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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웠던 지난 여름, 손수 키운 상추 등을 가져 온 지인 부부입니다.
 무더웠던 지난 여름, 손수 키운 상추 등을 가져 온 지인 부부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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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번개 시간 되남? 되면 친구들과 약속 잡고…."

지인의 전화. 내년에 육십인 지인과 그 친구들은 약속 시간 지키는 건 칼입니다. 오히려 먼저 당도하는 걸 예의로 아는 분들입니다. 요즘 요상하게 약속 시간보다 늦게 와야 바쁜 사람으로 간주하는 것 같은 잘못된 세태에 귀감입니다. 이런 분들과 약속은 언제나 환영이지요.

역시나 모두들 보자마자 함박웃음입니다. 부담 없이 만나는 사람들이라 세 명은 부부동반입니다. 한 지인 부부는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부인까지 함께 해 분위기가 한층 살았습니다. 이를 알았을까, 일행 한 명이 탁자에 비닐봉지를 툭 내놓습니다. 그러면서 쑥스럽게 던지는 말.

"제수씨 맛있게 드세요. 우리 부부가 농약도 안 하고 키운 거니까."

봉지 속에는 오이, 상추, 고추, 쑥갓, 양파가 들어 있습니다. 정년퇴임 후 소일거리 삼아 텃밭을 가꾼다는 지인의 정성입니다. 무더웠던 여름 내내 물주며, 잡초 뽑고 키웠을 걸 생각하면 땀이 녹아 있는 값진 선물입니다. 환갑에도 손잡고 있던 부부가 "고맙다"면서 봉지를 받아들었습니다. 그리곤 불쑥 '아내 예찬론'을 펼쳤습니다.

아내가 아무 것도 안 하고 숨만 쉬고 있어도 '행복'

2년 여 백혈병 투병 끝에 우리 곁으로 돌아온 지인 부부. 환영합니다.
 2년 여 백혈병 투병 끝에 우리 곁으로 돌아온 지인 부부. 환영합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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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내가 옆에서 아무 것도 안 하고 숨만 쉬고 있어도 더 바랄 게 없다. 자다가 눈을 떠 '여보'라고 부를 아내가 있다는 건 너무나 벅찬 행복이다."

물론 그도 이런 남편이 아니었습니다. 여느 부부처럼 많이 다퉜습니다. 아내가 뭐라 하면 이를 피해 다녔다고 합니다. 아내는 이걸 더 못 견뎠다 합니다. 그랬는데, "여보라 부를 아내가 있어 행복하다"니. 부부 사이에 이게 어디 쉽던가. 그에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그가 변한 건 이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평소 운동을 즐기며 건강했던 아내가 병원에서 울면서 전화했더랍니다.

"여보, 혈액 검사 결과가 좋지 않다고 큰 병원 가보래."

부랴부랴 큰 병원을 찾았답니다. 검사 결과, '급성 골수성 백혈병'. 아내가 백혈병이란 소릴 듣는 순간 아무 생각 없더랍니다. 적응할 수도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는 일. 둘이 손잡고 많이 울었답니다. 이 때 위안 받은 노래가 진시몬의 '애원'이었다 하더군요.

"내 앞에 누워 있는 이 사람만은 안 돼/ 차라리 나를 데려가/ 사랑한다고 행복하다고/ 이렇게라도 볼 수만 있다면/ 안 돼요 이번만은 나 어떻게 살라고/ 마지막 마지막 사랑을/
어떻게 하면 돼요/ 난 뭐든지 다 할게요/ 한 번만 사랑하게 해줘요"

그는 "유행가 가사가 어떻게 내 처지와 이렇게 판박이처럼 똑같은지" 기막히더랍니다. 뿐만 아니라 아내가 죽는다고 생각하니, 아내를 보낸다고 생각하니, 그동안 못했던 게 떠오르더랍니다. "있을 때 좀 더 잘할 걸!" 엄청 반성했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아내를 살려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답니다. 의사가 전한, 아내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골수 이식."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더랍니다. 하늘이 노랗더랍니다. 골수 이식도 항암 주사 처치가 성공해야 할 수 있는 암울한 처지. 몇 번의 실패를 거듭한 끝에 골수 이식을 할 수 있는 단계에 도달했답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백혈병은 국가가 관리하는 암이라 의료보험조합에서 95%, 자부담 5%라 비용부담이 적었다는 것. 문제는 누구의 골수를 어떻게 제공 받느냐는 거였답니다.

부부란 서로 힘들 때 가장 힘이 되는 거 같아요!

부부, 신혼 때는 아무 것도 안하고 그냥 손만 잡고 있어도 좋았지요.
 부부, 신혼 때는 아무 것도 안하고 그냥 손만 잡고 있어도 좋았지요.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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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도왔을까. 우여곡절 끝에 일본에 사는 처형과 조직이 맞았다고 합니다. 항암치료 5개월 만에 골수 이식에 성공했습니다. 아직까지 숙주 현상 등으로 꾸준히 병원에 들러 검사를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희망이 없던 때를 떠올리면 매우 행복하답니다. 지인은 아내를 간병하면서 배운 게 많다고 합니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고 했던가. 아내가 아팠는데 아픈 아내를 지켜봤던 내가 더 성숙해진 것 같다. 아내 치료할 때 보니 대부분 환자들 성격이 꼼꼼해 어긋나는 걸 못 보는 경향이더라. 안 아프려면 모든 걸 내려놓는 게 필요하다."

형수님은 노래교실 등에 다니며 현재에 적응 중입니다. 그런 형수와 이렇게 같이 만날 수 있다니 꿈만 같았습니다. 주위에 위암, 간암, 직장암, 췌장암 등으로 세상을 떴거나 투병 중인 분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꿋꿋하게 이겨 낸 형수가 자랑스럽습니다. 더 나아가 부부에 대한 한 마디는 감동입니다.

"우리 남편 아니었으면 그냥 무너졌을 거예요. 부부란 서로가 힘들 때 가장 힘이 되는 거 같아요. 우린 다시 신혼이에요. 남편이 너무 고맙고 감사해요."

'부부', 가까우면서도 먼 사이지요. 한없이 사랑스럽다가도, 어느 순간 보기 싫습니다. 이게 다 서로에게 바라는 게 많기 때문이지 싶네요. "자다가 눈을 떠 '여보'라고 부를 아내가 있다는 건 너무나 벅찬 행복"이라는 지인 부부에게 부부의 사랑법을 배웠습니다.

"있을 때 잘해!"

번개 모임에 백혈병을 이겨낸 부부가 나타나자 분위기가 팍 살았습니다.
 번개 모임에 백혈병을 이겨낸 부부가 나타나자 분위기가 팍 살았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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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제 SNS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태그:#부부, #백혈병, #번개, #골수이식,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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