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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2일부터 25일까지 진행된 시진핑의 방미 외교에 대해 중국의 시각은 대체로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다. 중국은 이번 국빈방문의 목표를 양국간 '신뢰증진과 의문해소(增信釋疑)'에 두었는데, 양국 정상회담을 통해 다양한 분야에서 폭넓은 합의를 이끌어냈고, 상호간 전략적 신뢰를 높였다는 것이다.

갈등보다 협력을 중시하는 미중관계

시진핑 국가주석이 2013년 취임한 이후 오바마 대통령과의 회담은 이번이 세 번째인데, 양국이 테이블에 올린 의제는 매번 유사했다. 중국이 주로 '신형대국관계 건설'로 대표되는 전략적 협력에 대한 합의를 가장 중요한 의제로 부각시킨 반면, 미국은 투자무역 협정, 동·남중국해 분쟁, 사이버 해킹, 중국 내 인권문제 등 구체적인 현안문제에 집중했다.

주목해야할 점은 우리의 기대와 달리 북핵문제와 한반도 평화에 관한 의제는 주요의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양국이 주목하는 의제가 보여주듯이, 좀 더 공세적인 쪽이 미국이고 방어적으로 에둘러 가려는 쪽이 중국이다. 복싱에 비유하면 상대의 약점을 파고드는 인파이터형의 미국과 정면승부를 피하려는 아웃사이더형의 중국이 맞붙는 게임이다. 물론 대부분의 외교관계가 그렇듯이 한 쪽의 일방적 승리는 없다.

이번 회담 역시 지난 수년간의 미중관계가 그랬듯이, 양국은 전략적 경쟁관계이지만 갈등의 확산보다는 협력을 강조하는 기조가 뚜렷하다. 오바마는 중국이 가장 강조하는 중-미간 신형대국관계 구상에 대해 이 용어를 직접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특별한 이의를 제기하지도 않았다. 중국은 이를 포괄적인 동의 의사로 간주한다. 중국은 미국이 압박하는 몇몇 현안에 대해 일부는 미국에 협조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다른 일부는 모호한 봉합으로 마무리했다.

사이버상의 해킹 공격, 특히 중국 해커집단의 미국 기업 내부정보와 기술 절취에 대한 미국의 강력한 항의에 대해 중국이 재발방지를 위해 협조하기로 한 점과 기후변화 대응에 중국이 적극 나서기로 한 점은 중국이 미국의 주장을 상당정도 수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반면 인권문제와 남중국해 분쟁 사안의 경우 양국의 입장 차이를 확인하는 수준에서 봉합했다. 다만 남중국해 문제와 관련하여 정상회담 하루 전인 25일, 우첸(吳謙) 중국 국방부 대변인이 기자회견에서 "해양과 공중에서 우발적 충돌을 막기 위해 양국 간 대화채널 유지, 비행규칙 준수, 공중 조우시 대처 매뉴얼 마련에 양국 국방부가 정식 합의했다"라고 설명한 바 있다. 서로 간에 우발적 충돌과 오판을 방지하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중요한 합의 사항이 정상회담 발표문에 포함되지 않고, 회담 하루 전에 국방부 대변인을 통해 공개되었다는 점이다. 아마도 미국 국내 여론을 의식해서 정상의 입이 아닌, 국방부 대변인의 입을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공화당의 '중국 때리기'가 한창 고조되고 있다. 중국과의 군사적 충돌 방지 협약이 자칫 남중국해 문제에서 중국의 주장에 미국이 굴복한 것이라는 국내 정치공세의 우려 때문에 양국이 조율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어쨌든 중국은 이런 협상이 바로 중미 간 신형대국관계를 추동하는 '신형 군사관계'라며 큰 성과로 평가하고 있다.

현실화되고 있는 신형대국관계

회담 이후 중국 외교부 발표와 관방언론의 보도를 보면, 모든 발표문의 첫 머리는 신형대국관계 건설을 위한 진일보한 회담이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정상회담 다음날인 9월 26일 중국 외교부는 시 주석의 방미외교 성과를 다섯 개 영역에서 총 49개 항으로 요약 발표했는데, 이 중 첫 번째 영역은 중미 간 신형대국관계 건설로서 2개 항의 총론적 합의를 강조했다.

