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교육

포토뉴스

대한민국 헌법 31조 1항은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소득(부모의 경제력) 격차에 따라 교육 격차는 더욱 확대되고 있고, 이에 따라 교육 불평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의 근간을 흔드는 오늘의 교육 불평등 실태를 살펴보고 대안을 모색한다. [편집자말]


▲ 올해 서울 소재 외고·국제고 7곳 신입생의 출신 중학교를 25개 자치구별로 나눠 시각화 작업을 했다. 상단의 학교 이름을 클릭하면, 각 자치구의 중학교에서 해당 학교에 진학한 학생들의 합계를 파악할 수 있다. 화살표 모양의 선이 굵을수록 많은 수의 학생이 진학한 것이다.
ⓒ 봉주영
[취재] 선대식, [시각화] 이종호, [디자인] 봉주영

1983년 10월 27일은 고교평준화가 고교서열화 체제로 옮겨가는 계기를 만든 상징적인 날이다. 당시 신문에는 단신 기사로 그 내용이 실렸다. 이날 있었던 일이 우리나라 교육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줄은 아무도 몰랐다.

'서울시교육위는 27일 외국어회화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대원외국어학교를 인가했다.' - <경향신문> 1983년 10월 27일치

1970년대 후반 영재 교육과 외국어조기교육을 위해 과학고와 외국어고를 설립하자는 주장이 나왔다. 결국 1983년 경기과학고가 과학고로서 처음 문을 열었다. 첫 외국어고인 대원외국어학교(현 대원외고)는 1983년 인가를 받고 1984년 개교했다.

대원외고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었다. 이전까지 체육·예술·국악·과학 등 특수고(현 특수목적고)가 공립이었던 데에 반해, 대원외고는 사립학교였다. 또한 '대원외국어학교'라는 이름에서 보듯이 대원외고는 정규 학교가 아니었다. 외고는 준교과과정을 운영하는 '각종학교'로 분류됐다. 과학고 같은 정규 학교와는 달리 자유로운 교과과정을 운영할 수 있었다. 신입생도 고입시험과 별개로, 영어 점수로 뽑았다.

개교 7년 뒤, 대원외고의 이름은 전국에 알려졌다. 1992년 전국에서 가장 많은 서울대 입학생을 낸 학교가 된 것이다. 1991년에도 서울예술고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서울대 입학생을 냈다. 1974년 서울·부산에서 시작된 고교평준화로 전통의 명문고들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대원외고는 '전국 최고의 입시 명문'이라는 지위를 얻었다. 다른 외고 역시 눈에 띄는 입시 성적을 자랑했다. 

당시 언론은 대원외고를 비롯한 외고가 입시 위주의 편법적 교과과정을 운영한다며 크게 비판했다. 외고가 입시명문으로 떠오르면서 고교평준화는 와해되기 시작했고, 중학생들이 고입 시험에 매달렸다. <경향신문>은 1991년 12월 22일치 기사에서 "입시학원마다 과학고·외국어고 대비 특별강좌를 개설, 중학생 과외를 부추기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사교육 경쟁은 결국 누가 더 사교육비를 많이 쓰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갈린다. 그런 점에서 사교육 경쟁은 고소득층에 유리하다. 명문대 진학의 지름길이 된 외고에는 고소득층의 자녀가 정말 많을까. <오마이뉴스>는 단독으로 2015년 서울 외고 6곳과 국제고 1곳의 전체 신입생 출신 지역을 입수해 분석했다.

외고에는 누가 갈까

분석 결과, 대체로 외고는 통학 거리 탓에 해당 외고가 있는 지역과 그 주변 지역 출신의 신입생이 많았다. 서울 강서구에 있는 명덕외고를 살펴보면, 강서·양천구의 학생 비율이 53.4%로 절반을 웃돌았다. 성북구에 있는 대일외고도, 성북·강북·노원·도봉구 학생 비율이 55%에 달했다. 서울 강동구에 있는 한영외고의 경우, 강동·강남·서초·송파구 학생 비율은 82.2%에 달했다.

강남 3구와 양천·노원구 등 이른바 사교육 과열 지구의 학생 수 대비 외고·국제고 진학 비율은 다른 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았지만, 두드러진 모습은 아니었다. 또한 서울 서남부에 있는 자치구의 외고·국제고 진학 비율이 낮지만, 해당 지역에 외고·국제고가 없다는 것을 감안하면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그렇다면, 사교육 경쟁에서 유리한 고소득층의 자녀가 외고에 많이 간다는 추론은 잘못된 것일까.

