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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타이어 해고노동자 정승기씨 부인인 민선희씨가 재판부에 보낸 탄원 글
 한국타이어 해고노동자 정승기씨 부인인 민선희씨가 재판부에 보낸 탄원 글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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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한 마음으로 글을 올리니 부디 끝까지 읽어주시길 청합니다."

한국타이어 대전공장에서 일하다 해고된 정승기(53)씨의 부인인 민선희(47)씨가 재판부에 보낸 탄원 글은 이렇게 시작된다. 애초 이 글은 2심 재판부에 제출하기 위해 지난 6월 작성됐다. 하지만 '설마 패소하겠냐'라며 만류하는 남편의 말에 제출을 미뤘다. 그러다 패소판결을 받고 최근 대법원에 제출했다.

그는 탄원서에서 "(1993년) 직업훈련 때 우수상을 받을 만큼 충실히 회사업무를 시작했다"며 "마라톤대회에 참가할 때면 한국타이어 로고와 문구가 쓰인 인쇄물을 가슴에 달 만큼 애사심이 높았다"고 밝혔다. 그러던 그가 "회사 운영에 문제를 제기하고 회사 회장에게 부당한 일들을 해결해 달라는 부탁의 글을 처음으로 보냈다"고 밝혔다. 2000년 중반의 일이다.

회사 회장에게 쓴 편지 글 "'묻지마 관광' 시정해 달라"

"회사에서 일하던 도중 평소 친하게 지내던 동료노동자가 기계에 끼여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당시 남편은 근조 리본을 몇 장 구해 동료들과 나눠 달았는데 관리자가 달지 못하게 했다고 합니다. 관리자의 요구를 남편은 부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팀장과 면담했지만, 오히려 남편에게 잘못을 떠넘기며 바로 잡으려 하지 않자 회장님께 글을 보냈습니다."

여기에는 '묻지 마 관광'에 대한 내용도 포함됐다.

"체육 행사하는 날, 체육행사를 대신해 단체로 묻지 마 관광을 갔다 왔고, 그 후 주임은 관광을 간 사람에게만 특근을 달아주고, 가지 않은 남편에게는 특근처리를 해주지 않았습니다. 주임이 직위를 이용, 특근처리 여부를 마음대로 정한 것입니다. 회사는 이런 문제를 바로잡아주지 않고 오히려 팀장은 남편에게 잘못을 추궁하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정씨가 제기한 이 일은 아무 해결책도 없이 묻혀 버리고 말았다. 민씨는 "묻지 마 관광에 대해 사측이 건전한 직장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노력했더라면, 동료의 죽음을 잠시나마 애도할 수 있도록 배려했더라면 남편은 지금도 열심히 일하는 사원으로 있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동료  죽음 애도할 수 있게 배려했더라면..."

한국타이어 대전공장에서 지난 2013년 8월 2차 해고된 정승기씨 . 사진은  지난 8일 모습이다.
 한국타이어 대전공장에서 지난 2013년 8월 2차 해고된 정승기씨 . 사진은 지난 8일 모습이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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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남편은 사원들의 죽음에 관심을 두게 되었고, 특히 20대 건장한 청년인 고 조OO 사원과 고 최OO 사원의 연이은 사망사건을 지켜보았습니다. 더 이상 죽음의 행렬을 막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유족들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유족대책위가 만들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는 "당시 회사는 집에서 돌연사한 유족에게도 회사 밖에서 죽으면 회사 책임이 아니라고 단언했듯이 사원들은 회사에서 일하다가 병을 얻거나 사망을 하더라도 회사에 책임을 물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고 밝혔다.

"남편이 회사로부터 정직 3개월을 당해 태어나 처음으로 회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했습니다. 그때 회사 측 팀장이 나와 1인 시위를 하면 남편이 해고당할 수 있다고 엄포를 놓았습니다. 1차 해고 때는 서울 본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하자 경찰을 부르고 법원에 가처분소송까지 냈습니다. 최소한의 항의표시인 1인 시위마저도 막으려고 모든 방법을 동원해 안간힘을 썼습니다."

정직 당하자 노조에서도 '제명처분'

민씨는 노동조합이 남편에게 했던 일도 담담히 썼다.

"노동조합은 남편을 지켜주기보다는 배척대상으로 생각하여 두 차례나 조합에서 제명했습니다."

그는 가장 충격적인 일로 사내에서 동료가 남편을 살해하겠다고 위협한 사건을 꼽았다.

