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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8호 석굴의 불상은 거대한 와불인 입적불이다.
 148호 석굴의 불상은 거대한 와불인 입적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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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6호 석굴의 미륵대불
 136호 석굴의 미륵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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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9일 오후 2시 32분]

학창 시절 돈황 석굴에 대하여 배운 기억이 되살아나 늘 찾고 싶은 곳이다. 서역으로 가는 사막 가운데 세계최대 석굴이 과연 어떻게 생겼을까? 오아시스는 있는 것일까? 석굴의 크기는 얼마나 되며, 몇 개나 되는 석굴이 있을까? 석굴에 있는 불상이며 불화들은 어떠할까? 드디어 돈황 석굴로 가고 있다.

가욕관에서 돈황시로 가는 길은 사막을 뚫고 간다. 멀리 민둥산들이 보이지만 길옆에 펼쳐진 사막엔 농가의 모습도 보이지 않고 크고 작은 돌과 모래만 가득하다. 간간이 군데군데 자라고 있는 잡풀이나 잡목들이 눈에 띄기는 하지만 수분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땅에 거의 붙어서 자라고 있다.

어쩌다가 나무들이 보이고, 집이 보이고, 밭에 옥수수들이 보이는 곳이 눈에 띈다. 오아시스다. 역시 오아시스는 메말라버린 눈을 편하게 해 준다. 그러나 오아시스를 금방 지나가 버리면 또 끝없이 펼쳐진 사막이 눈앞에 있다. 고속도로를 양 옆으로 무질서하게 뻗어있는 전봇대와 전선들이 더 어지럽다. 풍력발전소의 풍차들은 몇 십 킬로미터씩 끝없이 늘어서 있고, 겹겹이 돌아가는 풍차들에서 생산된 전기를 보내는 전선이다.

'안서'라는 명칭에서 2006년 '과주(瓜州)' 명칭으로 바뀐 과주는 인구 10만 명 정도 사는 서역의 시작점이라고 한다. 안서라는 말은 '저승에서 편안하게 쉬세요'라는 뜻이 담겨 있어서, 과주로 바꾸었는데, 이곳엔 수박이 많이 생산되는 지역이어서 '瓜'는 '오이과 자' 또는 '박과 자'로 바꾸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생산된 수박을 중국 각지로 보내진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보는 푸른 수박도 있지만 이곳의 수박은 황금색 수박인 하미과가 특산이다. 겉과 속이 황금색으로 되어 있고 당도가 높다. 또 이 하미과를 잘라 말리면 밤맛이 나서 인기가 좋다고 한다. 

이 과주 지역은 고비사막과 타클라마칸 사막의 시작점인데, 과주 옆에 있는 돈황은 서역의 관문이다. 상인들이 낙타에 비단을 싣고 서역으로 가는 시작점이기 때문에 두려움이 앞서는 곳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서역으로 가는 길은 타클라마칸 사막을 중심으로 옥문관을 거처 우루무치로 가는 북로와 양관을 거쳐 가는 남로로 나뉘는데, 화전에서 질 좋은 옥이 생산되어 옥문관에서 거래되었다고 한다. 사막 중심을 가로질러 가기는 너무 힘들기 때문에 오아시스가 듬성듬성 있는 가장자리를 돌아가는 길이라고 한다. 

서역의 관문 '돈황'... 두려움이 앞서는 곳

 돈황시의 모습과 막고굴의 벽화에 있는 비파를 등 뒤로 돌려서 타는 여인상
 돈황시의 모습과 막고굴의 벽화에 있는 비파를 등 뒤로 돌려서 타는 여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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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고굴 안내소, 이곳에서 3D 영상 두 편을 각각 20분씩 관람하고 막고굴로 간다.
 막고굴 안내소, 이곳에서 3D 영상 두 편을 각각 20분씩 관람하고 막고굴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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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 가운데 오아시스에 형성된 돈황시는 인구 7만 명 정도의 관광도시다. 돈황시에 있는 세계최대 석굴인 막고굴을 보기 위하여 사람들이 찾아 들어 관광이 활성화 된 도시다. 우리가 흔히 돈황 석굴이라고 알고 있는데, 그 이름이 돈황 막고굴이다.

