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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엊그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소. 대구 볼트제조 공장에 벼락이 떨어져 전기 계통에 화재가 발생하여 7000여만 원의 피해를 입었다는 뉴스를 볼 때였소. 버스 대합실 TV화면을 뚫어져라 들여다보던 두 중년 아저씨들의 대화 내용이오.

"로또 당첨될 확률이 벼락 맞을 확률보다 힘들다는데, 저긴 그 어렵다는 벼락을 맞았네. 벼락 맞을 확률이라도 좋으니 로또 한 번 맞았으면 소원이 없겠다."
"야, 이 사람아, 로또복권 한 장이라도 사고 그런 얘기를 해!"
"그런가? 허허허."

여보, 로또복권에 당첨될 확률은 814만 5060분의 1이이라는 거 알아요? 이는 화장실에서 넘어져 죽을 확률인 80만 1923분의 1보다 열 배 희박한 확률이고, 벼락에 맞아 죽을 확률 428만 9651분의 1보다 두 배 더 힘든 확률이오. 그렇게 어려운 확률로 로또복권에 당첨된 사람도 부자로 사는 건 더 어렵다는 거 알고 있소?

로또복권에 당첨된다고 부자? 아니다

30대 황아무개씨의 경우 2006년 로또 1등에 당첨되어 13억 원의 당첨금을 받았소. 그러나 4년 만에 술집, 카지노 등을 전전하며 다 탕진하고 빈털터리가 되었소. 그뿐 아니라 유흥비를 마련하려고 휴대전화 절도를 일삼다가 상습 절도혐의로 붙잡혀 갇히는 신세가 되었소. 이 청년에게 로또 대박은 결국 로또 쪽박이 되었소.

미국에서는 2002년 잭 휘태커(Jack Whittaker)씨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일 거요. 그는 역사상 최고액인 3000억 원의 파워볼 복권에 당첨되었소. 세금을 떼고도 1000억 원이 넘는 거금이 그의 손에 들어왔고요. 휘태커씨는 처음에는 당첨금의 10%를 교회에 기부하는 등 자선사업도 활발하게 펼쳤소. 그러나 이후 그는 흥청망청 돈을 썼고 음주운전, 폭력 등에 관련되어 범죄자가 되었소.

그는 "(복권에 당첨된 것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였다"고 했소. 로또에 당첨되어 일순간에 부자가 되었는데도 부자로 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오. 앞의 두 예보다 훨씬 많은 경우 가정불화, 자살, 성격파탄, 범죄자 등 불행하게 되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하오. 왜 그럴까요?

여보! 그건 부자 개념을 잘못 이해하고 부자로 살 준비가 안 되어서라오. 부자는 말 그대로 '돈이 많은 사람'만을 의미하는 게 아닌 게지요. 미셸 팽송은 <부자들의 사회학>(갈라파고스 펴냄)에서 이것을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소. 저자는 부자들만의 사회적 관습과 역사, 가족자본, 상징성, 문화 등이 따로 있다고 말하고 있소. 쉽게 말하면 부자들이 '노는 물이 다르다'는 말이오.

그 문화를 접하지 못한 사람이 갑자기 부를 거머쥐게 될 때 공황상태에 빠지게 되는 것이오. '빅 옴바사(Big Wombassa)'라는 말이 있소. 이 말은 '베스트 오브 엣지 시리즈' 중 <생각의 해부>(와이즈베리 펴냄)에서 하버드대 심리학과 교수인 대니얼 길버트의 글 '정서 예측, 혹은 빅 옴바사'에 등장하오. 뜻은 "자신이 원하는 일이 실제로 이루어졌을 때 과거에 기대했던 것을 실제로는 체험하지 못하게 되는 심리적 현상"을 말하지요.

여보, 돈은 있는데 부자의 삶은 살지 못하는 것은 일종의 '빅 옴바사 현상'인 거지요. <부자들의 사회학>에서 저자는 "부자란 정신상태를 가리킨다"고 못 박고 있소. 부자는 돈이 아니라 정신상태라는 말에 언뜻 공감이 가지는 않소. 원래 우리의 사고구조는 돈이 많은 사람이 부자란 개념에 익숙하니까요. 중산층을 말하는 논리부터가 다른 나라와 아주 다르오.

우리나라 사람들의 중산층 이해는 ▲ 부채 없는 99㎡ 아파트 ▲ 2000cc 중형 자동차 ▲ 통장 잔액 1억 원 이상 ▲ 월급 5000만 원 이상 ▲ 해외여행 1년 한 차례 이상 등 대부분 돈과 관련되어 있소. 그러나 프랑스, 영국, 미국은 ▲ 외국어를 하나 이상 구사하는 것 ▲ 페어플레이 하는 것 ▲ 자신의 주장에 떳떳할 것 ▲ 한 가지 이상 스포츠나 악기를 할 줄 알 것 ▲ 약자를 두둔하고 강자에 대응하는 것 ▲ 부정과 불법에 저항할 것 등으로 삶의 질과 관련이 깊다오.(본문 148쪽 참고)

서민이 부자들의 '끼리끼리 문화' 진입? 거의 불가능하다

책 <부자들의 사회학> 표지
 책 <부자들의 사회학> 표지
ⓒ 갈라파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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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층을 보는 눈이나 부자에 대한 사고구조가 우리와 다르긴 하지만, 저자가 프랑스를 예로 들며 부자들의 사회학을 만화로 풀어주고 있는데, 우리나라와 같은 점이 너무 많소. 그 중 대표적인 것은 그들만의 '끼리끼리 문화'가 존재한다는 것이오. 쉽게 말해, '이병철-이건희-이재용'으로 이어지는 '삼성패밀리', '정주영-정몽구-정의선'으로 이어지는 '현대패밀리', 그들만의 문화 말이오.