나머지는 양국 간 현안협력 분야에서 39개 항, 아태지역 사무 영역에서 2개 항, 국제 및 지역문제에서 4개 항, 지구적 도전 영역에서 4개 항으로 구성되었다. 신형대국관계를 강조하는 중국의 입장은 정상회담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행한 시 주석의 모두발언에서도 그대로 반영된다. 시진핑은 신형대국관계의 핵심내용을 그대로 언급하면서 양국 간 공동이익과 협력의 필요성을 일관되게 강조했다. 이는 같은 자리에서 오바마가 양국 간 경제관계, 기후변화, 아태지역 안전, 인권문제 등 구체적 현안에 대한 협의 내용을 순서대로 언급한 것과 대비된다.

그렇다면 미국은 중국 관방언론의 보도처럼 정말로 중국이 요구하는 신형대국관계 건설을 수용한 것일까. 중국이 주창하는 신형대국관계란 신흥대국이 부상하면 기존의 패권국가와 충돌이 불가피하다는 이른바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기존대국과 신흥대국이 평화롭게 공존하면서 발전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시진핑 취임 직후인 2013년 6월, 미국을 비공식 방문한 시 주석이 제안하면서 중국 대외정책의 핵심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중국은 중-미간 신형대국관계 건설을 위해 구체적으로 세 가지 내용을 제시하는데, "첫째 서로 충돌하지 않고 적대시 하지 않으며, 둘째 상대국의 핵심이익과 문화적 차이를 존중한고, 셋째 윈-윈을 위해 상호 협력한다"는 것이다.

미국이 민감하게 생각하지만...

2013년 미국 서니랜드 별장에서 시 주석이 신형대국관계를 처음 제기했을 때 오바마 대통령이 원칙적 동의 입장을 표명하면서, 중국이 크게 환호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미국은 이후 중국의 진의를 의심하기 시작했고, 오바마 대통령도 공식적으로 이 개념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미국이 가장 의구심을 갖는 점은 위 세 가지 함의 중 두 번째 내용이다.

상대국의 핵심이익과 서로 다른 문화를 존중하는 것인데, 우선 미국이 중국의 문화를 존중한다는 의미는 중국적 가치규범과 정치체제의 특수성을 인정한다는 의미다. 이는 미국이 국가 핵심이익으로 규정하는 인권과 민주주의 가치의 보편성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중국은 서구적 민주주의와 미국이 요구하는 인권규범을 수용할 의사가 없다.

다음으로 더욱 민감한 문제는 핵심이익의 존중인데, 중국이 주장하는 핵심이익의 범주가 너무 광범위하고 모호해서 상당한 논란을 야기한다. 영토주권 수호는 당연히 중국의 핵심이익인데, 그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모호하기 그지없다. 중국 스스로도 분쟁중인 센카쿠·조어도 섬과 남중국해가 핵심이익인지에 대해 확정적 언급 없이 필요에 따라 포함하기도 하고 배제하기도 한다. 중국 특유의 '시간벌기 전략'을 통해 점차 이 지역을 핵심이익으로 당연시하려는 의도로 보이는데, 최근 수년간의 미중관계 흐름에 비춰볼 때 점차 현실화되는 추세다.

