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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서울글로벌센터 9층 국제회의장에서 서울시설공단이 주최한 '웰다잉과 성숙한 장례문화를 위하여' 국제심포지엄이 열렸다
 11일 서울글로벌센터 9층 국제회의장에서 서울시설공단이 주최한 '웰다잉과 성숙한 장례문화를 위하여' 국제심포지엄이 열렸다
ⓒ 서울시설공단 최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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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기분 나쁘다거나 불길한 주제라고 생각하십니까. 죽음은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고, 매일 매일 우리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중략) 그런데도 왜 우리는 침묵을 지키는 걸까요? 죽음이 두려워서? 두렵다는 건 모른다는 말과 같습니다. 시험이 두려운 이유? 시험에 뭐가 나오는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 어떻게 이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죽음에 대해 연구하고 배우면 됩니다."

'죽음을 배워야 한다', 그것도 꼭! 매우 생소한 메시지를 던지는 토론회가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열렸다. '웰다잉과 성숙한 장례 문화를 위하여'란 주제로 국제심포지엄이 11일 서울글로벌센터 9층 국제 회의장에서 열렸다. 죽음을 대하는 새로운 시각을 공유하고 바람직한 장례 문화 방향을 제시하려는 목적으로 서울시설공단이 주최했다.

이날 심포지엄에는 죽음학의 대가로 알려진 칼 베커 일본 교토대학교 교수를 비롯해 우리나라와 일본, 홍콩, 대만 등 각국 전문가가 참여해 7시간 동안이나 죽음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그 시간은 지루하다기보다는 오히려 흥미진진했다. 죽음이야말로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는 '당연한 나의 문제'이기에 더욱 그런듯 했다.

"죽음에 대한 몰이해... 자살률 결코 낮아지지 않아"

11일 서울글로벌센터 9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웰다잉과 성숙한 장례문화를 위하여' 국제심포지엄에서 기조 발표를 하고 있는 오성규 서울시설공단 이사장
 11일 서울글로벌센터 9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웰다잉과 성숙한 장례문화를 위하여' 국제심포지엄에서 기조 발표를 하고 있는 오성규 서울시설공단 이사장
ⓒ 서울시설공단 최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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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주제 발표자로 나선 오진탁 한림대학교 철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에서 죽음을 몰이해하는 수준이 심각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 교수는 "뇌사 또는 심폐사만으로 죽음을 판정한다는 건 인간이 육체만의 존재임을 전제하는 것이다. 죽음 전체 중 일부분만 다루는 것'이라며 "우리 사회에서 죽음은 의학적·법률적 논의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생사학적·종교적·철학적 접근이 함께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우리 사회가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것이 오 교수의 주장. 그는 "인간이 육체만의 존재이고, 죽으면 다 끝나므로, 자살하면 고통 역시 끝난다는 오해가 사회에 만연해 있다"면서 "죽음을 사회적으로 체계적이고 올바르게 이해하지 않으면 자살 예방 예산이 아무리 늘어난다고 해도 자살률이 낮아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오 교수는 "이런 상황에서는 안락사나 존엄사 논란, 호스피스를 꺼리는 현상은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자살 문제보다 오히려 심각한 것은 매년 26만 명 정도가 임종을 맞지만, 그 중 아름다운 마무리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죽음의 질이 좋지 않으니 삶의 질도 좋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행복 만족도를 올리려면 죽음을 바르게 가르치고 이해하려는 사회적 모색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회는 물론 개인에게도 죽음은 끝이 아니다"

죽음학의 대가로 알려져 있는 칼 베커 일본 교토대학교 교수가 '죽음은 끝이 아니다'는 주제로 발표를 하고 있다
 죽음학의 대가로 알려져 있는 칼 베커 일본 교토대학교 교수가 '죽음은 끝이 아니다'는 주제로 발표를 하고 있다
ⓒ 서울시설공단 최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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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교수에 이어 칼 베커 교수가 '죽음은 끝이 아니다'라는 주제로 청중들 앞에 섰다. 그는 먼저 "죽음은 매일 우리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수백 명의 학생들이 갑자기 사망하는 경우는 그 영향이 더욱 크다"면서 "죽음은 사회에서 결코 끝이라고 볼 수 없다"고 말문을 열었다. 어떻게든 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없는 만큼 죽음에 관해 교육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여야 한다는 의미였다.