돈황시는 원래 서역 무역의 집산지로 형성된 도시라고 한다. 인도를 오고 가는 상인들, 불교를 배우러 인도로 가거나 중국에 불교를 전하러 가는 승려들이 머물렀던 곳이다.

우리는 오전 8시경 돈황시에 있는 막고굴 안내소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3D 영화 2편을 20분씩 관람을 하는데, 첫 번째 상연관에는 막고굴의 조성 과정을 재현한 영화가 상연한다. 막고굴을 처음 조성했다는 낙준의 모습부터 힘겨운 사막 여행에 달려드는 도둑떼들의 모습, 그리고 굴을 파는 사람들의 모습들이 인상적이다.

두 번째 상영관은 거대한 돔형 지붕을 스크린으로 하는 영화관이다. 우리나라 대전에 있는 엑스포 공원에서 보았던 우주의 모습을 상영하는 극장과 흡사하다. 이 영상은 몇 개의 석굴을 입체적으로 찍어 각 부분을 설명한다. 외국인들에게는 이어폰이 제공되는데 한국말의 설명이 나와 석굴들의 내용을 조금 이해할 수 있다.

석굴인 막고굴의 시작은 366년 낙준이란 스님이 명사산 기슭에서 졸다가 꿈에 물소리가 나서 잠을 깨어 보니 맞은 편 삼위산에서 황금 불빛 속에 부처님의 모습이 보이고, 꿈에 보았던 물소리가 들려, 그곳으로 가보니 절벽이 나타났다고 한다. 그래서 그곳에 석굴을 파고 수행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명사산인 모래산 절벽에 파인 석굴들
 명사산인 모래산 절벽에 파인 석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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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호 석굴의 모습
 16호 석굴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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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절벽에 1000여 년 동안 735개 가량의 석굴을 조성했는데, 이중 492개의 석굴에 불상 혹은 불상 주위 벽에 섬세하게 그려진 불교 그림들이 가득하다. 큰 석굴은 우리나라 어느 사찰의 대웅전 안 크기와 같은 곳도 있다. 엄청나게 큰 대불도 있고, 엄청나게 큰 와불도 있다. 역시 세계 최고의 유적이다. 

서역의 시작인 이곳에 이렇게 많은 석굴이 조성된 이유는 사막의 찌는 듯한 더위와 물 그리고 나타나는 도둑떼들의 습격으로 많은 상인들이나 승려들이 죽어서 돌아오지 못하기도 하였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무사귀환과 실크로드 여정의 공포를 신앙으로 이겨낼 대상을 찾게 되었고, 이곳에 석굴을 파고 공덕을 쌓았다고 한다.

4세기에서 14세기까지가 중국 불교 전래가 융성한 시대다. 황실은 물론이고 백성들 대부분이 불교를 믿었기 때문에 석굴을 파는 것을 대단히 중요한 일로 여겼다고 한다. 특히 석굴을 헌납하는 일은 신앙적으로 가장 큰 영광으로 여겨 석굴을 파서 불상을 모시고, 벽화를 그려 공덕을 쌓았다고 한다. 당나라 때 최고조에 이르렀지만 14세기 이후 실크로드가 쇠퇴기로 접어들자 막고굴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막고굴의 발견은 1900년 경 '양원록'이라는 사람이 16호 석굴을 청소하다가 심부름 하던 사람이 담배를 피웠는데, 그 연기가 옆 벽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을 보고 그곳을 파보니 17호 굴이 나왔다고 한다. 이 17호 석굴에서 많은 유물들이 나왔는데, 양원록이 이후 서양인들에게 5만여 점이 넘는 책과 유물을 헐값으로 팔았다고 한다.

