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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와 기차로 간 서역기행'은 총 10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①사막을 가로지르는 신서역기행 ②서안(西安), 당나라의 흔적 ③진시황과 병마용 ④화청지 양귀비의 흔적 ⑤천수 맥적굴 ⑥난주 유가협댐과 황하 ⑦만리장성의 시작 가욕관 ⑧돈황 석굴 막고굴 ⑨사라진 왕국 고창고성과 교하고성 ⑩투루판 사막에 사는 사람들 - 기자 말

명사산의 모습과 낙타 사파리
▲ 중국 돈황시에 있는 명사산 명사산의 모습과 낙타 사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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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선선시 쿠무타크 사막의 모래산
 중국 선선시 쿠무타크 사막의 모래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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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쬐는 태양 아래 끝없이 펼쳐진 모래 언덕을 가로지르는 낙타의 행렬, 여행 사진이나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사막의 환상이다. 그래서 인간은 사막을 꿈꾼다. 끝없이 펼쳐진 금모래 언덕, 낙타를 타고 넘고 넘어서 밤하늘에 쏟아지는 별들을 노래하며 사막에서 하룻밤 꿈을 꾸리라.

사막. 정말 사막엔 이러한 낭만과 환상만 가득할까? 한마디로 아니올시다. 사막은 가는 금모래만 가득한 언덕이 끝없이 늘어선 곳이 아니다. 사막이란 크고 작은 돌과 자갈과 모래가 뒤섞여 있는 공간이다. 40도를 넘는 무더운 날씨와 내리꽂는 햇살, 어쩌다가 잡목이나 잡풀이 듬성듬성 자라고 있기는 하지만 한없이 덥고 메마르다. 어쩌다 운 좋게 나타난 모래 산은 사막이란 환상을 조장하는 신기루에 지나지 않는다.

당나라 삼장법사 일행은 서역기행을 다녀오면서 대부분 사막을 지나갔다. 삼장법사는 서안에서 출발하여 돈황에서 투루판을 지나 인도에 다녀왔다. 가는 데 8년이 걸렸고, 돌아오는 데 6년이 걸린 대장정이다. 우리나라 신라의 혜초스님도 배를 타고 인도로 가, 돌아올 때는 이 길을 따라 왔다. 어떻게 그 험악하고 먼 사막을 지나 인도까지 다녀왔을까?

기차로 35시간 걸리는 서역길, 9일간 여행했다

비단길이라 부르는 실크로드는 서안에서 출발하여 고비사막과 타클라마칸사막을 건너 중앙아시아를 지나 터키 이스탄불로 이어진다. 6400km 거리의 거대한 여정이다. 또 하나의 길은 서안에서 돈황, 우루무치, 화전을 거쳐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인도까지 이어진다.

<서유기>는 삼장법사가 서역을 가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당나라 때 현장법사인 삼장법사가 타클라마칸 사막을 건너 인도에서 불경을 연구하고 돌아온 과정이 전설이 되고 소설이되었다. 삼장법사가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등의 제자들과 함께 도술을 사용해서 요괴들의 방해를 물리치고 마침내 서역에 도착하여 목적을 이룬다는 내용이다.

이런 줄거리는 사막을 가로지르는 것이 그만큼 고통스럽고 어렵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극한의 환경을 요괴의 공격으로 치환하여 표현한 것이 아닐까? 이들이 다녀왔던 서역길은 사막의 복판은 아니다. 이들은 사막의 가장자리를 돌아 다녀왔는데, 이곳엔 가다 보면 오아시스가 있다. 따라서 지치고 지친 몸이더라도 오아시스를 만난 뒤엔 힘을 얻어 계속 전진했을 것이다.

삼장법사 일행이 힘겹게 지나갔던 서역길. 이제는 서안에서 돈황까지 1800km, 서안에서 우루무치까지 2800km가 고속도로와 철도로 뻗어 있다. 서안에서 우루무치까지 기차로 약 35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상해에서 출발하여 우루무치까지 이어진 4200km의 거리의 고속도로는 약 5년 전에 개통했다고 한다. 중앙분리대가 있는 편도 2차선 총 4차선의 길이 끝없이 뻗어 있다. 그야말로 이 길을 신서역길이라고 할 수 있다.

