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 공동집행위원장을 맡은 영화배우 강수연

▲ '외강내유'의 강수연 부산국제영화제의 공동집행위원장인 강수연. 겉으로는 강한 기운이 느껴지는 배우지만 어려운 후배들을 다독이고, 영화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진 영화인이기도 하다. ⓒ 이희훈


"이 사진 좀 보세요. 이용관 위원장님이 예전에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던 모습인데 진짜 젊죠?"

집무실 책상 위에 놓인 액자 하나를 가리키며 배우 강수연이 웃었다. 손짓을 따라가다 보니 그 곁에 놓인 명패가 눈에 확 들어온다. '집행위원장 강수연'. 46년 배우의 길을 걸어온 그가 올해부터 얻은 또 하나의 직함이다.

국내 최초 길거리 캐스팅, 국내 최초 국제영화제 수상 배우 등 화려한 수식어를 차지했던 그에게 부산국제영화제 공동집행위원장 직이 자칫 무거운 짐은 아닐지. 그 결정의 배경이 궁금했고, 복안을 알고 싶었다. 영화제 개막 즈음 부산 영화의 전당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국제영화제에 대한 갈증과 애정

 부산국제영화제 공동집행위원장을 맡은 영화배우 강수연

각종 집기들이 가득한 강수연의 집무실. 그의 책상 위 '집행위원장'이라는 직함이 유독 눈에 들어온다. 책상 위엔 과거 영화제 때 행사를 진행하던 이용관 공동집행위원장의 사진이 액자에 담겨 있었다. ⓒ 이희훈


분명 안팎으로 혼란의 시기였다. 최근까지 영화진흥위원회의 일방적인 예산 삭감, 부산시의 지도 점검 및 감사원의 특별 감사 등으로 '영화제 외압논란'이 일었고, 영화인들이 단체 성명을 내며 맞섰다. 이 와중에 강수연 위원장이 구원투수로 나서게 됐다. "왜?"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그는 "힘든 시기일 때 돕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며 일관되게 결단 이유를 밝혀왔다.

 배우 안성기와 함께 사회를 보는 강수연. 지난 2010년 제15회 부산국제영화제 당시 김동호 전 집행위원장이 공식 퇴임했던 때다.

배우 안성기와 함께 사회를 보는 강수연. 지난 2010년 제15회 부산국제영화제 당시 김동호 전 집행위원장이 공식 퇴임했던 때다. ⓒ 부산국제영화제

따지고 보면 공동집행위원장 제안은 지난 2010년 무렵부터 쭉 있었다. 부산영화제의 산파 격인 김동호 전 집행위원장이 물러나면서 배우 안성기와 강수연 등이 자연스럽게 물망에 올랐다. 당시에 대해 강 위원장은 "나뿐만 아니라 여러 영화인에게도 요청이 갔을 것"이라고 몸을 낮췄다. 그는 "다들 잘 해오고 있었기에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집행위원장 직은)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어떤 직책을 갖기보다 영화인으로 참여하는 게 즐거웠다. 내부 살림을 맡는 건 전혀 계획에 없었다. 그리고 (이번에 제안이 왔을 때부터) 날 아끼는 지인과 가족들도 말렸다. 영화제라는 게 잘될 때 들어가서 한다 해도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려운데, 올해처럼 시끄러운 때 들어가는 건 아니라고들 하더라. 지금껏 배우로 살아왔으니 계속 그렇게 살라는 말도 들었다.

원년도 땡땡이 원피스의 활약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렸던 1996년 강수연은 이미 세계 영화제의 인정을 받는 월드스타였다. 당시 '땡땡이 무늬' 원피스를 입었던 그는 영화제 곳곳을 다니며 세계 영화인들과의 만남을 주저하지 않았다. "우리만의 국제영화제를 갖고 싶었다"게 당시 그의 속마음이었다.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렸던 1996년 강수연은 이미 세계 영화제의 인정을 받는 월드스타였다. 당시 '땡땡이 무늬' 원피스를 입었던 그는 영화제 곳곳을 다니며 세계 영화인들과의 만남을 주저하지 않았다. "우리만의 국제영화제를 갖고 싶었다"게 당시 그의 속마음이었다. ⓒ 부산국제영화제

그런데, 그걸 반대로 생각하니 답은 간단했다. 이렇게 영화제가 어려울 때 내가 도움이 돼야겠다는 마음이었다."

이 마음의 배경에는 부산영화제에 대한 강수연의 깊은 애정이 있다. 변방의 행사로 치부될 법했던 1회 영화제(1996) 때부터 강수연은 안방마님 역할을 톡톡히 했다.

