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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난민기구는 난민 문제를 알리기 위해 거리 모금 캠페인을 하고 있다. 활동가들이 양손으로 세모꼴 지붕을 만들고 있다. 두 손 모아 난민을 보호하자는 기구의 상징이다.
 유엔난민기구는 난민 문제를 알리기 위해 거리 모금 캠페인을 하고 있다. 활동가들이 양손으로 세모꼴 지붕을 만들고 있다. 두 손 모아 난민을 보호하자는 기구의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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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를 걷다 보면 파란 조끼나 유니폼을 입고서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유엔난민기구 거리 모금·홍보 캠페인 활동가들이다. 사실 한국 사회에서 거리 모금은 익숙한 풍경이 된 지 오래다.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만 해도 2009년 거리 캠페인을 시작했으니 벌써 6년째 시민들과 함께한 셈이다.

너무 익숙한 탓일까. 시민들은 거리에서 만난 캠페인 활동가를 주목하지 않는다. 그저 '돈'을 요구하는 사람이라 여길지도 모른다. 외면하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활동가들의 목소리는 갈 곳을 찾지 못한 채 뭉개진다. 온갖 몸짓으로 주목받으려는 활동가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는 사람들이 거리에 가득하다. 인격을 존중하지 않는 외면, 몰인격이 팽배한 한국 사회는 그 옛날 국제사회로부터 원조받던 과거를 기억에서 지운 걸까.

지구촌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사상 최악의 난민 사태를 맞고 있다. 유엔난민기구가 집계한 전 세계 강제 이주민은 5,950만 명에 이른다. 사진은 난민들의 소식을 알리는 유엔난민기구 사이트 갈무리.
 지구촌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사상 최악의 난민 사태를 맞고 있다. 유엔난민기구가 집계한 전 세계 강제 이주민은 5,950만 명에 이른다. 사진은 난민들의 소식을 알리는 유엔난민기구 사이트 갈무리.
ⓒ 유엔난민기구 사이트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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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난민 5,950만 명…난민 급증으로 유엔난민기구 파산 위기

기자는 유엔난민기구 거리 모금 활동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한다. 허나 이에 앞서 전반적인 난민 상황이 어떤지 짚어야겠다. 지금 지구촌은 역사상 최악의 난민 사태를 겪고 있는 반면, 한국은 여전히 난민 문제에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한국은 1994년부터 2013년까지, 난민 신청을 한 보호대상자 6,643명 중 377명만 난민으로 인정했다. 한국 사회의 무관심이 여실히 드러나는 통계 수치다.

올해 유엔난민기구가 집계한 강제이주민(전쟁·재해 등으로 고향을 떠난 사람들. 시리아 내전 같이 대량으로 발생한 경우에는 잠정적으로 난민이라 통칭한다. - 기자 주)은 5,950만 명. 매일 4만 2,500명이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고 있다. 이는 인류 최대 비극이라 불리는 2차 세계대전 당시보다 심각한 수준이다. 난민 급증의 주요 원인은 2011년 발발한 시리아 내전이다. 내전이 5년 차에 접어들면서 현재 실향민은 1,160만 명에 이르렀다. 그중 400만 명은 타국에서, 760만 명은 자국에서 피난 생활을 이어가는 중이다.  

이런 심각한 상황에도 국제사회는 여전히 소극적·배타적이다. 대표적인 예가 유럽이다. 과거 유럽연합은 리비아의 독재자 고 무아마르 카다피와 모종의 거래를 했다. <복스>는 9월 5일 난민 기획 기사에서, 지중해를 건너려는 난민과 불법 이민자를 감시·검거하는 조건으로 유럽연합이 카다피 정권에게 뒷돈을 주었다고 보도했다. 리비아 강제 수용소의 인권 유린이 심각한 수준이었다는 걸 빤히 알면서도 유럽연합이 골치 아픈 난민 문제를 카다피에게 맡긴 것이다. ( 바로가기: <Vox> Europe's refugee crisis, explained)

