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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이츠베르크 세무서 건물 (사진 왼편)
 크로이츠베르크 세무서 건물 (사진 왼편)
ⓒ 신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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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약 4만7000제곱미터 넓이의 땅이 2200만 유로(약 286억 원)에 팔릴 예정이었지만 곧 무산되었다. 2015년 이번엔 3600만 유로(약 468억 원)에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한 투자 회사에 팔리게 되었다.

베를린의 인기 있는 지역 크로이츠베르크 세무서 건물 뒤편에 있는 금싸라기 땅 '드라고너 아리알(Dragoner Areal : 드라고너 아리알 Dragoner Areal은 기병대 구역이라는 뜻으로, 19세기 말 이 지역에 처음 세워진 건물이 기병대의 병영 막사였다는 것에서 유래한 것이다)'의 이야기다.

1년 사이 이 부동산의 판매 가격은 약 두 배 가량 상승했다. 실제 부동산 가치는 2015년 기준으로 1400유로(약 182억 원)에 불과하지만, 연방 정부 부동산 관리 기관(BImA)의 최고가 입찰 정책으로 일어난 일이었다. 베를린 시의 시영 주택 회사들도 입찰에 참여했지만, 그들의 입찰액은 실제 부동산 가치와 유사한 1800만 유로(약  234억 원)에 불과했다. 어림도 없는 금액이었다.

최고가 입찰에 성공한 부동산 회사는 최근 베를린의 분위기를 잘 이해한 듯, 주민 참여형 개발과 일정 비율의 저렴 주택을 짓겠다는 등 지역과 상생하기 위한 개발을 약속했다.

세무서 건물 뒤편에 가려진 채로 오랜 세월 동안 친환경 슈퍼마켓, 주유소, 자동차 정비소, 소규모 공장, 작업장 등으로 이용되고 있다.
 세무서 건물 뒤편에 가려진 채로 오랜 세월 동안 친환경 슈퍼마켓, 주유소, 자동차 정비소, 소규모 공장, 작업장 등으로 이용되고 있다.
ⓒ 신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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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동산 회사가 직면한 문제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1500만 유로(약 195억 원) 이상의 정부 소유의 땅을 판매할 시엔 상원의 매매 승인이 필요하다. 지난 10일 독일 연방 상원의 재무위원회에서 드라고너 아리알의 매매를 최종적으로 거부한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이미 지난 4월과 6월 두 번의 결정 연기가 있었고, 지난 10일이 마지막 결정 순간이었다. 16명의 대표가 참여한 의결에서 10명이 반대표를 던졌다고 한다.

매매 거부로 결론나게 된 것은 부동산 회사의 문제는 아니었다. 연방 정부 부동산 관리 기관의 판매 위주의 부동산 운영 방식과 최고가 입찰에 대한 반대로 나온 결과였다. 재정부 의원인 마티아스 콜라츠 아넨(Matthias Kollatz-Ahnen, SPD)은 "이 결과는 (부동산 같은) 지방 정부의 주요한 관심사를 적절하게 고려하는 연방 정부의 새로운 부동산 정책에 대한 요구를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했다.

비싼 값에 땅 팔지 않은 이유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땅이 비싸게 팔린 만큼 이 땅은 비싼 용도로 활용될 수밖에 없다. 같은 수준의 집을 짓더라도, 임대료가 더 비쌀 수밖에 없는 것이다. 최고가 입찰로 공공 소유의 부동산을 판매하면 판매할수록, 서민이 살 만한 저렴한 혹은 적정한 수준의 주택을 지을 땅은 줄어드는 것이다.

부동산 회사가 아무리 좋은 개발안을 내놓는다 해도, 애초에 기존 시세의 2배 이상으로 팔린 땅에서 사회적으로 적합한 개발을 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최고 입찰가 판매 방식은 베를린 뿐 아니라 독일의 주요 대도시가 직면하고 있는 주택난, 급격한 월세 상승 등을 해결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방식이다. 또한, 연방 정부의 재산을 주 정부가 사들일 때, 최고가 입찰을 통한 경쟁은 공공 재산의 사유화를 방조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현재 베를린에서만 약 5000채의 연방 정부 소유의 주택이 동일한 방식으로 판매될 위기에 처해있다. 또 베를린 시는 이를 모두 매입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5000채 모두 최고가 입찰을 통해 매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시영 주택회사들이 부동산 가치와 근접한 1800만 유로로 입찰에 참여한 것은 베를린 시 기준에 적합한 저렴한 임대료의 주택을 공급하기 위한 주택 용지 매입 가격의 마지노선이었다. 하지만 투자 회사가 3600만 유로라는 상식 밖의 가격으로 입찰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은 극히 일부의 저렴한 임대 주택을 제외하고는 사무 공간과 고급 임대 주택을 통해 충분한 수익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베를린 공대 학생들과 아래로부터의 도시 단체의 개발 대안 중 하나.
 베를린 공대 학생들과 아래로부터의 도시 단체의 개발 대안 중 하나.
ⓒ 신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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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결정은 단순히 정부의 판단만으로 내려진 것은 아니다. 그동안 여러 기사에서 소개했듯이 점점 팍팍해져 가는 베를린의 주거 상황과 그런 변화에 반대하며 대안을 외친 수많은 단체와 시민 사회의 영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드라고너 아리알의 판매 계획에 있어서는 2014년 설립된 후 꾸준히 이 지역을 감시하고 개발 대안을 제시해온 단체 '아래로부터의 도시(Stadt von Unten)'의 영향이 컸다. 이 단체는 다양한 문화 행사와 활동으로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고, 베를린 공대의 건축학과 학생들과 함께 사회적 방향성을 강조하는 새로운 개발안을 공동 작업하기도 했다.

이들이 내건 모토는 '100% 임대 주택, 100% 사회적으로 적정한 임대료, 100% 영구적인 주거 안정성'이었고, 이를 바탕으로 한 실현 가능한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번 결정으로 드라고너 아리알이 최소한 부동산 투기의 희생양이 되거나 사유화되는 것은 막을 수 있었다. 이제 이 땅은 베를린 시가 현재 직면한 주택난을 해결방안이 될 만한 대안 모델의 실험장 혹은 최근 베를린 세입자 단체와의 정부의 타협안(관련 기사: '살기좋은 도시' 향한 노력, 베를린 바꿨다)을 바탕으로 한 사회주택 개발 구역이라는 새로운 갈림길 앞에 서 있다.

여러 언론에서 '재정부의 성공', '모두를 위한 성공' 등 이번 결정을 환영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하지만 성공을 떠나 이 결정은 무엇보다 독일 내부에서 스스로 겪고 있는 부의 양극화와 주택난 그리고 최근 유럽으로 밀려오고 있는 난민으로 가중된 주택난을 직면한 독일 정부가 스스로 부동산 관리 정책을 되돌아보고 수정하도록 압박하는 데도 큰 의의가 있다.

○ 편집ㅣ조혜지 기자



태그:#독일, #베를린, #도시, #개발, #부동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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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과 도시를 이야기합니다. 1. 유튜브: https://bit.ly/2Qbc3vT 2. 아카이빙 블로그: https://intro2berlin.tistory.com 3. 문의: intro2berlin@gmx.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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