수요에 비해 공급이 과도한 '레드오션' 상태라는 사실이 몇 년 전부터 알려졌지만 진입장벽이 낮다는 이유로 직장 퇴직자들이 여전히 이 분야 창업에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2년 기준 치킨집 점포 1개당 연간 평균 순소득은 2032만 원 정도다. 국내 치킨 프랜차이즈 업계에서는 30% 정도의 매장은 월 500만 원 이상 수익을 내는 것으로 추정한다. 이 점을 감안해보면 월 수익 100만 원 미만의 치킨집도 상당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미국의 <월스트리트 저널>은 지난 2013년 한국의 급증한 치킨집이 경제의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치킨집을 열면서 거액의 은행 대출을 받는데 장사가 잘 되기 어려운 상황이라 가계부채 비율만 높일 수 있다는 이유다. 이 매체는 "한국에서는 매년 7400개의 치킨집이 생겨나고 기존에 있던 5000개 점포가 파산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국내 치킨 소비량이 늘고는 있지만 치킨을 공급하는 점포 숫자에는 한참 못미친다. 지난해 기준으로 치킨 프랜차이즈 업계의 매출대비 순익 등 자료를 감안해봤을 때 산술적으로 소비자들이 지금보다 치킨을 2.3배 더 먹어줘야 현재 영업중인 치킨집들이 월 평균 400만 원 이상의 수익을 가정에 가져갈 수 있다. 통계청은 치킨집이 창업 후 3년 이내에 폐업하는 비율이 절반(49.2%)에 가깝고 창업 10년 이후 생존률은 20.5%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 편집ㅣ박혜경 기자



태그:#치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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