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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률 10%. 어디 내놓기도 민망한 이 결과가 '협동조합기본법' 통과 이후 한국의 협동조합이 받아든 성적표다. 김성오 한국협동조합 창업경영지원센터장은 "새로 생겨나는 협동조합 중 성공하는 것은 10% 정도 될까 싶다"며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한국의 협동조합은 기업으로서 생존하면서 조합원들을 만족시키고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세 마리를 토끼를 다 잡아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성공하려면 신중하고 또 신중할 필요가 있다. 실패에 대비한 전략도 철저하게 짤 필요가 있다"고(262쪽) 말한다.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도전도 해보기 전에 겁부터 먹을 필요는 더더욱 없다. 170여년이 넘는 유럽의 협동조합 역사에 비하면 한국은 '초짜'다. 날 때부터 잘하는 사람 어디 있던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공부하고 연습하다보면 성적도 올라갈 것이다.

시사IN 김은남 기자가 쓴 <이런 협동조합이 성공한다>는 한국에서 제일 '잘 나가는' 협동조합 15곳을 심층취재 해 엮은 책이다. 잘 나간다고 자랑만 늘어놓지는 않는다. 책에 소개된 협동조합들도 처음부터 '대박'난 곳은 없다. 괜히 만들었다 후회도 하고, 존폐 위기에도 내몰려 봤다. 그래서인지 이 협동조합들의 경험이 '남의 일' 같지 않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이들의 말은 굉장히 '현실적'이고, 좌충우돌을 겪으면서 체득한 교훈은 책에 써진 백 마디 말보다 더 큰 위력으로 다가온다.

협동조합, '지지고 볶다' 보니 길이 보였다

<이런 협동조합이 성공한다> 표지
 <이런 협동조합이 성공한다> 표지
ⓒ 개마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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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기업의 성공은 이윤창출 여부에 달려 있다. 그러다면 협동조합의 성공 여부는 무엇으로 판단해야 할까. 어떤 잣대로 '성공'을 규정하느냐는 협동조합 조직의 본질과도 연관된 중요한 문제이다.

국제협동조합연맹(ICA)은 '협동조합은 공동으로 소유되고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사업체를 통하여 공통의 경제, 사회, 문화적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자율적인 조직'이라고 정의한다. '사업체'이면서 동시에 '결사체'라는 말이다.

협동조합의 성공은 아마도 이 두가지 요건을 동시에 충족하면서도 지속가능한 생명력을 갖고 있는가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오래가는 협동조합이 되려면 '나그네 조합원'이 아닌 '주인 조합원'을 키워야 한다. 조합원들이 튼튼하면 자본조달이나 의사결정과정의 어려움도 해결해나갈 수 있다.

말로만 협동조합을 하자면서 누군가는 협동조합을 '주인없는 회사'로, 또 다른 누군가는 '이윤을 N분의 1로 나눠갖는 회사'로 이해하는 식이어서는 곤란했다. 협동조합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미션이 분명해져야 나머지 작업도 순조롭게 풀릴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판단이었다. 이를 위해 전 사원 워크숍을 벌인 것만 여섯 차례. 맨 마지막 워크숍 때는 직원들이 스스로 중요하다고 여기는 가치를 종이 한 장에 다 써내기로 했다. 그리고는 이 중 가장 많이 언급된 가치 4가지를 추렸다. '행복' '사람' '협동' '상생'이 그것이었다. 이들 4가지 핵심 가치를 추린 뒤 이들은 벅찬 감동을 느꼈다.(71~72쪽)

주식회사 '해피브릿지'가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는 과정이다. 핵심 가치에 기반해 도출된 '해피브릿지'의 비전은 "직원과 고객의 경제적 만족과 자아실현을 추구하는 지속가능한 협동조합 기업이 된다"라고 한다.

'국수나무'로 유명한 프랜차이즈 '해피브릿지'는 연매출 312억 원의 잘나가는 회사에서 2013년 '노동자협동조합'으로 대변신했다. 스페인의 '몬드라곤 협동조합'과 같은 노동자협동조합은 한 마디로 주주가 아닌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회사다. 해피브릿지는 전 직원의 80%가 조합원이다.

"우리는 망해도 천 명이 함께 망하는 구조다."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추혜인 이사장, 111쪽)
"신뢰하고 협력하는 것이 결국 조합원 모두에게 더 큰 이익으로 돌아온다는 협동조합의 작동 원리를 믿고 나아갈 수 밖에 없다." (신흥중 동네빵네협동조합 이사장, 172쪽)

'1인 1표'에 기반한 수평적 의사결정구조를 가진 협동조합은 늘 말이 많다. "과거에는 '조용히 말 안 듣는 조직'이었다며 지금은 '시끄럽게 말 안 듣는 조직'으로 바뀐 것 같다"는(75쪽) 송인창 해피브릿지 이사장의 뼈 있는 농담에서 고충이 느껴진다.

공동 소유, 공동 책임이라는 협동조합의 특징은 위기시에 강점으로 발휘되기도 하지만 조합원들 간의 갈등과 느린 의사결정과 높은 비용이라는 약점이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협동조합인 이유는 '협동의 위력'에 대한 굳건한 믿음 때문이다.