서안에서 우루무치 가는 고속도로
 서안에서 우루무치 가는 고속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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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9일부터 8월 6일까지 9일 동안 풀꽃산악회 회원 20명은 혜초여행사의 기획으로 신서역길의 중국 지역을 다녀왔다. 서안에서 천수까지 320km를 버스로 약 5시간, 천수에서 난주까지 330km를 버스로 약 5시간, 난주에서 가욕관까지 740km를 기차로 약 8시간, 가욕관에서 돈황까지 400km를 버스로 약 5시간, 돈황에서 유원까지 120km를 버스로 2시간, 유원에서 선선까지 620km를 기차로 약 9시간, 선선에서 투루판까지 약 150km를 버스로 약 3시간, 투루판에서 우루무치까지 190km를 버스로 약 3시간이 걸리는 총 2800km의 대장정이다.

서역길은 한무제 때 장건이라는 사신이 개척하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기원전 139년에 장건은 100여 명의 사절단을 이끌고 장안에서 출발했다. 흉노족의 원수관계가 된 월자라는 나라와 화친을 맺고 흉노를 치기 위한 것이었으나 오히려 '하서주랑(河西走廊)'이란 곳에서 흉노에게 붙잡혔다고 한다.

같이 간 사람들은 모두 죽었는데 장건이 매우 영리하게 생겨 흉노의 왕이 살려 주었고 살 집을 주었다고 한다. 10여 년을 흉노에서 살다가 서쪽으로 탈출하여 돌아다녔고, 1년 후 다시 흉노를 지나다가 붙잡혔다고 한다. 이후 1년 후 다시 흉노에서 도망하여 한나라에 돌아오게 되었고, 장건이 돌아와 자세한 지세와 흉노의 정보를 듣고 한무제가 흉노를 토벌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흉노 토벌 4년 후 장건은 다시 낙타 40여 마리에 비단을 태우고 서역으로 나가 향료, 옥 등을 가지고 들어와 교역으로 많은 재산을 모았다. 이것이 소문이 나서 많은 사람이 이 길을 이용하여 무역에 나서기 시작했다. 그래서 한나라에서는 돈황 지역을 실크로드 요충지로 보고 군사를 주둔시켜 지키게 했다고 한다. 이 실크로드는 당나라 때에 가장 융성하였고, 송나라에 들어서자 해상 무역이 활성화되면서 서서히 쇠퇴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수풀이 많은 서안에서 출발하여 천수를 지날 때까지 옥수수밭과 포도밭 등으로 푸른 길이보였다. 그런데 서안에서 700km 지점인 난주로 가는 길에서부터 민둥산들과 온통 붉은 황토산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난주에서 기차를 타고 가서 가욕관에 내리니 사막의 한가운데에 들어와 있었다. 타클라마칸 사막과 고비사막의 경계 지역을 따라 우루무치까지 사막이 펼쳐져 있다.

사막은 크고 작은 돌과 자갈과 모래로 때로 흰 빛을 띠기도 했고, 때로는 검은 빛을 띠기도 했다. 군데군데 뻗어 있는 산들은 붉은빛이나 검은빛을 띠기도 했다. 건조한 기후로 인하여 더욱 파란 하늘 아래 펼쳐진 붉은 언덕은 전설 속의 무서운 공간 같기도 했고, 우주를 떠도는 어떤 행성의 모습이기도 했다.

끝없이 펼쳐진 도로, 풍력발전기와 금모래 언덕

검은 돌과 자갈과 모래로 가득한 사막
 검은 돌과 자갈과 모래로 가득한 사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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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 있는 풍력발전소의 풍차들
 사막에 있는 풍력발전소의 풍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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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을 달리는 고속도로 양옆으로 수없이 펼쳐진 장관이 바로 풍력발전소다. 수많은 풍차가 돌고 있는데, 한 줄에 보통 10개의 풍차가 배치되어 있다. 고속도로를 기준으로 거의 100km를 가도 풍차들의 행렬은 끝없이 이어진 곳이 많았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전기는 상해까지 공급된다고 한다.

