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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를 출입하는 정치팀 이경태 기자가 기사에서 미처 풀어내지 못한 청와대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편집자말]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1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1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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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월요일, 현대자동차가 사내 하도급 6천 명을 2년 내에 정규직으로 채용하기로 했고, CJ그룹과 현대중공업그룹에서도 신규 채용 계획을 발표하는 등 경제계가 속속 청년일자리 창출에 동참하고 있어서 마음이 든든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21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재계의 '지원사격'에 대한 만족감을 표했습니다. 왜 특정 기업의 인사계획이 정부에 대한 '지원사격'이냐구요? 바로 정부가 노동시장 구조개편을 추진하면서 '청년실업 해소'를 그 명분으로 내세웠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고용노동부의 '노동개혁' 공익광고도 "노사정 대타협, 우리 아들과 딸이 애타게 기다립니다"라고 주장하지 않습니까.

재계가 자발적으로 이 선전을 현실화 시켜 준다는데 반기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겁니다. 실제로 삼성·한화·현대차·SK 등 주요그룹들은 하반기 대졸 공채를 늘리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지난 17일 고용노동부 등에 따르면, 삼성·현대자동차·SK·LG·롯데·KT·두산·GS·현대중공업·동부·다음카카오·한국전력 등 12개사는 정부의 일자리창출사업인 '청년고용디딤돌사업'에도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누군가는 정부의 공언대로 일자리를 늘린 셈이니 잘된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건 사실 정부와 재계의 '거래'일 뿐입니다.

기업 이익만 신경 쓴 노사정 합의... 청년 고용 약속은 믿을 수 있나?

지난 15일 도출된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노사정합의문'부터 살펴봅시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번 합의는 정부가 앞장서 기업의 애로사항을 해소해준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일단, 노사정위원회는 "근로계약 체결 및 해지의 기준과 절차를 법과 판례에 따라 명확히 한다"라면서 저성과자와 근무불량자를 대상으로 한 '일반해고' 도입 가능성을 열었습니다. 현행 근로기준법에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를 전제로 하는 정리해고와 '정당한 이유'를 전제로 하는 '징계해고'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노사정위원회는 업무성과나 근무태도 등 사용자의 자의적 판단을 전제로 하는 '일반해고'를 더한 것입니다. 지극히 기업에 치우친 결정입니다.

임금피크제(일정 연령이 된 근로자의 임금을 삭감하는 대신 정년까지 고용을 보장하는 제도) 도입 등 임금체계 개편을 위한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 합의 결정도 마찬가지입니다. 현행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사용자 취업규칙 변경으로 노동자에게 불이익을 줄 수 있다고 간주될 땐 노조나 노동자 과반의 동의를 얻도록 돼 있습니다. 그런데 이를 '완화'하기로 결정한 건 사용자보다 상대적인 약자인 노동자의 힘을 더욱 축소 시킨 겁니다.

이뿐입니까. 재계에서 계속 요구한 ▲ 기간제 근로자 사용기간 연장 ▲ 파견근로 대상 업무의 확대 역시 이번 합의문에 포함됐습니다.

결국, 재계의 채용 확대 방침은 이같은 선물에 대한 보답 성격이 짙습니다. 이 보답을 신뢰할 수 있는지도 관건입니다.

일례로 삼성·현대차·SK 등 12개사가 참여하기로 한 '청년고용디딤돌사업'은 쉽게 표현하자면 '인턴사원 교육'에 가깝습니다. 기업들이 청년구직자를 대상으로 직무교육과 인턴십을 실시한 후 협력사 등으로의 취업을 돕는 것이 사업 골자입니다. 즉, 청년들에게 해당 교육을 담당한 대기업의 일자리를 주는 게 아닌 거죠.

각 주요그룹이 밝힌 채용 확대 계획 역시 '즉시 실현'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구체적으로 삼성그룹은 향후 2년간 1만7000개의 청년일자리를 신규 창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GS는 2017년까지 9700명 청년 인재 채용, 한화그룹도 2017년까지 청년 1만7569명 채용 방침을 밝혔습니다. 공교롭게도 대부분 박 대통령의 임기가 종료되는 2017년을 마지노선으로 삼은 셈입니다. 과연 2년 후에도 이 같은 기조는 계속 유지될까요?

