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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임원과 중앙집행위원회 대표자들이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노사정 야합 조인식 저지 및 대표자 투쟁 결의대회'를 열어 총파업을 결의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노동자 다 죽이는 노사정 야합 규탄한다" 민주노총 임원과 중앙집행위원회 대표자들이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노사정 야합 조인식 저지 및 대표자 투쟁 결의대회'를 열어 총파업을 결의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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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정대타협.

정부가 말하는 소위 '노동개혁'을 지켜봐 온 사람들은 노사정이 '대타협'을 했다는 소식에 깜짝 놀라고 분노했다. 합의문 내용에 대해 권선동 새누리당 의원은 90% 노동자를 위한 내용이라고 했지만, 추상적이고 영양가 없는 달콤한 수사들 이외에 구체적인 내용을 따져보면 100% 노동의 권리를 축소하는 내용이다.

100% 노동권리 축소하는 '노사정대타협'

정부가 노동개혁을 추진해온 목적은 저성과자 등을 쉽게 해고할 수 있게 하기, 노동자들의 동의가 없어도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노동조건을 불리하게 바꿀 수 있게 하기, 기간제 사용기간을 늘리고 파견업종 확대해서 비정규직 늘리기 등이었다. 이번 노사정 합의문에는 이 내용이 모두 가능하도록 열어두었으며, 다만 노동계와 '협의'를 한다거나 의견을 '반영'한다는 내용만 선심쓰듯 덧붙여져 있다.

노동법이란 참으로 요지경이어서 합의와 협의를 다르게 보고 있는데, 협의란 아주 형식적으로 사안에 대한 대화만 나누면 협의를 거친 것으로 본다는 의미이고 따라서 협의 내용 역시 강제력이 없는 것으로 해석된다. 게다가 합의문에는, 이런 내용을 입법으로 하지 않고 정부의 '가이드라인'만으로도 가능하게끔 하는 내용까지 열려 있다. 노동법이 보잘 것 없어도 노동자의 권리를 지켜주는 최후의 보루임은 분명한데, 가볍게 정부 지침만으로 법을 무시하겠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합의문 뒷부분으로 갈수록 가관이다. 근로시간 단축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현실에 변화가 없도록 구체적인 방법을 강구한다. 근로기준법에서는 1주 40시간을 법정근로로 보고 연장근로는 12시간까지만, 즉 52시간까지만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기존에 노동부가 법 해석을 제멋대로 해서 휴일근로는 연장근로로 보지 않으면서 1주 최대 68시간까지 장시간 노동이 이루어져온 현실이 있었다.

합의문에서는 휴일근로도 연장근로로 보면서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특별연장근로'라는 걸 도입하고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확대해서 연장근로가 대폭 축소되지 않도록 사용자를 구체적으로 배려한다. 또한 통상임금 항목도 대법원 판례에 따라 수정한다지만, 여전히 논란으로 남아있는 보험료와 상여금 항목을 법률이 아닌 시행령으로 확실히 제외시키겠다고 구체적으로 예시를 들고 있다.

합의문은 정부와 경영계가 주장해 온 내용들이 가능하게끔 열어놓았지만, 반대로 노동계가 주장해온 내용들(4인 이하 사업장 근로기준법 전면적용, 근로시간 특례업종 삭제, 정리해고 제한 등-은 기약없이 장기 과제로 미뤄두거나 추상적인 수사로만 멈춰있을 뿐이다.

실업급여 확대는 노사가 내는 비용으로 분담하고 출퇴근재해 산재 인정은 이미 확대되고 있고 입법 준비 중인 내용으로 굳이 대타협이라고 생색낼 부분도 아니다. 노동계가 근로시간 축소나 사각지대노동자들의 근로기준법 적용 확대 등이라도 따냈다면 이렇게 답답하고 화가 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러니, 모두 다 내준 자리에 들어간 노동자의 대표라는 사람들. 그들의 속내가 궁금하고 그들에게 화가 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한국노총 비난? 우리에겐 플랜 B가 있나

민주노총 임원과 중앙집행위원회 대표자들이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노사정 야합 조인식 저지 및 대표자 투쟁 결의대회'를 열어 총파업을 결의하며 삭발하고 있다.
▲ 민주노총, 노사정위 야합 규탄 삭발 민주노총 임원과 중앙집행위원회 대표자들이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노사정 야합 조인식 저지 및 대표자 투쟁 결의대회'를 열어 총파업을 결의하며 삭발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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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금 이순간. 한국노총을 향해 비난만 쏟아내는 게 무슨 의미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노동자를 대표한다고 들어가서 어처구니 없는 결과를 내미는 '대표'를 향한 비판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준비해야 하는 것이 한국노총을 향해 들어올릴 돌일까? 그러면 분노는 배설할 수 있을지 몰라도 세상은 그다지 많이 바뀌지 않을 것 같다.

