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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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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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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초국적금융자본에게 좋은 투기판이다. 외국인투자에 대한 규제 제도가 대부분 철폐되었고, 이들을 통제하겠다는 정부의 정책 의지도 없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투자처를 찾지 못한 돈이 넘쳐나는데, 한국 정부는 여전히 70년대식 해외 투자유치 타령만 하고 있다. 초국적 자본에게 한국은 소위 말하는 '호갱'님이다. 한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매각이 된 홈플러스 매각 사태가 바로 그렇다. 영국 테스코는 지난 8월 말 홈플러스를 초국적 사모펀드인 엠비케이파트너스(이하 엠비케이)에 7조2천억 원에 매각했다.

먼저, 이번 거래로 테스코가 챙긴 이득은 약 5조 원이다. 테스코가 한국 홈플러스에 투자한 자본이 8천억 원 정도 되는데, 엠비케이에게 직접 받은 돈이 5조 8천억 원이다. 테스코의 투자 수익률이 600%가 넘은 것이니, 대박 중 대박이라 할 것이다(참고로 엠비케이 인수금 7조2천억 원 중 1조 4천억 원은 홈플러스의 부채를 인수한 액수다).

테스코가 챙긴 5조 원, 어디서 나왔나

홈플러스 노동조합이 부분파업에 돌입한 8일 오후 노조원들이 요구가 담긴 손팻말을 들고 서울 홈플러스 영등포점을 순회하고 있다. 노조는 영국 테스코가 홈플러스를 7조2천억원에 MBK파트너스에 넘기기로 계약을 체결한 것과 관련, "테스코의 과도한 매각차익을 실현하기 위한 '먹튀' 매각"이라고 비판했다
 홈플러스 노동조합이 부분파업에 돌입한 8일 오후 노조원들이 요구가 담긴 손팻말을 들고 서울 홈플러스 영등포점을 순회하고 있다. 노조는 영국 테스코가 홈플러스를 7조2천억원에 MBK파트너스에 넘기기로 계약을 체결한 것과 관련, "테스코의 과도한 매각차익을 실현하기 위한 '먹튀' 매각"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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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테스코가 챙긴 5조 원은 어디서 나온 돈일까? 엠비케이가 손해 보고 홈플러스를 재매각하지 않는 이상 결국 국민 호주머니에서 나온 돈이다. 소매업인 홈플러스 부가가치의 대부분은 홈플러스에 납품하는 제조업체, 농수산물업체가 생산한 부가가치 일부를 소비자에게 제품을 잘 판매한 대가로 분배받은 것이다. 특히 독자 판매경로를 가지지 못한 중소기업들의 부가가치가 대기업보다도 많이 대형마트로 이전된다. 테스코가 가져간 돈은 결국 한국 노동자의 80%를 차지하는 중소기업 노동자들이 피땀 흘려 일해 축적한 부의 일부다. 하늘에서 떨어진 돈이 아니다.

물론 테스코가 가져간 돈은 이게 다가 아니다. 테스코는 홈플러스에 대해 15년 동안 약 2조 원의 돈을 상표사용료, 회사채이자 등의 명목으로 가져갔다. 이중 특히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이자인데, 본사에서 남는 현금을 홈플러스가 차입하게 하고 홈플러스가 이자를 지급하게 만드는 셈이다.

홈플러스 정도 사업장이면 정 돈이 필요하면 한국에서도 충분히 대출할 수 있지만, 영국 금융 계열사를 통해 돈놀이 하는 걸 테스코는 더 선호한 듯하다. 외투기업들이 즐겨 쓰는 자본 유출 방법의 하나다. 이 밖에도 테스코라는 상호를 쓰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몇 년간 천억 원이 넘는 상표권 사용료도 가져갔다. 한 마디로 매각 전에 뜯어갈 건 다 뜯어갔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진짜 심각한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바로 테스코를 인수한 엠비케이 때문이다. 사모펀드는 기업을 장기적으로 운영할 목적으로 인수하지 않는다. 기업을 구조조정한 후 최대한 빨리 매각해 차익을 챙기는 게 목표다. '먹튀'라 욕할 필요도 없이, '먹튀'를 대놓고 사훈으로 가지고 있는 게 바로 사모펀드다.

사모펀드에 의해 매각과 재매각을 거치며 회사가 어려워지고 국부가 유출된 예는 많다. 세계 2위 공조 부품사인 한라공조를 외환위기 직후 그야말로 헐값 1천억 원에 사 4조 원에 판 미국 사모펀드들, 일시적 유동성 위기에 빠진 외환은행을 헐값에 사 매각차익만 5조 원 가까이 남긴 초국적사모펀드론스타, OB맥주 매매 차익으로 4조 원을 남긴 초국적사모펀드 케이케이아르어피니티, 오리온전기의 핵심기술만 뺐고 사기매각으로 3천여 명이 일하던 공장을 폐쇄한 정체불명의 홍콩 사모펀드 오션링크, 위니아만도를 팔았다 샀다 하며 수천억 원의 이익을 본 미국, 스위스, 네덜란드의 사모펀드들 등등 한두 건이 아니다. 액수로만 보면 홈플러스는 지금까지의 기록들을 모조리 갈아치울 가능성이 크다.