시리아 난민 사태에 있어서도 유럽연합의 태도는 변함없다. 올해 초 유럽연합은 난민 본국 송환 방침을 고수했다. 이제야 궁여지책으로 '난민 강제 할당'을 논하고 있지만 회원국들 간 의견 일치가 쉽지 않다. 세 살배기 시리아 난민 '아일란 쿠르디'의 비극이 전 세계에 알려지지 않았다면, 9월 17일 유럽의회가 승인했던 12만 난민 분산 수용 결정은 장담조차 못 할 상황이었다. ( 바로가기: <연합뉴스> 유럽의회, 난민 12만 명 분산 수용안 승인)

그렇다고 유럽의 미적지근한 태도를 마냥 다그칠 수는 없다. 타 문화권 난민을 대거 수용하는 건 어떤 국가든 부담이다. 근원을 해결하는 게 합리적이지만 난민 발생의 주요 원인인 내전 종결이 쉬운 건 아니다. 정치·사회·외교 등의 사안이 복합적으로 얽혀있기 때문이다.

현 시리아 상황이 그렇다. 반군·정부군 갈등에 이슬람 국가(아래 IS)가 끼어들어 3파전이 되었다. 시아파·수니파로 나뉘는 이슬람 종파 갈등과도 관련 있어, 세계 경찰을 자처하는 미국이 섣불리 개입하지 못한다. 자칫하면 집안싸움에 섣불리 끼어들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 뿐 아니라, 시아파 맹주인 이란과 수니파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관계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튈 수 있기 때문이다. ( 바로 가기: <한겨레> 수니파 대 시아파…중동은 지금 '종파 전쟁터')

해서 지금은 어느 때보다 국가 간 이해관계에서 다소 자유로운 국제연합(아래 유엔)의 역할이 중요하다. 특히 유엔난민기구의 왕성한 활동이 필요한 시점이다. 사실 유엔난민기구는 작년에만 127개국에서 7,750명의 직원이 5,495만 명을 도왔다. 직원 한 명당 7,000여 명을 도운 셈이다. 자원을 집중하는 주요 대상국은 난민이 대량 발생한 시리아·이라크·중앙아프리카공화국·남수단 등이다. 시리아만 해도, 인접 국가인 터키·이라크·요르단 국경 인근에 20여 개 난민촌을 건설, 550만 명을 보호하고 있다. 유엔난민기구가 작년에 난민 보호를 위해 사용한 금액만 해도 33억 5,540만 달러다. 환산하면 약 3조 9,400억 원에 달한다.

얼핏 보면 난민 기구 예산이 많은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 예산으로는 현재 벌어지는 난민 사태를 감당할 수 없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9월 6일 유엔난민기구를 비롯한 유엔 산하 인도주의 기구들이 파산 위기에 직면했다고 보도했다. 유엔난민기구 안토니오 구테레스 고등판무관은 급증하는 난민들에게 물과 식료품을 제공할 수도 없는 지경이라고 밝혔다. 게다가 유엔난민기구는 올해 예산을 작년 대비 10% 삭감한 상황이다. 유엔 회원국과 개인의 자발적 후원금으로 기구를 꾸리는 만큼 국제사회의 도움은 절대적이지만 전망은 낙관적이지 않다. 시리아 사태에만 13억 달러가 필요하나 현재 모금액은 35% 정도인 4억 달러뿐이다.

한 명의 후원자를 만나기 위해서 활동가는 100여 명의 시민에게 인사를 건넨다. 하지만 활동가들이 모두에게 환영받는 건 아니다.
 한 명의 후원자를 만나기 위해서 활동가는 100여 명의 시민에게 인사를 건넨다. 하지만 활동가들이 모두에게 환영받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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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간 이상 거리에서 캠페인, 200명 시민 중 후원자 1~2명에 불과해

앞서 언급했듯이 유엔난민기구는 자발적 후원금으로 운영하는 기구다. 그중 6%를 전 세계 일반 시민과 기업들이 감당하고 있다. 6%는 적지 않다. 2014년 후원금 비율을 보면 유럽연합이 8%, 영국·일본이 6%다. 이를 고려하면 민간 후원은 무시할 수 없는 중요 재원이다.

