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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3명의 젊은 일본인 대학생들은 자신들이 교과서에서 배운 역사와 세계가 실제와는 다르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이들이 책에서 배운 지식이 심하게 왜곡되어 있거나, 아니면 전혀 다르게 기술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들 청년은 세계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교과서를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현장에 찾아가 현지의 사람들과 소통하며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현장의 역사적 사실들과 조우하고 사람들과 소통할 때, 진정으로 그들을 이해하고 세상을 배울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출항 당일 피스보트 배 위에서의 축제
▲ 피스보트 사진3 출항 당일 피스보트 배 위에서의 축제
ⓒ 이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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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작한 피스보트가 이제는 지구를 한바퀴 도는 평화크루즈를 통해 세계를 이해하는 여행을 시작한 지 32년이 흘렀다. 30주년을 맞이하면서 피스보트는 좀 더 체계적인 평화교육을 고민했고 그 결과 올해는 특별지구대학프로그램(Special Global University Program)을 시작했다.

일본에서는 동경대학과 동경외국어대학, 중국에서는 중국외교정책 대학 그리고 한국에서는 한신대학 등 한중일의 각 대학과 피스보트가 협력하여 움직이는 대학 프로그램을 마련한 것이다. 전후 70년을 각각 다르게 기억하고 있는 한중일의 청년들이 과연 어떻게 함께 할 수 있을까? 지난 9월 3일 항일승전기념행사를 치른 중국과 8월 15일 광복70주년을 맞이한 한국, 안보관련법안을 통과시키려는 아베정권의 일본, 각국의 70년에 대한 기억은 이렇게 달랐다.

우리는 처음엔 긴장이 되었지만 금방 친해졌다. 여기에는 네팔과 인도의 친구도 함께 했는데 우리는 인종과 국가에 얽매이지 않고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그러는 동안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국경선이 저절로 허물어지는 것을 목격했다. 2주라는 시간은 긴 시간이 아니다. 그렇지만 배를 타기 전과 배에서 내린 후의 느낌은 분명 달랐다. 2주 동안 나는 무엇을 목격하고 무엇을 배웠는가.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일본의 어두운 그늘

특별지구대학 프로그램은 그 주제가 인간안보에 관한 것이었다. '무엇이 우리의 일상을 위태롭게 하는가' 그리고 '그 위험은 어떻게 국경을 넘어 우리 모두의 문제가 되어있는가'를 함께 고민하고 현장을 통해 배우는 프로그램이었다. 피스보트는 8월 21일 요코하마에서 출발하여 9월 8일인도 뭄바이에서 끝나지만 한국 참가자들은 9월 1일 개학을 맞이하기 때문에 요코하마에서 필리핀의 세부를 답사하고 싱가포르 프로그램을 끝으로 귀국하였다.

본 프로그램은 배를 타기 전인 8월 19일 동경에서 이미 시작되었다. 한 때 세계경제 2위를 자랑했던 선진국 동경에서 우리는 '산야(山谷)'의 노숙자들과 만나는 기회를 가졌다.

동경 우에노역 근처에 위치한 '산야(山谷)는 본래 빈곤층과 노동자들이 모여살던 곳인데 전쟁 후, 집을 잃은 많은 피해자들이 이곳에 텐트를 치고 생활하면서 이른바 텐트촌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일본은 1964년 동경올림픽을 맞이하여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도시를 정비하는 등 고도경제성장에 진입했지만 정부가 이들을 보이지 않는 곳으로 쫓아내는 과정에서 경찰과 노숙자들 사이의 대규모 폭동이 일어났다. 그후 이곳의 삶을 다큐로 찍었던 감독들은 살해를 당하기도 하고 이곳 노숙자들과 일일고용노동자들의 삶은 노래, 영화, 소설 등 많은 예술작품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전후 일본 고도경제성장의 그늘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곳이다.

