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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기사회생(起死回生)'이었다.

4일 서울고등법원 형사6부(부장판사 김상환)는 지난해 교육감 선거 때, 상대편 고승덕 후보 관련 허위사실을 퍼뜨렸다는 혐의를 받아온 조희연 교육감에게 당선 무효형에 해당하는 벌금 250만 원을 선고했다. 하지만 반전이 있었다. 재판부는 형의 선고를 유예했다. 유죄이지만, 범행 동기 등을 볼 때 2년간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없던 일로 하겠다는 취지였다. 이 판결이 확정되면 조 교육감은 임기를 무사히 마칠 수 있다.

조 교육감은 1심(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심규홍)에서 벌금 500만 원을 선고받고 교육감 직을 잃을 위기에 처해있었다. 1심 재판부는 그가 2014년 5월 25일 국회에서 개최한 첫 기자회견과 5월 26~27일 배포한 보도자료, 라디오 인터뷰에서 '고승덕 후보가 미국 영주권을 보유했다'는 허위사실을 퍼뜨렸다고 판단했다. 전체 내용을 의견 표명으로 볼 수 없다는 이유였다.

항소심에 들어가자 조 교육감은 전략을 바꿨다. 변호인단은 그의 발언이 사실 공표냐 의견 표명이냐를 따지기 전에, 이 가운데 무엇이 거짓이며, 어디까지가 후보 검증을 위한 의견 제시로 봐야하는지 명확히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새로운 주장이 나온 만큼 1심과 다른 각도에서 이 사건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봤다.

지난해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 고승덕 변호사의 미국 영주권 의혹을 제기해 1심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 받은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이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선고유예 판결을 받은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 '선고유예' 판결 받은 조희연 교육감 지난해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 고승덕 변호사의 미국 영주권 의혹을 제기해 1심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 받은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이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선고유예 판결을 받은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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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말] "고승덕 후보는 의혹을 사고 있다"

조 교육감은 문제의 기자회견과 보도자료, 인터뷰 내용에 '고승덕 후보가 미 영주권을 보유했다'고 적시하지 않았다고 했다. 자신은 최경영 <뉴스타파> 기자가 트위터에 쓴 글을 보고 '영주권 보유 의혹이 있다'고 알렸을 뿐이라는 얘기였다

실제로 국회 기자회견에서 조 교육감은 "고 후보의 두 자녀가 미국에서 교육을 받았고, 영주권을 보유하고 있으며 본인도 영주권이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며 "만약 이 제보가 사실이라면 고 후보는 유권자를 우롱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한 마디 더 남겼다.

"고 후보는 그 자신이 미국 영주권을 보유하고 있다는 의혹을 사고 있습니다."

재판부는 '의혹이 있다'는 조 교육감의 발언을 그가 '고 후보가 영주권을 보유했다'를 암시한 것으로 인정한다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며 이 대목은 있는 그대로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항소심에서 검찰과 변호인이 각각 감정을 맡긴 언어학자 세 명 모두 조 교육감의 발언과 글을 '의혹을 제기하고 해명을 요구하는 것'으로 본 데에도 주목했다. 결국 재판부는 첫 번째 공소사실, 국회 기자회견은 허위사실 공표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두 번째 말] "거짓 의혹임이 입증되면 사과하겠다"

하지만 두 번째 공소사실, 5월 26~27일 보도자료와 라디오 인터뷰는 1심과 똑같이 유죄 판결이 나왔다. 재판부는 고 후보가 해명한 뒤에도, 조 교육감이 "고 후보가 2012년 3월경 공천에 탈락한 뒤 자신은 영주권이 있어서 미국에 가면 된다고 말했다는 다수의 증언이 있다"고 한 것은 의혹 제기 수준을 넘어섰다고 지적했다. 또 여기에는 경쟁자인 고 후보를 낙선시킬 목적이 있다고 봤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조 교육감이 '여지'를 남겼다고 했다. 조 교육감은 두 번의 라디오 인터뷰에서 "만일 (고 후보가) 아주 객관적인 자료로 입증한다면 저도 사과하겠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조 교육감이 이 발언으로 고 후보의 영주권 보유 의혹이 여전히 확정적인 사실은 아니며 상대방이 반박할 수 있음을 분명히 했다고 판단했다. 조 교육감이 다소 표현을 과장하긴 했지만, '의혹 = 참'이라고 단정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세 번째 말] "잘못했다면 유권자들이 마이너스 줄 것"

재판부는 이 사건이 선거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점도 고려했다. 조 교육감은 기자회견 등에서 자신의 의혹 제기는 "유권자들의 알 권리를 위해서"라고 말했다. 또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면 "제가 잘못된 문제 제기를 했다는 것 때문에 유권자들이 저에게 마이너스를 주지 않겠냐"고 했다.

최종적으로 재판부는 '악의는 없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 제3자가 의혹을 제기하면서 조 교육감이 최초 기자회견을 열었고 ▲ 이 기자회견은 유권자들의 판단을 구하기 위해 후보자끼리 서로 공방을 벌인 것이며 ▲ 허위사실 유포에 해당하는 5월 26~27일 보도자료와 라디오 인터뷰도 같은 의도에서 나왔기 때문이었다.

김상환 부장판사는 "형사적 책임 범위를 정할 때에는 범행의 실질적 의미를 엄밀하게 따져봐야 한다"며 "피고인의 행위를 상대 후보자에 대한 무분별한 의혹 제기 내지 일방적인 흑색선전으로 유권자의 선택을 적극 오도하려는 것이라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피고인의 행위는 공직선거법 위반 중 비난 가능성이 낮은 수준이며 이 일이 선거 결과에 직접적이거나 의미 있는 영향을 끼쳤다고 볼 만한 객관적 자료도 없다"고 했다.

오후 3시 15분, 김 부장판사는 "이러한 모든 사정을 고려해 형을 정했다"며 주문을 낭독했다.

"원심 판결을 파기한다. 피고인에 대한 형의 선고를 유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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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조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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