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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에서 이어집니다)

그날 이후 둘은 무섭게 만난다. 미키가 일할 때, K가 어쩔 수 없이 마감해야 할 때만 빼놓고는 시도 때도 없다. 지난밤이 아쉬운지 아침에 미키의 출근시간을 앞두고 미키가 근무하는 빌딩 앞에서 모닝커피에 따뜻한 베이글을 나눠먹는 것도 일과가 된다. 점심 때 미키가 다른 일정이 없을 때는 같이 밥 먹는다.

저녁과 밤에도 마찬가지다. 간혹 마트나 수산시장, 전통시장 등에서 함께 장을 보고, 서로의 집을 오가며 음식을 만들어먹기도 일쑤다. 함께하는 시간과 사랑에 굶주린 사람들처럼 둘은 함께한다. 영화관으로, 콘서트장으로, 전람회장으로, 심지어 한국말에 아직까지 익숙지 않은 미키와 함께 강연장까지 찾는다. 전혀 그럴 것이라고 생각이 되지 않지만, 딱히 '사랑의 열병에 걸린 사람들'이라고 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다.

아마 둘에게 첫사랑은 아닐 것이다. 독설로 유명한 버나드 쇼는 '약간의 어리석음이 더해진 호기심 덩어리이자 감당할 수 없는 열병'이라고 첫사랑을 얘기했다. 지금 그것만 봤을 때 첫사랑 못지 않은 것이다. 열병에 걸렸을 때, 열이 내리지 않으면 사람은 죽는다. 다행히 미키가 본사로 돌아가야 할 때가 다가온다.

옛날처럼 사람들이 한 곳에 정주해서 대가족을 이뤄 끼리끼리 살아가던, 농사짓는 시절이었다면, 이런 불필요한 헤어짐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자신이 택했거나 아니면 어쩔 수 없이 다녀야 하는 직장에 따라 사람들의 거주 공간과 시간이 정해진다. 사랑이나 연애 따위는 그 같은 조건이 정해진 다음 문제다. 또한 대부분 사람들은 사회에서 요구하는 직장 혹은 직업에 생활의 대부분을 바쳐야 한다. 그렇게 사회인으로 기능을 제공하지 못하면 실업이나 빈곤이라는 제재를 처절하게 받게 되기 때문이다.

K에게는 익숙지 않은 상황이지만 도리가 없다. 미키를 보내지 않아도 되는 방법을 마치 호주머니에서 꺼내듯 내놓는, 드라마 속 능력 있는 남자 주인공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 쿨한 척이라도 하자. 미키가 머무는 동안이라도 '겨울연가'가 됐든, '가을동화'가 됐든 드라마를 찍는 거야"라고 K는 말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이별여행이라는 말을 붙이기는 싫다. 이별을 위한 여행이 아니다. 이별을 앞두고, '마지막'을 전제로 하는 여행이 아니라는 것이다. 단지 미키가 도쿄로 돌아가 잠시 못 보는 시간을 아쉬워하는 여행이라고 K는 스스로에게 강변한다.

2박3일 일정으로 가평, 설악산과 동해 바다를 둘러보기로 했다. 원래 설악산과 동해 바다만 보려다 미키가 마침 계절이 계절인 만큼 일본에서는 예전에 '겨울의 소나타'로 소개된 드라마 '겨울연가'의 현장을 가보고 싶다고 해서 거쳐 가기로 한다.

서울을 떠나기 전날, 눈이 와 걱정됐다. 하지만 당일 아침 눈은 그쳤고, 하늘만 끄느름하다. 운전하기에는 무리가 없겠다. 한겨울 뒤덮었던 미세먼지를 눈이 닦아낸 터라 제법 공기도 맑다. 하늘은 잿빛이지만 마음은 햇빛이다. 대부분 사람들에게 그런 것처럼 여행은 막무가내로 설레기 때문이다. 동행하는 사람이 가족이든, 친구든, 아니면 직장 동료라도 서로 즐겁다. K도 그렇다. 2년 만에 여유롭게 서울을 벗어나보는 데다 모든 것을 나눌 수 있는 미키와 함께 길을 떠난다는 것 자체가 꿈이다.

