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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자고 일어나니, 나는 한 마리의 흉측한 벌레가 되어 있었다.'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변신> 이야기가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아이가 있다는 죄?!로 나는 맘충('mom+벌레 충'을 결합한 신조어)이 되어 버렸다.

엄마는 억울하다

가방과 유모차에는 아기 짐이 잔뜩 있다.
▲ 큰 맘 먹고 나간 아이와의 외출 가방과 유모차에는 아기 짐이 잔뜩 있다.
ⓒ 송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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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뉴스에서 떠드는 맘충의 사례를 보면, 아이 엄마인 내가 봐도 기가 막히다. 아이와 함께 외출할 때는 여러모로 신경을 더 쓰기 때문이다.

애완동물의 배변 봉투를 챙기듯 기저귀 가방에는 쓰고 난 기저귀를 놓기 위한 여분의 비닐봉지를 담는다. 외식할 때 아이가 앉았던 자리는 바닥까지 물티슈로 깨끗하게 닦고 온다. 답답함을 못 이긴 아이가 울먹이기 시작하면 남편과 교대로 아이를 안고 밖으로 나갔다 온다. 모처럼 가족끼리 외식하러 나갔는데, 혼자 밥을 먹는 그 외로움이란…!

아이가 없을 때는 병원이나 식당에서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보여주는 부모가 이해가 안 갔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보니, 스마트폰을 보여주는 것은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자리에 앉아 있게 하려는 부모들의 꼼수임을 알게 되었다.

외출했을 때 아이가 자면 정말 고맙겠지만, 대개는 낯선 환경 때문에 평소보다 더 크게 울거나 응가를 하는 참사가 일어나기도 한다. 어느 겨울, 아이가 응가한 기저귀를 갈아야 하는데 마땅한 곳이 없어 식당 앞 도로변에서 황급히 기저귀를 갈던 일은 이제 추억이 되었다.

내 눈에는 사랑스럽지만 다른 사람의 눈에도 내 아이가 그러리란 법은 없다. 따라서 아이를 데리고 다니려면 이런 불편함은 당연히 감수해야 할 일이라 생각했다.

<안 돼, 데이빗!>

글, 그림 데이빗 섀논
▲ 그림책 <안 돼, 데이빗!> 겉표지 글, 그림 데이빗 섀논
ⓒ 지경사(데이빗 섀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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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들이 아이와 외출했을 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안 돼! 하지 마!'다. 데이빗 섀논의 그림책 <안 돼, 데이빗!>처럼 말이다. 이 그림책은 데이빗이 저지르는 기상천외한, 그러나 아이가 있는 집에서는 지극히 일상적인 일들을 보여준다.

음식으로 장난치고, 이리저리 어지른 다음 치울 생각은 눈곱만큼도 하지 않는 데이빗. "하지 말라"고 하면 보란 듯이 더 하면서 엄마의 혼을 쏙 빼놓는다. 사실 아이란 그런 존재다.

식당에서 수저통을 보면 꼭 뒤적이려 하고, 전생에 말이었나 싶을 정도로 안팎 구분 않고 마구 뛰어다니기 바쁘다. 아이는 몸으로 부딪혀 결과를 제 눈으로 확인하면서 세상을 조금씩 알아나간다. 부모들은 이런 아이의 기질을 알기에 집안에서는 대개 아이의 잘못에 허용적인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집 밖으로 나가면 상황은 달라진다. 아이의 행동으로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부모는 아이를 사랑하는 만큼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은 안 된다고 가르쳐야 한다. 안 된다는 말을 연발했지만, 결국엔 울고 있는 데이빗을 안아주는 엄마의 모습으로 끝나는 그림책처럼 말이다.

맘충은 있지만 아빠충은 없다

그런데 맘충은 왜 생겨났을까? 물론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부모들도 있다. 이들은 식당에서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데도 술잔을 기울이기 바쁘다. 도서관에서 아이가 책을 잔뜩 어질러 놓았는데도 그냥 집으로 가버린다.

장난이 심한 아이들에게 점잖게 주의라도 줄라치면, "왜 우리 아이 기죽이냐"고 언성을 높이며 똥배짱을 부린다. 말썽을 부리는 아이 뒤에서 '안 돼, 데이빗!' 하고 저지하는 부모를 찾기 어렵다. 이런 부모들 때문에 '노키즈 존'이 늘고, '맘충'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그런데 요새는 '맘충'이란 말이 엄마 집단을 싸잡아 욕하는 말로 변질되고 있다. 얼마 전 배변 훈련을 주제로 육아 기사를 썼다가, 포털에 달린 댓글을 보고 깜짝 놀랐다. 대다수 댓글이 본문과 상관없이 기저귀를 함부로 버리는 '맘충'에 대한 비방이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혼자 태어나 혼자 커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이 엄마들을 싸잡아 '맘충'이라고 욕하는 사람 또한 엄마의 사랑과 희생으로 태어나 자라났을 것이다. 그러니 극단적인 여성 혐오로 이어지는 맘충에 대한 비난은 삼가야 하지 않을까?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꿈꾼다

평일이면 매일 집 앞에서 첫째의 어린이집 등하원 차를 기다린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가는 좁은 골목길이다 보니, 아이가 어린이집 차에 타는 동안 뒤에서 기다리는 차가 보이면 마음을 졸이게 된다.

특히 아침 출근 시간이면 아이가 안전띠를 메고 떠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 길게만 느껴진다. 그럴 때면 나는 경적을 울리지 않고 기다려준 차량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눈인사를 한다. 그러면 뒤 차량의 운전자도 손을 흔들거나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다. 우리는 여전히 상식과 정이 통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맘충'이라고 불릴 만한 짓을 하는 부모도, 아이 엄마는 무조건 싸잡아 '맘충'이라 욕하는 사람들도 소수라고 굳게 믿는다. 세상살이가 오죽 팍팍하면 사람들이 '벌레'로 밖에 안 보일까? 마음의 여유를 갖고, 아이와 부모들을 봐주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다.

○ 편집ㅣ최은경 기자

덧붙이는 글 | 맘충보다 '천사맘'들이 더 많아지는 세상을 꿈꿉니다.
* 기사에 소개한 그림책: <안 돼, 데이빗> / 데이빗 섀논 글, 그림 / 지경사 펴냄.



태그:#그림책 육아 일기, #육아 일기, #맘충, #안 돼 데이빗, #데이빗 섀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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