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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21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21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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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편안하셨는지요? 두 번째 문안드립니다. 앞서 드린 글에서,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노동개혁'이 청년들의 고용상황을 더 악화할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남의 자리를 빼앗지 않고도 일자리를 만들 방안을 말씀드리겠다고 약속했습니다(관련기사 : 오바마와 정반대로, 박 대통령 위태롭다).

사실 '방안'이랄 것도 없습니다. 한국 기업들은 이미 충분히 고용하고 있으니까요. 문제는 국내 아닌 해외에서 일자리를 만들고 있다는 점입니다. <조선비즈> 2014년 10월 30자 보도를 보면, 삼성전자는 2011년 국내에서 6311명을 신규로 고용했지만, 2년 뒤인 2013년에는 5096명으로 오히려 고용 인원을 줄였습니다.

한국에서 채용을 축소한 바로 그 기간에, 삼성전자는 해외 고용을 대폭 늘렸습니다. 2011년 4만 1845명을 신규 채용했고, 2013년에는 무려 6만9031명을 고용했습니다. 국내에서 1명을 채용할 때, 국외에서는 13.5명을 채용한 것입니다. 중국, 베트남 등으로 공장을 옮겨 그곳에서 제품 대부분을 생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선비즈>의 보도에 따르면, 삼성전자 구미 공장은 한때 연 8000만대의 휴대전화를 생산했으나, 이제 절반도 안 되는 3500만대 수준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반면, 베트남 공장에서는 1억 5000만대 이상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국내생산과 해외생산의 격차가 계속 벌어지고 있습니다.

판매량은 늘지만 수출은 줄어들고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휴대전화 판매에서 여러 해 동안 세계 1위를 기록했고, 그에 따라 생산량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지만, 수출량은 줄어드는 기현상이 일어났습니다. 국내 생산 비중을 계속 줄였기 때문이지요. 삼성 휴대전화의 국내생산 비중은 2013년에 이미 10% 미만으로 떨어졌습니다. 10대 중 9대 이상을 외국에서 만들고 있는 것이지요.

삼성만이 아닙니다. 현대와 기아자동차 역시 해외이전을 가속화해, 2012년에는 해외생산량이 국내생산량을 넘어섰습니다. 대통령께서 취임하신 2013년에는 정몽구 회장이 직접 나서서 "국내 생산 물량을 줄이라"는 지시까지 내렸습니다. 이제 국내 자동차 생산은 급격히 위축될 것이고, 이에 따라 일자리도 빠른 속도로 사라질 것입니다.

한국에서 1인당 소득이 가장 높은 도시가 어디인지 아시는지요? 울산입니다.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등의 생산기지가 있는 울산이 지난 5년간 1위를 지켜왔습니다. 막대한 자본이 몰려 있고, 금융, 의료, 문화 산업 등에서 다른 곳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난 조건을 갖춘 서울을 밀어내고 1위를 거두었다는 사실은, 제조업이 중산층 형성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말해줍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울산의 영광이 오래 지속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기업은 왜 해외 생산을 늘리는 것일까요? 답은 정해져 있습니다. '강성노조'와 '가격경쟁력'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아시다시피 삼성전자는 노조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한국의 어느 기업보다 빠른 속도로 생산시설을 외국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삼성의 이런 태도가 매우 모순적이라는 사실입니다. 삼성은 과거 경쟁사였던 하이닉스가 해외에 공장을 건설하려 할 때마다 '핵심 기술유출이 우려된다'며 맹렬히 반대하곤 했습니다.

그렇다면 '가격 경쟁력' 이야기는 어떨까요?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오늘날과 같은 '무한경쟁시대'에, 한 푼이라도 싸게 만들어 팔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이야기는 거부할 수 없는 진리처럼 들리니까요.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기업은 봉사단체가 아닙니다

한국 대통령 임기 중반에 기업을 불러 '고용'과 '투자'를 주문하고, 기업들은 늘 '통큰 투자'와 '고용 확대'로 화답하곤 합니다.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왼쪽이 현 정부에 대한 기업의 '화답'이고, 오른 쪽이 이명박 정부때의 반응입니다.
▲ 정부 중반이면 늘 등장하는 기업의 '투자-고용' 쇼 한국 대통령 임기 중반에 기업을 불러 '고용'과 '투자'를 주문하고, 기업들은 늘 '통큰 투자'와 '고용 확대'로 화답하곤 합니다.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왼쪽이 현 정부에 대한 기업의 '화답'이고, 오른 쪽이 이명박 정부때의 반응입니다.
ⓒ 강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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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미국은 해외로 이전했던 제조업을 본국으로 다시 옮겨가고 있습니다. 오바마는 집권하자마자 '제조업 부활'을 정부의 핵심 목표로 삼았습니다. 지난해에는 10월 3일을 '전국 제조업의 날(National Manufacturing Day)'로 선포하기도 했지요. 실제로 그동안 상당 수 생산업체가 되돌아왔고, 다수의 신생 기업들은 아예 국내에 생산 공장을 건설합니다.

