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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 없는 날이었던 지난 20일, 동물보호단체 '케어'가 서울 세종대로에 부스를 열어 개·고양이 입양 캠페인을 하고 있다.
 차 없는 날이었던 지난 20일, 동물보호단체 '케어'가 서울 세종대로에 부스를 열어 개·고양이 입양 캠페인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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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를 볼 때면 항상 죄책감을 느낀다. 그 이유는 무책임한 견주였던 과거의 내 모습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반, 내가 살았던 서울의 주택가에는 매주 개장수가 동네를 돌아다녔다. 당시에는 도둑을 막기 위해 집집마다 마당에서 개를 길렀다. 우리 동네 개들은 일주일에 한 번 오는 개장수의 목소리를 기가 막히게 알아들었다. 평소에는 작은 소리에도 다함께 목청껏 짖어대던 개들이 "개 팔아요!"라는 개장수의 외침에는 쥐죽은 듯 조용했다. 개장수에게 팔려 가면 어떻게 되는지 아는 것 같았다.

우리 집에서도 하얀 스피츠 종의 개 한 마리를 길렀다. 비록 마당에서 길렀지만, '뚜뚜'라는 이름의 그 개는 내게 방범용이라기보다는 애완용에 가까웠다. 나는 뚜뚜를 꽤 예뻐했지만 좋은 주인은 아니었다. 뚜뚜가 개장수에게 팔려가는 것을 방관했기 때문이다. 당시 고3이었던 나는 입시 공부를 핑계로 개장수에게 팔려간 뚜뚜에 대해 별로 마음을 쓰지 않았다.

개장수에게 팔린 개들이 어디로 갈지는 뻔했다. 환경이 열악한 농장에 갇혀 있다가 잔혹하게 도축되어 고기가 됐을 것이다. 당시에는 기르던 개를 개장수에게 파는 사람들이 많았고, '반려동물'이라는 말은커녕 제대로 된 동물보호단체도 없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어떤 변명을 늘어놓든, 뚜뚜에 대한 죄스러운 마음은 지울 수 없다. 

오늘날에는 가정에서 기르는 개에 대한 인식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달라졌다. '반려견'이라는 말이 '애완견'을 대체하고 있다. 개를 데려올 때는 펫샵에서 구입하기보다는 보호소에서 입양하는 것이 권장된다. 기르던 개를 잡아먹거나 개장수에게 넘기는 것은 (적어도 도시에서는) 상식적이지 않은 일로 여겨진다. 무엇보다 생명에 대한 책임감이 반려인의 필수조건으로 간주되는 세상이다.  

"도축장으로 팔려간 서울대공원 사슴과 흑염소 살려주세요"

 지난 20일, 케어와 시민들이 도축장으로 팔려간 서울대공원 사슴·흑염소를 위한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지난 20일, 케어와 시민들이 도축장으로 팔려간 서울대공원 사슴·흑염소를 위한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 조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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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은 서울시가 지정한 '차 없는 날'이었다. 이날 차 없는 거리가 된 서울시청 앞에서 동물보호시민단체 '케어'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개·고양이 입양홍보 부스를 열었다. 하지만 입양 캠페인보다 많은 주목을 끌었던 행사가 있었다. 바로 서울대공원 동물원(아래 서울동물원)의 사슴과 흑염소를 위한 케어와 시민들의 거리행진이었다.

케어는 8월 19일, 서울동물원의 사슴 및 흑염소 43마리가 도축농장에 식용으로 매각되는 현장을 급습했다. 현재 도축농장에는 스트레스 등으로 폐사한 흑염소들을 제외한 서울동물원의 사슴과 흑염소 37마리가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 서울동물원은 농장주가 도축을 포기한 이 동물들의 재매입은 물론 재수용마저 거부했다. 그 결과 케어가 재매입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모금 운동을 벌이고 있다.

서울동물원은 이번 사건과 관련하여 9월 14일 긴급토론회를 열었다. 그러나 행사의 대부분이 사건 해결과 무관한 발표들로 구성돼 토론회장에서 동물단체와 시민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토론회 이후 케어는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동물원장을 비롯한 관계자들의 직위해제를 요청하는 온라인 서명운동에 돌입했다.

'잉여'에서 '풀잎'으로

 시민들이 이름을 지어준 37마리의 사슴·흑염소들. 이 중에는 기자가 '풀잎'이라고 이름 붙인 흑염소도 있다.
 시민들이 이름을 지어준 37마리의 사슴·흑염소들. 이 중에는 기자가 '풀잎'이라고 이름 붙인 흑염소도 있다.
ⓒ 조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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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케어는 시민공모를 통해 도축농장에 있는 37마리의 사슴과 흑염소 하나하나에게 이름을 지어줬다. 동물원에서 인기 많은 동물들은 '펜자(호랑이)'나 '제돌이(돌고래)'와 같이 자기만의 이름을 갖고 있다. 그러나 도축농장에 매각된 사슴과 흑염소에 대해 시민들이 아는 이름은 동물원이 그들을 지칭했던 '잉여동물'이라는 것 뿐.

사람들은 정을 주지 않는 동물에게는 굳이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 식용으로 사육되는 소·돼지에게 이름이 아닌 식별번호가 매겨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관리상의 편의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 동물들을 개별적 존재가 아닌 하나의 집단으로 뭉뚱그려 간주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련의 번호로 몰개성화된 동물들은 각자의 개성을 지닌 고유한 개체들로 간주되지 않는다. 그저 추상적인 집단으로 간주될 뿐이다. 사람들은 그런 존재들의 고통에 공감하기 어렵다. 그 결과 그들의 생명을 취하는 불편한 마음도 희미해진다.