사모펀드가 합리적 구조조정을 통해 기업 가치를 높인다고 항변하기도 하지만 이는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위의 예들만 봐도 사모펀드들이 한 일이란 특별한 것이 없다. 헐값에 나온 기업을 재빨리 사, 쪼개 팔거나, 숨겨진 기술이나 산업관계를 이용해 폭리를 취하는 게 이들의 방식이다. 예를 들면 김치냉장고로 유명한 위니아만도의 경우 사모펀드 주인만 세 차례 바뀌었는데, 그동안 투자는 없이 오로지 배당과 유상감자만 계속되었었다. 론스타의 사례는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홈플러스를 인수한 엠비케이는 인수자금 중 60%를 은행 차입으로 조달했다. 이 은행들이 이자로만 챙길 돈이 1천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제 홈플러스는 연 1천억 원 이상을 무조건 은행에 먼저 상납해야 할 처지다. 여기에 기존 부채의 이자가 1천억 원 이상이고, 엠비케이가 기대하는 투자수익도 연 2천~3천억 원 이상은 될 것이다.

초국적 금융자본의 '호갱님' 되는 일만 남았다

즉 새로운 홈플러스의 주인이 기대하는 것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연 5천~6천억 원 이상의 이윤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홈플러스가 앞으로 기업 자체의 발전을 위해 쓸 돈은 없을 것이다. 단지 투자가 없다는 정도가 아니라 내부를 쥐어짜고, 돈 될 만한 건 그때그때 쪼개 팔아야만 한다. 당연히 홈플러스에 납품하는 중소기업들은 더욱 가혹한 조건을 요구받을 것이다. 물론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 진 부는 사모펀드의 주주인 해외금융자본들에게 이전된다. 한국 국민은 또 한 번 제대로 초국적 금융자본의 호갱님이 되는 셈이다.

이런 국부 유출은 당연히도 고용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먼저 매각 전후의 구조조정은 도소매업 전반의 고용과 노동조건 악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대형마트들은 2012년부터 4년 가까이 매출이 줄고 있으며, 과잉경쟁과 중복투자로 직간접적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홈플러스가 인력 구조조정과 함께 점포를 포함한 자산들을 쪼개서 매각하기 시작하면, 도소매업 전반으로 구조조정이 빠르게 퍼질 수밖에 없다. 롯데마트, 이마트 등 대형마트 3사에는 4만 명의 비정규직, 간접고용 노동자를 포함해 약 11만 명의 노동자가 고용되어 있다.

더 심각한 건 대형마트 구조조정은 직간접적으로 도소매업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마트 점포에 입점해 있는 영세상인들과 주변 상권 전체가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현재 도소매업 전체 노동자 수는 200만 명에 이른다. 하지만 노동자의 권리를 방어할 노조는 고작 조직률이 4%에 불과하다. 저항할 수 있는 조직된 노동자가 적으니 홈플러스 발 구조조정은 거침없이 과감하게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초국적 사모펀드의 홈플러스에 대한 약탈적 구조조정과 매각은 다른 외국인투자기업들의 구조조정과 매각 정책에도 크게 영향을 줄 것이다. 최근 세계 경제의 침체로 인해 향후 몇 년간 외국인투자기업들의 대규모 구조조정과 매각이 예상된다. 올해 대규모 해고와 공장폐쇄로 사회적 문제를 일으킨 하이디스를 봐도 그렇고, 한국지엠, 르노삼성 등의 외투 자동차회사들도 매우 불안한 상태다.

가장 큰 자산 규모의 외투기업인 홈플러스가 고용과 국내 산업 생태계를 무시하고 구조조정과 매각을 마구잡이로 해버린다면, 다른 외투 기업들 역시 마음 놓고 한국에서 소위 말하는 '먹튀' 작태를 벌일 수 있다. 참고로 한국의 외투기업 종사자 수는 20만 명이 넘는다. 외투기업에 종속된 하청기업과 간접고용 노동자들까지 합하면 그 수는 10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가 감시에 나서고, 홈플러스 노동조합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시민사회가 연대해야 한다. 정부는 시장의 일이라며 먼 산 불구경 하듯 있어서는 안 된다. 테스코 매각부터 엠비케이의 재매각 전략까지, 산업정책과 고용정책 전반의 차원에서 감시하고 국민경제에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자본을 압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시민사회는 아직 새 사용자와 제대로 된 교섭을 하지도 못하고 있는 노동조합을 지원해야 한다. 역시 뭐니해도 기업 내 최고의 사회적 감시자는 민주노조다. 엠비케이는 이미 지난 몇 년간 씨엔앰 노조를 직간접적으로 탄압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바도 있다. 시민사회가 노조와 함께 싸워줘야 한다.

○ 편집ㅣ장지혜 기자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한지원 사회진보연대 부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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