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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총리 공관 주변 100m 내 집회·시위를 금지한 현행법이 위헌 소지가 있다며 헌법재판소 판단을 받아봐야 한다는 법원 결정이 나왔다.

9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3단독 유환우 판사는 정진우 전 노동당 부대표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아래 집시법)의 국무총리 공관 주변 금지조항을 두고 낸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을 받아들였다. 그는 또 지금껏 심리해온 정 전 부대표의 집시법 위반 사건 선고를 헌재 결정 뒤로 미뤘다.

정 전 부대표는 지난해 5~6월 세월호 참사 추모집회에서 경찰의 해산명령에 불응하는 등 집시법을 어겼다며 재판을 받아왔다. 검찰이 문제 삼은 집회 가운데는 2014년 6월 10일 오후 청와대 인근에서 열린 '6·10 만인대회'도 있었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시민단체들은 이날 청와대 주변 61곳에서 집회를 열겠다고 신고했다. 하지만 경찰은 단 한 곳도 허가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집회 개최를 시도하던 시민들은 오후 9시 20분경 총리 공관 부근에서 경찰과 충돌했다. 검찰은 이 장소가 총리 공관으로부터 약 60m 떨어진 곳이라 집시법 11조 3호(☞ 바로가기)가 정한 집회 금지장소인데도 정 전 부대표가 시위를 벌였고, 경찰의 해산 명령에 따르지 않았다고 했다.

☞ 청와대 근처 '세월호' 관련 집회 모두 금지?
☞ 6·10 만인대회 참가 시민·학생 강제 연행

반면 정 전 부대표는 해당 조항이 헌법에 어긋난다며 재판 도중 법원에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을 냈다. 유환우 판사는 이 조항의 위헌 여부에 따라 정 전 부대표의 공소사실 가운데 유무죄 판단이 달라지는 부분이 있다며 그의 주장을 살펴봤다.

'총리 업무 방해 가능성'만으로 집회‧시위 전면 금지?

2003년 헌재는 집회의 목적과 내용은 집회 장소와 밀접한 관계이기 때문에, 집회 장소를 자유롭게 정할 수 있어야 집회의 자유가 효과적으로 보장된다며 국내 주재 외교기관 인근 100m 내 집회와 시위를 금지한 옛 집시법 11조 1호가 위헌이라고 결정했다(2000헌바67). 특정장소에서 열리는 집회를 금지하더라도 '최소침해의 원칙(공공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기본권을 침해해도 그 정도를 최소화해야 한다')을 따라야 한다는 이유였다.

그런데 집시법 11조 3호는 총리의 업무 수행과 신체적 안전을 보장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유 판사는 이 목적 자체는 정당하다고 봤다. 하지만 ▲ 건물 밖에서 열리는 집회가 총리의 업무 수행 등을 침해한다고 보기 어렵고, ▲ 행진과 옥외집회가 크게 다르지 않은데도 총리 공관 주변에서 행진만 허용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 행진 중간에 멈추거나 연좌시위하는 등 다른 방식의 집회 역시 총리 업무 수행 등에 아무런 지장이 없고 ▲ 휴일에 집회를 여는 것도 가능한데 집시법 11조 3호가 모든 집회를 예외 없이 금지한 것은 과도한 제한이라고 판단했다. 정말 문제가 생긴다면 집시법이나 형법 등으로 충분히 제한할 수 있는데도 '총리 업무 수행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만으로 공관 주변에서 행진을 제외한 집회와 시위를 전면 금지한 것은 지나치다고도 했다.

정진우 전 부대표는 10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선고를 앞두고 갑자기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이 받아들여졌다"며 법원 결정을 반겼다.

그는 "집회의 자유는 국민들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데도 사실상 허가제"라며 "특히 6‧10 만민대회는 경찰이 집시법의 잣대로 시민들의 기본권 자체를 강제로 박탈한 일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건"이라고 했다. 이어 "국민을 대표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정치적 표현은 자유롭게 이뤄져야 하는데 총리 공관·청와대 주변 집회와 시위를 원천 금지하는 것은 항의조차 하지 말라는 뜻"이라며 "헌재가 이번에 이 점을 고려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태그:#세월호 집회, #정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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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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