중국 문화혁명 당시 이 석굴이 파괴될 위기에 처했는데 주은래의 친필로 파괴를 포기하였다고 한다. 신라의 혜초 스님의 '왕오천축국전'도 이곳에서 나왔다고 하는데 역시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있다고 한다.

막고굴은 관람객들이 넘쳐나면서 유물 관리에 문제가 발생하자 최근에 하루 관람 인원을 6000명으로 제한하였다고 한다. 특히 외국인들은 인터넷으로 15일 전에 예약하기 때문에 현지인들이 입장권을 구입하지 못하자 외국인으로 속여 입장권을 구입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요즈음은 입장하는 외국인들은 여권을 제시하여야만 입장권을 구입할 수 있게 되었고, 6000명으로 제한하자 암표까지 성행한다고 한다.

 전시실에 게시된 신라 승려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의 일부
 전시실에 게시된 신라 승려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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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굴의 모습들, 보호대를 설치하고 열쇠로 잠금, 관람할 때는 가이드가 열어서 보여줌
 석굴의 모습들, 보호대를 설치하고 열쇠로 잠금, 관람할 때는 가이드가 열어서 보여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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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소에서 막고굴 영상 상영이 끝나자 2km 정도 그곳에서 제공하는 버스를 타고 사막을 가로질러 막고굴로 향한다. 오른쪽에는 모래로 가득한 명사산이 보인다. 거칠고 메마른 돌과 자갈로 이어진 사막 가운데, 황금빛 모래가 반짝이는 산등성이들이 밝게 보인다.

주차장에 도착해 다리를 건너자 모래산 아래 절벽에 벌집처럼 많은 굴들이 보인다. 한국말을 서툴게 쓰는 조선족 가이드가 우리를 맞이한다. 우리는 제공되는 이어폰을 끼고 발길을 옮기는데, 그 많은 석굴 중에서 대표적인 몇 개만 관람이 허용된다니 안타깝다.

우선 전시실에 들리자 막고굴이 발견된 유래가 된 양원록이란 사람과 홍변 스님에 관한 내용, 이곳의 유물들을 헐값에 가져간 서양인들의 사진과 유물들이 보인다. 특히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신라의 승려 혜초가 인도를 기행하고 쓴 왕오천축국전의 글 일부를 전시해 놓은 액자다. 원본인지는 알 수 없으나 우리나라 혜초 스님의 글이 있다는 것이 놀랍다.

절벽에 다가가 처음 찾은 석굴이 16호, 17호 석굴이다. 16호 석굴을 들어 가는 통로는 아치형으로 되어 있고, 석굴의 벽에 그려진 불교 그림이 선명하다. 안치된 불상도 생생한 모습이다. 16호 석굴로 들어가는 입구 오른 쪽에 또 하나의 석굴이 붙어 있는데 바로 17호 석굴 장경동이 있다. 이곳 17호 석굴의 주인은 홍변 스님이라고 한다. 홍변 스님을 그대로 만든 불상도 있다. 5만 점이 넘는 불경 자료들과 소수민족의 문헌, 사회관련 문헌들까지 많은 자료들이 보관되었다고 전해진다. 막고굴을 연구하는 중요한 자료라고 한다.

계단을 타고 428호 석굴 앞에 섰다. 석굴 자체의 규모부터가 대단하다. 석굴 안의 모습이 우리나라 어느 사찰 대웅전 내부만큼 넓다. 가운데 안치된 불상을 돌아 뒤에까지 갈 수 있게 되어 있고, 천장과 벽에는 수많은 불화들이 그려져 있다. 아마 사람들이 한 바퀴 돌면서 불경을 외웠을 것으로 생각된다.

벽에 그려진 불화도 대단하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부처님 전생의 설화를 그린 그림인데 고대 인도의 어린 왕자가 호랑이 새끼들이 굶주리는 것을 보고 절벽에서 투신하여 자신의 몸을 호랑이 새끼들에게 주었다는 내용이라고 한다. 

