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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월 27일 열린 영국 노동당 전당대회에서 제레미 코빈이 생각에 잠겨 있다.
 지난 9월 27일 열린 영국 노동당 전당대회에서 제레미 코빈이 생각에 잠겨 있다.
ⓒ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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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난 1990년 영국으로 유학 와 학부에서 대학원까지 역사학을 공부했다. 학부과정에서는 영국정치학을 부전공했다. 그리고 지난 25년간 영국 뉴스를 하루 평균 1시간 정도 봤다. 그런데도 지난 6월까지 '제레미 코빈'이 누구인지 전혀 몰랐다. 지난 9월 12일 영국 노동당 당수가 된 그 제레미 코빈(67) 말이다.

유튜브에서 제레미 코빈 동영상을 찾아보았다. 내가 영국에 온 지 한 달 후인 1990년 5월에 코빈이 한 하원 연설 영상이 나왔다. 영상 속 그는 마가렛 대처 수상의 주택 정책을 비판하고 있었다(https://www.youtube.com/watch?v=UhEPyjolGQQ). 덥수룩한 머리카락과 수염, 베이지색 바지에 갈색 저고리. 맙소사, 그는 넥타이도 안 매고 있었다. 그야말로 '눈에 띄는 옷'을 입은 괴짜 국회의원이었다(영국의 남성 국회의원들은 남색 같은 무거운 색 정장을 입는다).

노동당 당수 제레미 코빈... 아무도 예측 못한 결말

제레미 코빈이 국회의원이 된 것은 지난 1983년. 올해로 정치 입문 32년이 됐지만 보수당은 물론 자신이 몸담은 노동당에서도 '괴짜', '아웃사이더', '찬밥' 대우를 받았다. 언론도 주목하지 않은 비주류 정치인이었다.

그런 코빈이 노동당 당수 경선에 나서게 된 것은 한 편의 희극이었다. 지난 6월 노동당 당수 경선 당시 중도파는 3명이나 응모했지만 좌파 중에서는 신청자가 없었다. 그래서 좌파 진영은 후보라도 내서 구색을 갖추자며 아웃사이더 코빈에게 '압력'을 넣었다.

주변의 성화에 못 이긴 코빈은 마지못해 후보로 나섰다. 의원들은 '동정 차원'에서 후보 등록에 이름을 대줬고, 흥미진진한 경선에는 '들러리'가 필요하다며 '코빈 지지'를 밝히기도 했다(후보 등록에 이름을 대준 노동당 원로 정치인 마가렛 베킷은 "자신이 저지른 가장 큰 정치적 실수"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변이 일어났다. 코빈이 59.5%의 압도적 지지를 얻어 노동당 당수가 된 것이다. 석 달 전에는 그 누구도 이런 결말을 예측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지난 6월부터 9월까지 급변했던 노동당 당수 경선 과정은 '영국의 여름혁명'이라 명명됐다.

이를 '코빈 지진'이라 이름 붙인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9월 25일자 "코빈 지진–뿌리째 흔들린 노동당"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2015년 여름은 영국정치사에서 115년 노동당이 불과 3개월 만에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급격한 변화를 겪은 해로 기억될 것"이라고 평했다.

아들 사립학교 보낸다는 부인과 이혼... '노동당 당수'답네

 지난 9월 12일 영국 노동당 당수 경선에서 승리한 직후 취재진에 둘러싸인 제레미 코빈.
 지난 9월 12일 영국 노동당 당수 경선에서 승리한 직후 취재진에 둘러싸인 제레미 코빈.
ⓒ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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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선적인 성격의 제레미 코빈은 가식이나 불필요한 형식을 싫어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코빈은 북아일랜드에 대한 영국의 '폭정'도 거침없이 비판하며 IRA 독립운동을 옹호했다. 과거 넬슨 만델라 남아공 전 대통령이 감옥에 있을 때도 코빈은 공개적으로 지지하며 그의 석방을 촉구했다.