미키도 적잖이 즐거워한다. 한국에 온 지 3개월이 다 되는데도 일 때문에 서울에만 잡혀있던 그녀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지만, 이번 기회에 눈 덮인 한국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기회를 갖는 것 자체만으로도 기쁘다고 한다. K는 따뜻한 캘리포니아를 향하던 미키가 한국의 추운 겨울을 찾는 것은 재미있는 아이러니라며 미키를 놀려댄다. 

일찌감치 새벽부터 출발해서인지 춘천 가는 고속도로에 막힘이 없다. 가평 남이섬으로 가는 선착장에 도착했는데도 아직 보통 서울에서의 아침 식사 전이다. 오전 이른 시간이지만 벌써부터 나룻배가 남이섬을 오가고 있다. 역시 K의 예상이 맞았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았다. 게으른 관광객이면 누리지 못하는 한적함을 얻었기 때문이다.

한겨울 눈 온 다음날 아침, 남이섬을 찾는 사람은 흔치 않다. 그런 만큼 거의 전세로 배를 빌린 수준이다. 날이 그다지 춥지 않아도 겨울은 겨울이다. 강 가장자리에는 얼음이 얼어있다. 배가 지나가면 마치 쇄빙선이 지나듯 깨진 얼음이 스르륵 소리 내며 흩어진다. 섬까지 가는 배에 머무른 시간은 고작 10분도 안 되지만 살짝 깔린 물안개가 걷히면서 드러나는 북한강은 수 천 년 그렇게 흘렀을 것이다.

그야말로 하얀 세상, 순백색이다. 미키와 함께 K는 숫눈길에 첫발을 남긴다. 메타세콰이어 길도 온통 새하얗다. 길도 숲도 조그마하게 지어진 편의시설도 모두 흰 옷으로 갈아입었다. 만일 개썰매라도 달린다면, 영화 '닥터 지바고'에 나오는 흰색 눈의 평원 혹은 타이가 숲이라고 해도 믿겠다. 이런 은세계에 와서 드라마나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고는 스스로 주인공인양 연기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 정서의 샘은 오래 전 메말랐다고 단언해도 될 것이다.

고요와 적막은 소곤거리는 소리도 들을 수 있다. 거닐면서 밀어를 나누기에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그러다 작은 눈사람도 만들어보고, 눈싸움도 하면서 여느 연인들처럼 눈밭을 뒹굴어 보기도 한다. 오래된 영화 '러브 스토리'의 눈 덮인 하버드대학교 교정에서 올리버와 제니퍼가 뛰어 노는 것처럼, 그러다가 절대로 미안하다는 얘기를 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 되기 위해서.

눈 위의 '브런치'는 처음이다. 미리 준비해 온 샌드위치와 뜨거운 핸드 드립 커피는 훌륭했다. 통음과 황음으로 열대야를 뒹굴다 늦잠을 자고 일어나서 마시는 차가운 오렌지 주스에 텁텁한 바나나를 먹는 여름의 그것보다는 매우 이성적인 브런치였다.

그들이 브런치를 마치고 정리하는 시간,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밀려들어 소음과 소란에 감염되기 전에 그들은 서두른다. 큰길을 외면하고 작은 길로 접어든다. 남이섬을 돌아보는 자전거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미키와 손을 잡고 찬찬히 섬을 거니는 즐거움을 누렸다. 지난 겨울 둘이 함께한 시간들이 섬 눈 풍경과 어울려 파노라마처럼 지나쳤다. 까치가 울어 대고, 가끔 청솔모는 나무 위의 눈을 흩뿌린다.

물이 남쪽으로 흘러가는 남이섬 끝자락이다. 저 물은 흐르고 흘러 서해로 흘러들 것이고, 서해로 간 강물은 바닷물이 돼 언젠가 미키에게 가까이 갈 수 있겠지. K가 미키를 만나서 가장 행복한 겨울을 보냈다고 말한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겨울, 봄, 여름, 가을 다시 겨울을 함께 맞이했으면 한다고 소망한다.

"미래의 시간들을 현재의 유리병 속에 가두지 말아요. 제 마음은 늘 캘리포니아를 향하지만 이곳 겨울도 좋아해요. 지금 내가 K를 생각하고, 사랑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아닌가요?"

사실 남녀 사이에서 말이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는 않다. 말없이 미키를 바라보다가 K는 미키의 이마에, 볼에, 귓불에, 목덜미와 목에, 입술에 차례로 입맞춘다. 차갑지만 뜨거운 키스가 있다면, 바로 이것이라고 선언하듯 낮고 부드럽지만 격렬하다. 미키의 말을 무조건 인정하고 따르겠다는 답이다.