무명의 존재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것은 그것을 특별한 존재로 받아들이겠다는 선언이다. 그래서 동물보호단체들이 동물을 구조하는 작업은 해당 동물의 이름을 짓는 일로 시작된다. 나 역시 37마리의 사슴과 흑염소들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케어의 공모에 참여했고, 흑염소 한 마리에게 '풀잎'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그리고 풀잎과 다른 동물들이 무사히 구조될 수 있도록 20일 거리행진에 나섰고, 독자들의 관심을 촉구하는 기사를 쓰고 있다.

 20일 광화문과 시청을 오가며 거리행진을 하는 케어와 시민들.
 20일 광화문과 시청을 오가며 거리행진을 하는 케어와 시민들.
ⓒ 조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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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이름공모에 참여한 시민들(일명 사슴·흑염소 '지킴이')과 케어 활동가들은 광화문과 서울시청 거리를 행진하며 도축농장에 있는 서울동물원 동물들을 살려달라는 구호를 외쳤다.

겉보기엔 다를지라도, 이날 진행된 개· 고양이 입양홍보 캠페인과 사슴·흑염소를 위한 거리행진의 본질은 똑같다. 도축농장에 식용으로 매각된 사슴·흑염소들을 외면하는 서울동물원은, 기르던 개·고양이를 아무렇게나 처분하는 무책임한 주인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가정에서 기르는 개에게 중성화수술(불임수술)을 시켜주지 않고 번식하게 내버려두면 버림받는 동물들이 생겨난다. 돈을 벌기 위해 애견샵에 강아지를 납품하는 번식장은 동물들의 과잉공급을 야기한다. 이런 곳에서 평생 번식기계로 살다가 쓰임을 다한 어미 개들, 그리고 애견샵에서 팔리지 않아 재고품이 된 개들은 식용으로 재활용된다. 동물원에서 잉여동물이 태어나고 도축농장에 매각된 현실도 이와 다르지 않다.

결국 개·고양이 입양홍보와 사슴·흑염소를 위한 거리행진은 동물에 대한 낙후된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캠페인이다. 무책임한 이들이 저지른 일을 동물보호단체와 시민들이 수습하고 있다. 그나마 반려동물인 개·고양이 구조를 위한 모금에는 비교적 빠른 시간 내에 많은 액수가 모이지만, 여타 동물들을 위한 모금은 외면당하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케어는 동물원에서 보호받던 동물들마저 식용으로 희생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면, 우리나라에 동물보호운동의 희망은 없다고 주장한다. 이번 서울동물원 사건에 대한 보다 많은 관심을 촉구하는 이유다. 우리 사회가 생명을 대하는 기본적인 '상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생명에 대한 감동"이 공허한 비전 되지 않으려면

동물보호단체 '케어'의 서울동물원 사슴·흑염소 살리기 모금  자세한 공지는 케어 홈페이지 참고 
http://me2.do/FD4cHZWV
▲ 동물보호단체 '케어'의 서울동물원 사슴·흑염소 살리기 모금 자세한 공지는 케어 홈페이지 참고 http://me2.do/FD4cHZWV
ⓒ 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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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행사에서 이번 서울동물원 사건에 대한 시민들의 생각을 물었다. 본인을 서울시민이라고 밝힌 김혜준씨는 동물원에서 모든 동물을 관리하기 어렵다는 현실은 이해하지만, 동물원은 그곳의 동물들을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서울동물원이 이번 사건에 대해 제대로 된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을 내놓지 않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표했다.

또한 서울시민인 박지현씨는 사슴·흑염소뿐만 아니라 소위 '가축'에 속하는 다른 동물들도 이번 사건과 같은 방식으로 처리됐을 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박씨는 "동물원 동물들이 식용으로 희생되지 않도록 보호하는 법이 아직 없기 때문에 서울시가 동물원에게 압력을 가해야 하는데 못 그래 아쉽다"며 서울시와 동물원의 조속한 행동을 촉구했다.

그동안 서울동물원은 국내 동물원의 대표 주자를 자부해왔다. 또한 서울대공원 정문에 있는 반려동물 입양센터는 무엇보다 생명에 대한 책임이 강조되는 곳이다. 그런 동물원이 도축농장에 있는 사슴과 흑염소들에게 보이는 태도는 납득하기 어렵다. 서울동물원은 그 동물들이 도축농장에 매각된 줄 몰랐다고 주장할 뿐, 사건 발생일로부터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동물들의 구조에 나서지 않고 있다.

지난 14일의 토론회에서 서울동물원은 "생명에 대한 감동과 보전의 중심"을 새로운 비전으로 내세웠다. 생명에 대한 감동은 동물원의 열악한 시설을 개선하는 대외적인 노력으로만 얻어지지 않는다. 한때는 가족이었던 동물들을 비정하게 내치는 동물원은 감동을 줄 수 없다.

서울동물원의 비전이 공허한 장식용 어구에 그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동물원이 지금이라도 도축농장에 있는 사슴과 흑염소들의 구조에 나설 것을 다시 한 번 촉구한다.

 도축장으로 팔려간 서울대공원 사슴과 흑염소를 위한 거리행진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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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장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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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동물이 함께 행복해지는 날을 꿈꾸는 사람입니다. 인간 사회의 비인간 약자, '동물'에 대해 알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