논란이 된 한화투자증권 사례를 생각해 봅시다. 지난 2012년 한화투자증권은 59명의 고졸 공채 사원을 뽑았습니다. 당시 고졸 채용 1명 당 1500만 원의 세제 감면 혜택을 안긴 이명박 정부의 고졸 취업 활성화 정책에 적극 부응한 것입니다. 그러나 1년 뒤 한화투자증권은 경영난을 이유로 대규모 인적 구조조정을 실시하면서 입사 1년 차 고졸 신입 직원들을 대상에 포함 시켰습니다. 결국 입사했던 고졸 공채 사원 중 절반이 회사를 떠났습니다.

창조경제 '도우미' 역할에도 법인세·사면... "MB 때보다 친기업적"

청년에게 다양한 일자리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부산·울산·경남지역 청년 20만+ 창조 일자리박람회'가 지난 16일 벡스코 제2전시장에서 열렸다.
 청년에게 다양한 일자리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부산·울산·경남지역 청년 20만+ 창조 일자리박람회'가 지난 16일 벡스코 제2전시장에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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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기업의 달콤한 약속은 온전히 신뢰하기 어려운 '공수표'인 셈입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더 요구합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대한상공회의소·중소기업중앙회·한국무역협회·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경제5단체는 지난 15일 성명을 통해 "노사정 합의가 많은 어려움 속에 타결됐으나 청년 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한 공정하고 유연한 노동시장을 만드는 데 노동개혁이라고 평가하기에 매우 부족하다"라면서 국회에 입법 청원 의사를 밝혔습니다.

정부와 여당도 환상적인 호흡을 보여줬습니다. 새누리당은 하루 뒤인 16일 당 소속 의원 전원의 서명을 받은 이른 바 '노동개혁 5대 법안'을 발의했습니다. 박 대통령도 이날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위기를 인식 못해 추락한 전철을 밟으면 안 된다"라면서 국회에 후속 입법조치를 당부했습니다.

이쯤하면 '정경유착(政經癒着)'이라 할 만합니다. 물론 기업이 정치인에게 정치자금 등을 제공하고 정치인은 그 반대급부로 해당 기업에 각종 특혜를 베푸는 전통적인 의미는 아닙니다. 그러나 '고용·투자'라는 자원을 가진 기업가와 '입법·정책'이란 자원을 가진 정부 사이의 신(新) 정경유착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는 이미 박 대통령의 '창조경제' 때부터 가시화된 흐름입니다. 현재 전국 17개 광역시·도에 세워진 창조경제혁신센터는 사실상 대기업이 그 건립과 운영을 전담하고 있습니다. 삼성(대구·경북), SK(대전·세종), 현대·기아차(광주), LG(충북), 롯데(부산), KT(경기), 두산(경남), 네이버(강원), 한화(충남), GS(전남). 다음카카오(제주), 현대중공업(울산), CJ(서울), 한진(인천) 등이 그 주인공입니다.

대기업이 박 대통령의 '창조경제'를 구현할 실무자 위치에 있다 보니 당연히 '거래'가 오갑니다. 정부는 여권 일각의 법인세 인상 요구를 단호히 거절했고, 박 대통령은 대선 공약이던 기업인 사면 제한 방침도 올해 광복절 특별사면을 통해 뒤집었습니다.

실제로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 4일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박근혜 정부는 창조 경제를 한다면서, 혁신 센터를 만들어 열심히 하는 척하는 기업들한테 총수를 사면해 준다든지, 불공정한 기업 간 합병을 눈감아준다든지…. 이런 것 자체가 신종 정경유착이라고 본다"라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물론 '정경유착'이란 표현이 과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최근 행태를 보면, 박근혜 정부가 이명박 정부보다 친기업적 태도를 취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권력형 비리 등 반대급부를 통해 사적이익을 얻는 경우는 없는 만큼 정경유착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라고 말했습니다.

다만, 김 교수는 "시장을 내세우면서 대기업들의 경제적 이익을 보장하고 그런 정책을 권위적으로 밀어붙인다는 점에서 보수적이고 권위주의적이란 표현은 할 수 있겠다"라면서 "(대기업 투자를 촉진하는) 경기부양책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대선 당시 약속했던 경제민주화를 통해 극복하고자 했던 낡은 방식의 경기부양을 하고 있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태그:#박근혜, #노동개혁, #창조경제, #정경유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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