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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특집극이었던 것 같다. 어머니의 돈을 둘러싼 자녀들의 갈등을 그린 드라마였는데,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했다. 세파에 시달리며 세상살이에 힘겨워진 자녀들은 어머니의 돈에 희망을 건다. 어머니의 쌈짓돈을 차지하기 위해 효도 경쟁을 벌이다 어머니에게 돈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때부터 초점은 어머니의 돈을 누가 가져갔나에 모인다.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며 갈등을 키우다가 뜻밖에 어머니의 돈을 가져간 사람은 특정인이 아니라 자신들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필요할 때마다 손을 벌렸고, 그때마다 어머니는 묵묵히 자녀들에게 돈을 주었는데, 막상 자녀들은 어머니가 남몰래 목돈을 썼다고 의심하고 원망했다. 자신들의 입장에서는 단지 몇 번의 요구였지만, 어머니의 입장에서는 자녀의 수만큼 그 요청이 갑절로 늘어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으니 돈이 남을 이유가 만무했다.

올해 들어 보건실의 상황을 돌아보면 빈 통장을 쥔 어머니와 같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빛나는 정책은 많은데... 실효성은 의문

담뱃값이 인상되면서 학생들의 흡연 예방 및 금연을 위하여 막대한 예산이 편성되었고, 관련 사업이 계획되었는데, 단위 학교에서는 보건 교사에게 사업이 배정되었다.

한편 학생들 사이에서 결핵이 늘고 있어 더는 두고 볼 수 없다며 잠복 결핵 사업을 강화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 발표되었다. 즉 결핵이 활성화되기 전에 잠복 결핵이 있는 학생에게 약을 먹여 결핵으로의 이행을 방지하겠다는 거다. 감염병 예방 사업이니 보건교사가 적격이므로 보건교사가 담당자가 되었다.

또 서울의 공립고 교내 성추행 파문 이후 학교의 성문화를 건강하게 강화하겠다는 발표가 이어졌다. 보건교사가 성교육에 전문성이 있으니, 성희롱, 성폭행 등을 근절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며, 보건교사를 학교 성 문화 개선의 선도 주자로 내세운다.

더불어 정서적 문제가 있는 학생들을 상담하고 관리하기 위해서는 정서·행동특성검사가 필요한데, 상담교사가 있더라도 보건교사가 정신건강에 대해 전문성이 있다며, 대부분 학교에서 대상 학생 전체에 대한 1차 검사를 보건교사가 시행하도록 하고 있다.

막대한 재정과 인력이 필요한 주요 사업들이 관련 부처, 부서에서 쏟아져 나오는데, 서로 소통도 없이 현장을 점검하지 않은 채 학교로 시달하다 보니 학교는 과부하가 걸린다. 학교 내에 학생들의 건강증진을 전담하는 부서가 없으니, 보건교사 1인에게  떠넘겨지고 있다. 보건교사는 무엇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무능 교사가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사업이 없는데, 전교생이 거의 1000여 명에 육박하는 30학급 이상의 학교에서는 보건교사 혼자서 학생 건강 처치와 보건교육 등 기본 업무도 제대로 못 할 상황에 이르다 보니, 학교마다 아우성이다. 더 큰 문제는 보건교사가 아예 배치되지 않은 농어촌 소규모 학교다.

얼마 전 기회가 닿아 소규모 학교 학생들의 건강증진을 후원하는 어느 회사의 담당자와 면담할 기회가 있었다. 그분은 울분을 토하시며 쉽사리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셨다. 본인은 서울에 사는 학부모라 농어촌의 현실을 몰랐는데, 막상 가서 보니 병·의원도 없는 곳에 보건교사가 없는 곳이 많고, 더구나 배치된 보건교사도 기간제 교사가 많아 연차적인 사업 후원이 어렵다는 거다.

조손 가정이 많아 아이들의 식습관이 엉망이 되어 즉석 섭취율도 높고 비만도 높은 상황을 보고 너무 놀라셨다는 거다. 도대체 우리나라에 학생들의 건강증진을 위한 정책은 있는 것이냐며 언성을 높이시기도 했다.

빛나는 정책과 대책은 쏟아져 나오지만, 인프라가 안 되니 학교에서는 서류 속에서만 진행되는 사업이 그만큼 더 늘어나고, 아이들의 건강증진 문제는 늘 요원하다. 국정감사 때마다 아이들의 건강문제, 보건교사 배치율은 회자하지만, 빛 좋은 개살구처럼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올해는 과연 진일보할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부천자치신문>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보건교사, #학교보건, #건강증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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