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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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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경기 보러 영국 힐스보로 구장으로 간 많은 사람 중 96명은 집으로 돌아오지 못 했다. 축구경기는 6분 만에 중단됐다. 축구장 최악의 참사가 발생했다. 참사 모습은 세월호 침몰처럼 전국에 생중계됐다. 영국 경찰은 사건의 진실을 조작했다. 힐스보로 참사 희생자 가족들은 조직을 구성해 싸움을 시작했다. 이들은 20년 넘게 싸워 진실의 큰 조각을 찾았고, 지금도 싸우고 있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은 언제쯤 인양될까? 희생자 가족들은 얼마를 더 싸워야 할까? 힐스보로에서 세월호의 미래를 가늠하고, 세월호에서 힐스보로의 의미를 찾고자 한다. [편집자말]
어두워진 천막 주변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저멀리 보이는 바지선의 불빛과 항로를 알리는 불빛만 깜빡이고 있었다. 어둠속에서 작은 등불에 의지해 자리를 지키고 있다. ⓒ 이희훈
"저 멀리 깜빡이는 게 바지 선이에요." 어두워지자 세월호가 가라앉은 자리의 불빛이 유독 선명히 보였다. ⓒ 이희훈
대화를 마친 소연 아빠의 눈에는 눈물이 맺히려 했다. 한참을 기분 좋게 대화했지만 멀리 보이는 사고 해역을 바라보니 외동 딸 소연이 생각이 가슴을 때렸다. 소연아빠 김진철씨는 밤하늘에 눈물을 숨겼다. ⓒ 이희훈
세월호 인양선 감시를 나선 세월호 유가족들이 16일 째인 17일 오후 세월호가 침몰한 해역 인근 진도 동거차도 산 꼭대기에 천막을 치고 상하이샐비지 컨소시엄 인양준비과정을 감시하고 있다. ⓒ 이희훈
배는 진도 팽목항에서 오전 9시 50분에 출발한다. 집 떠난 아버지를 찾아가는 길이다. 저 바다 어느 아름다운 섬에, 가슴 시린 아버지가 있다.

하늘은 흐렸고, 간간이 빗방울이 떨어졌다. 검푸른 바다는 바람에 일렁였다. 16일 진도의 하늘과 바다는 그러했다.

배는 2시간 30분 동안 바다 위를 달렸다. 아버지는 먼 곳에 있었다. 진도군 동거차도, 그 섬에서 가장 높은 산 꼭대기가 아버지의 거처다. 카메라 장비가 든 가방을 들고 헐떡이며 산을 오르는 길. 아버지가 마중 나왔다.
"하루에도 몇 번씩 왔다갔다 혀유." 소연이 아빠는 땀을 뻘뻘 흘리며 다시 산으로 올랐다. 물 공급을 위해 마을로 내려 왔다 한 짐 가득 다시 초소로 오른다고 했다. 빠른 걸음으로 20분 남짓 되는 풀 숲 산길을 길 안내를 위해 매어 놓은 노란 리본을 따라 올랐다. ⓒ 이희훈
"그 가방 이리 줘요."

괜찮다고 몇 번을 사양해도 아버지는 물러서지 않았다.

"딸도 죽었는데, 제가 뭘 가졌겠어요? 이제 가진 게 힘밖에 없어요. 내가 힘 쓸 테니까, 그 짐 저 주세요."

아버지는 기어코 내 가방을 짊어졌다. 이런 일 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무심하게 걸음을 높은 곳으로 옮겼다.

자식을 잃어 이젠 가진 게 아무것도 없다는 아버지. 세월호 참사로 새끼를 잃은 아버지들이 지금 섬에 있다. 청와대 앞, 광화문광장, 국회의사당, 길거리... 수많은 곳을 거친 아버지들은 이제 섬으로 내려왔다.
산 꼭대기 능선으로 점처럼 보이는 세월호 유가족들. ⓒ 이희훈
하늘에서 내려다 본 동거차도에 화살표시가 된 위치에 세월호 유가족들의 '인양감시초소'가 자리하고 있다. ⓒ 이희훈
세월호 인양선 감시를 나선 세월호 유가족들의 천막이 17일 오후 세월호가 침몰한 해역 인근 진도 동거차도 산 꼭대기에 상하이샐비지 컨소시엄 인양 준비를 지켜보고 위해 세워져 있다. ⓒ 이희훈
인양선을 향해 쓰여진 '찢어진 현수막' 세월호 인양선 감시를 나선 세월호 유가족들이 설치한 현수막. 중국어와 한국어로 "9명의 미수습자! 가족이 기다립니다"라고 쓰여있다. 이 현수막은 강한 바다 바람으로 인해 찢겨져 있다. ⓒ 이희훈
세월호 인양선 감시를 나선 세월호 유가족들이 16일 째인 17일 오후 세월호가 침몰한 해역 인근 진도 동거차도 산 꼭대기에 천막을 치고 상하이샐비지 컨소시엄 인양준비과정을 감시하고 있다. ⓒ 이희훈
벼랑 끝 자리한 감시초소에서는 인양을 준비하는 바지선을 육안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 이희훈
동거차도 중앙의 산 꼭대기, 더는 전진할 수 없는 곳에 아버지들이 진지를 구축했다. 몇 걸음만 걸으면 바다로 떨어지는 벼랑이다. 

세상의 끝은 저 멀리 있는 특별한 곳이 아니다. 딸, 아들이 죽었을 때 아버지의 세상과 삶은 이미 무너졌다. 세상은 사방으로 뚫려 있지만, 외면하고 손가락질하는 사람 속에선 어딜 가도 막다른 골목이었다.