주말을 맞아 몰려든 사람들이 건너편에서 들뜬 목소리로 재잘거리며 배를 기다리고 있을 때, K와 미키는 남이섬을 벗어나는 배에 오른다. 청평에 예약한 펜션과 그리 멀지 않은 곳의 절을 찾는다.

운악산에 약 1500여년 전 세워졌다는 현등사다. 서울에서 온 길을 잠시 거꾸로 되돌아가 검문소를 거치고 현리 길로 들어서서 쉽게 찾았다. '찾았다'기 보다 핸드폰에 내장된 내비게이션이 가르쳐주는 대로  '쫓아갔다'는 말이 맞다. 주차장 입구에서 절까지 거리는 왕복 5km가 조금 넘는다. 느긋하게 올라 부처님께 절할 수 있는 충분한 거리이고 시간이다.

눈 온 다음 날인 만큼 K는 미키에게 아이젠을 신겨준다. 절을 찾는다는 것은 산행을 한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물론 절집이 산에 오르는 초입에 있는 곳도 있지만 대부분 '고산대찰(高山大刹)'이라는 말이 있듯 대부분 산 속 깊은 곳에 숨어있기 때문에 절을 찾는 일을 산행으로 바꿔 쓸 수 있다는 것이다.

미키가 힘들어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평소 걷기는 물론 달리기와 피트니스로 몸이 단단한 미키를 따르느라 K가 오히려 힘겨워한다. 말장난하기 좋아하는 사람의 얘기처럼 연인과 산에 오르는 일은 함께 '숨 가쁘고, 헐떡이고, 때로는 신음을 내는' 것이다. 서로의 숨결을 충분히 느낄 수 있고, 서로의 손을 잡아주고 이끌어주며, 서로의 모든 것을 서로에게 맡길 수 있는 체험이 바로 산행이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남이섬 강 풍경과는 달리 첩첩이 겹쳐있는 산 풍경은 다른 맛이다. 솔향기, 잣나무향이 은은해서 가득 담아가고 싶도록 욕심도 생긴다.

한 번 쉬고 다다른 현등사는 여전하다. 일주문을 지나 '불이문(不二門)'을 넘어가면서 K는 미키와 '둘이 아닌 하나'임을, 만남과 헤어짐이 하나임을, 다툼과 어울림이 하나임을 생각한다. 10여 년 전 왔을 때보다 서투른 장인의 단청이 덧칠해졌는지 촌스럽게 화려해서 고색창연한 맛이 덜한 게 아쉽다.

그 아쉬움을 보상하듯 평소에는 닫혀있던 극락전 문이 열려있다. 운 좋게 열린 극락전에는 여전히 구복(求福)을 하는 아주머니들이 많다. 차례가 돼서 미키와 함께 배례를 한다. 사전에 배례하는 법을 가르쳐 줬는데 제법이다. 무엇을 빌었는지 K가 미키에게 묻자 미키는 '세계평화'라고 웃으면서 눙친다. 손잡고 내려가는 길은 가벼웠다. 오후가 훨씬 지났는데도 산사를 찾는 많은 사람들이 울긋불긋 꾸역꾸역 산을 오른다. 집에서 가져온 커피가 바닥나 자판기 커피를 뽑는다. 오랜만에 마시는 달착지근한 자판기 커피의 맛과 향기가 또 하나 젊은 날을 추억하게 한다.

청평호. 말은 호수지만 북한강을 댐으로 막아 놓은 곳이다. 호수든 강이든 푸른 물이 보이는 곳에 예약한 펜션은 인터넷 사이트에서 본 것만큼 밝고 화려하지는 않아도 깨끗하고, 풍광이 좋아 만족한다. 가장 마음에 든 것은 강이든 호수든 내려다보이는 '스파'다. 기대하지 않았던 행운의 덤이다.

펜션 주인이 마련해준 바비큐 스테이크와 소시지, 군고구마, 샐러드로 이르게 저녁을 먹었다. 마늘 소스를 발라 구운 도톰한 스테이크가 제법 육질과 향을 제법 살려 맛이 좋았다. K는 오랜만에 과식한다. 마음도 편하고 즐거운 만큼 음식도 좋았나 보다. 디저트로 내온 향이 진하고 뜨거운 로즈마리 허브차에 몸까지 향취에 젖는 것 같다.