이어 칼 베커 교수는 "개인에게도 죽음은 끝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일찍이 모든 문명에서 예수나 석가모니와 같은 현자들의 이야기가 그러했으며, 의학적으로도 매우 오래 전부터 근사 체험(혹은 임사 체험)에 대한 기록이 존재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일본에서는 쓰나미 이후 발생한 근사 체험에 대한 연구가 진지하게 이뤄지고 있다"며 "근사 체험은 죽음이 결코 끝이 아니란 걸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칼 베커 교수는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이해가 현대 사회에 들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연명 치료나 생명 연장 등이 가능해지면서 죽음에 이르는 시간이 더욱 길어지고 있다. '어떻게 죽고 싶은가'라는 일종의 선택권을 주고 있는 것"이라며 "그런 만큼 더욱 더 죽음을 잘 이해하고 미리 준비해야 사회도 그에 따른 혜택을 볼 수 있다. 현대 시민에게 꼭 필요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이어진 그의 말에는 박수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지금, 이 순간, 오늘은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이걸 버리고 도망가게 된다면, 오늘을 되돌려 받지 못할 것입니다. 죽음은 어쨌든 우리를 찾아옵니다. 죽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여기서, 이 신체에서 잘 살아가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 이 시간은 다시 오지 않습니다. 이 시간을 저와 함께 살고 있는 여러분에게 감사 드립니다."

"근사 체험은 이제 의학의 한 연구 분야"

11일 서울글로벌센터 9층 국제회의장에서 서울시설공단이 주최한 '웰다잉과 성숙한 장례문화를 위하여' 국제심포지엄이 열렸다
 11일 서울글로벌센터 9층 국제회의장에서 서울시설공단이 주최한 '웰다잉과 성숙한 장례문화를 위하여' 국제심포지엄이 열렸다
ⓒ 서울시설공단 최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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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베커 교수에 이어 정현채 서울대학교 교수(소화기 내과 의사) 역시 풍부한 사례를 근거로 근사 체험의 과학성과 중요성을 강조해 이목을 끌었다. 230회 이상 죽음학 강연을 한 이력을 갖고 있는 정 교수는 "세계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는 <란셋>이란 의학 학술지에 근사 체험에 대한 연구 논문이 게재될 만큼, 근사 체험은 이제 의학의 한 연구 분야로 발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근사 체험자는 무경험자에 비해 다른 사람을 더 공감하고 이해하게 되고, 인생의 목적을 더 잘 이해하며, 죽음을 향한 두려움은 큰 폭으로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대만 타이베이 여러 병원에서 시행한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고 강조했다. 건강한 생사관 형성을 위해 죽음에 관해 교육하는 것이 필요함을 근사 체험 사례가 보여준다는 얘기다.

정 교수는 이어 "근사 체험이 사후 세계의 유무를 따지거나 종교를 가지고 있는지의 여부를 떠나서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게 아니란 걸 알 수 있는 현상이기 때문"이라며 "자살 예방 교육이나 임종을 앞둔 사람이 죽음에 갖는 엄청난 불안이나 공포를 덜어주는 데도 근사 체험 사례는 크게 도움된다"고 말했다.

시신 기증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삶과 죽음의 교육이 가능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찬 랍키 홍콩대학교 교수와 대만의 앙잉웨이 츠지대학교 교수는 각각 시신 기증 프로그램을 소개하면서 자신의 시신을 '침묵의 스승'으로 기증하는 움직임이 갈수록 활발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에서는 가족 기능 약화로 인해 수목장 인기

'웰다잉과 성숙한 장례문화를 위하여' 국제심포지엄에 참가한 각국 전문가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웰다잉과 성숙한 장례문화를 위하여' 국제심포지엄에 참가한 각국 전문가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서울시설공단 최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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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식사 이후 오후에 속개된 심포지엄에서는 '세계의 장법'에 대한 다양한 사례 소개와 주제 발표가 이어졌다.

특히 이노우에 하루요 도요대학교 교수는 가족 기능 약화로 인한 장법의 변화 추이를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2005년까지는 부부와 자녀로 구성된 세대가 가장 많았지만, 만혼화, 생애 미혼화, 자녀를 갖지 않는 사람들의 증가로 2010년에는 단독 세대 형태가 가장 많았다"며 "이로 인해 가족이 무덤을 지킬 필요가 없고 대자연의 품에서 잠드는 장례 방법인 수목장이 인기를 얻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에 반해 박태호 한국장묘문화개혁범국민협의회 정책실장은 자연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박 실장은 "수목장 광풍으로 법 제도가 정비되기 전, 허가도 받지 않은 사설 수목장이 전국 도처에서 등장하는 등 부작용이 크다"며 "후손들이 살아갈 강산을 온전히 지켜주기 위한 측면에서도 조상들이 많이 사용하던 훌륭한 장법, 순수한 자연장에 더 관심이 높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심포지엄은 보조 좌석이 필요할 정도로 많은 청중들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오성규 서울시설공단 이사장은 기조 발표를 통해 "33분에 한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살률 1위 국가, 이것이 현재 한국사회의 자화상"이라며 "지금의 위기 상황은 올바른 사생관의 정립을 통해 성숙한 죽음 문화를 정착하는 것으로 해결의 추진 동력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웰빙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웰다잉"이라고 강조했다.


태그:#장례, #자살, #오진탁, #칼 베커, #수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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