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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당한 수많은 노동자들이 투쟁 중이다. 28명의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은 투쟁 중에 숨을 거뒀다.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말까지 나왔다. 그런데 '살인'같은 해고가 더 쉽고 간편해질 기로에 놓였다.

노사정위원회는 지난 13일 정부의 노동개혁 핵심 의제에 대타협 했다. 아버지 월급 깎고(임금피크제), 해고는 더 쉽게(일반해고,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 비정규직을 더 길게(2년에서 4년으로) 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그런데 이게 다 청년을 위해서란다. 정부는 노동 개혁을 해야 '청년 고용 활성화'가 가능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달리 말하면, 청년이 이 사회의 살인(해고)을 간편하게 만든 주원인이 됐다. 이럴 땐 약한 쪽이 먼저 납작 엎드리는 게 맞다. 청년이 잘못했다고, 이게 다 청년 때문이라고 싹싹 빌어야 한다.

모든 책임은 청년에게 있다. 한 메이저 신문의 논설위원께선 "늙는다는 건 罰(벌)이 아니다"라며 청년들에게 "징징대지 말라"고 하시지 않았던가. 요즘 시대에 젊다는 건 罰(벌)이 맞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대놓고 디스(disrespect)하자. 남들이 디스하면 기분 나쁘니까 청년들끼리 '셀프 디스'를 해보자.

"아버지, 월급 깎게 만들어 죄송합니다"

"아버지 월급 깎게 만들어 죄송합니다" 이번 노동 개혁에 '청년 고용 의무제'와 같은 조항이 포함된 것도 아니다. 기업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해 절감한 비용을 반드시 청년 고용에 사용해야 한다는 강제 조항 따위도 없다. 불안해하는 청년들에게 정부는 기업이 청년 고용을 확대할 것을 믿으라고 강조한다.
▲ "아버지 월급 깎게 만들어 죄송합니다" 이번 노동 개혁에 '청년 고용 의무제'와 같은 조항이 포함된 것도 아니다. 기업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해 절감한 비용을 반드시 청년 고용에 사용해야 한다는 강제 조항 따위도 없다. 불안해하는 청년들에게 정부는 기업이 청년 고용을 확대할 것을 믿으라고 강조한다.
ⓒ 이영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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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A(24, 여)씨의 아버지는 대기업에 재직 중이다.
A씨의 아버지는 후년부터 임금이 깎인다. 얼마 전 회사에서 도입한 '임금피크제' 때문이다. 정부는 '노동 개혁' 핵심 과제로 임금피크제 도입을 주장해 왔다.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해 정년에 가까운 노동자의 임금을 깎겠다는 것이다. A씨는 현 상황을 본 심경을 토로했다.

"아빠 월급 깎으면 제 일자리가 생긴다고요? 기업이 돈 없어서 청년 고용 못 하는 거 아니잖아요. 그런데 정부에선 저 같은 청년 때문에 임금피크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하잖아요. 그러니 뭐, 제가 아버지 월급 깎게 만든 죄인이죠. 아버지, 월급 깎게 만들어 죄송합니다."

지난 16일 박광온 새정치민주연합의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A씨의 아버지가 다니는 대기업은 42조 원가량의 사내유보금을 보유했다. 국내 30대 대기업이 보유 중인 사내유보금은 500조 원을 웃돈다. '돈이 없다'는 변명이 궁색할 정도다. 막대한 사내유보금이 있어도 기업의 청년 고용은 늘어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번 노동 개혁에 '청년 고용 의무제'와 같은 조항이 포함된 것도 아니다. 기업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해 절감한 비용을 반드시 청년 고용에 사용해야 한다는 강제 조항 따위도 없다. 불안해하는 청년들에게 정부는 기업이 청년 고용을 확대할 것을 믿으라고 강조한다.

그렇다. 청년들의 믿음이 부족해서다. 성경엔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으면 산을 옮길 수 있다'는 구절이 있다. "간절히 원하면 전 우주가 나서서 도와준다"는 성경 말씀보다 위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명언도 있다. 믿으라, 그리하면 취직할 것이다.

"중동에 가지 못해 미안합니다"

"중동에 가지 못해 미안합니다" 그동안 중동 및 해외에 일하러 간 청년들은 고생만 하다가 돌아왔다고 한다. 우원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 11일 보도자료를 통해 "대통령 중동 가란 말에 나간 청년들, '집 나가면 개고생'이다"라고 밝혔다.
▲ "중동에 가지 못해 미안합니다" 그동안 중동 및 해외에 일하러 간 청년들은 고생만 하다가 돌아왔다고 한다. 우원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 11일 보도자료를 통해 "대통령 중동 가란 말에 나간 청년들, '집 나가면 개고생'이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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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역시 '사상 최고의 취업난'이다. 지난 6월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현재 대한민국의 청년 실업률은 10.2%로 IMF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마저도 아르바이트생까지 취업자로 계산한 수치다. 장하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에서 제공한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분석 자료에 따르면, 아르바이트생처럼 실질적인 실업자를 포함한 '실질 청년실업률'은 지난 7월 기준으로 22.5%에 달한다. '사상 최악'의 사태를 벗어나기 위해 박 대통령은 해결책을 제시했다.