그들이 살고 있는 텐트는 비좁고 열악했다. 처음엔 공원 안쪽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하길래 나름 넓고 쾌적한 공원에서 사시는 분들이라 상상했으나 말이 공원이지, 그들이 사는 곳은 그냥 텐트를 쳐놓은 임시 피신처(Shelter)같았다. 우리가 방문한 날은 비가 끊임없이 내려 텐트 안쪽으로 사람이 많이 들어갈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일행에게 선뜻 자리를 내주고 인터뷰에 응해주어 무척 고마웠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비는 서서히 그쳤지만 노숙자 분들이 앞으로도 지내야 할 날들은 여전히 그 비좁은 텐트 안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산야의 경험을 친구들과 나누고 토론을 하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다음날 아침 7시 30분 우리는 우주소년 아톰의 고향이라는 다카타노바바역을 출발하여 피스보트를 타기 위해 요코하마로 향했다. 요코하마 역에서 내린 뒤 10분 정도를 더 걷자 드디어 우리가 탑승할 피스보트가 보였다. 배는 생각하던 것 이상으로 컸다. 여행이 시작됬다는 것이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뜻밖에도 전세계 60여 개국에서 YMCA청년들이 우리와 함께 탑승했다. 이들도 요코하마에서 싱가포르까지 열흘간의 일정을 피스보트 위에서 YMCA 워크숍을 한다고 한다. 제 88회 크루주인 이번 항해에는 피스보트 출항한 이래 처음으로 전세계 청년 약 200여명이 탑승을 하는 것이라고 한다. 배위에서는 낯선 이들과 자주 만나게 되고 자주 만나다 보면 자연스럽게 친구가 된다. 그야말로 바다 위의 섬, 움직이는 작은 사회라고 할 수 있다. 특별지구대학 프로그램의 강의와 워크숍이 매우 빡빡했지만 그래도 배안에서 많은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다.

필리핀, 욜란다 이후 그들은...

Option이라는 자선단체의 태풍 율란다에 대한 프리젠테이션
▲ 피스보트 사진4 Option이라는 자선단체의 태풍 율란다에 대한 프리젠테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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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안바타얀 욜란다 피해지역 아이들에게 듣는 재해 당시 상황
▲ 피스보트 사진5 다안바타얀 욜란다 피해지역 아이들에게 듣는 재해 당시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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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트가 가장 먼저 향한 나라는 필리핀. 장장 5일동안 배를 타고 도착한 곳은 2013년 5천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태풍 하이엔의 피해지역인 세부 섬이었다.  우리는 배에서 내리자 준비된 버스를 타고 곧장 캄부하위(Cambuhawi)로 이동했다.  2013년, 태풍 하이옌(Haiyan)을 이곳에서는 욜란다라고 부른다. 우리는 태풍피해 이후 자연재해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그리고 전세계 NGO의 다양한 지원과 봉사활동과 지원이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를 알아보고자 했다.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바깥으로 보이는 야자수와 바닷가 풍광은 충분히 이국적이었다. 낡고 허름한 건물들이 줄지어 나타나고 간간이 초등학교가 눈에 띄었다. 이런 주변환경을 보고 자란 어린 학생들은 이른 아침 학교에 등교할 때마다 무슨 생각을 할지 상상해 보았다. 그리고 이들이 나중에 어떤 사람으로 성장할 지 또한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어쩌면 이들이 세계의 비합리성과 불공정함에 대해서 우리가 깨닫는 것 보다 훨씬 더 이른 시기에 깨닫게 되지 않을까.

버스를 타고 얼마 후 캄부하위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우리를 반겼던 것은 Option 이라는 시민단체였다. 고립된 사람들을 도와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단체였는데, 필리핀에서 재해 이후의 상황과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이들로부터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진지한 질문과 설명으로 어둠이 깔린 뒤에야 정부가 제공한 피난 숙소에 머물고 있는 많은 어린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필리핀 다안바타얀 욜란다 피해지역 해안에서
▲ 피스보트 사진6 필리핀 다안바타얀 욜란다 피해지역 해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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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 외로 아이들의 얼굴은 밝았다. 숙소앞의 밝은 가로등 불빛아래 아이들은 공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친구들과 생활하는게 즐거운 지, 몇 년전 입은 피해에 대해 벌써 잊은 건지 어른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과 부담은 아이들로부터 찾아볼 수 없었다. 이 아이들이 지금 가지고 있는 밝은 웃음과 희망을 어른이 되어도 잃지않고 성장해 필리핀의 미래를 밝혔으면 좋겠다.