"회사가 살해위협을 가한 사원과 남편을 바로 격리조치 시키지 않고 같이 일을 하도록 내버려둔 후 재판이 끝난 뒤에서야 다른 곳으로 전보시킨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남편의 멱을 따버리겠다고 협박한 관리자를 사실상 승진시킨 일, 남편이 전환배치를 당해서 대전공장에서 마지막으로 나오던 날 관리자들에게 온갖 폭언을 들은 일 등은 제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비상식적이고 비도덕적인 일들이었습니다."

남편 정씨는 유가족대책위 활동을 적극적으로 돕는다. 유족들이 피켓을 만들고, 선전물을 배포하고, 현수막을 걸고, 서울 본사 등 유족들과 함께 시위현장에 늘 참여했다.

"사측은 유족시위를 도왔다는 이유로 업무방해 가처분 소송을 했습니다. 유족들의 피나는 노력이 없었다면 유족들은 산재인정을 받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회사는 500여 억 원을 들여 작업환경개선을 했다지만 남편이 해고된 뒤에도 사원들이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남편 생일에 책을 선물했던 김OO 팀장마저 집에서 돌연사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끝내 정씨는 명예훼손 등의 이유로 지난 2010년 3월 해고됐다. 그는 "회사의 억압적 조직문화와 열악한 작업환경을 고발한 데 대한 보복 징계"라고 항의했다.

정씨는 대법원의 판결로 지난 2013년 7월 복직했지만 2개월 만에 다시 해고됐다. 복직 이후 사원을 선동할 목적으로 허위사실을 게시하거나 배포해 회사 경영에 손해를 끼쳤다는 것을 포함, 해고 이유는 7가지였다(관련 기사 : "단식 22일째, 복직될 때까지 계속 농성").

"남편이 바란 것은 다치거나 죽지 않는 건강한 일터"

한국타이어 해고노동자 정승기씨 부인인 민선희씨가 재판부에 보낸 탄원 글
 한국타이어 해고노동자 정승기씨 부인인 민선희씨가 재판부에 보낸 탄원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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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타이어 해고노동자 정승기씨 부인인 민선희씨가 재판부에 보낸 탄원 글
 한국타이어 해고노동자 정승기씨 부인인 민선희씨가 재판부에 보낸 탄원 글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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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씨의 두 번째 해고 사유에는 개인 홈페이지를 통해 회사를 비방한 일도 들어 있다. 이에 대해 그의 부인은 탄원서를 통해 "홈페이지를 통해 부당함을 호소하기 시작했다"며 "하지만 실명을 거론하며 비난하는 글이 발견되면 삭제하는 등 건전한 소통의 장이 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밝혔다.

"노조는 산재로 사망한 사원을 개인 질병으로 발표해 진실을 감추려 했습니다. 유족들에게 위로의 말 한마디 건넨 적도 없습니다. 노조가 방패막이가 되어주질 못하는 현실에서 사람들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은 홈페이지에 글을 쓰는 것이 전부였을 겁니다. 남편이 개인홈페이지를 만들지 않았다면 남편이 겪은 여러 가지 일들과 여러 사망사건 소식도 알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남편 정씨는 초등학교 3학년을 끝으로 학교에 다니지 못했다. 가난 때문이었다.

민씨는 "남편은 성인이 되어서야 독학으로 검정고시를 치러서 중학교 과정을 마친 것이 배움의 전부"라며 "가장 가진 것 없고 가장 배운 것도 없는 사람이 거대기업을 상대로 싸우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거듭 남편이 한 일은 상식을 통하는 직장이었다고 말했다.

"남편이 바란 것은 직장 내에서 사원들이 병들거나 다치지 않고 죽지 않는 건강한 일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뿐었습니다. 그리고 남편에게 생긴 비상식적인 일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다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31일째 단식 농성


한국타이어 대전공장에서 일하다 해고된 정승기씨가 31일 원직복직을 요구하며 삭발단식 농성을 시작했다.
 한국타이어 대전공장에서 일하다 해고된 정승기씨가 31일 원직복직을 요구하며 삭발단식 농성을 시작했다.
ⓒ 이대식 민주노총대전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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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씨는 "남편은 예나 지금이나 애사심이 높다"며 "전에는 회사 뜻을 잘 따르는 애사심이었고, 지금은 사원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부조리에 대해 좋은 방향으로 고쳐 나가려는 애사심"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바람을 남편의 입장을 전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남편이 바라는 것은 다시 일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뿐입니다. 부디 남편에게 한국타이어 사원으로 다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글을 올립니다."

정씨는 원직복직을 요구하며 30일 현재 31일째 목숨을 건 단식 농성을 벌이고 있다.


태그:#정승기 , #한국타이어, #해고 노동자, #단식농성, #복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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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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