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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현지시각 16일 오후 7시 50분께,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한가로운 저녁을 보내고 있었다. 아파트 동료는 자신의 친구와 거실에서 맥주를 한잔하고 있었고 나 역시 저녁을 먹고 인터넷 서핑을 하고 있었는데, 슬슬 방 안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칠레 산티아고에 온 지 3주 동안 서너 번의 흔들림을 경험했기에, 또 그런 지나가는 작음 흔들림이겠거니 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흔들림이 커졌다.

"어? 이거 뭐지?"

거실로 나가니, 친구와 함께 맥주를 마시던 아파트 동료가 현관으로 나가자고 한다. 집 문을 열고 나가니 다른 호에 사는 사람들도 모두 이미 현관 앞에 나와 서 있었다.

"왜 문밖으로 나가는 거야?"
"문턱이 제일 튼튼하고 안전해. 그리고 만약 흔들림이 심해지고 건물이 어긋나기 시작하면 문이 닫혀 안에 갇히거든. 그래서 흔들림이 어느 정도 크다 싶으면 일단 문밖으로 나가는 거지."

강진에 흔들리는 건물, 침착한 사람들

9월 16일 오후 7시 54분께(현지시각) 칠레 수도 산티아고 인근에서 규모 8.3의 강진이 발생했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진앙은 산티아고 북서쪽으로 228㎞ 떨어진 태평양 연안으로 진원의 깊이는 25㎞다. 사진은 USGS가 발표한 지진 진앙 위치.
 9월 16일 오후 7시 54분께(현지시각) 칠레 수도 산티아고 인근에서 규모 8.3의 강진이 발생했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진앙은 산티아고 북서쪽으로 228㎞ 떨어진 태평양 연안으로 진원의 깊이는 25㎞다. 사진은 USGS가 발표한 지진 진앙 위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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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복도에서도 흔들림이 느껴졌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건물이 흔들리는 지진을 경험한 터라, 잔뜩 긴장했다. 그렇기 때문에 벽을 잡은 손에도 잔뜩 힘이 들어갔다. 아파트 동료와 친구, 다른 호에서 나온 사람들은 "괜찮다"라면서 나를 안심시켰다.

"어떻게 이런 흔들림에 평화로울 수 있어?"
"평화로운 게 아니라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아니까 절차를 따르는 거야. 긴장하면 안 돼. 단계에 따라 잘 대처하면 문제없을 거야."

한 번의 큰 흔들림이 지나고 다시 집 안에 들어갔다. 친구들은 가족과 친구 등 여기저기에 괜찮다고 연락했다. 다들 아무렇지 않은 듯해도 서로 걱정하고, 걱정할까 안부를 전하고, 안부를 묻는 것을 잊지 않고 있었다.

한국에서 뉴스를 본 지인들이 걱정이 담긴 문자를 보내왔다. 한국 언론에 보도된, '강진'이라는 표현이 새삼 이곳에서 느끼는 체감·긴장감과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 사람들은 지진이라는 표현 대신 '흔들림'이라고 말한다. 워낙 빈번하다 보니 지진은 정말 뭔가 큰 재난이 났을 때만 붙인다고 한다.

이제 지진이 지나갔나 했는데, 30분 정도 뒤 다시 흔들림이 시작됐다. 다시 현관문 밖으로 나가니 역시나 사람들이 문 앞에 나와 있다. 이번에는 진도가 좀 더 강해서 밖으로 나온 사람들도 약간은 긴장한 듯한 표정이다. 아마 한국이었으면 당장 건물 밖으로 나가지 않았을까 싶은데, 많은 이들이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큰일 없이 지나가기를 바란다

꽤나 심한 흔들림이 조금 잦아든 뒤에 다시 집 안에 들어왔다. 그제야 아파트 동료는 라디오를 틀었다. 지진 소식이 흘러나왔다. 라디오에선 산티아고 북쪽 해변에서 발생한 지진(진도 8.3)으로 쓰나미 경보가 발령됐다는 소식과 함께 2010년 대지진의 경험이 반복해서 흘러나왔다.

베란다로 밖을 보니 꽤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나와 있다.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사람들은 다시 길을 걷고 있고, SNS에는 이번 주 금요일부터 시작될 칠레의 축제를 거론하며 '축제 전 지진이 먼저 축제를 기념한다'는 등의 유머가 섞인 이야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하지만, 모두 2010년 대지진의 경험을 다시는 하지 않길 바라고 있을 것이다. 평화 속에 준비된 긴장감. 칠레 사람들이 지진에 대처하는 방식이구나 생각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약간의 흔들림이 느껴진다. 칠레인들처럼 이 흔들림에 '익숙해질' 일은 없을 듯하지만 나 역시 큰일 없이 지나가기를 바란다.

○ 편집ㅣ김지현 기자



태그:#지진, #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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