2800km 여정 중에 꿈에서나 볼 수 있는 금모래 언덕을 두 번이나 보았다. 돈황시에서 한눈에 보이는 금빛 모래산 명사산과 선선시에 가까이 있는 쿠무타크 사막이다. 명사산은 돈황시 남쪽으로 5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길이 40km, 폭 50km의 황금빛 모래가 가득한 산이다. '울명(鳴) 모래사(砂)'인 이 언덕은 모래들이 바람에 날리면서 소리를 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명사산은 돈황시에서 막고굴과 함께 대표적인 관광지가 되었다. 입구에서 발을 감쌀 수 있는 주황색 신을 빌려서 신고 들어가자 그야말로 가늘디가는 금빛 모래들이 사방에 가득하다. 언덕은 더 곱게 보이고 언덕 사이로 오르는 낙타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환상이다.

한 마리에 한 사람씩 탄 탁타는 5~6마리씩 줄지어 모래만 가득한 산을 오른다. 40도가 넘는 불볕더위에 산 위까지 타고 간 낙타에서 내려 모래도 밟아보지 못하고, 다시 밑으로 내려왔다. 그러나 사진에서 보았던 낭만이 가득한 낙타 타기 체험이다.

돈황 명사산에 있는 오아시스 월야천
 돈황 명사산에 있는 오아시스 월야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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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장법사 일행이 갔던 길은 이 낭만의 모래 언덕이 아닐 것이다. 이리저리 둘러봐도 눈동자에 잡히지 않는 오아시스를 그들은 절망하며 걸었을 것이다. 그런데 명사산 아래에 있는 조그마한 오아시스가 또 낭만적이다. 1000년이 넘게 초승달처럼 생긴 조그마한 연못에 물이 마르지 않아 월야천이라고 한다. 모래만 가득한 사막 가운데 조그마한 연못과 그 주위에 지어진 사찰이 마치 영화에 나오는 광경인 듯하다.

투루판 가까이 선선시에도 다른 모래산이 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다'는 뜻을 지닌 쿠무타크 사막은 길이가 62km, 폭이 약 40km나 된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낙타 대신 지프를 타고 언덕 위까지 올라갔다. 거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으로 모래 언덕을 오르내리며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이렇게 보니 모래로 된 언덕들이 끝이 없이 이어져 있었다.

사막엔 원래 크고 작은 돌, 자갈, 모래만 가득하다. 명사산이나 쿠무타크 사막처럼 모래로 가득한 산은 2800km 여정에서 두 곳밖에 없었다. 모래만 가득한 산은 이미 유명한 관광지가 돼 있었다. 그만큼 모래만 가득한 사막은 드물다는 뜻이다.

사막에서 모래만 가득한 산은 풍화작용이 마지막 단계라고 한다. 몇 억 년이 지나면서 일어나는 풍화작용은 용암이 무너져 큰 돌이 되고, 큰 돌이 작은 돌이 되고, 작은 돌들이 모래로 되거나, 모래가 되지 않은 것은 흙으로 변한다고 한다.

사막지역에 있는 붉은 산
 사막지역에 있는 붉은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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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욕관 가는 기차에서 본 사막의 일출
 가욕관 가는 기차에서 본 사막의 일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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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때라면 우리나라 신라 때와 시대가 같다. 삼장법사가 서역기행을 다녀온 것은 지금부터 1400여 년 전의 일이다. 길도 없는 무덥고 험한 사막을 낙타와 말을 타고 가는 데 8년 걸렸고, 돌아오는 길이 6년 걸렸다면 얼마나 힘든 서역기행이었을까 짐작이 간다. 그들이 겪었던 고난의 서역길, 이 길에 남은 그들의 발자취는 군데군데 남아있다.

단 9일 동안 기차와 버스로 다녀온 서역길만 하더라도 40도가 넘는 날씨 때문에 입에 침이 마를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덥지만 땀이 나지 않는 이상한 징조도 많이 느꼈다. 그만큼 건조하여 땀은 나지 않는 무더위가 가득한 것이다. 9일 동안의 여정에서 관광지를 제외한 곳에서 줄지어 가는 낙타 무리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오늘날의 서역길은 버스와 기차로 다닌다.


태그:#서역기행, #실크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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