그리하여 아버지는 퇴로가 없는 섬의 꼭대기로 올라왔다. 눈을 뜨면 딸과 아들이 눈을 감은 그 바다가 보이고, 눈을 감으면 수학여행에서 돌아오지 않은 자식 얼굴이 보인다.  진퇴양난. 세상의 끝, 그곳이 아버지의 집이다.
상하이샐비지 컨소시엄의 인양준비를 위한 크레인과 바지선. ⓒ 이희훈
세월호가 침몰한 진도 동거차도 인근 사고해역에서 17일 오후 상하이샐비지 컨소시엄 바지선이 인양 준비를 하며 정박해 있다. ⓒ 이희훈
세월호가 침몰한 진도 동거차도 인근 사고해역에서 17일 오후 상하이샐비지 컨소시엄 바지선이 인양 준비를 하며 정박해 있다. ⓒ 이희훈
세월호가 침몰한 진도 동거차도 인근 사고해역에서 17일 오후 상하이샐비지 컨소시엄 바지선이 인양 준비를 하며 정박해 있다. ⓒ 이희훈
세월호가 침몰한 진도 동거차도 인근 사고해역에서 17일 오후 상하이샐비지 컨소시엄 바지선이 인양 준비를 하며 정박해 있다. ⓒ 이희훈
세월호 인양선 감시를 나선 세월호 유가족들이 16일 째인 17일 오후 세월호가 침몰한 해역 인근 진도 동거차도 산 꼭대기에 천막을 치고 상하이샐비지 컨소시엄 인양준비과정을 감시하고 있다. ⓒ 이희훈
세월호 인양을 준비하고 있느 바지선과 크레인 주변의 변화가 생기면 카메라로 녹화를 하고 일지를 작성한다. ⓒ 이희훈
"매일 매일 일지를 써요. 전부 기록 해놔야죠." ⓒ 이희훈
바지선을 수시로 지켜보기 위해 준비한 쌍안경. ⓒ 이희훈
세월호 인양선 감시를 나선 세월호 유가족들이 16일 째인 17일 오후 세월호가 침몰한 해역 인근 진도 동거차도 산 꼭대기에 천막을 치고 상하이샐비지 컨소시엄 인양준비과정을 감시하고 있다. ⓒ 이희훈
어쩔 수 없다. 외면할 수 없는 고통이니, 똑바로 응시할 수밖에. 그리하여 아버지는 오늘도 자식이 숨진 그 바다를 바라본다. 한 아버지는 바다를 보며 영국의 힐스보로 참사를 알고 있다고 했다.

수학여행 떠난 아들이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던 것처럼, 영국에선 축구경기를 보러 힐스보로 구장으로 간 사람 96명이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96명 중 절반은 10대 아이들이었다.

세월호는 2014년 4월 16일에 침몰했고, 힐스보로 참사는 1989년 4월 15일 발생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절대 다수는 안산에 살았고, 힐스보로 참사 희생자 대부분은 리버풀에 살았다. 안산과 리버풀은 노동자의 도시다.

힐스보로 참사에 책임이 있는 경찰은 진실을 조작했고, 한국의 해양경찰은 배에 갇힌 사람 중 단 한 명도 구출하지 않았다.

한 번 침몰한 배는 저 스스로 떠오르지 않듯이, 감춰진 진실은 저절로 드러나지 않는다. 진실은 그것을 보고자 하는 사람들의 눈물겨운 투쟁으로 가까스로 인양된다. 영국의 힐스보로 참사 유가족은 20년 넘게 싸워 진실의 큰 조각을 확인했고, 그들은 참사 이후 26년이 지난 지금도 싸우고 있다.
실종자들이 빨리 가족 품으로 돌아오기 바라며 입은 노란티셔츠엔 "너무나 보고 싶습니다"가 적혀 있다. 등 뒤에는 실종자들의 이름이 한 명 한 명 적혀 있다. ⓒ 이희훈
세월호 인양선 감시를 나선 세월호 유가족들이 16일 째인 17일 오후 세월호가 침몰한 해역 인근 진도 동거차도 산 꼭대기에 천막을 치고 상하이샐비지 컨소시엄 인양준비과정을 감시하고 있다. ⓒ 이희훈
세월호 인양선 감시를 나선 세월호 유가족들이 16일 째인 17일 오후 세월호가 침몰한 해역 인근 진도 동거차도 산 꼭대기에 천막을 치고 상하이샐비지 컨소시엄 인양준비과정을 감시하고 있다. ⓒ 이희훈
"우리도 그렇게 해야죠. 끝까지 가야죠."

아버지는 아들이 숨을 거둔 바다에서 시선을 거두지 않고 말했다. 아버지 뒤로 해가 바다 밑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지는 태양은 바다와 하늘을 붉게 적셨다.

어디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힐스보로 유가족처럼 26년을 싸우면 진실에 닿을 수 있을까? 지난 500여 일처럼 26년을 싸우면 자식이 수학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앞을 가늠할 수 없는 답답한 현실. 힐스보로 참사에서 세월호의 미래를 살피는 이 기획의 한국 쪽 이야기는, 동거차도 벼랑 위에 선 아버지들의 사연에서부터 시작한다.
대화를 마친 소연 아빠의 눈에는 눈물이 맺히려 했다. 한참을 기분 좋게 대화했지만 멀리 보이는 사고 해역을 바라보니 외동 딸 소연이 생각이 가슴을 때렸다. 소연아빠 김진철씨는 밤하늘에 눈물을 숨겼다. ⓒ 이희훈
세월호 인양선 감시를 나선 세월호 유가족들의 동거차도 천막에서 바라 본 낙조. ⓒ 이희훈


○ 편집ㅣ박혜경 기자
태그:#세월호 참사, #세월호, #힐스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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