민간 후원을 위해 난민기구는 다양한 모금 방법을 사용한다. 그중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것이 서두에 언급했던 거리 모금 캠페인이다. 일명 'Face to Face'(F2F), 면 대 면으로 사람을 만나는 방식이다. 활동가는 시민을 만나 기구의 활동과 가치를 알린다. 공감한 시민은 그 자리에서 후원을 결정한다. 기존 후원자는 직접 활동가를 만나 궁금했던 점을 물어보고 최근 이슈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캠페인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현장이기 때문에 기구를 좀 더 친밀하게 느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 현장을 직접 담기 위해, 유엔난민기구 거리 모금 캠페인을 전문적으로 진행하는 '도움과나눔' 소속 활동가들(도움과나눔은 NGO 전문 펀드레이징 업체로서 유엔난민기구와 오랜 파트너십을 맺어 왔다. – 기자 주)과 함께 대전 복합터미널로 향했다.

유동 인구가 많은 곳에 기구를 알리는 부스와 사진 패널을 설치하고 캠페인을 시작했다. 2~3인 씩 팀을 꾸린 활동가들은 유니폼을 갖춰 입고 거리 모금에 임했다. 일은 단순했다.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바지런히 인사를 건네고 캠페인 참여를 요청하면 되었다.

다만 노동 강도가 세다. 활동가는, 가던 길을 멈추고 잠시 시간을 내어 준 사람들에게 유엔난민기구가 무엇이며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설명했다. 이 과정을 6시간 동안 되풀이했다. 냉대를 받아도 미소는 언제나 유지해야 한다. 유엔난민기구의 이미지를 훼손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감정노동과 육체노동을 동시에 해야 하니 활동가들의 업무 피로는 상당하다. 한 시간 남짓 주어지는 휴식 시간에는 커피숍 구석을 찾아 쪽잠을 청하기도 한다.

복합 터미널에는 수많은 사람이 지나다녔다. 그중 유엔난민기구 거리 모금 캠페인 활동가들을 반가워하는 시민은 거의 없었다. (사진은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복합 터미널에는 수많은 사람이 지나다녔다. 그중 유엔난민기구 거리 모금 캠페인 활동가들을 반가워하는 시민은 거의 없었다. (사진은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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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응이 호의적이면 좋으련만 사람들은 대부분 캠페인 현장을 본체만체 지나갔다. 활동가들은 '안녕하세요, 난민 보호에 동참해 주세요', '1분만 참여하세요'라고 말하면서 다채롭게 인사했으나 열에 아홉은 반응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사람들이 냉담했던 건 아니었다. 현장에서 2~3년 이상 근무한 활동가들은 유엔난민기구 캠페인을 대전에서 처음 시작한 재작년 8월을 회상했다. 그때는 적극적으로 들어주는 사람이 많았다고 했다. 부스가 설치된 풍경 자체가 생소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리 캠페인이 햇수로 만 2년이 넘자, 대전 시민들은 신선하지 않은 유엔난민기구를 더 이상 주목하지 않았다.

활동가들이 업무를 끝낼 때마다 산출하는 통계를 보면 사람들의 반응을 수치로 확인할 수 있다. 캠페인을 하는 6시간 동안 한 명의 활동가는 보통 150~200명 정도를 만난다. 이중 멈춰서 설명을 듣는 사람이 10명 안팎이다. 이들 모두가 후원에 참여하는 건 아니다. 1~2명만 후원을 결심한다. 100명을 만나야 후원에 동참할 1명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후원에 동참할 수 없는 사정은 다양했다. 가장 빈번한 건 넉넉지 못한 주머니 사정이다. 낮에 캠페인을 하다 보니 주로 만나는 대상은 대학생·취업준비생·주부 등이다. 일반적으로 대학생들은 국제 문제에 관심이 많지만 고정적인 수입이 없다. 알바와 용돈으로 생계를 잇다 보니 후원을 결정하지 못하고 돌아서는 경우가 허다하다. 취업준비생은 좀 더 안쓰럽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지만 떨어지고, 몇 달째 취업에 실패한 사연을 듣다 보면 후원을 권유하는 게 오히려 민망해진다. 갓난아기를 품에 안은 어머니들의 신혼살림 꾸리기야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남편과 상의해서 결정하겠다는 말을 들으면 행여나 무리한 후원으로 가정의 평화가 깨지는 건 아닐지 활동가들은 조심스럽다.

