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이와의 한 시간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였다. 자리에 앉자마자 유이는 특유의 큰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쉴 새 없이 수다를 이어갔다. 최근 KBS 2TV <개그콘서트> '호불호' 코너에서 '인천 남동구 출신 스타'로 유이가 언급됐다는 이야기를 꺼내자 "나가야 하는 건가", "나가서 뭘 해야 하는 건가", "음악 방송에 여러 번 나갔는데도 <개그콘서트>는 무대 위에서 연기를 해야 하니 어렵더라"는 대답이 3단 콤보로 돌아왔다. 연이은 인터뷰로 피곤할 법한데, 아직 하고 싶은 말이 많이 남아 있는 눈치였다.

"자꾸 제가 '연기를 못 했다'고 자책하는 이야기만 나가서 속상한 부분도 조금은 있어요(웃음). 물론 부족한 부분이 있었던 건 다 제 잘못이죠. 하지만 '더 잘할 수 있었고, 완전히 만족할 수 없다'는 정도예요. 과거로 돌아가서 다시 <상류사회>를 만나게 된다면 전 또 지금과 같은 선택을 할 거예요. 드라마 속 제 모습을 사랑해주신 분들께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유이의 재발견'이라는 말도 감사하고요. 그동안 '예쁘다'는 말을 잘 못 들었는데 <상류사회>로 '예쁘다, 성숙하다'는 말도 처음 들었거든요(웃음)."

"촬영하며 과거의 내가 많이 떠올랐다"


SBS <상류사회>에서 유이가 연기한 장윤하는 재벌가의 막내딸이면서도 백화점 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집안의 독재자인 아버지는 걸핏하면 밥상을 엎었고, 어머니는 장윤하에게 충분한 사랑을 주지 못했다. 두 언니도 유독 그에겐 불친절했다. 자연히 지독한 외로움에 시달렸고, '결혼만큼은 사랑하는 사람과 하겠다'는 확고한 생각을 갖게 됐다.

물론 유이가 재벌가의 딸인 것도, 화목하지 못한 집안에서 자라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유이는 유독 외로움을 타는 장윤하에게서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했다고 한다. 유이에겐 가수를 목표로 오랜 연습생 생활을 견뎠지만 데뷔를 코앞에 두고 팀이 공중 분해된 경험이 있다. 다시 연습생 생활을 거쳐 여성 아이돌 그룹 애프터스쿨의 멤버가 되기까지, 그는 막연한 불안감과 외로움에 맞서야만 했다. 그 싸움은 온전히 혼자만의 것이었다.

"(연습생 때) 애프터스쿨 언니들의 기존 곡들뿐만 아니라 푸시캣돌스나 비욘세처럼 언니들이 행사에서 선보이는 무대 안무까지 혼자 연습해야 했어요. (손)담비 언니 춤도 췄죠.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잃게 된다잖아요. 저는 또래와 같은 삶보다는 일을 선택한 거였으니, 기댈 곳이 연습하는 것밖에는 없었어요.

데뷔하고 난 뒤에도 언니들이 스케줄을 가면 저 혼자 카페에 앉아 있어야 했던 때도 있었어요. 외로웠죠. 연습생 생활을 오래 했으니 불러낼 친구도 딱히 없었고, 그렇다고 부모님께 전화할 수도 없었어요. 제가 데뷔를 하긴 했으니 당연히 바쁠 거라 생각하셨을 것 아니에요. '잘 지내고 있니'라는 물음에 '괜찮다'고만 말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죠. 이지이(임지연 분)라는 친구라도 있는 장윤하와는 달랐던 과거의 제가, 촬영하며 많이 떠오르더라고요."

유이의 '서른 즈음에'


극 후반 장윤하는 사랑하는 남자 최준기(성준 분)가 자신을 상류사회 진출의 도구로 여겼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복수심에 재벌가 막내딸로서의 삶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자신만만했던 초기와 달리 생각처럼 성과를 내지 못한다. 유이는 이 대목에서도 과거의 자신을 만났다.

"장윤하가 '나는 회사 일을 잘 할 줄 알았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저도 그런 때가 있었어요. 그렇다고 해서 장윤하는 좌절하지 않았잖아요. 그런 부분도 저와 비슷해요. 연습생 생활이 길었을 때 '다른 친구들은 다 TV에 나오는데 왜 나는 안 되지, 더 이상 안 되는 건가봐'하고 집으로 돌아갔다면 전 지금까지 아무것도 못하고 있었겠죠. 하지만 '더 연습하자, 더 노력해보자' 마음먹었던 게 지금까지 오는 데 큰 힘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꿀벅지'라는 말이 여성의 육체적 젊음이나 아름다움의 상징과도 같이 쓰였던 때가 있었다. 매스컴은 이 '꿀벅지'의 선두주자와도 같았던 그를 시대의 아이콘처럼 떠받들곤 했다. 그러나 유이에게 이 단어는 양날의 검이었다. 대중은 그를 향해 열광했지만, 동시에 그는 '섹시 스타'라는 범주 안에 갇히게 됐다.

그래서 지금 유이가 기다리고 있는 건 또 다른 화려한 수식어가 아니라 점점 성숙할 자신의 내면이다. "'무조건 열심히'만 생각했던 데뷔 초의 조급함이나, 바쁘게 이런저런 활동을 하면서 '내가 이 일을 무엇 때문에 하고 있는 건가'는 회의감에서는 많이 벗어났다"고 입을 연 유이는 "어느 순간 솔직한 내 이야기를 하게 됐다, 이제 와서 전형적으로 이야기해서 뭐하나 싶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래서인지 고 김광석 선배님의 '서른 즈음에'가 부쩍 좋아졌다"며 웃어 보였다. 28세, 그도 어느새 그 노래가 와닿는 나이가 됐다.

유이 "<호구의 사랑> 최덕문, 소중한 인연"

잘 알려진 대로 유이의 아버지는 김성갑 넥센 히어로즈 2군 감독이다.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끝에 유이는 "이게 가식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아버지께서 어렸을 때부터 '수십억 인구가 사는 지구에서 한 번이라도 만났다는 건 커다란 인연이니 늘 감사함을 표하라'고 가르치셨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근 영화 <암살>로 '천만 배우'의 반열에 오른 최덕문은 그런 점에서 유이에게 '소중한 인연'이다. 이들은 올해 초 방영된 tvN <호구의 사랑>에서 코치와 제자 사이로 만났다. 그를 두고 유이는 "처음엔 코치님(유이가 최덕문을 부르는 호칭-기자 주)이 낯가림이 있으셨는데 내가 먼저 들이댔다"고 했다. 알고 보니 유이의 전작 중 하나인 KBS 2TV <전우치>(2012)에서도 마주친 적이 있었다고. 유이는 "코치님이 그 이야길 하시면서 '나는 그때 네가 연기를 더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번(<호구의 사랑>)엔 잘한 것 같다'고 칭찬해 주셨다"며 "그 뒤부터 꾸준히 연락을 드리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언젠간 코치님은 열심히 돈만 버는 농부, 나는 농부의 철부지 없는 부인을 연기하면 재밌겠다는 농담도 주고받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