"사회적 대타협"은, 정부가 노동개혁을 구상하면서 수많은 플랜 중에 하나였을 뿐일 것이다. 한국노총이 노사정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정부 입장에서는 플랜 B, 플랜 C가 얼마든지 가능한 현실이다. 새누리당 단독입법도, 심지어 입법이 아닌 정부 지침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걸 우린 다 알고 있다. 초법적인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앞에서도 그렇게 무력했던 게 우리 현실인데. 하물며 국민 대다수가 무심한 노동의 문제야 당연하지 않은가.

그런데 우리에게는 플랜 B가 있을까? 한국노총을 비난하는 우리는 어떤 싸움을 준비하고 있는가. 우리가 '닭그네' 정권이라고 무시하는 그들에게는 영리한 프레임과 세련된 전술이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노동조합을 흠집내는 망언을 당당하게 하는 것은 그만큼 대다수가 빈약한 노동인식을 가지고 있어서 가능한 거다.

정부가 임금피크제 프레임을 청년고용과 결합해 들고 나왔을 때 이미 우리는 한 번 졌다. 임금피크제 문제는 그들의 수단이었을 뿐 우리 목적이 아닌데도, 임금피크제 프레임에 무참히 말려들어갔다. 정부가 이야기하는 노동개혁의 속내는 쉬운 해고와 노동조건의 일방적 변경이라는 것을 우리의 프레임으로 잡지 못했다. 그런 시도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취업규칙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한 90%의 노동자들에게 설명하는 것은 너무나 어려웠다.

그 이유가 뭔지를 냉철하게 생각하고 도대체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을지를 생각해야 하는 거 아닐까. 한국노총을 끌어들여 사회적 합의라는 명분을 만들어내는 그들에 비해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나. 미조직 비정규 노동자들과 함께 빈약한 노동현실과 인식을 바꾸기 위해 필요한 걸 수없이 생각하고 실행해야 하는 것 아닌가. 사실, 노동조합에 가입되어 있지 않은 90%의 노동자들은 이미 다양한 방식의 해고와 일방적인 노동조건 변경 앞에 노출되어 있고, 그래서 힘든 현실이 좀 더 힘들어진다는 것에 대해 체감이 그리 강하지 않을 수 있다.

이전에는 노동자 스스로 힘든 현실과 맞서 싸우고자 하는 경우 손에 쥘 수 있는 노동법이 다윗의 돌처럼 존재했지만, 노사정 대타협에 따라 정부 중심의 노동법 개악이 이루어진다면 그 작은 돌마저 던질 수 없는 좀 더 답답한 현실이 되는 것이다. 이전에도 노동법을 들고 싸우던 사람들은 수많은 고통을 감내해야 했고, 그래서 대다수는 그 작은 돌마저 포기하고 다른 직장을 조용히 찾으며 삶을 꾸려나갔다. 아니, 심지어 노동법의 존재도 내용도 그들 곁에 없었다. 그것이 현실이다.

90%가 넘는 노동자가 노사정 대타협에 관심도 없고 자신의 문제로 느끼지 못하는 이유를 찾고 그 원인을 바꿔내는 것이 우리의 할 일 아닌가. 노동의 권리가 우리 일상에 중요한 가치로 스며들어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한다면 노동법을 이런 식으로 무력화시키는 것이 어찌 가능할까.

왜 우리는 항상, 정부가 내놓은 계획에 맞서 싸우다가 장렬히 전사만 하는 것일까. 45년 전 전태일 열사가 죽음으로 공유했던 소중한 노동의 가치를 지난 십수 년간 이 사회를 살아가는 90%의 전태일들에게 공유하지 못한 우리 모두, 이 상황으로부터 자유롭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유체이탈 화법은 정부에게만 할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 편집ㅣ장지혜 기자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신지심씨는 현재 노무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태그:#노사정대타협, #근로기준법, #노동법, #한국노총, #민주노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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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오월 공인노무사. <세상을 바꾸는 2022 대선공동행동>, <사라진 노동찾기 대선행동단>에서 활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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