이튿날 우리는 다안반타얀(Daanbantayan)이라는 어촌 마을을 방문하여 그곳 동네주민들과 환담하는 자리를 가졌다. 태풍 욜란다의 피해가 다 복원되지 않은 흔적이 여기저기서 발견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은 우리의 송편과 비슷하게 보이는 떡과 코코넛으로 빚은 맛있는 밥을 정성껏 제공해주었다. 남녀노소 없이 동네 주민은 모두 모인 듯 했다. 환담이 끝나고 어른은 어른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우리 친구들과 격의 없이 어울렸다.

이들은 자연을 원망하지도 않았고 동네를 떠나지도 않았다. 자신을 삼켰던 태풍이 언제 또 올지 모르지만 이들은 그조차 자신들의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듯 하다. 우리는 남은 시간, 파손된 배들을 수리하고 페인트칠하는 과정을 돕기도 했다. 태풍으로 인해 가진 것을 잃고 더욱 더 가난하게 되었지만 아이들은 바닷가에서 다른 친구들과 노는데 아무런 불만이 없었다. 문득 같은 나이 또래의 우리나라 초등학생들이 학업 스트레스에 눌려 얼마나 불행하게 사는지 떠올랐다. 부유한 것이 행복하게 사는 것의 충분 조건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한 번 깨달으며 나는 현재 얼마나 내 삶에 만족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는지 생각해보았다.

싱가포르, 다인종 국제도시 그리고 이주노동자들

싱가포르의 공공장소에서는 노숙자를 반대한다는 설명을 들으며
▲ 피스보트 사진7 싱가포르의 공공장소에서는 노숙자를 반대한다는 설명을 들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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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의 인디언 마을 탐방
▲ 피스보트 사진8 싱가포르의 인디언 마을 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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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상에서 2045년 종전 100년의 아시아를 디자인해 보면서 향후 30년 각자의 미래를 구상하고 우리의 과제를 토론하는 동안 배는 싱가포르에 도착하였다. 자연의 피해와 혜택이 뚜렷하게 보였던 세부와 달리 싱가포르은 도시문명의 근사한 스카이라인이 너무도 근사해서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에서 미래로 온 느낌이었다.

반나절 밖에 되지 않는 싱가포르 일정으로 우리가 방문한 곳은 싱가포르의 번화한 도시 한 가운데 위치한 작은 인도 마을이었다. 중국계 74%, 말레이계 13%, 인도계10%를 중심으로 유라시아를 포함한 다양한 인종이 살고 있는 싱가포르은 아시아를 압축시켜놓은 비빔밥 같은 국제 도시라는 인상이 깊다. 공식언어도 영어, 중국어, 말레이어(바하사 멜라유), 타밀어 등 4개언어를 인정하고 있다.

작은 인도마을에서 우리가 찾은 곳은 TWC2(Transient Workers Count Too)라는 이주노동자 단체였다. 싱가포르은 인도, 방글라데시 등을 중심으로한 이주노동자가 매우 왕성하게활동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권리는 거의 보호받지 못하고 월급을 제대로 받는 경우도 드물며 산재등의 재해에도 매우 취약하다. 그런데 싱가포르에서 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아 이들의 인권은 사각지대에 놓여있다고 한다. 일본 산야에서 고도경제성장을 한 일본의 그늘을 보았듯이 살기좋은 도시로 소문난 싱가포르의 이면을 또 한 번 들여다보게 되었다.

실제로 국경을 가로질러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사회 문제들 속에서 누가 사회의 약자이며 이들의 인권이 어떻게 심각하게 침해되고 있는지를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피스보트를 떠나며..

그렇게 2주간의 여행이 끝났다. 2주간 나는 무엇을 배운 것인가. 그래서 결국 인간안보를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학교에서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재해와 가난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아닐텐데 말이다. 그러나 피스보트는 우리들에게 중요한 교훈을 가르쳤다. 우리의 작고 세세한 관심이 세상을 바꾸는 원동력이라는 것을. 교과서를 열심히 외운다고 세계 평화가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지구 반대편의 아이들이 하루에도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해 죽어가고 있는 것에 대해서 단순한 연민을 넘어 일말의 책임감을 느낀다면, 또한 재해로 인해 가족을 잃고 집을 잃은 어린 아이들을 위해 지속적인 관심과 헌신을 기울일 수 있다면, 우리가 원하는 세상에 좀 더 가까워질 것이라는 생각을해 본다.


태그:#국제, #NGO, #피스보트, #70주년,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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