둘은 따뜻한 스파의 물에 몸을 담그고, 호수가 된 강을 바라보며 와인을 마신다. 작은 접시에는 까망베르 치즈와 호두, 파스타치오, 잣 등 견과류가 곁들였다. 가끔 서로를 쓰다듬으면서 둘은 얼마 전 열린 런던필하모니가 협연했고,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가 '초초상'으로 출연한 오페라 '나비부인'에 대해 얘기를 나눈다.

"오페라의 아리아인 '어떤 갠 날'이나 '허밍 코러스' 같은 오페라 속 노래는 괜찮고 좋아해요. 하지만 그 전체 스토리는 마음에 들지 않죠. 서양인들의 전형적인 오리엔탈리즘이 담긴 내용 아닌가요. 그리고 남자에게 버림받고, 아이도 빼앗기고, 마침내 자살한다…. 한국 사람들이 싫어하면서도 시청률은 높은, 전형적인 '막장 드라마'라고 생각해요."

뜻밖이다. '드라마 혹은 오페라를 그냥 드라마나 오페라로 보면 되지 않을까' 하고 K가 반문한다.

"오페라나 드라마, 혹은 영화 같은 대중문화는 그 시대를 반영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에요. 그렇다면 사회적이나 역사적인 맥락에서 바라봤을 때, 그 사회나 당대 사회를 비추는 것이 당연하고, 그리고 대중문화의 수용자들은 거기에 대해 일정한 선택과 비판을 할 수 있을 거고요. 어쨌든 개인적으로 저는 이 스토리와 배경이 마음에 들지 않아요."

단호하기까지 하다. K도 그런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할리우드 만화영화 '포카혼타스'를 그냥 만화로 봐야하는지, 아니면 미국 개척민들의 인디언 학살과 연계시켜 생각해야 하는지 하는 것처럼. 하지만 그냥 100년 전 오페라고, 그 음악에 대해 좋아하거나 좋아하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미키는 그 오페라의 뒷면까지 자신의 취향과 기호에 포함시켜 예술의 기능에까지 의미를 확장시킨 것이다.

그렇게 따져보면, 일본의 드라마도 마찬가지 아닌가. 수 년 전 시바 료타로의 소설 '언덕 위의 구름'을 극화한 NHK의 동명 드라마가 대표적이다. 이 드라마는 한국을 비롯 대만 등 아시아 여러 나라에 그들 말대로 '진출'한 것은, 서구의 그 다음 표적이 일본이기 때문이었다는 우익의 논리와 함께 그 '진출'로 아시아가 함께 번영할 수 있었다는 궤변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이처럼 동양인에 대한 동양인의 오리엔탈리즘이 일본이라는 나라의 '국격(國格)'이다. 최근 한국과 중국이 일본의 우경화, 그에 따른 군국주의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아직도 벗지 못한 일본의 '대동아 공영'이라는 자국 우선의, 그래서 다른 나라를 침탈하려는, 일종의 '변종 오리엔탈리즘' 때문이다.

K의 상상적, 그러나 나름대로 논리를 갖춘 비약은 이렇게 곁으로 흐른다. 하지만 잠시였다. 그는 다시 미키에 집중한다. 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 황태자 페르디난트 부처가 세르비아 젊은이에게 암살당하던 날도, 1937년 12월 13일 일본군이 난징대학살을 일으킨 날도, 1941년 12월 8일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한 날도, 1945년 8월 6일과 9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날도,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일어난 날도 많은 사람들은 사랑했다.

그 사건에 직접적-간접적인 영향을 받건 받지 않건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활을 살았다는 것이다. '나비부인'의 '초초상'이 자살을 했든 안 했든, 그 자살의 이면에는 무슨 이유가 있었든, 이미 미키와 K의 사생활에 '초초상'은 끼어들지 못한다.


태그:#대동아공영, #오리엔탈리즘, #언덕 위의 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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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Bella Vita! 인생은 아름답다며, 글쓰기로 먹고 살기 위해 애쓰는 여러분의 이웃입니다. 세계일보, 머니투데이, 한경비즈니스, 이코노미조선 등에서 기자로 일했습니다. 2019년 '아산문학' 공모전에서 '그는 제바닷타였을까'라는 단편소설로 대상을 받고, 전업작가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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