당시 <씨받이>(1987)와 <아제 아제 바라아제>(1989)로 베니스 영화제 여우주연상과 모스크바 국제영화제 최우수여우상을 받으며 이미 월드스타 반열에 올랐던 그다. 그걸 지렛대 삼아 강수연은 부산영화제 기간 내내 유수의 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은 물론이고 세계적인 감독-배우들과의 만남을 주저하지 않았다. 특유의 사교성을 발휘했다. 많은 이들이 부산영화제의 외연을 넓힌 일등공신으로 강수연을 꼽는 이유다.

강 위원장을 앞에 두고 이 말을 꺼내자 그는 "내가 운이 좋아 1980년대에 해외영화제를 경험했는데, 그러면서도 우리만의 국제영화제를 꼭 갖고 싶었다"고 말했다. 영화제 산파는 아니더라도 그 공이면 적어도 보모 수준은 된다는 말에 호탕하게 웃으며 그는 "사실 그땐 반신반의였고, 부산영화제가 잘 치러질 수 있을지 굉장히 불안했다"며 "벌써 20년이 됐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고 말했다.

"1회 때 가장 힘들었던 건 내부와 외부의 불신이었다. '부산에서 국제 행사를 하는데 과연 될까', '대체 뭘 가지고 해외에 호소할 수 있나' 나조차도 의심했고, 그걸 극복하는 게 가장 큰 숙제였다. 지금의 성장은 많은 영화인들의 단결한 결과다. 올해 역시 영화제가 어렵다고 하니까 한국 영화인들은 단합해 도움을 줬고, 해외 유수 영화제들도 지지 성명을 발표했다. 또 해외 게스트들 면면을 보면 알겠지만 자발적으로 다들 온다고 했다. 큰 감동이었지. 그만큼 기대치가 높아진 거다. 정말 영화제를 잘 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칙 : 영화제는 영화로만 바라본다

 부산국제영화제 공동집행위원장을 맡은 영화배우 강수연

영화제의 살림꾼이 되어 처음 행사에 대한 다부진 각오를 담고 있었을까. 인터뷰 중 강수연은 몇 번을 두 손을 꼭 모은 채 답하기도 했다. ⓒ 이희훈


그의 "잘 해내자"는 말은 곧 영화제의 독립성과 연결된다. 지난해 문제가 됐던 세월호 다큐 <다이빙벨> 이야기에 강 위원장은 말을 매우 조심스럽게 했다. 아직 상처가 아물기는커녕 진행형이기 때문이리라. 그는 "한국 작품만이 아니고, 매년 작품 상영과 게스트 초대에 있어서 압박내지 갈등은 있었다"고 회고했다.

"정치적 망명을 해서 떠돌아다니는 유명 감독이 부산을 찾은 적도 있었고, 목숨의 위협을 받는 이들도 부산을 찾았다. 자국의 검열로 상영 금지된 작품들도 부산에서 틀었다. 매년 영화를 선정하는 과정을 보면 작품마다 다 사연이 있다. 어느 것 하나 아쉽지 않은 게 없다.

우리가 아시아를 넘어 세계를 대상으로 작품을 뽑잖나. 한국 내부의 압력뿐만 아니라 타국의 압박을 견디고 부산영화제만의 색깔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하다. 그걸 지켜왔기에 이 영화제가 해외 영화인들에게 빠르게 인정받을 수 있었다고 본다. '영화제는 영화로만 바라본다.' - 이게 우리가 지난 20년간 지켜온 원칙이다. 이 원칙이 무너지는 순간, 영화제 존폐 위기가 온다고 생각한다."

가까운 사례를 찾아보자. 작년 갈라프레젠테이션 부문에 초청된 이란의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은 끊임없이 자국 정부의 암살 위협을 받고 있다. 그의 최근작 <대통령>은 바로 부산영화제 기획 프로그램인 APM(아시아프로젝트마켓)의 지원을 받아서 탄생한 작품이다. 올해 12년 만에 부산을 다시 찾는 아프가니스탄 배우 마리나 골바하리 역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배우의 길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이 모든 게 부산영화제의 소중한 인연이자 자산"이라는 게 강 위원장의 설명이었다.