토니 블레어 수상 시절엔 이라크 침공을 반대했고, 중동의 헤즈볼라와 하마스와도 전쟁보다는 '친구'처럼 대하며 대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은 보수당은 물론 노동당 주류로부터도 냉소를 받았다. 하지만 지난 32년간 그가 지켜온 정치 원칙과 순수성(integrity)에 대해선 여야를 막론하고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사생활도 마찬가지다. 코빈은 칠레의 정치 망명자이던 부인이 아들을 사립학교에 보내려 하자 일반공립학교에 보낼 것을 주장했다. 결국 이 문제로 갈등이 불거져 이혼까지 했다. 토니 블레어가 수상 시절 자신의 자녀를 공립학교가 아닌 사립학교에 보내 비판 받은 것과는 대조적이다.

검소하고 건실한 사생활로도 정평이 나있다. 코빈은 술을 거의 안 마시고 자동차도 없다. 국회 출퇴근 때는 자전거를 탄다. 노동당 당수용 관용 차량도 거부하다가 경호 등을 이유로 한 보좌관들의 끈질긴 '압력'에 못 이겨 지금은 마지못해 쓰고 있다.

코빈, 여왕 앞에서 무릎 굽힐 것인가?

9월 24일자 <가디언>은 군주제를 반대하는 공화주의자임을 천명한 코빈이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을 만날 때 무릎을 굽히는 의전을 행할지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며 집중보도했다.

코빈의 '여왕 의전'이 뉴스거리가 된 이유는 그의 '전적' 때문이다. 9월 15일 열린 영국 본토 항공전 75주년 기념식에서 코빈이 영국 국가인 '신이여, 여왕을 지켜주소서'를 부르지 않자 영국은 발칵 뒤집혔다. '코빈이 영국 국가를 모르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코빈의 이같은 '기행'은 한국에서도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군주제 국가인 영국에서는 정치인들이 여왕을 만날 때 무릎을 굽히는 게 일종의 의전이다. 2차 세계대전의 '영웅' 윈스턴 처칠이나 '철의 여인' 마가렛 대처도 마찬가지였다. 여왕에 대한 대중적 지지가 높은 분위기에서 공화주의자 코빈의 '무릎'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이렇게 꼬장꼬장한 코빈이 처음 손을 댄 부분은 악명 높은 '영국 철도'였다. 9월 20일자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노동당 당수로 취임한 후 코빈의 첫 공식 정책으로 "철도 재국유화"를 선포했다고 보도했다. <인디펜던트>에 따르면, 코빈은 "노동당이 집권당이 되면 민영화된 영국 철도의 3분의 1을 2025년까지 국유화하겠다"고 밝혔다.

영국 철도는 비싼 요금으로 악명 높다. 민영 철도 요금은 2004년부터 일반 물가요금보다 더 높은 비율로 상승했고 2010년과 비교해도 35% 상승했다고 <인디펜던트>는 보도했다. 일례로 기자가 사는 곳에서 런던까지는 기차로 1시간 정도 걸리는데 출퇴근시간 왕복요금은 한화 10만 원을 넘어선다.

이에 보수당은 "영국 경제에 위협이 될 계획"이라고 평했지만 철도는 많은 영국인들이 공감하는 문제다. 2년 전 실시한 대국민여론조사 결과에 의하면, 응답자 중 3분의 2(66%)가 '철도가 다시 국유화되기를 원한다'고 응답했다. 여당 지지자 중 52%도 이에 동의했다.  

이외에도 코빈은 전기, 가스, 정유 등 국가에너지자원도 차차 국유화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당 내에선 우려, 당 밖에서는 환영

 제레미 코빈의 롱런 가능성을 진단한 <파이낸셜 타임스>의 기사.
 제레미 코빈의 롱런 가능성을 진단한 <파이낸셜 타임스>의 기사.
ⓒ 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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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국유화 같은 좌파적 정책이 현실화되려면 집권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굴욕적이게도 코빈은 당장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조차 미지수다. 지난 9월 25일 <파이낸셜 타임스>(아래 <FT>)는 "제레미 코빈,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라는 장문의 분석 기사를 실었다.