왜 갑자기 미국에 제조업 바람이 분 것일까요? 대통령이 '제조업 살리기'를 주문했기 때문일까요? 한국에서는 대통령이 '고용 많이 하라'고 지시하면, 기업들이 이리저리 숫자를 끼워 맞춰보려고 애쓰기도 하고, '휴가 장병에게 뭘 해 주라'고 하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라도 성의를 보이려고 하지만, 미국 대통령은 기업에 '뭘 해달라'고 부탁하는 경우가 드물고, 설사 그런다 해도 기업들이 말을 잘 듣지 않습니다.

기업은 자원봉사단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점은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업은 억지 춘향 할인 행사로 잃은 손실분을 가격 인상으로 만회하고, 눈치를 보며 채용한 인력들은 더 이상 눈치를 볼 필요가 되었을 때 가차 없이 해고합니다.

지금 한국 기업들은 정부의 압력과 '임금 삭감-쉬운 해고'의 유혹 앞에서 일제히 '고용을 늘리겠다'고 합창을 하고 있습니다. 재계는 향후 3년간 '136조 원'에 달하는 '통큰 투자'를 하겠다고 약속했지요. 하지만 이런 일은 정권 중반마다 어김없이 되풀이되어 온 일입니다.

이명박 대통령도 임기 절반이 지나자 초조해져서 기업에 '고용' 압력을 가하는 동시에 '신입사원 연봉 삭감'이란 당근을 내밀었습니다. 그러자 재계는 2010년 '한 해 87조 원'의 '사상최대' 투자를 약속했습니다. 현 정부에서 약속 받은 액수 '3년간 136조'의 두 배에 달하지만, 결국 추가 고용과 투자는 그저 시늉으로 끝이 났습니다.

이 사실은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기업에 '고용하라'고 압력을 넣는다고 일자리가 만들어지지 않으며, 법인세를 감면해 주고 (해고나 임금삭감을 통한) 인건비 절감 등의 무차별 혜택을 베푼다고 그들이 채용을 늘리지는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미국 기업들이 '제조업 르네상스'에 열정을 보이는 까닭은, 실제로 자신들에게 득이 되기 때문입니다.

'해외생산이 경쟁력' 주장은 허구

보스턴 컨설팅 그룹(BCG)은 2011년에 아주 흥미로운 보고서를 내놓습니다. <다시 '메이드 인 아메리카'로: 제조업이 미국으로 되돌아오는 이유>라는 제목의 보고서입니다.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제조업 해외 이전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다'입니다. 모든 기업이 '생산기지'로 생각하는 중국의 임금은 4년마다 두 배가 될 정도로 빠르게 오르고, 노동 생산성은 낮으며, 본사와 공장이 떨어져 있어서 품질관리가 어려울 뿐 아니라, 정치상황 등 예측하기 어려운 변화 속에 놓이기 쉽습니다.

이 문제는 국내생산으로 간단히 해결할 수 있습니다. 임금이 상대적으로 안정되어 있고, 노동 생산성이 높으며, 본사와 공장이 가까워 품질관리가 쉽고, 급변하는 정치적 변화를 염려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2013년 11월 <MIT 테크놀로지 리뷰> 역시 동일한 관점에서 '제조업의 회귀'를 다루고 있습니다. 중국생산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애플이 최신형 '맥 프로'를 미국에서 생산하기 시작한 것을 언급하며, 제조업에 근본적 변화가 일고 있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지난해에는 <애틀랜틱> 지가 '다시 메이드 인 아메리카'라는 특집기사를 실어, 제조업이 '국제화'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논평을 했습니다. 기사는 지난 7년 동안 미국에 6개의 생산기지를 건설한 GE 항공의 사례를 들며, "국내에서 생산하고, 해외에 판매하며, 어디서든 서비스한다"는 최고경영자의 말을 인용했습니다. 이 말은 제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줍니다. 오바마는 이런 변화를 잘 포착한 탓에, 집권 초기부터 이를 핵심정책으로 삼을 수 있었고, 금세기 들어 최고의 고용 창출을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

