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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헤이 주한 영국대사.
 찰스 헤이 주한 영국대사.
ⓒ 세종포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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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덕수궁 정동길 자락에 '시크릿 가든(secret garden)'처럼 고요하게 자리한 주한 영국대사관 관저. 이곳은 한국과 영국의 외교사를 상징하는 건물이다.

영국은 지난 1883년 조선과 통상조약을 체결한 뒤 몇 년간 영사관 부지를 물색했다. 그러다가 선조의 맏아들 임해군의 저택이 있었던 이곳을 사들여 지난 1890년부터 건물을 짓기 시작해 1892년 완공했다. 태평양 전쟁 때에는 영사관 직원들이 일본으로 강제송환되면서 스위스 총영사관이 이 건물의 관리를 맡았고, 한국전쟁 때에는 영국군과 호주군의 집결지로 사용됐다. 전쟁이 끝난 지난 1954년에야 다시 외교건물로서의 기능을 되살려 지금에 이르렀다(archur가 해석하는 도시.건축).

대사관저는 이렇게 120년이 넘는 시간을 견뎌왔다. 원형만 그대로 간직한 것은 아니었다. 기업 지원 등을 통해 자국의 이익을 관철해온 역할도 120여 년 전 그대로였다. 지난 17일 그곳에서 부임 7개월째를 맞은 찰스 헤이(Charles Hay, 51) 주한 영국대사를 만났다. 지역 중견언론인 연구모임인 '세종포럼' 소속 기자들과 함께였다.

"아빠가 '강남스타일' 부른 싸이의 나라에 가게 됐어"

1965년 스코틀랜드 태생인 찰스 헤이 대사는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지난 1993년 영국 외무부에 들어와 안보정책부, 주체코 영국대사관과 주유럽연합(EU) 영국 대표부, 주스페인 영국대사관을 거쳐 인사기획관실 부부장과 영사국장을 지냈다.

그는 전임 대사의 임기가 끝나가자 가장 먼저 한국행을 신청했다. 그런데 두 딸이 잘 모르는 곳을 가야 한다고 설득하는 일이 그에게 남았다. 두 딸에게 "아빠가 이번에 '강남스타일'을 부른 싸이의 나라에 가게 됐단다"라고 말하자, 두 딸은 매우 행복했다고 한다. 두 딸은 싸이의 '강남스타일' 춤을 따라 출 정도로 싸이의 팬이다. 한국의 김도 아주 좋아한다고 한다.

그는 "영국에서 한국에 많이 관심갖기 시작했다"라며 "예전에는 런던에서 한국식당을 찾기 어려웠는데 지금은 쉬워졌고, 영국 센트럴에 위치한 랭카셔라는 학교에 한국어학과가 개설돼 있다"라고 전했다.

"그 학교에 방문해서 왜 한국어를 공부하고 싶은지 물어본 적이 있다. 그랬더니 학생들이 K-pop, 한류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K-pop이나 한류를 좋아해) 해마다 한국어를 공부하는 학생들이 증가하고 있다. 또 한국에 거주하는 영국인도 증가하고 있다. 이번 여름에 경북대를 방문했는데, 교환학생으로 온 영국 학생들이 많이 있었다. 그들 가운데에는 영국을 한번도 떠나본 적이 없는 경우도 있었다."

찰스 헤이 대사는 "이번 주에는 가평에 있는 아침고요수목원을 방문했는데 그곳에 영국 가든을 오픈했다"라며 "영국과 한국이 정원 분야에서도 많은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박근혜 대통령이 영국을 방문한 이후 한국과 영국의 문화 교류가 잦아지고 있다"라며 "올 11월에는 한국과 영국의 장관급 문화회담이 열릴 예정이다"라고 전했다.

그는 "삼성 핸드폰의 영국 시장 점유율이 높고, 영국인들도 LG전자 제품을 좋아한다, 현대자동차도 영국에서 잘 팔리고 있다"라며 "그런데 영국인들은 삼성이 어느 나라 기업인지 모른다"라고 말했다.

"제가 영국 길거리에서 '삼성이 어느 나라 기업이냐?'고 물어보면 영국인들은 '모른다'고 답할 것이다. 다른 한국 브랜드들도 한국 제품인지 잘 모른다. 그래서 제가 한국 브랜드를 어떻게 홍보할 것인지 영국에 있는 한국 대사와도 의논한다. 영국에 있는 한국 대사관에서도 한국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많이 노력하고 있다."