단순히 돈으로만 생각하는 부의 개념으로 접근하면 부자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게 되오. 일테면 김용철 변호사가 터뜨린 '삼성의 X파일'도 그들의 정신상태가 낳은 부산물인 거요. 조금 더 나아가면 그게 자본주의의 속성이오. 사회학자가 쓴 결코 쉽지 않은 부자들의 사회학, 이 책을 이해하면 부자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님을 알 수 있소.

"돈이 돈을 낳는 세상, 돈이 곧 권력인 세상, 이른바 연예인이든 정치인이든 스포츠맨이든 유명 인사들까지 모두 포섭하는 능력을 가진, 그래서 부와 권력과 명예 그 모든 것을 집중시켜 장악한 오늘의 부자들을 알지 못하면 세상을 비판적으로 인식할 수 없다."(본문 4쪽)

여보! 너무 돈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게 질투나 부자를 미워한다면 이는 미련한 짓이오. 부자의 근본을 알아야 부자에 대해 기어이 말할 수 있는 것이오. 책은 복권에 당첨된 부부를 진짜 부자로 만드는 스터디 형식으로 이뤄졌소. 서민이 부자가 되는 길은 벼락에 맞는 것보다 두 배나 어려운 복권당첨밖에 없다는 설정자체가 우리를 슬프게 하오.

우리 국민 81%가 '개천에서 용 날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하오. 지당한 말이오. 이제는 강남에서 용 나고, 삼성가나 현대가에서 용 나는 시대요. 이들은 '영어유치원-사립초등학교-국제중학교-특목고-SKY-미국유학'이라는 자신들만의 엘리트 코스가 있소.

때로 우리는 그들만의 리그를 바꿀 수 있다는 환상에 빠지기도 하오. 정치인을 바꾸면 될 거라는 환상 말이오. 그러나 정치인 역시 그들의 '끼리끼리 사회'의 일원이라는 점을 놓친 결과요. 회장, 은행가, 정치인, 동문, 같은 지역 출신, 가족관계, 골프 치는 사이, 자금으로 연결된 사이, 같이 잔 사이 등등 얽히고설킨 '패거리 문화'를 읽지 못하면 결국 돈의 흐름도 놓치게 되오.

여보! 패거리의 일원인 정치인은 소위 '낙수효과'가 있을 거라며 부자들에게 호혜정책을 쏟아내오. 그리고 그 호혜의 결과를 자신들이 누리죠. IMF시대에 재산이 는 사람들은 대부분 정치인들과 기업가들이었다는 점이 이미 그걸 증명했소. 서민들이 부자증세 혹은 법인세 인상을 말하면 경제에 저해가 된다며 기득권자들이 회피하오.

신자유주의자들은 정치인이든 경제인이든 다 한 통속이오. 심지어는 세금을 덜 내는 조세피난처로 도망갈 생각도 하오. 그럴까 봐 세금을 올리지 못하는 경향도 있소. 여보! 다른 함정은 '능력사회' 운운하는 캠페인에 속는 것이오.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자본주의 국가에서 능력사회란 없소.

"여기에서 능력지상주의는 아무 의미가 없어요. 능력이란 뭔가를 할 수 있다고 믿게 하는 것이지만, 실제 우리 삶을 보면 우리는 우리가 속한 계층이 보유한 기회를 물려받는 거죠. (중략) 부자들로 말하자면 개인주의에 몰입해 있으며, 이념적으로 경쟁제일주의를 지향한다고 할 수 있으나 실제로는 완전히 집단적이며, 자기들의 이익을 위하여 자기들끼리 하나로 똘똘 뭉쳐 있습니다."(본문 128, 129쪽)

여보! 책은 단호히 말하오. '끼리끼리 문화'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 한 부자는 될 수 없다고. 복권에 당첨되는 게 기적이고, 돈을 가졌더라도 부자의 세계로 들어가는 게 기적이오. 이래저래 벼락에 맞는 기적 이상의 기적이 일어나지 않으면 서민의 부자사회로의 진입은 하늘의 별따기라는 거지요. TV 앞 아저씨들처럼 복권 안 사고 복권 당첨되는 꿈꾸는 게 더 이상적일지 모를 일이오.

덧붙이는 글 | <부자들의 사회학>(미셸 팽송 외 지음 / 양영란 옮김 / 갈라파고스 펴냄 / 2015. 8 / 152쪽 / 1만3500 원)

※뒤안길은 뒤쪽으로 나 있는 오롯한 오솔길입니다.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생각의 오솔길을 걷고 싶습니다. 함께 걸어 보지 않으시겠어요. 이 글에서 말하는 ‘여보’는 제 아내만이 아닙니다. ‘너’요 ‘나’요 ‘우리’입니다.



만화로 읽는 부자들의 사회학

미셀 팽송 & 모니크 팽송-샤를로 지음, 마리옹 몽테뉴 그림, 양영란 옮김, 홍세화 해제, 갈라파고스(2015)


태그:#부자들의 사회학, #미셸 팽송, #양영란, #로또복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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