<FT>는 노동당 당원들 사이에서도 "코빈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회자된다고 전했다. 토니 블레어 전 수상도 "코빈이 노동당을 벼랑 끝으로 몰아갈 것"이라고 경고했고 전 노동당 정책의장도 "(코빈의 당선으로) 노동당이 1980년대 트로츠키 스타일로 후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설상가상으로 노동당 중진의원 다수는 '함께 일하자'는 코빈의 제안을 거부한 상태다. 전직 노동당 의원은 "만약 코빈이 당수로 눌러 앉으면 무시무시한 참사가 올 것"이라며 "코빈을 빨리 당수 자리에서 축출시킬수록 노동당의 피해가 최소화 될 것"이라고 '반란'을 부추기기도 했다.

이토록 당내에서 불신을 받고 있는 코빈이 어떻게 노동당 당수 자리에 올랐을까. <FT>는 "코빈을 지지한 평당원은 60%인 반면 노동당 의원들의 지지 비율은 10%에도 못 미친다"고 보도했다. 당원들의 압도적 지지가 그를 당수로 만든 것이다. 코빈이 당수 후보가 된 이후에 많은 시민, 특히 젊은 층이 노동당 당원으로 가입했다는 점도 눈에 띈다. 반대자들마저도 코빈이 노동당에 열풍을 몰고 온 것은 인정한다고 <FT>는 전했다.

<FT>와의 인터뷰에서 코빈은 "시민들은 더욱 평등한 사회를 원합니다. 우리사회의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은 더 나아져야 하고 부자들은 좀 더 세금을 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기존 정치인들이 직답을 피해가거나 모호하게 답변하던 것과는 달리 코빈은 직답을 서슴지 않는다. 기존 정치를 경멸하던 유권자들이 코빈에게 열광하는 이유다. 코빈 지지자들은 가두시위, 거리캠페인, 일반대중을 상대로 한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통한 활동에도 적극적이다.

물론 코빈에 대한 악평만 있는 건 아니다. 전 런던 시장 캔 리빙스턴은 <FT>와의 인터뷰에서 "코빈의 정치 스타일이 날카로운 불화를 일으키는 것은 사실이지만, 개인적 차원에서 그는 적이 별로 없습니다. 나는 평생 코빈이 화를 내거나 다른 사람들을 무례하게 대하는 것을 한 번도 본적이 없습니다. 코빈은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느긋한 성격의 사람입니다"라고 말했다. 보수당의 국회의원 데이빗 데이비스도 "(정당은 나와 다르지만) 코빈은 좋은 친구이자 동료입니다. 유머 감각도 있고 자신을 많이 낮추는 겸손한 친구죠"라고 밝혔다. 

67세 '괴팍남', 영국 정치 바꿀까

코빈을 좋아한다는 중년 남성 피터 디바인씨는 "정치인으로서는 극히 드문 코빈의 순수함, 일관성, 그리고 사회정의를 향한 열정에 대해서는 전혀 의심의 여지가 없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 32년간 철저하게 '아웃사이더'였던 코빈이 과연 제 1야당인 노동당의 막대한 조직을 이끌고 관리할 능력이 있는지는 아직 확신이 안 선다"라고 고백했다.  

제레미 코빈이 5년 후인 2020년 총선에서 승리해 수상이 될 가능성이 지금으로서는 높지 않다. 아니 대다수 정치평론가들과 여론조사 결과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전망한다.

"빈곤은 불가피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더욱 평등하고 정의로운 세상, 약자가 보호받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

그럼에도 코빈의 말과 일관된 삶의 모습은 많은 영국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고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

○ 편집ㅣ박순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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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영국통신원,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함석헌평전],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저자. 퀘이커교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국민권익위윈회 청렴포럼위원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