전국 의료협동조합 220여곳 중 상당수가 '무늬만 협동조합'이거나 만성 적자구조에 허덕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시 은평구의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살림의료사협)은 주민참여형 동네병원으로 완전히 자리잡았다. 협동조합의 성패는 조합원들이 사업을 얼마나 이해하고 애정을 갖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일년에 한번 얼굴 내미는 총회 모임만으로는 안 된다'고 본 살림의료사협은 조합원 조직과 교육에 각별히 힘을 쏟았다. 중요한 이슈는 조합원 대 토론회를 열어 결정한다. 까다로운 의료수가 문제나 마을 건강센터 설립, 치과 병원 개원 작업 등도 이런 과정을 거쳐 결정됐다. 조합원들은 "이 모든 사안에 대해 직접 거수하여 결정을 내리는 과정이 신기하고 놀랍기도 했다"(109쪽)고 말한다.

재벌기업의 베이커리 프랜차이즈 공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결성한 '동네빵네협동조합'의 시작도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동네빵집 사장들이 모여 공동으로 빵 공장을 설립하고 공동으로 제품 개발과 생산을 해 오고 있다. 공장에서 갓 생산한 빵을 인근에 포진한 각자의 점포에서 판매하는 구조다.

예상했던 만큼 수익이 나지 않자 빚은 늘어나고 조합원간 불화도 생기는 악순환이 찾아왔다. 신흥중 이사장은 "그럼에도 협동조합이라는 조직 형태를 선택한 이상 문제를 풀어나갈 방법은 한 가지 밖에 없는 것 같다"며 "공장을 살리기 위해 조합원들이 머리를 맞대니 길이 보이고 동네 빵집이 다시 빵집의 대명사가 될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겼다"(174쪽)고 한다. 

세계 협동조합 역사에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세대별 협동조합'인 '청년연대은행 토닥'은 청년세대의 절박함과 한국 특유의 강력한 온라인 기반이 만나 탄생했다. 긴급생계자금 지원과 같은 소액대출사업을 벌여 세간의 주목도 받았지만 조합원들 중에는 시민단체 후원하듯이 출자금만 내고 멀찌감치 떨여져 있는 이들이 많았다. 조합원들간의 긴밀한 관계를 만들어야 했다. 다양한 소모임을 만들고 무조건 자주 만나 놀 수 있는 계기를 많이 마련했다.

신입 조합원 교육을 받은 조합원 비율이 전체의 20%에 달했다. 보통 협동조합에서는 좀체로 달성하기 어려운 수치다. '열린 이사회' 제도를 도입해 정식 이사들 뿐만 아니라 일반 조합원도 참여해 의견을 개진하도록 했다. 온라인에서는 열린 이사회가 상시 운영된다. 조합원들간의 관계가 긴밀해지자 사업도 활기를 띠었다. 조합 설립 2년 동안 토닥의 소액대출 상환율은 87%에 육박한다.

'끼리 끼리' 살 수 있도록 해 줘야 한다

김성오 센터장은 협동조합의 조직 운영 원리에 맞게 조합을 운영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리스크를 분산하기 위해서는 협동조합이 사업안전망과 고용안전망을 구성할 수 있어야 한다"고(263쪽) 지적한다. 예컨대, 노동자협동조합들로 이루어진 노동자협동조합연합회가 만들어질 경우, 스페인 '몬드라곤'처럼 산하에 '고용기금'을 만들어 망한 협동조합 노동자들이 새로 일어설 때까지 안전망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협동조합이 금융이나 보험업을 할 수 없도록 차단하고 있다.

신성식 아이쿱생활협동조합 경영대표도 비슷한 지적을 한다. 현행법은 협동조합이 다른 협동조합을 지원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신 대표는 "아이쿱이 이익금의 몇 퍼센트를 적립했다가 어려움을 겪는 지역 매장을 지원하면 이게 내부자간 부당지원이 되는 식"이라며 "유럽, 퀘벡 지역에서는 워낙 이른 시기에 협동조합이 발달하다보니 금융, 세제 등과 관련한 정부 차원의 여러 규제가 생겨나기 전에 협동조합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었던 데 반해 우리는 괸장히 척박한 상황에 놓여 있다"고(264쪽) 설명한다.

협동조합들이 협동하면서 살 수 있도록 지원해준다면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협동조합과의 연대를 통해 기금을 만들어 협동조합끼리 돕고 협동조합의 창업을 밀어주는 구조를 만드는 것, 협동조합 생태계 구축이 중요한 이유다. 창업에 필요한 컨설팅, 인큐베이팅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고, 파산하더라도 리스크를 분산할 수 있는 구조가 된다면 '협동조합 거품론'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성공한 협동조합의 7가지 비결

1. 목 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 : 공통의 필요와 열망을 조직하라.
2. 끼리끼리 잘 살아보세 : 조합원에게 실질적 이익을 돌려줘라.
3. 조합의 주인공은 나요 나 : 조합원을 주인으로 만들라.
4. 시장이 무너지 곳에서 길은 시작된다 : 대안 안전망을 모색하라.
5. 순혈주의에서 벗어나기 : 외부 자원을 현명하게 활용하라.
6. 지역에 길이 있다 : 사는 곳을 중심으로 할 일을 찾아라.
7. 세상은 넓고 협동할 일은 많다 : 새로운 가치를 선점하라. 

○ 편집ㅣ최은경 기자

덧붙이는 글 | <이런 협동조합이 성공한다>(김은남 지음 / 개마고원 펴냄 / 2015. 06.)
이 기사는 이민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yes24.com/xfile340)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런 협동조합이 성공한다 - 성공하는 협동조합의 7가지 비결

김은남 지음, 개마고원(2015)


태그:#협동조합, #협동조합기본법, #협동조합 생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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