컴퓨터 바닥에 "미국에서 설계하고, 미국에서 조립했다"는 글귀가 씌여있습니다.
▲ 미국에서 생산중인 '맥 프로' 컴퓨터 바닥에 "미국에서 설계하고, 미국에서 조립했다"는 글귀가 씌여있습니다.
ⓒ 애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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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어떨까요? '아무 생각 없다'가 정답일 것 같습니다. 기업은 미래를 내다보지 못한 채 관성적으로 해외이전을 추진하고, 정부와 언론은 입 벌리고 지켜만 보고 있으며, 한 자릿수 조직률을 유지하고 있는 한국의 노조는 사라지는 일자리를 지켜낼 힘이 없습니다. 파업만이 유일한 저항 수단이지만, 정부는 경찰을 보내 강경진압하고, 기업은 해고, 손해배상, 가압류, 직장폐쇄 등을 이용해 이중, 삼중으로 보복합니다.

제조업 강국인 독일은 노조 조직률이 한국의 두 배에 달할 뿐 아니라, 노조가 경영진과 동등한 입장에서 경영 결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화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노조가 목숨을 걸고 싸울 필요도 없고, 사측이 멋대로 해외이전을 결정할 수도 없습니다. 이는 독일의 제조업이 오랫동안 경쟁력을 지켜온 비결이기도 합니다. 노조가 국가 경제를 망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지켜준 것이지요. 그 혜택은 노조원 뿐 아니라, 비노조원과 국가 전체에 돌아갑니다.

해외로 사라지는 일자리를 잡아야 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요? '제조업 르네상스'를 추진하는 데 있어 한국은 독일이나 미국과 비슷하거나, 심지어 더 유리한 위치에 있습니다. 한국의 제조업 생산성을 100으로 놓고 볼 때, 독일 92.3보다는 높고, 미국 137.6보다는 낮습니다. 하지만 한국에는 미국과 달리 상당한 생산 인프라가 남아 있고, 무엇보다 교육수준이 월등히 높습니다.

제조업에 웬 '교육수준' 이야기를 하느냐고 반문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오늘날의 제조업은 과거의 제조업이 아닙니다. 테슬라의 전기자동차나 구글의 무인 자동차처럼 높은 지식과 기술이 필요한 산업입니다. 따라서 매우 부가가치가 높아, 한두 푼의 '싼 가격'으로 승부하지 않습니다. 미래 제조업의 중심지는 저임금 저기술 국가가 아니라, 고임금 고기술 국가가 될 것입니다.

먼저 해외로 빠르게 사라지는 일자리부터 지켜야 합니다. 제조업은 서비스업과 달리 시설투자비용이 높기 때문에, 한 번 떠나고 나면 되돌리기 쉽지 않습니다. 정부가 할 일은 재벌 총수를 불러 '고용 많이 하라'고 당부하는 게 아니라, 국내에 생산설비를 건설하고 운영하는 기업에 경제적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앞에서도 말씀 드렸듯, 기업은 봉사단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현재 무차별적으로 주어지는 법인세 감면혜택을 차등화해, 국내 생산에 주력하는 업체들에 더 높은 세제 혜택을 주어야 합니다. 해외 생산분을 국내로 되돌릴 경우, 시설 건설비용의 일부를 보조하는 등의 추가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제조업에 대한 낡은 인식을 버리는 것입니다.

'서비스업 미신'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딱하게도, 아직까지 한국의 정치인, 언론인, 심지어 학자들까지 나서서 '제조업 탈피-서비스업 육성'이라는 철이 지난 주문을 외곤 합니다. 사람들의 흔한 오해와 달리, 서비스 산업은 한국이 가야 할 길이 아닙니다. 특히 현 정부가 '전략산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의료산업은 가장 피해야 할 분야입니다.

여기서 소위 '전문가'들은 '유발계수'의 우위를 언급하며 서비스업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같은 돈을 제조업에 투자하는 것보다 서비스업에 투자하면 더 많은 사람들 고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10억 원의 평균 취업유발계수는 제조업이 2.1명, 건설업이 8.8 명, 그리고 서비스업이 11.7 명입니다. 하지만 이 계산에는 커다란 함정이 숨어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자세히 말씀 드리겠습니다. 다음에 뵐 때까지 안녕히 계십시오.

강인규 드립니다.

○ 편집ㅣ최유진 기자



태그:#제조업, #서비스업, #일자리, #오바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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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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