'외고 중의 외고'이자 전국 최고의 입시 명문인 대원외고를 보면, 고소득층의 자녀가 외고에 많이 간다는 추론은 설득력을 얻는다.
ⓒ 봉주영
대원외고는 서울 광진구 중곡동에 있다. 광진구 북쪽에 있어 중랑·동대문·성동구와 가깝다. 다른 외고의 사례를 고려하면, 광진구와 이들 지역 출신의 신입생이 다수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는 오판이다. 올해 서울 출신 대원외고 합격자(정확한 출신지를 알기 어려운 국제중 졸업생 제외한 251명) 중에서 광진·중랑·동대문·성동구 출신 학생은 모두 37명으로 전체의 14.7%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어느 지역의 학생들이 대원외고에 입학할까. 25개 자치구 중에서 대원외고에 가장 많은 학생을 보내는 곳 1~3위는 다름 아닌 강남 3구(강남·송파·서초구)다. 이곳 출신 신입생 비율은 전체의 51%로 절반을 넘었다. 올해 서울 중학교 졸업생 중 강남 3구 학생 비율이 18.9%인 것을 감안하면 강남3구 학생들은 다른 자치구에 비해 월등히 많이 입학하는 셈이다. 올해 대원외고 1·2학년생이 이용하는 스쿨버스 14대 중에서 8대가 강남 3구로 향한다. 

강남 3구 학생들이 왜 대원외고를 선호하는 걸까. 대원외고는 서울대 합격자 수, 신임 법관 배출 수에서 다른 외고와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2015년 서울대 합격자수는 79명으로, 예술고를 제외하면 전국에서 가장 많은 서울대 합격자를 배출했다. 졸업생의 20.9%가 서울대에 진학한 것이다.

서울국제고는 151명 중에 15명(9.93%), 명덕·대일외고는 똑같이 376명 중에 32명(8.51%)이 서울대에 진학했다. 이들 학교도 많은 서울대 입학생을 냈지만, 대원외고 서울대 진학률의 절반 수준이었다. 서울외고의 경우, 졸업생 310명 중 4명(1.29%)만 서울대에 진학했다.

또한 최근 10년간(2005~2014년) 전국에서 가장 많은 신임 법관을 배출한 고등학교도 대원외고(92명)다. 명덕·한영외고 출신의 신임 법관 수는 각각 46명·43명으로, 대원외고의 절반이었다. 반면, 서울외고와 이화여자외고 출신의 신임 법관 수는 각각 7명과 14명이었다.

한 입시전문가는 <대치동 엄마들의 대원외고 합격전략>(2006년)에서 '사교육 1번지 강남 엄마들도 고등학교 중에 대원외고를 단연 으뜸으로 친다. 요즘 '대한민국 최고의 신붓감은 강남 8학군에 살면서 대원외고를 졸업하고 서울대에 진학한 여성'이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대원외고와 비대원외고로 이분화되는 현상이 나타난다'고 밝혔다.

강남구 대치동의 한 학원에서 일하는 강사는 "강남사람들은 사립초→국제중→대원외고를 명문대 진학을 위한 코스로 인식하고 있고, 여기에 목을 매는 학부모들이 많다"면서 "이를 위해 유치원 때부터 영어유치원을 보내면서 입시 경쟁에 나선다. 이후에는 고액 과외나 학원, 해외 유학을 통해 외고 진학을 준비한다"고 지적했다.

강남 3구 신입생 비율, 증가 추세
ⓒ 봉주영
더 심각한 문제는 대원외고의 강남 3구 출신 신입생 비율이 지난해보다 늘었다는 것이다. 지난해 서울 이외 지역과 국제중 졸업생을 모두 포함하는 전체 입학생(291명) 중에서 강남 3구 출신은 106명이었다. 그 비율은 36.43%다. 올해 전체 입학생(280명) 중에서 강남3구 출신은 128명으로, 그 비율은 45.71%에 달했다.

이는 중등학교 성취평가제 탓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절대평가인 성취평가제는 성적순으로 학생들을 줄 세우는 상대평가를 개선하기 위해 내놓은 것이다. 중학교에서는 2012년 1학기부터 시행됐고, 2015년 고교 입시에서 성취평가제가 적용됐다. 절대평가는 변별력을 낮추기 때문에 자기소개서와 면접의 중요성이 커진다.

이는 상대평가에서 불리했던 강남 3구 출신 학생들에게 유리했다. 또한 면접과 자기소개서 역시 사교육비 영향을 많이 받는다. 

올해 4월 국회에서 열린 '특목고, 공교육 발전에 필요한가' 토론회에서 황지원 서울시립대 교수는 "외고를 포함한 특목고는 비교적 부유층의 우수한 성적을 가진 아이들이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기관으로 그 목적이 변질됐다"면서 "'특수집단' 고등학교, '특수성적' 고등학교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고교 교육 정상화의 맥락에서 지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외고는 이미 1990년대부터 고교 서열화의 주범으로 큰 비판을 받았지만, 살아남았다. 2009년 정두언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 외고 폐지론을 제기했지만, 현실화되지는 않았다. 지난해 취임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고교서열화를 타파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지만, 보수진영의 반발로 성과를 내지 못했다. 김문수 서울시의회 교육위원장은 "외고 제도를 개선하거나 폐지하지 않으면, 고교서열화 부작용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2015년 교육 불평등 보고서]

① 집값 낮은 43곳, 서울대 입학 '제로'
①-1 조희연 "태어난 집 달라도 배우는 교육은 같아야"
②-2 서울대 많이 보내는 학교 10곳 학비 살펴보니
태그:#2015년 교육불평등 보고서, #대원외고
댓글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법조팀 기자입니다. 제가 쓰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 필요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소통하고자 합니다.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독자의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