 428호 석굴벽화, 부처님께서 전생에 굶주리는 호랑이 새끼들을 위해 몸을 내어주었다는 내용을 그린 벽화
 428호 석굴벽화, 부처님께서 전생에 굶주리는 호랑이 새끼들을 위해 몸을 내어주었다는 내용을 그린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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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굴 벽화 중 수많은 인물들을 그린 벽화
 석굴 벽화 중 수많은 인물들을 그린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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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군데의 석굴을 둘러보고 찾은 136호 석굴은 미륵대불이다. 높이가 16m에 달하는 불상으로 겉은 현대에 지은 집으로 보호되고 있다. 집과 불상이 가까워 눈으로는 볼 수 있지만 사진으로 찍기에는 그 크기가 너무 커서 한계가 있다. 그리고 위쪽 조명과 아래쪽 조명도 서로 달라 눈으로 본 것만큼의 웅장한 모습을 찍을 수가 없다. 안타까운 마음이다.

막고굴에서 가장 인상적인 불상이 148호 석굴의 입적불이다. 보통 와불이라고 하는데 776년에 조성된 이 석굴의 불상을 부처님이 돌아가시기 직전의 모습으로 만든 불상이라고 한다. 총 길이가 14.7m에 이른다고 한다. 불상 주위에 많은 불상들이 앉아서 입적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서역기행의 바쁜 여정인데 갑자기 쉬고 싶다 느낌이 든다. 이 불상은 그만큼 편안함을 가져다준다. 

석굴들을 보고 나와서 우리들은 모두 아무 말 없이 백양나무 그늘 아래에 줄지어 앉았다. 그리고 생각하고 있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막고굴의 모습이 눈앞에 지나간다. 1500여 년 전 생생한 그들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그들이 만들고 있는 불상의 모습, 불교 그림을 그리고 있는 그들의 손놀림이 보이는 것 같다.

우리나라 경주의 석굴암도 눈앞을 스친다. 단 한 개의 석굴인 석굴암, 섬세한 손길을 자랑하는 석굴암의 모습, 그리고 중안에 앉은 불상의 인자한 미소, 그리고 또 700여 개의 석굴인 막고굴, 모두 소중한 우리 인류의 문화유산이다.

 428호 거대석굴, 이 굴은 뒤 쪽으로 한 바퀴 돌아 나올 수 있을 정도로 크다.
 428호 거대석굴, 이 굴은 뒤 쪽으로 한 바퀴 돌아 나올 수 있을 정도로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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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불과 석굴을 보호하는 건축물
 대불과 석굴을 보호하는 건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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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7. 29(수)부터 8.6(목)까지 9일 동안 풀꽃산악회 회원 20명은 혜초여행사의 기획으로 신서역길의 중국 지역을 다녀왔습니다. 신서역기행은 서안에서 천수까지 320km를 버스로 약 5시간, 천수에서 난주까지 330km를 버스로 약 5시간, 난주에서 가욕관까지 740km를 기차로 약 8시간, 가욕관에서 돈황까지 400km를 버스로 약 5시간, 돈황에서 유원가지 120km를 버스로 2시간, 유원에서 선선까지 620km를 기차로 약 9시간, 선선에서 투루판까지 약 150km를 버스로 약 3시간, 투루판에서 우루무치까지 190km를 버스로 약 3시간이 걸리는 총 2800km의 대장정입니다.
‘버스와 기차로 간 서역기행’은 총 10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1) 사막을 가로지르는 신서역기행, (2) 서안(西安), 당나라의 흔적, (3) 진시황과 병마용, (4) 화청지, 양귀비에 대한 인식, (5) 천수, 맥적굴, (6) 난주, 황하와 유가협댐, (7) 가욕관, 만리장성의 시작, (8) 돈황 석굴 막고굴, (9) 투루판, 사막에 사는 사람들, (10) 사라진 왕국 고창고성과 교하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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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좋아하여 산행 기사를 많이 씁니다. 등산클럽 풀꽃산행팀과 늘 함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