"대한민국 청년들이 텅텅 빌 정도로 한 번 해보세요. 다 어디갔느냐, 저 중동에 갔다고…"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3월 19일 청와대에서 열린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중동 진출' 의제를 던지며 한 말이다. 박 대통령이 던진 이 농담에 당시 회의장에 있던 사람들은 웃음꽃을 피우며 화답했지만, 대학생 최은혜(24, 여)씨는 웃을 수 없었다. 최씨는 박 대통령의 말을 듣자마자 "중동이 그렇게 좋으면 너나 가라!"고 속으로 외쳤다고 한다.

"어느 시대적 발상인지 모르겠어요. 전 세계적인 인구 절벽 앞에서 청년에게 투자한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의 미래가 어떻게 달라질지는 불 보듯 뻔하죠. 중동 진출하면 나라에서 돈이라도 주나요? 중동에 갈 비행기 표 값도 없어요."

대통령이 농담까지 던져가며 주문해도 변한 건 없었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청년들이 태반이다. 최씨도 그중 하나다. 갈수록 어려워지는 취업 환경에 걱정이 산더미라는 최씨는 이렇게 말했다.

"중동 가서 일 할 생각 없어 미안합니다. 그렇게 중동이 좋으시면 해외 순방 잘 다니시는 대통령님께서나 중동 가서 대통령 하시라고 전해주세요."

정작 그동안 중동 및 해외에 일하러 간 청년들은 고생만 하다가 돌아왔다고 한다. 우원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 11일 보도자료를 통해 "대통령 중동 가란 말에 나간 청년들, '집 나가면 개고생'이다"라고 밝혔다.

우 의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가 청년들의 해외취업을 돕기 위해 2013년부터 추진한 'k-move' 사업의 38개 사업에서 부실운영 등의 문제점이 발견됐다. 특히, 고용노동부가 진행한 '플랜트 해외 인턴사업'의 경우엔 무급노동일뿐만 아니라, 주당 60시간 이상 장시간 노동에 시달린 사람들의 비율이 58.7%나 됐다고 한다.

여기는 헬조선, 나는 탈조선 "애국하지 못해 송구합니다"

"애국하지 못해 송구합니다" 4년 동안 대학 생활을 하면서 서씨에게 '우리나라'는 '남의 나라'가 됐다. 애국은 사치였다. 경쟁만 강조하는 조국이 실망스러웠다. 20대의 절반을 한국에서 보낸 서씨는 한국을 과감히 떠나려 한다. 서씨는 "여기는 헬조선이 맞다"라며 "나는 탈조선 하겠다"라고 말했다.
▲ "애국하지 못해 송구합니다" 4년 동안 대학 생활을 하면서 서씨에게 '우리나라'는 '남의 나라'가 됐다. 애국은 사치였다. 경쟁만 강조하는 조국이 실망스러웠다. 20대의 절반을 한국에서 보낸 서씨는 한국을 과감히 떠나려 한다. 서씨는 "여기는 헬조선이 맞다"라며 "나는 탈조선 하겠다"라고 말했다.
ⓒ 이영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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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서미영(가명, 23, 여)씨는 아프리카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선교사인 부모를 따라 열 살 때 한국을 떠나서도 서씨는 '꼬맹이 애국자'였다. 아프리카 다민족 사회에서 꿋꿋하게 '코리안'으로 살았다. 작은 체구와 낮은 코, 찢어진 눈을 가진 '코리안'이어서 중학교 때는 온갖 인종차별과 집단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서씨는 어릴 적 살던 대한민국이 자랑스러워 한순간도 한국을 잊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 마음은 한국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사라졌다. 서씨의 표현을 빌리면 "포기했다." 치열한 경쟁 사회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서씨는 "여기선 다른 사람을 밟고 올라가지 않으면, 그 틈에 내가 밟힐 것 같은 두려움이 있다"라고 털어놓았다.

"적당한 경쟁은 사회가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경쟁이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되면 사회가 너무 각박하잖아요. 지금 한국이 그래요. 사람보다 성과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곳이에요. 저는 남들과 비교할 평가의 대상이 아니라 그냥 저 자신인데 말이에요."

서씨는 성인이 된 후 그리워하던 한국의 대학으로 진학했다. 입시 전쟁을 뚫고 대학에 들어온 친구들이 다시 취업 전쟁에 뛰어든 모습을 보며 서씨는 안타까웠다고 한다. 서씨는 "저들끼리도 피 터지는데, 나까지 저 대열에 끼어야 하나 싶었다"라고 말했다. 

"한국 사회는 조금만 달라도 무시해요. 치열한 경쟁에서 밀리면 거들떠보지도 않더라고요. 좋아서 온 대한민국인데, 여기 계속 살기는 힘들 것 같아요. 빠른 시일 내에 떠날 거예요."

4년 동안 대학 생활을 하면서 서씨에게 '우리나라'는 '남의 나라'가 됐다. 애국은 사치였다. 경쟁만 강조하는 조국이 실망스러웠다. 20대의 절반을 한국에서 보낸 서씨는 한국을 과감히 떠나려 한다. 서씨는 "여기는 헬조선이 맞다"라며 "나는 탈조선 하겠다"라고 말했다.

"애국하지 못해 송구합니다. 실패자의 수를 덜어드리기 위해, 저는 이렇게 열심히만 사는 나라 인구에서 빠져 드리겠습니다. 부디 부자 되세요. 그게 이 나라의 행복인 것 같으니 말입니다."

○ 편집ㅣ박정훈 기자

덧붙이는 글 | 임성현 기자는 <오마이뉴스> 22기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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