'강남스타일' 싸이의 팬인 두 딸.
 '강남스타일' 싸이의 팬인 두 딸.
ⓒ 구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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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기업들이 이익을 내도록 자유롭게 놔둬야"

특히 찰스 헤이 대사는 최근 한국에서 '먹튀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홈플러스 매각건을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영국 유통업체 테스코(TESCO)가 최근 아시아계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에 홈플러스를 7조2000억여 원에 팔기로 결정했다. 테스코가 한국에 투자한 금액과 매각으로 인한 세금 등을 제외하더라도 5조 원에 이르는 매각차익을 얻을 것으로 알려졌다. 테스코는 본사의 회생자금(70억 달러)을 마련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매각했다고 주장하지만 '먹튀 논란'이 일고 있다.

그는 한국에 투자한 영국기업과 영국에 투자한 한국기업을 차례로 언급한 뒤 "최근에 뉴스에 많이 보도된 테스코도 있다"라며 "현재 매각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많이 언급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어 "어찌 됐든 한국은 외국회사가 투자하기 좋은 나라라고 생각한다"라고 덧붙였다.

이어 기자가 오찬 자리에서 "한국에서는 테스코가 엄청난 차익을 얻고 먹튀한다고 보고 있는데 이런 시각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묻자, 그는 "사실은 내가 물어보고 싶었던 질문이다"라며 이렇게 설명했다.

"테스코는 처음에 삼성과 같이 투자했다. 나중에 삼성은 철수했고, 테스코만 남았다. 비즈니스(사업)가 잘 됐다. 수년 동안 홈플러스는 한국 소비자에게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했다. 그런데 한국 시장과는 전혀 무관하게 본사 사정 때문에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결국 홈플러스를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다른 업체에서 홈플러스를 사게 되면 이익을 창출할 수 있다"라며 "홈플러스에서 이익을 내고 매각하기로 결정했는데 왜 이것을 부정적으로 보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라고 토로했다.

이어 찰스 헤이 대사는 "7조 원에 팔아서 얼마의 이익을 남겼는지는 잘 모른다"라며 "다만 한국과 영국은 차이가 있다"라고 말했다.

"영국에선 어떤 노조라도 경영진에게 (기업을) 팔지 못하게 하는 권리는 없다. 영국에선 노조가 경영진에게 '이렇게 해라'라고 얘기하고 상의할 수 있지만 제품을 생산할 때 '이것을 중단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회사의 불확실성 등 때문에 노조에서 반대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홈플러스가 비즈니스(사업)을 잘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새로운 경영진이 들어와도 노조 직원들을 자른다거나 하는 변화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일각에서 홈플러스 매각 차익에 따른 세금 부과가 제대로 이루어졌는지를 의심하는 시각에는 "그것은 한국 정부에서 할 일이다"라며 "정확하게 파악해서 세금을 걷는 것은 정부의 몫이다"라고 강조했다.

"영국 스탠다드 차터드 은행을 예로 들겠다. 최근에 스탠다드 차터드가 한국에서 발생한 이익을 영국 본사에 보냈다. 그것을 (한국) 언론에서 비판적으로 보도했는데 그런 시각을 이해하기 힘들다. 글로벌기업들은 이쪽에서 저쪽으로 (이익금을) 보내고, 그 이익에는 합당한 세금을 냈다. 삼성도 영국에서 이익을 많이 창출했을 때 한국으로 보낼 텐데 영국에서는 이것을 아무도 비판하지 않는다. 국제 비즈니스 환경을 성공적으로 유치하기 위해선 글로벌 회사들이 적당한 시기에 이익을 낼 수 있도록 자유롭게 놔둬야 한다."

120여년의 역사를 지닌 주한 영국대사관저.
 120여년의 역사를 지닌 주한 영국대사관저.
ⓒ 구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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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주재 대사관에서도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 잘 몰라"

찰스 헤이 대사는 지난 6일 열린 '철원 DMZ 국제평화마라톤 대회'에 참가해 5km를 뛰었다. 그는 마라톤 풀코스를 3번, 하프코스를 1번 완주했을 정도로 달리기를 좋아한다.

마라톤 참가 소감을 묻자 그는 "내 나이에는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다"라며 웃었다. 그는 "비무장지대는 한번도 보지 못한 지역이었다"라며 "논이나 밭, 산, 경치가 매우 아름다웠지만, 그것을 보면서 남북이 분단돼 있다는 사실에 착잡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영국은 한반도의 평화로운 통일을 바라고 있다"라고 전제한 뒤, "제가 다른 사람에게 종종 '한국의 통일이 언제 이루어질 것 같냐?'고 묻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5~10년 사이라고 대답한다"라며 "아주 흥미롭다고 생각하는 것은 '내일이 아니라는 것'과 '50년 이후'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통일은 아무도 예측하지 않을 때 갑자기 올 수 있다"라며 "대사로 재임하고 있는 동안에 통일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북한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빨리 이루어지는 것이 좋다"라고 강조했다.