중국이 주장하는 '신형대국관계'의 모호성과 이중성이 의심받는 이유다. 문제는 이런 의혹에도 불구하고, 미중관계가 점차 중국의 전략적 구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추세라는 것이다. 이런 구도가 현실화된다면 단기적으로는 미-중 사이에서 우리 외교의 딜레마를 완화시키겠지만, 장기적으로 더 큰 위기라는 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 문제의 결정권이 미국과 중국 간의 더 큰 전략적 이해관계에 따라 당사가 배제된 채 흥정거리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미중 정상회담 역시 이런 위험성의 일단이 드러난 경우다. 이번 회담에서도 한반도 문제는 주요 의제도 아니었을 뿐 아니라, 양국 정상은 북한 핵 문제에 대해서도 경고 외에는 어떠한 해결대안도 제시하지 않았다. 양쪽의 합의문에서 북핵문제는 포함되지 않았고, 기자회견에서 짧은 경고 메시지만 표명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표명했고, 시 주석은 "9.19 공동성명을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 한반도에 긴장을 조성하거나 유엔 안보리 결의를 위반하는 어떠한 행동도 반대한다"라고 언급했다. 수년 째 반복해 온 경고 메시지에 다름 아니다. 북한이 당장 10월 중에 로켓발사나 핵실험 가능성을 내비치는 상황에서, 미중 양국이 한반도 긴장완화와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적극적 행동대안 없이 단순한 경고 메시지만 표명한 점은 우리로서는 매우 실망스러운 것이다.

북한의 위성발사와 핵실험에 영향 못 미쳐

특히 중국은 회담 직후 외교부가 공개한 정상회담 공동합의문과 기자회견문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추동(한다)"라는 짧은 문구만 포함시켰고, 기자회견에서 상대적으로 강한 어조로 경고한 오바마의 언급 역시 생략했다. 시진핑 집권 이후 중국과 북한 관계가 매우 소원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중국은 여전히 북한에 대해 강한 압박정책을 펴기 어려운 한계를 보여준 것이다. 2년 넘게 조정과정을 거치고 있는 중국의 대북한 정책이 이처럼 어정쩡한 상태로 지속되면서, 북핵문제 해법은 공전되고 있다.

이번 미중 정상회담에서 시 주석은 중국이 그동안 지속적으로 강조해 온 6자회담 재개마저 언급하지 않았다. 단기간 내에 중국이 한반도 긴장완화와 북핵문제 해결에 선제적인 행동프로그램을 들고 나올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그렇다고 임기 말에 접어든 오바마 대통령이 7년째 손을 놓아버린 북핵문제 해법에 갑자기 적극적으로 나올 가능성은 더욱 낮다.

이처럼 미중 양국이 북핵 문제와 한반도 정세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다면, 북한의 로켓발사와 핵실험 가능성은 그만큼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확인했듯이 미국과 중국은 한반도 정세에 대해서 '큰 사고'가 나지 않는다면, 현상유지를 최선으로 간주한다. 그럴수록 고립에 처한 북한의 사고 칠 동기는 더 강해질 것이고, 사고의 강도도 점차 높아질 것이다. 그 결과는 한반도 긴장고조와 분단의 고착화를 초래할 뿐이다. 6자회담 틀이 깨진 이후 지난 10년간의 과정이 그랬다. 당장 한반도 정세를 전환시킬 획기적인 제안이 없다면, 조만간 북한의 무력시위는 불 보듯 확실하다.

그러면 누가 이 경색 국면을 돌파해야 하나? 결국 우리가 나서야 한다. 보수정권 집권 이후 7년째 유지해 온 '북한 고사작전'은 실효성도 없을뿐더러, 북한의 핵무장만 더 강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비판을 이제 받아들여야 한다. 현 정부의 정책기조인 한·미·중 삼국이 공동으로 압박하면 북한이 투항할 것이라는 기대 역시 현실성이 없다. 북한이 투항보다는 더 강한 도발을 선택할 것이고,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면 중국은 결국 발을 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의 선택지는 자명하다.

주도적이고 전향적인, 그리고 인내심 있는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미국과 중국을 한반도 평화와 협력의 장으로 끌어와야 한다. 미국과 중국이 먼저 나설 가능성은 없다. 우리 정부의 몫이다. 우리의 운명 아닌가.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코리아연구원 홈페이지(knsi.org)에도 함께 실립니다. 이 글을 쓴 이문기 교수는 세종대 국제학부 중국통상학과 교수입니다.



태그:#시진핑, #오바마, #미중정상회담, #신형대국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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