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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는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마련한 고정 언론칼럼으로 매주 한 번 <오마이뉴스>에 게재됩니다. 각자 자신의 영역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하면서도 한국사회의 언론민주화를 위한 민언련 활동에 품을 내주신 분들이 '시시비비' 필진으로 나섰습니다.

앞으로 김동민(한양대 겸임교수), 김성원(민언련 이사), 김수정(민언련 정책위원), 김언경(민언련 사무처장), 김은규(우석대 교수), 김택수(법무법인 정세 변호사), 박석운(민언련 공동대표), 서명준(언론학 박사), 안성일(MBC 전 논설위원), 엄주웅(전 방통심의위원), 이기범(민언련 웹진기획위원), 이병남(언론학 박사), 이용마(MBC 기자), 이진순(민언련 정책위원), 정민영(변호사), 정연우(세명대 교수)의 글로 여러분과 소통하겠습니다. - 기자말

노동조합이 파업을 할 때마다 보수 언론이 입을 맞춘 듯 똑같이 떠들어대는 소리가 있다. 파업으로 인한 생산 차질이 엄청나고, 그에 따라 우리나라 수출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파업으로 인한 막대한 경제적 손실에 대한 공포는 파업을 당장 중단시켜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지고, 정부는 공권력을 투입해 노동자들을 '진압'한다. 너무나 흔한 레퍼토리이다.

그런데 이 레퍼토리에는 파업의 발생 원인에 대한 규명이 빠져 있다. 세상에 파업을 하고 싶어서 하는 노동조합은 없을 것이다. 파업을 하면 파업 기간 임금도 받지 못하고, 때에 따라서는 민형사상 책임도 져야 하므로 노동조합은 가능한 파업을 피하는 게 합리적 선택이다.

그럼에도 파업을 단행했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보수 언론은 일단 파업을 하면 그 원인은 무시하고 경제논리를 내세워 노동조합을 악마로 매도하기에 바쁘다.

눈속임, 갈등조장으로 혹세무민하는 언론

 9월 14일자 중앙일보 3면 기사 갈무리
 9월 14일자 중앙일보 3면 기사 갈무리
ⓒ 민주언론시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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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언론이 파업에 대해 경제논리를 들이대는 것은 노동자를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싸워도 그 이유를 묻는 게 자연스럽지만 노동자에게는 그런 것이 없다. 왜냐하면 노동자는 기업 이윤을 위해 쉬지 않고 일해야 하는 부품일 뿐이기 때문이다.

보수 언론의 이런 관점은 최근 노사정 합의를 보는 데서도 나타난다. 보수 언론은 그동안 경제를 살리기 위해 '일반 해고'와 '임금피크제'를 노동계가 수용해야 한다는 재계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옹호하며 온갖 궤변을 늘어놓았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간격을 줄이기 위해서는 비정규직의 처우를 개선하거나 비정규직을 없애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이들은 거꾸로 정규직의 임금을 깎고 정규직의 처우를 낮춤으로써 차이를 없애자고 한다. 또 속내로는 임금피크제를 통해 나이든 세대의 임금을 줄여 기업의 이윤을 늘릴 생각을 하면서, 마치 젊은 층의 일자리를 늘리기 위한 것인 양 눈속임을 하며 세대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 쉬운 해고, '일반 해고'에 대해서는 '공정 해고'라고 혹세무민하고 있다. 기업이 무능한 저성과자를 내보낼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저성과자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 방법은 논하지 않는다.

이건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사람을 앞에 놓고 어떻게 하면 이들을 더 쥐어짜서 이윤을 남길 수 있을지 주판을 튕기고 있는 것이다. 오로지 이윤을 목표로 한 샤일록 같은 자본가들은 그럴 수 있다 쳐도 공공의 이익을 추구해야 할 언론이 샤일록이 되어서는 안 된다.

팡파르를 울리고 있는 언론, 자본가 샤일록의 모습이다. 경제는 기업과 가계, 자본가와 노동자의 두 요소로 구성되어 있음은 경제학 원론의 기초이다. 양자는 공생해야 한다. 적어도 언론은 양자의 공생을 추구해야 한다. 기업의 이윤추구도 좋지만 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삶 역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중요한 덕목이다. 하지만 보수 언론에게 경제는 기업 혹은 자본가와 동일하다. 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말은 그 단적인 표현일 뿐이다. 언론 역시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고, 언론인은 자본가와 동일한 샤일록이다.

최근 노사정 합의에 대해 보수 언론이 반색하는 것은 샤일록의 논리가 관철되었음을 자축하는 것이다. 사실 이번 합의문을 잘 살펴보면 임금피크제와 일반 해고와 같은 핵심 사안은 다소 유보적이다. 한국노총이 이들 제도의 법제화를 수용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노사정 간의 "충분한 협의"를 통해 결정하기로 했다. 이번 합의는 말 그대로 노동법 개정을 위해 노사정 간의 협의를 시작한다는 선언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 언론은 이번 합의로 마치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팡파르를 울리고 있다.

보수 언론의 팡파르에는 이대로 법제화가 마무리되었으면 하는 막연한 기대감이 반영되어 있다. 따라서 이번 합의에 반대하는 세력에 대해서는 "반개혁적 기득권 집단" 혹은 "귀족 노조" 등의 딱지를 서슴지 않고 붙이는 것이다. 노사정 합의문의 잉크도 마르기 전에 소위 "5대 노동개혁법"을 들고 나와 군사작전을 감행하듯이 밀어붙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번 노사정 합의는 보수 언론의 기대와 달리 "역사적 대타협"으로 간주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우선 이번 합의 과정에는 노동계의 양대 축 중 하나인 민주노총이 철저히 배제되었다. 야당 역시 이번 합의를 정부가 한국노총의 팔을 비틀어 짜낸 노동 개악으로 간주하고 있다. 무엇보다 국민들이 샤일록의 논리만 관철된 이번 합의에 대해 얼마나 동의할지 여부이다. 스스로 샤일록이 되어버린 언론, "헬조선"이라는 말이 유행하는 또 다른 배경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이용마 MBC 기자 입니다.



태그:#노동개혁, #언론개혁, #노동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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