대부분 시민들은 난민을 가난한 사람들로 알고 있다. 난민은 전쟁이나 재해, 정치적 박해 등으로 보호가 필요한 사람들을 뜻한다. 사진은 시민에게 난민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활동가의 모습이다.
 대부분 시민들은 난민을 가난한 사람들로 알고 있다. 난민은 전쟁이나 재해, 정치적 박해 등으로 보호가 필요한 사람들을 뜻한다. 사진은 시민에게 난민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활동가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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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한국의 가난한 사람이나 돕지 왜 외국 사람을 도와주냐"면서 괜한 역정을 부리는 사람도 있다. 활동가들은 이런 경우 참 섭섭하다고 했다. 캠페인 현장 매니저인 한 활동가는 난민 보호에 국경·인종의 제한이 있을 수 없다고 했다. "길에 한국 아이와 외국 아이가 쓰러져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외국 아이를 외면하시겠습니까"라면서 한국 역시 과거 원조를 받던 나라라는 걸 상기했다.

기부천사로 잘 알려진 연예인 차인표 씨도 비슷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2012년 차 씨는 SBS '힐링캠프'에 출연했다. 당시 방송에서 진행자는 "외국 사람들보다 한국 사람을 돕는 게 우선이지 않느냐"며 질문했다. 이에 차 씨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돕는 것은 우리의 생활이어야 해요"라고 답했다. 국제어린이 양육기구 '컴패션'을 통해 30여 명의 어린이를 후원하는 차인표·신애라 부부는 국내 어린이를 위해서 1억 원 이상을 기부해왔다. 아동학대예방 홍보대사로 활동했던 차 씨는 2006년 어린이날 아동복지 증진에 따른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한국에 돈이 없어서 가난한 이웃이 존재하는 게 아니다. 과거 이명박 정부가 추진했던 4대 강 정비 사업에 들어간 돈이 자그마치 22조 2,000억 원이다. 당시 사업으로 인해서 우리나라 하천 생태계는 엉망이 되어 버렸다. 2009년 이명박 정부가 책정한 사회복지 예산은 27조 원. 한 해 복지 예산에 준하는 돈을 이명박 정부는 하천 생태계 파괴에 써버렸다. 이에 반해 유엔난민기구는 4대 강 예산의 5분의 1이 안 되는 3조 9,400억 원으로 우리나라 국민보다 많은 5,950만 명을 보살폈다. 진정 가난한 이웃을 생각한다면 캠페인을 진행하는 활동가들과 난민기구의 사업을 빈정거릴 게 아니다. 합리적인 시민 복지를 실현할 수 있는 지도자를 뽑는 게 우선이다.

강도 높은 운동에도 활동가들은 미소를 잃지 않는다. 기구의 얼굴로서 시민과 소통하는 활동가의 모습.
 강도 높은 운동에도 활동가들은 미소를 잃지 않는다. 기구의 얼굴로서 시민과 소통하는 활동가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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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님, 난민들의 어려움에 귀 기울여 주세요

강도 높은 노동에도 거리 모금 활동가들은 웃는다. 지난 8월부터 이 일을 시작했다는 임원전 씨도 캠페인 내내 미소를 잃지 않았다. 임 씨는 생글생글 웃으며 사람들에게 인사했다. 미소로 응대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노골적인 불쾌감과 함께 손사래를 치는 이도 있었다. 임 씨 역시 강한 거절을 당할 때면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 그에게 사람들의 거절이 힘든지 물어보았다.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기분이 좋지만은 않죠. 그렇다고 힘들 정도는 아닙니다. 제일 마음이 어려운 건 따로 있어요. 시민님께(활동가들은 사람들을 '시민님'이라 존칭한다. - 기자 주) 난민의 어려움을 상세히 전달해야 하는데 시간이 모자라 그러지 못할 때가 있거든요. 충분히 공감하지 못한 채 보내드리면 속상하죠."