찰스 헤이 대사는 지난 8월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마이클 기퍼드 평양 주재 영국대사를 만난 것과 관련해 "평양의 영국 대사관과 거의 매일 이메일을 주고받는다"라며 "하지만 평양에 주재하는 분들도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잘 알 수 없다고 한다"라고 전했다.

그는 "거기(평양주재 영국대사관)서도 여기(주한 영국대사관)처럼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파악하려고 한다"라며 "하지만 평양에 있는 분들은 '외부에 나갈 수 있어서 거리에서 일어나는 일 정도는 안다, 북한 대사에게 평양의 건물은 어떻게 생겼는지, 사람들은 어떻게 생겼는지, 길거리는 어떤지를 자주 물어본다'고 말했다"라고 전했다.

그는 '한국에서 접하는 북한 정보의 신뢰도'를 묻는 질문에는 "완전히 정확한 것은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라며 "북한에서 미사일을 발사하겠다고 할 경우 의도가 무엇인지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라고 답변했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유라시아 횡단철도 프로젝트'에도 "그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고 있어서 의견을 표명할 수 없다"라며 "다만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런던을 갈 수 있다면 환상적일 것 같다"라고 말했다.

"지하철에서 한국은 핸드폰, 영국은 종이신문"

찰스 헤이 대사는 외교관답게 유머가 넘쳐났다. 기자들이 "영국 등 유럽 언론에 비해 한국의 언론환경이 어떤가?"라고 묻자 "온 더 레코드(on the record)에서는 많이 이야기할 수 없다, 술 마시면서 자세하게 이야기하겠다"라고 말해 좌중에 큰 웃음을 선사했다.

그는 "다만 언론환경이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라며 "대통교통을 이용할 때 한국에선 거의 다 핸드폰을 보고 있는데 한국에 있다가 런던으로 갔더니 기차나 지하철에서 모두 신문을 읽고 있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은 다른 나라와 다르게 언론 환경이 빠르게 발전했고, 언론환경이 더 다양하고, 유동적인 것 같다"라며 "주로 온라인을 통해서 (뉴스 등의) 미디어를 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영국에서는 <가디언>과 <이코노미스트>가 온라인 매체로 상당히 성공적이다"라고 덧붙였다.

최근 영국 노동당이 제레미 코빈을 새 당수로 선출한 것과 관련, 찰스 헤이 대사는 "영국 외교관은 영국 정당정치을 언급할 수 없다"라며 "언론을 통해 어떤 식으로 정치가 돌아가는지 인식하고 있을 뿐이다,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으면 저한테 말해주기 바란다"라고 재치있게 답변을 피해갔다. 다만 그는 "제가 한 가지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분이 당수로 선출될 것이라고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라고 말했다.

120여년 역사를 지닌 대사관저 앞 마당에서 세종포럼 소속 언론인들과 기념촬영하는 찰스 헤이 대사.
 120여년 역사를 지닌 대사관저 앞 마당에서 세종포럼 소속 언론인들과 기념촬영하는 찰스 헤이 대사.
ⓒ 세종포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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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주한 영국대사관은 오는 10월 2일과 3일 신촌 '문화의 거리'에서 '영국 그레이트 페스티벌'을 연다. 이 페스티벌에서는 영국 왕실 근위병 군악대(Band of the Coldstream Guard)가 행진 등 다양한 공연을 펼친다. 찰스 헤이 대사는 "이번 그레이트 페스티벌 행사를 통해 한국인들이 영국의 다양한 면모를 경험하고, 너무나도 유명한 빨간색 튜닉과 곰가죽 군모를 쓴 군악대의 멋진 퍼포먼스를 즐길 수 있다"라고 홍보했다.

한편 영국 정부는 '2016-2017년도 쉐브닝 장학금' 장학생 후보자를 온라인으로 접수하고 있다. 북한을 비롯해 전 세계 150여 개국 1500여 명을 선발하는 쉐브닝 장학생은 오는 11월 3일까지 신청받는다. 쉐브닝 장학생에 선발되면 내년 9월부터 영국 유명대학에서 1년간 석사과정을 이수할 수 있도록 학비와 생활비, 항공료 등을 지원 받는다. 영국 외교부장관의 관저 명칭에서 이름을 딴 쉐브닝 장학금은 지난 1983년부터 시작됐고, 그동안 한국 1100여 명 등 총 4만4000여 명이 그 혜택을 받았다.


태그:#찰스 헤이, #주한 영국대사관저, #세종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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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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