지난 1997년 제2회 부산영화제 당시 이회창 등 대권 주자들이 부산영화제 무대에 오르려다 영화인들의 저지로 물러난 것도 독립성을 지키려는 의지로 해석할 수 있다. 국내 사례에 대해 강 위원장은 "그것 뿐 아니라 여러 사건들이 많았다"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물론 영화제는 지역과 사회, 그리고 정치와 전혀 무관할 수 없다. 다만 아까 말했듯 본연의 색깔만 확실히 지킨다면 누구와도 열린 소통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사회 이슈, 종교성, 예술성... 이 모든 게 상영될 수 있어야 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 공동집행위원장을 맡은 영화배우 강수연

'다양한 장르,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영화를 많이 소개한다' "이건 영화제의 기본"이라고 그가 말했다. 오히려 더 고민스러운 건 영화제의 미래 비전이란다. 앞날을 생각하는 마음이 사뭇 작품 전체를 바라보며 연기하던 그와 닮아 있다. ⓒ 이희훈


 부산국제영화제 공동집행위원장을 맡은 영화배우 강수연

뒷모습은 한 사람의 면모를 잘 드러내는 요소 중 하나다. 각종 자료가 붙어있는 게시판을 마주하고 있는 강수연이다. ⓒ 이희훈


앞선 발언들, 강 위원장이 무슨 결기에 차서 뱉은 말이 아니다. 기자가 강 위원장에 대해 외부에서 폄하하려는 시도도 있을 수 있다고 말하니 오히려 "손님을 맞이하려면 만만해야 한다"고 되받아 친 그다. 영화와 영화제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깔려있기에 가능한 말이었다.

"사회 이슈를 다룬 작품, 종교적 색채가 강한 작품, 예술성이 짙은 작품 등 이 모든 게 상영될 수 있어야 한다. 영화라는 게 본래 그런 것이고 영화제는 그것들을 종합해 관객에게 보여줄 수 있는 마당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부산영화제를 둘러싼 여러 문제는 우리만의 것이 아니다. 다른 세계영화제에서도 비슷하게 겪는 것들이더라.

오히려 더 고민스러운 건 부산영화제를 장기적으로 어떻게 키울까 하는 문제다. 영화제의 색깔을 유지하고 좋은 영화를 가져오는 건 이제 너무나 당연한 일이 됐다. 영화를 하고자 하는 젊은 세대를 교육하고, 아시아 전역의 작가를 발굴하며, 그들을 세계에 소개하는 다리 역할을 해야 한다. 이게 더 즐겁고 행복한 일이다. 1~2년 경험만으로 안 되는 일인 만큼 그간 우리가 쌓은 걸 바탕으로 장기 계획을 짤 때다."

다부진 포부를 밝히며 올해 준비한 영화제 행사들을 소개하는 그에게 넌지시 바람을 전했다. 외강내유의 전형으로 많은 영화인들이 따르고 좋아하는 만큼 혹여나 예상치 못한 상처도 잘 극복하시라고. "해봐야 알 수 있고, 평가할 수 있는 것"이라며 그가 담담하게 받아낸다.

"(웃음) 올해를 잘 끝내고 나서 생각해야지. 생각해보면 배우를 시작한 것도 내 의지가 아니었지 않나. 4살 때 어른들에 의해 시작한 연기였지만 커가면서 내가 싫어했다면 도중에 그만뒀겠지. 연기가 정말 좋아졌고, 배우가 재밌으니 계속 이어가려는 에너지가 훨씬 커진 거다. 영화제 일 역시 내가 계획한 건 아니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과 관련된 거니 할 수 있다. 좋아하는 영화를 늙어서까지 재밌게 하고 싶다는, 어찌 보면 소박하지만 가장 큰 욕심이 있기에 이 일도 거들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위원장으로서 아직 어떤 상처를 받진 않았지만 100%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을 거란 건 잘 알고 있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싫어하는 사람도 있는 게 당연하다. 지금은 영화제를 잘 끝내야겠다는 마음뿐이다. 본래 부산영화제는 내가 없어도 잘 되던 행사였다. 내가 들어온 이상 조금이라도 나아지길 바라는 거지. 물론 그 과정에서 상처받을 수도 있지만 동시에 치유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많이 응원해주고 영화제를 사랑해달라."

[인터뷰 전문 보기]
"손님이 편하게 다가오게 하는 게 내 역할"

 부산국제영화제 공동집행위원장을 맡은 영화배우 강수연

"첫 영화제 때 가장 힘들었던 건 내부와 외부의 불신이었다" 부산국제영화제의 기억을 회고하던 강수연은 솔직한 속내를 드러냈다. 이미 월드스타였기에 자신에게만 집중하고 달릴 수도 있었을텐데 그는 영화제 성장에 헌신해왔다. 아마 이게 공동집행위원장직에 가장 어울리는 그의 커리어 중 하나 아닐까. ⓒ 이희훈




○ 편집ㅣ이병한 기자


강수연 부산영화제 이용관 안성기 다이빙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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