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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가치와 오늘의 눈높이에서 보면 세종은 한글을 창조한 위대한 임금님이자 무지몽매한 백성까지도 긍휼히 여겼던 성군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재세 당시로 돌아가 보면 세종은 이단입니다. '이단'이란 '정통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교의나 교파를 적대하여 이르는 말'로 정의됩니다. 세종 재세 당시는 한자가 정통이었고, 억불이 정통이었습니다.

1392년 7월 17일, 태조가 즉위한 그 다음 날 사헌부에서 상소를 올립니다. 사헌부에서 올린 상소에는 '하늘의 뜻에 응해 혁명하여 보위에 올라 꼭 해야 할 열 가지 일'이 적혀있었습니다. 그중 아홉째 항목이 태승니(汰僧尼), 곧 승니를 도태시켜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태(汰)는 씻어낸다는 뜻이고, 승니(僧尼)는 불교에서 출가 수행자를 남녀로 나누어 표현하는 말입니다. 승니를 도태시키는 것은 혁명의 구실이었고 정치의 핵심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남녀 스님 가리지 말고 싹 쓸어버리라는 혁명적 제거를 주장하는 내용입니다.

그러함에도 세종은 한글을 창제하고 불교 책을 읽었습니다. 혼자만 읽은 게 아니라 자식들에게도 읽히고 번역까지 하게 했습니다. 그때 당시는 한자를 사용하고 태승니, '조선=억불' 이라는 정치를 구현하는 것이 정통이었으니. 한글을 창제한 세종, 불교 책을 읽은 세종은 시대적 이단일 수밖에 없는 것이 역사적 사실입니다.

세종이 불교 책을 읽은 까닭은?

<왜 세종은 불교 책을 읽었을까> (지은이 오윤희 / 펴낸곳 불광출판사 / 2015년 8월 17일 / 값 2만 원>
 <왜 세종은 불교 책을 읽었을까> (지은이 오윤희 / 펴낸곳 불광출판사 / 2015년 8월 17일 / 값 2만 원>
ⓒ 불광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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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종은 불교 책을 읽었을까>(지은이 오윤희, 펴낸곳 불광출판사)는 조선의 네 번째 임금이었던 세종이 '보위에 올라 꼭 해야 할 열 가지 일'에서 태승니를 언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교경전을 읽은 사실을 시대적 배경으로 조명하고 문헌적 분석 등을 통해 입증하고 있습니다. 

세종은 만년에 불교 책을 열심히 읽었다. 이단의 책이었다. '승니를 도태하라', 조선의 혁명공약이었다. 세종은 혁명의 전위였고 이념의 수호자였다. 그에게도 불교는 저 끝의 이단이었다. 그런 그가 어느 순간 이단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단을, 이단의 책을 읽는 일, 여기에도 전통이 있다. 스타일이 있다. -<왜 세종은 불교 책을 읽었을까> (본문 189쪽 중에서)

목은도 포은도 <능엄경>을 읽었다. 삼봉도 세종도 <능엄경>을 읽었다. 까닭은 역시 <능엄경>의 논리, <능엄경>의 심성설 탓이다. 그들은 모두 송나라 정주(정주; 정자와 주자)의 논리와 심성설을 알고 믿었다. 그들은 그들이 알고 믿는 이치와 성품을 바탕으로 이단을 비판했다. -<왜 세종은 불교 책을 읽었을까> (본문 261쪽 중에서) 

<능엄경>은 <금강경><원각경><대승기신론 大乘起信論>과 함께 우리나라 불교 전문 강원에서 사교과(四敎科) 과목으로 채택되어 학습되었던 주요 경전 중 하나로, 10권으로 수록돼 있으며 각권 모두 한국불교의 신행(信行)에 크게 영향을 미친 경전입니다.

목은과 포은 심지어 삼봉까지도 <능엄경>을 읽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하기야 비판도 알아야 할 수 있는 것이니 태승니를 주창한 삼봉이 <능엄경>을 읽었다는 건 어쩜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석보상절><월인천강지곡><월인석보>은 세종과 수양이 함께 만들었습니다. 세종은 이 일을 부처의 삶을 생각하고 사랑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천도하는 데 전경(轉經)만 한 것이 없다

옛날 병인년에 소헌왕후께서 문득 돌아가시자 서럽고 슬퍼 어쩔 줄 몰랐다. 세종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천도하는 데 전경(轉經)만 한 것이 없으니, 네가 석보(釋譜)를 만들어 번역하는 게 좋겠다고 하셨다."고 하셨다. -<왜 세종은 불교 책을 읽었을까> 135쪽-

위 내용은 훗날 세조가 된 수양대군, 세종의 차남이었던 세조가 남긴 말입니다. 사랑하는 아내, 소헌왕후를 잃은 세종이 훗날 세조가 된 수양대군에게 석보(釋譜)를 만들어 번역하는 게 좋겠다고 해 만들어 진 것이 <석보상절>이고, 세종이 <석보상절>을 보고 찬송을 지어 준 것이 <월인천강>입니다.

조선시대 불교는 태승니, 억불로 상징되는 이단이었습니다. 그러함에도 세종은 불교 책을 읽었습니다. 목은도 읽고, 포은도 읽고 심지어 삼봉까지도 읽었습니다. 예서 그치지 않고 언해불전으로 번역되고 풀이 돼 대물림되며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왜 세종은 불교 책을 읽었을까>를 읽다보면, 세종은 물론 억불정책에 앞장섰던 조선 선비들이 은밀히 불교 책을 읽은 까닭, 언해불전에 담겨 있는 불교 가르침, 언해불전이 탄생하게 되는 과정쯤은 시나브로 익히게 될 거라 기대됩니다.

덧붙이는 글 | <왜 세종은 불교 책을 읽었을까> (지은이 오윤희 / 펴낸곳 불광출판사 / 2015년 8월 17일 / 값 2만 원>



왜 세종은 불교 책을 읽었을까 - 언해불전의 탄생, 그리고 열린사회를 향한 꿈

오윤희 지음, 불광출판사(2015)


태그:#왜 세종은 불교 책을 읽었을까, #오윤희, #불광춣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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