사회학과 학생인 임 씨는 최근 제대했다. 캠페인 활동은 복학을 앞둔 몇 개월 동안 아르바이트로 잠시 하는 거다. 그렇다고 임 씨가 난민 문제에 진지하지 않은 게 아니다. 그가 설명할 때 사용하는 클리어 파일을 보면 시리아 난민 사태를 비롯한 각종 이슈들이 시각 자료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어떻게 하면 난민의 어려움을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을까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고심한 만큼 캠페인에 동참하는 시민을 만날 때면 임 씨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어제였어요. 한창 캠페인을 하고 있는데 앞에 있는 꽃집 사장님이 저희에게 오신 거예요. '이런 좋은 걸 사람들이 왜 안 해 주냐고' 말씀하시면서 바로 후원하셨어요. 캠페인 하는 내내 쭉 지켜보셨던 거죠. 이런 시민님을 만나면 정말 즐겁습니다."

캠페인 도중 제일 기억에 남는 순간이 언제였을까. 임 씨는 처음으로 깊은 대화를 나누었던 시민을 회상했다. 그 시민은 공무원 준비를 하던 고시생이었다. 정기적인 수입이 없어 후원에는 동참하지 못했지만 난민 문제뿐 아니라 개인의 속 이야기까지 나누었다고 했다. 임 씨는 당시를 떠올리며 "캠페인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많이 긴장했어요. 그런데 그 시민님을 만났고 저희는 많은 대화를 했습니다. 사람 대 사람으로 소통했던 그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네요"라고 말했다.

사회복지를 전공하는 이보람 씨도 사람들과 난민 문제를 공감하며 대화할 때 가장 흐뭇하다고 했다. 간혹 어린 자녀와 함께 캠페인에 참여하는 부모가 있다. 그럴 때면 아이를 좋아하는 이 씨는 아이 눈높이에 맞춰 난민 이야기를 전해 준다. 한국과는 너무나 다른 세상이 있다는 걸 알게 된 아이들은 어머니의 손을 이끌며 저들을 도와달라고 한다. 어린 아이들도 느끼는 사랑과 자비는 참으로 본능이다. 그 순수함을 발견할 때 이 씨를 비롯한 활동가들은 말 그대로 자연스러운 기쁨을 느낀다.

해질 무렵인 저녁 7시경 캠페인이 끝났다. 피곤에 늘어지는 몸을 추스르며 캠페인 부스를 철수하던 중 활동가들의 그룹 채팅방에 한 사진이 올라왔다. 두 권의 책을 찍은 사진이었다. 어떤 시민이 수고한다면서 손수 책을 구입해 선물한 것이다. 이런 뜻밖의 친절이 있을 때면 이들의 채팅방은 난리가 난다. 박카스 한 병이라도 받은 날이면 후원받을 때보다 더 기뻐하는 게 이들이다.

자신의 시공간을 낯선 타인에게 허락하지 않고, 상호 침범하지 않는 것이 공공윤리가 되어 버린 현대 한국 사회. 이런 사회에서 거리 모금 활동가들은 불편한 존재다. 허나 이들은 음료수 한 병, 책 한 권에도 난리가 나는 사람들이었다. 순간의 귀찮음으로 외면하기에는 좀 민망할 정도의 순수함이 아닌가. 곧 겨울이 온다. 난민들은 자신의 살길을 찾아 여전히 떠돌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겨울은 저들을 외면하지 않을 거다. 겨울에 취약한 건 거리 모금 활동가들도 마찬가지여서 벌써부터 걱정이 이만저만한 게 아니다. 만약 거리에서 활동가들을 마주치면 편의점에서 따뜻한 두유라도 사서 건네 보자. 눈에 보이는 사람에 대한 관심이 보이지 않는 난민에게로 이어질 것이다.

유엔난민기구 거리 모금 활동가들의 캠페인 현장 (1)
 유엔난민기구 거리 모금 활동가들의 캠페인 현장 (1)
ⓒ 송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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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난민기구 거리 모금 활동가들의 캠페인 현장 (2)
 유엔난민기구 거리 모금 활동가들의 캠페인 현장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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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난민기구 거리 모금 활동가들의 캠페인 현장 (3)
 유엔난민기구 거리 모금 활동가들의 캠페인 현장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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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손병관 기자



태그:#시리아, #유엔난민기구, #쿠르디, #유럽난민사태, #도움과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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